손 안 대고 코풀기나 식은죽먹기, 라는 말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데 이걸로는 부족하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가브리엘이 복용하고 있는 약의 약가심사가 있었다. 한국에서 아직 보험등재가 되지 않은 약. (초간략 설명하면, 어떤 약을 한국에서 팔기 위해서는 일단 식약청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그 후 제약회사가 건강보험공단과 약가협상을 하게 된다. 이때 약가결정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이냐가 각종 무역협정에서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기도 하다. 어쨌든 협상이 성사되면 그 약은 건강보험에 등재되고 이 약을 사먹게 될 우리는 약값의 일부만 부담하고 나머지를 보험공단에서 지급하게 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고 심의 등등의 과정도 모두 꽝이 나면 그 약은 한국에서 팔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약을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사먹는다거나 알음알음 해외에서 구입해서 먹는다거나 하게 되고 물론 이 때는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에휴, 초간략은 글렀군...)

 

가브리엘은 그 약을 외국의 감염인지원단체를 통해서 구했다. 그 중 하나는 로슈 사에서 만든(? 파는!) 약이다. 로슈가 요구한 약값은 30,970원, 공단에서 부른 액수는 26,000원, 작은 주사약병 하나에 이렇게 부르는 가격이 다르니 협상이 될 턱이 있겠나. 그래도 공단에서 부른 액수가 미국의 사회보험에서 책정한 약가보다 비싼 거라던데. 어쨌든 결렬.

 

또다른 약은 지금 협상 중인 듯하다. 구도는 마찬가지다. 제약회사에서 부르는 턱없이 높은 가격을 공단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한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공단이 높은 가격을 받아들여 보험에 등재하도록 요구해야 할까. 보험급여가 나오면 약을 먹어야 하는 개개인의 부담은 훨씬 줄어든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내는 건강보험료를 제약회사에 갖다바치는 꼴이라는 거, 달라는 대로.

 

그러면 어떻게? 에 아직 답이 없다. 제약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가격만 부르면 된다. 우리의 필요가 그들의 무기다 .누가 돈을 부담하느냐가 무슨 상관인가. 개개인이 자비로 사서 먹든, 공단에서 보험재정으로 돈을 대주든, 자본은 돈을 차별하지 않으니 너른 아량으로 모두 받아주실 게다. 결국 보험급여가 되든, 협상이 결렬돼든,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돈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 병원에서 손쉽게 처방받느냐 다른 경로로 어렵게 구해 먹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돈을 내라는 대로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무슨 개발이든 땅 파서 돈 버는 건 건설자본들이다. 땅뛔기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돈을 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잃지 않으면 다행인 정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쫓기고 더욱 열악한 주거로 내몰리는가. 그런데 이 동네도 마찬가지. 돈 버는 것들은 따로 있는데 싸움은 돈 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보다 돈 못 버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하다. 조합과 조합이, 조합과 세입자가, 세입자와 세입자가 대신! 싸운다. 같이 싸워야 할 대상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 인천에서는 개발사업 때문에 분신하신 분이 있었다. 놀라기도 했고 너무 참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막을 듣고나니 참 마음 둘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 동네는 주거환경개선사업 구역이었다. 쉽게 말하면 지지리도 가난한 동네에 도대체 개발이 될 것 같지 않은데 개발이 필요할 때 지자체가 시행자가 되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주택재개발(조합을 만들어서 집주인들이 시행자가 되는 사업)과는 다르고 별로 많지도 않다. 분신하신 분은 그 동네를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아니라 주택재개발사업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느라 불길을 당기신 것이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주택재개발사업으로 해서 이문을 남겨야 '잃지 않는' 정도인 상황에 절박함이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볼 뿐이다.

 

가난한 세입자들에게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좀더 유리할 수 있으니 더욱 자세한 사정을 알기 전에 그 분을 위로하기는 어렵고 난감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분명한 건, 돈 버는 것들은 따로 있는데 잃지 않으면 다행인 정도의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 개발사업이고 앉아서 돈 버는 건설자본은 동네 주민들과 건설노동자들 팔아서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은 자본이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필요!할수록 자본은 돈을 번다. 필요할수록 빼앗기게 되는 아이러니. 게다가 주식이나 펀드 등으로 금융권이 계속 팽창하면서 앉아서 돈 버는 자본은주주 대기자 수많은 주주들과 들에게로 흩어져나갔다. 맑스는 자본가를 자본의 인격체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런 맥락에서 자본의 집중과 '자본가'의 확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인 듯하다. 단지 자본의 권력이 강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강해진 만큼의 권력을 조금씩 맛보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한 놈만 패는' 방식으로는 싸울 수 없는 시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변죽을 울리는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그것'은 무엇이고 정말 싸워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밝히고 드러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앉아서 돈 버는 이들과 싸워도 잃는 사람들, 그 경게 어디쯤에선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 사람들이 무엇과 싸워야 할 지를 모르고 아둥바둥대고 있는 것이 우리 모습이지 않은가 싶은 게다. 그러니 어떻게. 밥은 먹어야겠고 집은 있어야 하고 아플 땐 약도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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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2 12:51 2008/02/0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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