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반죽 같은 사람

나는 화가 많은 편이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훈련이 됐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화를 낼 만한 때에도 제대로 화내지 못해서 고민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화가 많은 편이다. 화를 내지 않는 대신 짜증을 곧잘 부린다. 화와 짜증의 차이는 나만의 구분법이 있으나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고, 어쨌든 나의 고민은 짜증이 나는 이유나 짜증을 덜 내기 위한 성찰 등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매우 공격적이고 강하다는 얘기를 곧잘 듣는다. 누누히 주장하고 싶지만 별로 주장할 기회가 없었던 내 주장은, 화를 내는 사람들은 매우 방어적이고 약하다는 거다. 적어도 내 경우를 돌아보면 그렇다.

엄마한테 왜 그렇게 짜증을 부렸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워낙 그런 편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뭔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밀려들어올 때 그렇게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면서 문득 풍선이 생각났다.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것이 들어오면 빵 하고 터져버리고 마는 풍선. 속은 텅 비었으되 부풀어오르기만 하고 아주 작은 말걸기에도 터지기 쉬운 풍선.

그렇다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바위는 부딪쳐오는 상대들을 상하게 할 테니까. 그러는 동안 뭔가 몽실몽실한 게 자꾸 생각났는데 그게 밀가루 반죽이다. 어디서 무엇이 들어오든 쭈우욱 밀려들어가면 되고 하나의 모양을 고집할 필요도 없으니 다시 주물럭거리면 되고 많이 치댈수록 찰지게 되기도 하니, 그쯤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 거다.

생각처럼 말처럼 사람이 바뀌는 게 쉽다면야. 그래도 가끔 기억해내야겠다. 밀가루 반죽 같은 사람이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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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15:52 2010/04/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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