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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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민이 쏟아진다. 최근에 신문을 다시 읽기 시작한 탓도 있을 테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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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얘기를 쓰고 나니, 언젠가 비슷한 글을 쓴 기억이 있어 찾아봤는데, 검색이 안됐다. 조금 더 뒤져봤더니, 전자팔찌라 검색이 안된 거였다. 글은 다르지만, 내용은, 고민은 비슷하다. 전자발찌로 안전해지는 것은 전자발찌를 차지 않은 남성들일 뿐이고, 여성들의 힘 여성들의 연대는 이런 구도 속에서 오히려 취약해진다는 것.

다만, 전자팔/발찌 자체에 대한 입장이 조금 달라진 듯도 하다. 물론 감시와 통제는 여전히 반대. 하지만 그 기술을 다른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하는 고민도 생긴 것이 사실이다.

요즘 이 얘기가 다시 나오면서, 인권운동이 제자리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큰 사건만 있으면, 전자발찌가 대안인 것처럼 들고 나오는 이들이나, 이런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전자발찌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만 얘기하는 인권운동이나, 큰 사건이 있기 전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똑같은 거 아닌지. 조금, 부끄럽다.

물론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싸움이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원칙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이기기 위해, 원칙을 더욱 벼리고, 그걸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내야 하는 것 아닌지.

그런데, 그냥 내가 약해져서 그런 건지, 입장이 후퇴한 건지, 무뎌진 건지, 괜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시 원칙을 말하기 위한 혼란의 시간들을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에구, 쓰려던 글은 안쓰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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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은 줄곧 반인권적인 것이었다. 작년, 법무부에서는 특정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을 낸 적이 있다. 언제 어떻게 확정됐는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어쨌든, 언론들에서는 너도 나도 그냥! 쓰고 있다. 이건 분명히 문제다.

하지만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언제나 반인권적인가?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들에 문제제기 하기 위해 때로는 '의식적으로' 가해자 이름을 공개하고, 사건을 명명했다. 누구누구 성폭력 사건, 이라는 식으로.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피의자다. 하지만 나는 이런 노력이 무척 소중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문제시되지 않는 성폭력을 문제삼기 위해서라도 이런 과정이 필요했다. 장자연 리스트는 어떤가. 리스트에 거명된 인물들도 법적인 지위는 피의자다. 그러나 우리는 그 리스트에 거명된 인물들을 알아야 했고 사회적으로 공개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알려지지 않았고, 명예훼손이니 프라이버시니 하는 논리로 거부당했다. 무엇을 위해 누구의 신상을 공개하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구조를 갈아엎기 위해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바로 그 구조가 취약해지는 것을 온몸으로 직감하는 자들은 안간힘을 쓰고 공개를 막는다. 그리고 공포를 형상화하면서 그 구조를 안전하게 만들어줄 정보는 안간힘을 쓰고 공개한다. 

피의자의 신상은 '피의자'의 신상일 뿐이라는 걸 아는 사회, 피의자는 범죄자일 수도 있지만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가 반성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사회에서 신상 공개는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는 늘 지양해야 하는 것임은 분명할 테다. 특히나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개인 정보를 우리가 알 필요는 없다.

다시, 무엇을 위해 누구의 신상을 공개하는가. 이런 맥락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길태라는 이름이 공개되고 그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은 문제다. 그러나 공개할 수도 있을 테다. 중요한 것은 공개 여부가 아니라, '누가' 공개를 결정하는가, 이다. 신상 공개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벼리는 것이 필요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의사실공표금지와 같은 저들의 논리로는 저들의 맥락을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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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15:41 2010/03/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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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ya 2010/03/15 12: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대회 (준비)를 잘 했던 것 같은데. 2번 모둠에 비슷한 고민들이 있는데 빨리 공개하면 좋겠다. ㅋ

    어떤 범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인의 삶을 '비정상'으로 재구성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이의 삶을 알아야하는 것이 문제라면, 또 그 삶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야하는 것이 문제라면. 음, 갑자기 떠올랐던 것은 '군대에 대한 경험'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뭔가 무기력한 상황인 것 같아 참 씁슬하네요. 문제가 있을 때 모래 속에 머리를 묻고 문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타조 같아 흑흑

  2. 미류 2010/03/17 22: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으 나도 타조 같아 ㅜ,ㅜ
    활동가대회 후속작업 같이 못해서 미안요~ 근데 '군대에 대한 경험'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은 어떤 건지 궁금하네용. ^^;;

  3. moya 2010/03/22 12: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사실 매번 똑같은 패턴인데, 그 사람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 다음 처벌이 강화되고, 사형제 얘기 나오고. 이제 누구나 알고있을 패턴.

    그런데 그를 '비정상'이라고 만드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정상'에 포함되는 인물인지. 그 사람과 성추행 우근민(이런 예들은 무수히 많겠죠)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것인지(또 내 주변의 구체적인 캐릭터들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가 '비정상'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정상성'이 그와같은 주체성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물론, 주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와 우리는 먼 거리에 있으니 주체는 잠시 괄호안에 넣어둔다면,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요.

    군대는 아마도 그 중에 하나. 생각해보면 총을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섬뜩한 경험인가. 그 기계적인 차가움.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경험하고, 아무렇지도 말할 수 있는 사회. 죽이는 연습을 하고, 그것이 죽이는 연습인지도 잘 인식이 안 되는 사회. 남자들을 중심으로 형성/전파되는 경험이죠.

    찌라시를 만든다면 "알고보니, 군대나와─" 뭐 이런 헤드라인을 뽑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좀 했었어요. 음. 근데 뭐 혼자 생각만 하고, 얘기를 나누지도 않고, 함께할 동지를 찾지도 않고. 아마도 나의 의지부족과 게으름이 문제 -_-

    • 미류 2010/03/25 19:32 고유주소 고치기

      이 사회의 '정상성'이 그런 주체성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지적 동의. 그런 주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학도 적극 개입되는 듯. 쨌든 어려운 문제. 조만간 이야기 나눌 자리가 마련되지 않을까 기다리는 중.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