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에 대한 어떤 기억

한국의 HIV/AIDS 25년을 돌아보는 토론회가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도 나누며, 자리에 앉아 발제와 토론을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 기억을 묻어둔 뇌세포 하나가,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다가 번쩍 켜졌다.

 

응급실에서 일할 때였다. 30대 중반의 남성이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약간의 문진과 신체검진을 하고 나니 뇌수막염이 의심되었다. 진단을 위해 뇌척수액 검사를 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냈다. 그가 말한 증상들과 의학서적이 말해주는 감별진단의 개요를 바탕으로 내가 낸 검사 중에는 HIV 검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쯤 검사 결과를 확인했던 것 같다. 그리고 HIV 양성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때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와, 맞췄다!"

 

HIV 검사를 한다고 환자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HIV 검사가 필요하고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면 확진 검사를 한 번 더 하게 될 것이고 이후에 이런저런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얘기하며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당연히 없었다. 내게는 그의 HIV 검사 결과가, 환자의 진단을 위해 적절한 검사를 신속히 했는지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에게 HIV 검사 결과가 어떤 의미일지, 나는 단 1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혹시라도 HIV 양성일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 있을지, 양성 결과를 알았을 때 그걸 알고도 여전히 그를 좋아해줄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지, 혹시라도 그의 직장으로 검사 결과가 알려져 불이익을 당하거나 달라진 시선을 감당해야 할까 그가 불안해하진 않을지, 나는 짐작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결과를 알게 됐을 때, 뒤에서 간호사들이, 어제 그 환자가 I+이라며 수근거리는 말이 들렸고, 이미 내과 병동으로 옮겨진 그가 병동에서 어떤 차별을 당하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됐던 정도가 그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 걱정조차도 어떤 한 사람에 대한 걱정이기보다,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들어와 앉은 차별에 대한 걱정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의 자리에 사람이 들어와 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지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준 건, 그동안 만나온 감염인들이다. 가브리엘이 당연히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용기로 만들어진 나누리+에 발을 걸친 이후 내가 만나게 된 감염인들이 모두 그 사람들이다. 지난주 수요일에 있었던 <하늘을 듣는다> 북콘서트에서 오래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감염인들을 만났다. 2006년에 준비했던 <말할 게 있.수다!>에서 자신의 삶을 증언했던 이들도 모두 만났다. 나누리+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몇 년 동안, 소식 궁금해 하는 것도 잠깐이었던 사람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묻지는 못했지만, 반갑게 손 흔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자기도 모른 채 진행된 검사 결과를 듣고 충격에 빠지고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도 거리를 두게 되었던 사람들. 지금은 또 각자의 자리에서 웃으며 지내겠지만, 나처럼 증상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는 의사들 때문에 한때 너무나 힘들었고, 지금도 가끔은 힘들 사람들. 미안하다는 말로 부족하겠지만, 내가 그 30대 중반의 남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수 없듯이,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

 

에이즈와 관련된,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배은망덕한 배신자 같은 느낌이 들어, 토론회 끝나고, 조금, 울었다. 뭐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 그렇게 울고 싶은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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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19:06 2010/12/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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