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시위 보도에는 '외부 세력'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외부세력'은 도대체 어디의 '외부'에 있는 세력일까. 수백 명이 다치고 그 중 세 명은 죽기도 한 사태를 '외부 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수습해보려는 수작도 유치하지만, 간혹 기사에는 '방글라데시 국민 수준이 낮아 외부 세력의 개입에 쉽게 동요한다'는 류의 '수준 낮은' 차별의식을 드러내는 기사들도 있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외부 세력'이라는 시선은 늘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폄하를 담고 있다.
GM대우 정문 아치에서 고공 농성을 하는 이들에게 방한용품을 전달하고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농성장 한켠에는 여러 종류의 유인물이 붙어 있었는데, 사측에서 배포한 것으로 보이는 유인물도 하나 있었다. 거기에도 여지없이 '외부 세력'이라는 말이 나와있었다. 하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도 정규직 노조의 간부가 '외부 세력' 운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면, '학출' 노동자들이 대거 현장으로 들어간 이후로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도 '외부 세력'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사내하청이라는 기이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피땀을 쥐어짜며 착취하는 이 세상에서 누가 '외부'에 있을 수 있을까. 비정규직이 일상화되고 실업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 시대에 '외부'는 도대체 어디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내고, 비정규직 안에서도 굳이 '학출' 노동자를 갈라내는 의도는 결국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외부'의 것으로 밀어내버리려는 것 아닌가.
굳이 노동자라고 부르지 않으면 어떤가.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가 있고, 부당한 해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안전한 노동환경과 공정한 노동조건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결사의 자유와 단결할 권리, 함께 힘을 모아 싸울 권리가 있다. 인간이라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짓뭉개는 '외부 세력'이라는 말은, 결국 인권을 '외부'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수작일 뿐이다. '외부 세력'은 몇몇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누군가를 '외부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경계를 긋는 자에 맞서 싸워야 할 이유는, 그저 우리가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GM대우의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했던 현실에 대한 책임을 GM대우가 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청업체와 원청업체를 따지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걸 따져묻게 하는 법이라면, 법이 문제가 있다는 말일 뿐.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지난하게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면, 파견법이야말로 '외부'로 밀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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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n 2010/12/20 20:4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배후세력에 이어 외부세력...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외부와 배후에 있는 음습한것이라고 말하는것 같네요.
많은 공감을 받고가요~
미류 2010/12/25 18:04 고유주소 고치기
2008년엔 웃어 넘기기도 했지만, 배후나 외부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정말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