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제퇴거금지법을 준비하고 있어요.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은 더이상 없어야... 하니까요. ...
더이상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망루에 오르지 않아도 되도록,
개발사업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으며 추진되지 않도록,
법의 힘이란 때로는 보잘 것 없지만,
숱한 철거 투쟁의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꿈의 흔적을 이렇게라도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하나 짚어갈수록
건설자본의 탐욕이나 재산에 대한 열망이라고 막연하게 부르던
그 벽들이 단순한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견고하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새삼 알게 됩니다.
쉽지 않네요.
용산참사 2주기를 앞두고 강제퇴거금지법 토론회를 여는데
과연 돌아가신 분들이 저 하늘 위에서라도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내용을 준비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1월 20일, 어떤 기억이 떠오르세요?
저는 2009년 1월 20일, 새벽까지 술을 마셨더랍니다.
아마 술을 마시는 동안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싸우고 있고 경찰이 진압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술을 마셨고,
새벽에 사무실로 기어올라가 쓰러져 잤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문자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날 오전 저는 회의를 하느라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지 않았어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던 한 시쯤 현장에 도착했던 것 같아요.
현장으로 바로 달려갔던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하지만 그날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지 못한 내 모습이 제게는 되돌아보기 힘든 기억이랍니다.
아마 주거권운동을 해왔고, 개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말해왔던 활동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참사를 떠올리며 이런 기억을 내보이는 게, 조금 부끄럽네요.

2009년 1월 20일, 저마다의 기억이 있겠지요.
농성자들이 옥상에서 팔로 그려보이던 하트 모양을 채운 따뜻한 미소,
불타오르던 망루와 저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어떤 목소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을 테고
아마도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는 어떤 시간이 있겠지요.
돌아가신 분들도 어떤 기억을 품은 채 돌아가셨을 테고,
그 분들의 가족들에게도 지우고 싶은, 하지만 지울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이 있을 거예요.
참사의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전화로, 뉴스로, 신문 기사로 접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어떤 기억이 있을 거고,
현장에서 아무 것도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 시간 동안 불안한 예감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도요.

이 기억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걸 되새기는 건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몫일 거예요.
하지만 용산참사의 기억은, 우리 모두가, 한국사회가 떠안아야 할 역사이기도 할 거예요.
그 역사는 단지 1월 20일 하루에 머물지 않지요.
왜 누군가는 망루에 올라야 했는지,
누군가 망루에 오르기까지의 긴 시간들이 모두 용산참사의 기억에 담겨야 하겠지요.
그건, 아마도 오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해마다 반복되는 기억의 조각들이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소중한 일이지 않을까요?

용산2주기 추모위원에 더욱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글을 시작했어요.
추모위원 함께 하자고 얘기하는데, 굳이 이렇게 주절주절 적지 않아도 기꺼이 함께 할 분들이라는 걸 아는데,
어쩌다 보니 길어졌네요.
용산2주기 범국민 추모위원은 아래와 같이 모집한다고 해요.
용산2주기 추모사업들은 용산참사2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홈페이지 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고요.

주위에 아시는 분들에게도 많이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단체의 회원이나 후원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알려서 추모위원 참여를 독려해주시면 좋겠고요.

이미 길어졌는데, 얘기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강제퇴거금지법을 준비하면서 판례를 찾다가 우연히 1948년 대법원에서 퇴거와 관련된 판결을 내린 걸 보게 됐어요.
집주인이 세입자들에게 나가라고 했나봐요.
세 입자들은 "7년 전부터 ... 월세 5원으로 차거하여 ... 11명 권구가 생계를 근근유지하고, ... 월세 4원씩에 차거하여 인력거영업을 하면서 8명 권구가 근근생계를 유지하고, ... 월세 5원씩에 차거하여 새우젓 판매를 하면서 6명 권구가 근근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가옥을 집주인에게 넘기게 되면 "다수권구가 즉시 노두에 방황하며 기아에 직면할 처지에 재"한 실정이었지요.
세입자들은 집주인이 "자기 주택을 소유할 뿐 아니라 부 내 각처에 다수 가옥을 소유한 자로서 본건 가옥명도를 청구할 필요성이 전연 없고 단순히 세금을 증액하자는 수단에 불과"하니 계속 살게 해달라고 했어요.
하급심에서는 집주인 손을 들어줬나봐요.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이 세입자들의 항변한 중요한 쟁점에 대해 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하급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해요.

너무나 상식적인 판결이지요.
쫓겨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쫓겨나면 어떻게 살게 될지를 들여다보는 것,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
이런 게 우리가 바라는, 그리고 아마도 용산과 또다른 개발 현장에서 목숨을 끊거나 잃었던 분들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지요.

우리의 기억들을 모아 만들어가려는 역사는, 우리의 기억 안에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일 듯해요.
'오래된 미래'라고 했던가요?
우리, 서로의 기억들을 나눠요. ...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아래 범국민 추모위원 참여 안내를 붙일게요.

차가운 겨울 하늘에 불타오르던 망루,
차가울 수도 뜨거울 수도 없는 1월 20일의 기억들이 모이는 2011년 1월은, 그저 따뜻하면 좋겠어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고 건강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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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국민 추모위원 모집
오는 2011년 1월 20일은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다섯 철거민 열사들이 돌아가신 용산참사가 발생 한지 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올해 1월 9일에서야 355일만의 장례를 치르고, 참사현장을 정리하는 중에 1주기를 보내야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2주기가 장례 후 맞는 첫 추모 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아직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2주기를 맞아 ‘용산참사 2주기 범국민추모 위원회’를 구성하여,
용산에 함께했던 시민들과 함께 준비하고자 하오니, ‘추모위원’으로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추모위원 참여 방법
* 추모위원으로, 추모주간 일정에 적극 참여합니다.
* 추모주간 행사를 적극 홍보합니다.
* 추모위원 참가비(단체 10만, 개인 1만원)를 납부합니다. (참가비는 구속자/부상자 지원에 사용합니다.)
 
모집기간 : 2011년 1월 15일(토)까지
추모위원참여 및 후원계좌 : 신한 110-317-937120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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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0:55 2011/01/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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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냉이 2011/01/07 09: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 글 못봤으면 그렇게나마 참여하는 거 같은 걸 아주 몰랐을 거예요. 아님, 아예 그 날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지났을지도 모르고요. 요즘은 신문도, 무엇도 잘 보지 못하고 지내고 있거든요. 그래도 미류 님 블로그 새 글은 꼭 보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거, 같이 기억하자고 하는 거, 떠올리자고 하는 거, 그렇게나마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거, 함께 생각해볼만한 거 그런 것들 많이 전해주세요. 저같은 이에게는 미류 님 블로그가 세상의 낮은 목소리들과 통하는 어떤 창이 되고 있거든요. (걷다, 로 띄엄띄엄 이어지는 그 긴 발자국들도 먼발치에서 다시 밟아보며 미류 님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또한 저를 비춰보게도 되고요. 요 얘긴 언젠가 한 번쯤 해야지 하다가도 늘 댓글 타이밍을 놓쳐 못하곤 했었는데, 아무튼 그렇다고요. 그래서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 미류 2011/01/07 11:01 고유주소 고치기

      고마워요. 추모위원에도 같이 참여해주세요. 아마 냉이 님 안에도 많은 기억들이 있을 것 같아요. 2004년 이후로 오래동안 못 뵈다가 마주친 곳도 용산이었던 것 같은데... 블로그 꾸준히 보고 있으시다고 하니 부끄럽네요. 제 목소리는 사실 꽤나 삐뚤빼뚤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아마 '세상의 낮은 목소리들과 통하는 어떤 창'은 냉이 님 마음 안에 있을 걸요. 또 뵈요.

  2. 2011/01/07 09:4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2년전 1월 20일에는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고 그저 울었더랬습니다... 추모제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고통당하신 분들이 그 시간에 그리고 앞으로도가능한 덜 힘드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참담한 시절을 많은 활동가분들이 함께 하셨듯 말이에요. 그리고 또한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활동가분들도 보다 기운내실 수 있기를 바라고요. 강제퇴거금지법 토론회도 잘되길 빌어요. 다 반드시 잘되길 마음 다해 빕니다.

    • 미류 2011/01/07 11:08 고유주소 고치기

      멀리서 보내준 마음 고맙게 받을게요. 여기는 요즘 많이 추워요. 그 곳은 어떤지... 따뜻하게 지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