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된 소녀들>을 봤다. 친구와 함께 보기로 약속을 하고 그냥 맞는 시간을 골라서 봤다. 그런데 마침 아주 특별한 공연이 준비된 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 나오기도 했던 조영숙 님이 관객석 뒤에서 걸어나오며 공연을 시작했다. 그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 알지도 못한 채 무대 앞으로 걸어나오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녀가 살아 내 앞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왜 그리 감격에 겨웠을까. 

 

여성국극. 판소리, 춤 등 국악의 전통을 이어 만들어진 창극이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극단-그녀들은 그것을 '단체'라고 불렀다-은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번창했다. 가난해서, 전쟁이 나서, 여성국극이 멋있어서, 저마다의 이유로 무작정 '단체'로 찾아온 이들은 같이 밥을 해먹고 공연을 준비하며 더없이 소중한 관계들을 만들어가고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그 관계로 섞여들어간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시작되고,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시작되는 시기, 여성국극은 마치 예술에 대한 모욕이라는 듯 비난을 받게 된다. 국가의 지원은 특정한 문화를 배제하면서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필요한 문화들을 확산시키는 전략이었을 뿐이다. 이 여성들의 '단체'는 국가로부터 배제되고 집을 팔고 돈을 모아 공연을 이어나가려던 시도들은 힘에 부치게 된다. 그리고 흩어진 사람들, 하지만 잊힐 수 없어 여성국극보존회를 만들어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그녀들은 공연을 할 수가 없어, 주민센터에서 열린 경로잔치에도 간다. 조금 서글픈. 어쩌면 조영숙 님이 영화관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도 그렇게 서글프다 느껴졌던 것도 같다. 무슨 영화 시사회에서 카메라 소리가 찰칵찰칵 울리고 조명이 쏟아지며 영화배우가 포즈를 취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그녀는 조용히 걸어나왔다. 하지만 그게 서글프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공연과 삶의 경계가 없이, 스스로를 살아내고 있었다는, 그 단단한 느낌이 그녀의 카리스마 속에 묻어났기 때문이다. 공연 중간에 잠시 무대에서 퇴장하고 제자의 공연을 지켜볼 때 스르륵 변했던 스승의 표정과 곧이어 무대로 다시 나오며 제자의 상대역을 할 때의 배우의 표정, 두 표정은 분명히 달랐지만 경계가 없었다. 

 

많은 여성국극 배우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배우에게 감독이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은 어떻게 결혼하게 되셨어요?" 글쎄. 한참 궁리하던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몰라." 그녀들은 자신이 여성국극에 매료된 이유, 자신이 사랑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들을 키우며 계속 여성국극을 하기 어려워진 조건 등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어떤 힘들을 해석할 만한 언어(또는 이론)를 지금의 시대가 가진 만큼 갖지 못했다. 언어의 부재는 속상하지만, 오히려 그녀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어갈 힘을 얻기도 했다. 사람은, 삶은 언어에 갇히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힘 앞에 매료당한 나. 그 한 사람이 내 앞으로 걸어나왔을 때의 감동. 

 

박정희 정권이 왜 여성국극을 탄압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 사회는 '여성''들'의 힘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불안에 터 잡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종북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차별을 조장하는 저들의 두려움과 불안 역시 결국은 이성애주의에 쉽게 포획당하지 않는 수많은 여성들의 힘을 향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보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회는 통치체제에 포획되지 않는 힘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모여야 한다는 것. 여성국극을 살아낸 그녀들의 삶과 그녀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전한 영상활동가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는 인사는, 이 시대에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장소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내 눈물은, 어떤 영웅적 투사를 만났을 때 흐르는 눈물인 것도 같았다.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될 때의 눈물. 하지만 그녀들은 영웅이나 투사의 서사를 갖지 않는다. 한 시대가 가지는 '영웅'이나 '투사'의 서사라는 건 언제나 누군가의 삶을 배제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그녀들의 삶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저,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하지만 또 얼마나 평범한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나는 '여성'을 살아내는 이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함께 살기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나도 그/녀들과 함께 살아내겠다고, 다시 조용히 마음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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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2 14:12 2013/05/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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