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의 적>을 보면서

<이중의 적>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지만 일단. 

 

김대중-노무현 정권, 소위 반독재 민주정부의 시기를 전후로, 

싸우는 사람들은 빨갱이에서 집단이기주의자가 되었고 이제는 범법자가 되었다. 

통치체제의 변화. 법과 질서, 그리고 안전이 겨냥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분명해진다. 

 

그/녀들이 테러범이니 폭도니 범법자로 몰릴 때 맞서 싸울 힘이 사라졌던 것은

바로 반독재 민주정부의 시기. 

 

제도화되는 경로들을 통해 다소 손쉽게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시도들은

결국 우리를 갈라내고 흩어지게 하는 분할통치에 맞서지 못하고 통치체제의 변화에 조응하기도 했던 것. 

 

민주화가 얼마간의 의의가 있건 그 시기에 완수된 불안정노동의 제도화가 구축한 것은

단순히 비정규직 확대나 구조조정의 일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고 모일 모든 장소들을 무너뜨렸다는 것. 

그리고 얼마간의 의의는 제도와 함께 모두 사라졌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투쟁의 가장 쓰라린 아픔은 노동조합을 스스로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나 다큐가 말하는 것처럼, 승리가 그렇듯 패배도 일시적이라는 것은, 

비록 노동조합을 해산했지만 그/녀들이 계속 만나고 모인다는 것. 

다시 노동조합, 또는 노동조합이 아닌 그 무엇이든,

그래서 사람은 지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패배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할수록 우리는 이길 수 있다. 

 

 

(*2000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비롯한 여러 비-노동자 대중/소수자 운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 장애인들에 대한 '동정과 시혜'는 노동자나 철거민을 '범법자'로 모는 것과 똑같다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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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 10:33 2013/05/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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