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자이툰

 

자이툰은 '올리브'를 뜻하는 아랍어라고 합니다.

올리브는 평화를 상징한다지요.

자이툰이 원래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1.

전범민중재판운동 지역주체회의를 다녀오면서 갑자기 뭔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가 있으면 A4 용지에 적당히 편집해서 붙이기라도 하련만, 집이 있으면 대문 앞에 대자보라도 붙이련만, 뭐 이런 식으로 미루어오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가방이 생각났다. 생일선물하라고 졸라서 얻어낸 ^^; 아니, 조만간 받기로 했던 가방을 다시 졸라서 받아냈다. 이전에 가방 만들려고 사두었던 퀼트 조각천들을 꺼내어 글씨를 오리고 붙였다. 천 종류가 몇 개 안되다보니 특별히 고를 필요도 없었다. 대강 늘어놓고 잘랐다. 파병 한국군 철군! 새기려다가 너무 삭막한 느낌이 들어 궁리하다가 귀여운 척 '돌아오라 자이툰'하기로. 자이툰이 올리브란다. 그래서 저 가운데 뻘쭘하게 있는 것이 나름대로 올리브!다.

 

#2.

소식지 준비하면서 짬짬히 바느질을 했다.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스스로 뿌듯해하면서(고질적인 공주병이다 ㅡ.ㅡ) 했다. 이내 설레임은 무거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왜 이걸 만들고 있는 것인지 자꾸 헷갈렸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얼치기 평화주의자다. 특별히 반전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고 살면서 평화를 진지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고민해오지도 못했다. 아니, 이런저런 고민은 많았으나 진정한 내 목소리들이었는지 헷갈렸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내가 마치 파병철회, 한국군 철군을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특히, 전범민중재판운동을 하면서 오히려 전쟁과 평화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전범민중재판을 함께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던 당시에는 분명 어떤 '절실함' 같은 것이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그 느낌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바느질에는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담겨있는가,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진지하게 들을 자신이 있는가, 머리속에서 이런 고민들이 엉키기 시작하는데 오히려 손놀림은 빨라지고 요령이 붙어 바느질이 수월해지는 것. 천을 좀더 신중하게 배치해볼 껄, 좀더 이쁘게 오려볼 껄, 하는 후회가 순간순간 훑고 지나가는 것. 이런 매너리즘...

여전히 자신은 없다. 나름대로 잘하던 자기위안, 같은 것도 지금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사진은 찍고 왜 블로그에는 올리는 거냐. 고 누가 차라리 다그쳐주었으면...하는 것은 지나친 자학? 그래도 누군가 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아, 오늘은 정말이지...

 

#3.

바느질하는 동안 류이치 사카모토의 'chasm'이라는 음반을 반복해서 들었다. 집에서 들고나온 CD가 그것 한 장뿐이라 그냥 그렇게 들었다.

잘 모르던 사람이다. MC sniper가 랩을 한 곡이 있다길래 한번 사봤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됐다. 기계음들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나마 undercooled가 제일 들을 만했다. 마지막 곡이랑. 그래서 몇 번 듣다가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었다.

갑자기 생각나서 집어들고 나왔는데 정말 괜찮은 음반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undercooled 는 들을수록 불편해졌다. (이건 MC sniper의 다른 곡들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들을수록 감동이 떨어지고 끝내는 어색하기까지 한)

글을 올릴 때 'war & peace'를 같이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역시나 제대로 재생되지 않았다. 미디어파일 링크와 관련된 글들을 찾아서 읽다가 이글루까지 가보게 되었다. 잘 안 될 것 같으면 욕심부리지 말라는 글 보고 마음 접었다. 그래도 아쉬움 남는다.  

 

#4.

'어쩌면, 기획'이라는 분류는 말그대로 일종의 '기획연재' 시리즈 같은 것 해보려고 만든 분류다. 시작과 끝이 있는. 처음 하려고 했던 것은 -그게 벌써 몇 달 전인지 ㅡ.ㅡ -포토샵 연습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포토샵으로 웹자보 하나는 만들어봐야겠다, 내키지는 않지만 할 줄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기획했다.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욕심이었다.

소식지 편집을 해보려다가 결국 다른 친구에게 부탁하고 나는 옆에서 바느질했다. (불은 켜놓고 했다. 바느질하면서 한석봉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구요 ^^;) 그게 딱이다.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

 

#5.

진짜 후기...

가방을 만들고 바로 올리고 싶었지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미뤄두었다. 선전전을 나갔다가 디카를 들고나온 친구가 있길래 부탁해서 파일을 받았다. 글은 생각날 때마다 써두었던 것이다. 어차피 비밀글로 해두었던 거 새로 써도 그만이지만 그냥 두고 보려고 따로 정리하지 않는다. 막연하지만 지금은 가방을 즐겁게 들고다닐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제 저녁에 실마리를 하나 잡은 듯해서... 앗 살람 알라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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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5 12:07 2004/11/0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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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i 2004/11/06 18: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그 미니 맞습니다 ^^
    당근 4년 더 절망해야 한다고 생각 안하죠
    4천년들 더 싸워야 될지 모르는데 4년쯤이야 ^^

  2. dalgun 2004/11/06 19:0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꽥 가방 너무 멋있잖아요!!! 이런~!(저는 1년 전에 시작한 퀼트 가방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고 처밖아 놨어요.흑)

  3. 미류 2004/11/06 21: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mini//역쉬~ 그러실 줄 알았어요. ^^ 제목이, 그냥, 마음아파서...
    앗, 그리고 저는 미니님을 잘은 몰라요. 그냥 여기저기 기사나 메일링 도는 데서 이름을 들은 정도라... 기회가 된다면 인사나눌 수 있겠죠. 반갑습니당 ^^
    dalgun//꽥~ 저는 달군님 그림 볼 때마다 그런걸요. 처박아놓았던 가방 완성되면 꼭 보여주세요. 아, 까무라칠지도 모르니 조금씩 보여주세용 ^^

  4. 해미 2004/11/07 15: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가방 이뿌다... 가방이라는 근본을 제공한 자중 하나로서 아~~주 흐뭇하군.
    그리기로한 그림도 그려야 할긴데...그냥 선동그림 같지 않은 따뜻함과 안타까움의 정서가 담겨있는 걸루 그리구 싶은데...(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좋아하지 않겄어? ㅋㅋ) 고민이당.

  5. 미류 2004/11/07 18: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해미// 흐뭇하시다니 고맙구려. ㅋㅋ. 그림 기대한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