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
안희정 성폭력 사건. 검찰은 항소 이유 중 하나로, 대법원 판례도 이미 있는데 법리를 오해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렇게 대법원 판례까지 확인하지 않더라도, 사실 1심 판결은, 무죄를 주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판결이었다. 심지어 재판부는 무죄에 대한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려는 듯 판결문에 여러 차례 변명을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게 정말 궁금하다. 왜 무죄를 주려고 작정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무죄가 가능했는가?
조병구 판사는 양승태-임종헌 체제에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고 법원행정처 공보관도 맡았다. 엘리트 판사만 간다는 요직이다. 굳이 정치적 성향을 짐작해본다면 안희정의 손을 들어주고 싶을 만한 이유가 없다. 그는 그저 '안희정'들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안희정의 성폭력이 폭로된 후 출당 및 제명을 신속하게 결정했다.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한 축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선거를 앞둔 꼬리자르기라 하더라도 신속했다. 그러나 역시 더불어민주당은 그 이후로 이 사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원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넘어 한국사회 미투 흐름의 핵심적인 사건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없다. 만약 이들이 '안희정'을 만들어낸 습속과 절연하고자 했다면 안희정 무죄 판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근혜-양승태-임종헌 체제의 사법농단이 도마에 올라있는 지금 말이다.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고 재판거래 사실이 드러난 지 벌써 수개월이 흘렀는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다. 박근혜 체제와 문재인 체제 대결의 사법부 버전이라 할 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번 안희정 무죄 판결로 확인된 진실은 이렇다. 이 대결은 남성권력들 간의 대결일 뿐, 여성을 제물로 삼아 가지게 된 권력을 나누는 대결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당신들의 거래를 위해 진열되는 존재이기를 멈출 것이다.

8.19.
안희정 재판과 1심 판결까지 오면서 덧붙이고 싶었던 이야기 둘.

하나는,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혼인 경험이 있는 학벌 좋은 여성"이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안희정 측의 주장. 1심 판결문에도 이런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해자는 "아동, 청소년 혹은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대상"과 다르고, "미성년자 등 성생활과 관련된 인격이 성숙되지 아니한 사람은 더 높은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겠으나 피해자는 그렇지 않다는 둥 하는 논리.
장애를 가진, 나이가 어린, 혼인 경험이 없는, 학벌이 낮은 여성은 성적 주체성이 낮나? 성생활과 관련된 인격이 성숙하지 않나? 재판부가 뭔데 누군가의 정체성에 성적 주체성을 지정해주는 건가. 장애여성이나 여성청소년의 성폭력 사건에서 재판부의 태도는 이렇다. '너네가 아니오라고 충분히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말을 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니 아니오라고 한 셈 쳐줄게.' 즉 장애를 가졌거나 나이가 어려서 '여성'의 이야기를 더 들어준 게 아니라 더 무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나 장애가 없거나 학벌이 높은 여성의 주체성은 더 높이 평가해준 걸까? 아니다. 재판부는 1심 판결로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1심 판결대로라면 여성의 성적 주체성은, 거절하면서도 성관계를 가질 줄 아는 능력이 되어버리니까. 결국 여성은 성적 주체성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이 무슨 해괴한 결론인가.
안희정 재판이 모든 여성들의 재판이기도 하거니와, 장애인의, 청소년의, 비혼인의, 저학력인의 재판이기도 한 이유. (이 타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 성폭력 사건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사건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적' 주체성이 아니라 주체성을 파괴하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인간의 성적 부분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고유하고 통합적인 한 인격에 대한 폭력이다. 어떤 사람에게서 성적인 부분이 분리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폭력이고 차별이다.
남성들은 성폭력이 '성적'인 부분에 대한 폭력이 아님을 알고 있고 누리고 있다. 남성이 가해자든 피해자든 사회는 그들의 사회적 삶을 걱정해준다. 그러나 여성이 피해자일 때 성폭력은 '성적'인 부분에 대한 폭력으로 축소되어 버린다.(그게 저들이 말하는 '정조'. 남성들이나 실컷 가지라지) 여성이 성폭력 상황에 맞닥뜨릴 때 호출되는 주체성은 결코 성적 주체성만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신체적 등등등 모든 주체성을 끌어내 상황에 대처한다. 이것을 '성생활'과 관련된 인격의 문제라거나 '성적 주체성'의 성숙도와 관련된 문제로 접근하는 사법부의 관점 자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미투가 바꿀 세상은, 그러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받는 세상 이상이다. 미투행동은 여성을 분해와 조합 가능한 객체로 대하는 세상을 파괴하는 싸움이다. 어제 집회에서 외쳤던,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든다는 구호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투의 말하기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로서의 말하기를 넘어 여성의 말하기가 되었고, 우리는 여성의 말하기를 통해 사람의 말하기를 이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8.16.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판결문은 두 가지 주장을 한다. '안희정은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김지은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 주장은 위력과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심각한 오해-또는 적극적 왜곡-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위력'은 그것을 가진 자가 굳이 행사하지 않아도 상대가 위축되고 제압당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위력이라고 부르는 거다. 니가 나를 거부하면 넌 짤릴 거야, 라고 말하면 그게 위력이냐 협박이지.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높은 여성이 예 아니오로 행사하는 권리가 아니라,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어떻든 그 여성의 의사가 존중될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다. 여성에게 "너 왜 아니오라고 못했냐" 따지라고 있는 권리가 아니라 남성에게 "너 왜 알아먹지 못했냐"고 따지라고 있는 권리라고요.
사법부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을 모든 여성에 대한 재판으로 만들었다. 내 재판이기도 하니 말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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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5:13 2018/08/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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