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위해 지운다?

동거차도 인양감시초소를 정리했다. 인양 감시를 할 때는 오지 못하다가 이제야 왔다. 처음이라고 하니 가족들이 모두 놀라신다. 니가? 정말? 왔어야 하는 곳인데, 한 번도 못와놓고 정리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오게 됐다. 적어도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 같이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도 오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 자리를, 지우기 위해서 오게 되다니...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는 게 뭘까 계속 곱씹었다. 무언가 현재진행형일 때는 다 기억할 수가 없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아직 다 알 수 없으므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고 수백 번 다짐해도 아직 기억이 완성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어쩌면 이 곳을 정리하면서 기억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누군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움을 삭혀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걸, 그리움과 분노와 슬픔과 뒤섞인 눈물이 있었다는 걸, 서로를 토닥이며 밤새 도란도란 나누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함께 기억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세월호 참사 이후 걸어온 길의 한자락에 이 자리가 있었다는 걸.
그래도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건 너무 서운하고 속상하다. 같이 노란리본 돌무더기를 쌓았다. 세월호가 가라앉았던 자리에서 흔들리는 부표를 여기서는 잘 볼 수 있다. 땅을 짚고 서서 볼 수 있는 자리. 누군가 또 찾아왔을 때 함께 기억해주겠지.
늦었지만 이제라도 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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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4 11:02 2018/09/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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