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_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해 시설에 온 혜정이는 시설 안에서도 한없이 소외되었다. 소외당하는 것은 혜정이의 인간성이었다. 혜정이라는 한 인간의 삶은 늘 혜정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삶보다 무게가 덜 나갔다. (...) 혜정이가 시설에 살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혜정이의 거취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에 대한 문제, 이 세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44_혜정이의 둘째 언니라는 것은 내 삶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었고, 그러한 정체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연히 생각이 많아지는 일이었다.
47_이 영상은 나와 혜정이의 '아오모리 여행 영상'이지 '장애인이 여행하는 영상'이 아니었다. 영상에 명시적으로 혜정이 장애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해서 영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
93_혜정이의 장애는 혜정이라는 사람의 엄연한 일부이지만, 그것이 혜정이라는 존재 자체는 아니다. 철저히 비장애인 위주로 이루어진 이 사회에서 살다 보면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과는 무언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다.
95_약하다는 것을 단순히 취약한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약하다는 것은 그저 연약하다는 뜻일지 모른다. 연약하다는 것은 삶을 이어나가는 데에 섬세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연약한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언젠가 내가 연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150_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이기에 남을 돌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202_제 동생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가까운 환경으로서의 존재가 저이기 때문에 그러한 좋은 환경이 되어 주라는 의미, 그리고 어떠한 환경이 필요한지 앞으로 열심히 탐험해나가라는 의미에서 이 상을 제 이름으로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235_보내는 것도 보내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 어느 쪽을 골라도 괴로움에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잘한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것을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 부당하고 잘못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 그 결정이 가져오는 고통의 무게를 오롯이 지는 것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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