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런다고,
바뀝니다!"
무대에서 선창하던 진행자가 외친 말이다. 집회 참여한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 이렇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 함께 구호를 외칠 때마다 시작하던 주문 같은 말.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용기 내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해방감. 네 시간 가까이 쉼 없이 구호를 외치는데도 지친 기색 없이, 오히려 더 열심히 외친다.
집회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발언이 (거의) 없고, 선창자와 참여자가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구호를 주고 받는다. 암호인 듯 주고 받는 '자이루'라는 인사. 구호는 8자나 16자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발언문과 같은 구성이라, 집회 내내 다같이 발언하는 셈이기도 했다.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 반복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기도 쉬울 듯. 나도 같이 외치다 보면 너무 자유롭고 신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했다.
피켓에 인쇄된 말들도 마음을 잡아끌었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 '女피해자 야동실검 男피해자 포털실검', '女피해자 무고추정 男피해자 무죄추정' 등등. 현실을 이렇게 진단하고 보면 "더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행자의 말을 넘겨들을 수 없는 것. 좌시할 구석이나 있어야지 말이지.
그래서 남성의 출입을 금한다거나, 경찰청장을 여성으로 임명하라고 요구하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지더라. 나 역시 전염되는 듯한 해방감을 '남성'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동료들인, 트랜스여성이나 논바이너리, 인터섹스를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라고까지 해석되는 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TERF의 흐름으로 수렴될 가능성은 꽤 높아 보였다.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일 텐데 다른 소수자에 배제적이라거나 교차성을 무시한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이런 건 페미니즘의 여러 경향들 안에도 없지 않으므로. 위험은 TERF가 페니니즘으로서 지속가능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논리나 실천에서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점.
그래서 더욱 TERF와 경합해야 할까? 글쎄. TERF의 논리적 모순이나 정치적 위험을 지적하는 것은 손쉬운 일일 듯하나, 지금 '여성' 또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억압의 정체를 설명할 다른 말들을 내어놓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인 듯하다. 트랜스여성도, 인터섹스도, '여성'도 함께 부수거나 무너뜨려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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