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집에 왔다. 공항에서 집까지 걷기로 했다. 바람도 선선하고 일찍 가봤자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니. 연휴 때 읽자고 들고 내려온 책이 어깨를 무겁게 끌어내리고 있었으나 탁 트인 길 위에서 어떻게 발을 들이밀지 않을 수 있나. 조금 걷다보니 코스모스가 길에 주욱 늘어서있다. 누구 노랫말처럼 한들한들... 쭈뼛거리는 줄기들이 만들어놓은 엉성한 공간에, 줄기에 매달린 것인지, 하늘에서 날리다 잠깐 떨어져 앉은 것인지 모를 꽃들이 가볍게 앉아있다. 멀리서 보면 풀무더기에 뭐, 쌓였나보다 싶을 뿐. 코스모스는 길에 서있어도 미안하지 않은 꽃이다. (코스모스로서는 섭섭한 말이겠지만) 억지로 끌려나와 어설프게 웃다가 시들고나면 기억할 새도 없이 갈아엎어지는 다른 꽃들과 달리, 그냥 저 알아서 피었다 지었다, 내키는 대로 사는 듯 보여 미안하지가 않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변이든, 풀벌레 우는 소리 들리는 길섶이든, 어색함이 없다. 아마도 코스모스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꽃의 색이나 모양이나, 잎의 색이나 줄기의 생김이나 어느 것 하나 강렬하지 않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듬성듬성 한들한들, 서있다. 그래도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코스모스 무리들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강렬하지 않아도 지워지지는 않는다. 사람들도 그렇게 가볍게 앉아주면 좋겠다. 한들거려도 바람에 날려보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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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7 18:07 2004/09/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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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이 글은 미류님의 [코스모스 ...]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코스모스에게도, 미안할 때가 있더라. 색종이를 곱게 오려 줄기에 단단하게 묶어놓은 듯한 다른 꽃들과 달리, 코스모스는 어디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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