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이 되자

* 이 글은 씨앗님의 [je,tu, nous-뤼스 이리가레] 에 관련된 글입니다.

A4 두 장짜리 선전물이 화장실 문에 붙어있었다.

 

만화로 시작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개강을 하고 강의를 진행하기 위한 조를 나눴다. 조별로 모여 인사를 한다. '전 누구예요' '전 누구예요' '전 누구예요' ... 조장을 뽑아야 하는데 한 여성이 복학생에게 '나이도 많으시니 오빠가 조장을 하세요~' 라고 한다. 복학생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어, 그래, 어, 어...' 라고 일단 승락은 하지만 다음 컷에서 나이가 많은 게 죄도 아닌데 이렇게 떠맡기다니, 뭐 이런 류의 혼잣말을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힘든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리더쉽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매 수업 시간마다 있는 조별활동은 대학이 여성들에게 제공하는 사회진출과 리더쉽 향상의 기회이다. 여성들이여, 적극적으로 조장이 되라!

 

라고 읽었다. 정확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기에 왜곡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옮기면 그렇다. 만화의 분위기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정말 당혹스러웠던 것은 '여성교육학 수강생 일동'이라는 명의다. 여성교육학이 여성학과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 차이로 설명되는 것은 아닐 듯하다. 사실, 여성학 강의가 정말 여성학'스러운' 지는 의심이 갈 때가 많다. 씨앗님의 글에서 '여성학에 관심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학 수업 들어와서 분위기 망쳐놓지 좀 말란 말이다'는 문장을 보니 퍼뜩 이 선전물 생각이 났다. 분위기 망쳐져서 속상한 여성학 수업도 있겠지만 분위기 망치는 여성학 수업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어떤 말을 하든지간에 '복학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여성들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복학생은 만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으며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겸손하게 후배들과의 관계맺기를 시도하지도 않으며 '적절한' 리더쉽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단, 만화에서의 이런 역할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장을 적극적으로 맡아서 하자는 주장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장 등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사회진출이 용이해지는가? 부연 설명할 필요가 별로 없어보인다.

 

병원은 성차별이 특히나 심한 곳이다. 심하다기보다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여성 교수의 비율은 손에 꼽을 정도고 그나마 교수가 된 여성들은 '빽'이 너무너무너무 좋거나, 개인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교수가 되었다. 리더쉽이 없어서?

 

리더쉽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좋게 해석해서 필요하다고 하자. 하지만 정말 필요한 리더쉽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리더할 수 있는 리더쉽이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리더쉽이, 혹시, 부족하다면 그것은 리더쉽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리더쉽을 강화해야 한다면, 그러기에 가장 적절한 공간은 씨앗님이 말한 '여성친화적 공간'이지 않을까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길러진 리더쉽은 폭력에 가까울 것이다. 진정한 리더쉽은 리더가 필요없을 정도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인 소통과 교류에서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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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11:50 2004/12/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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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의 사회적 진출

    2004/12/20 13:00

    * 이 글은 미류님의 [조장이 되자]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여성의 사회진출 참으로 어려운 사회이다, 특히 교육 배워온데로 옮기자면 동양에서 유교를 바탕을 둔 문화권에서 사회에서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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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jang_gongjang 2004/12/20 13:0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글 잘읽고 갑니다.

  2. ssiaat 2004/12/20 20: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ㅎㅎ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3. 미류 2004/12/22 00: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타맨, 저도 글 잘 읽었어요! 트랙백한다구 끄적거리다가 그냥 둬서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에 또 좋은 얘기 나눠요. ^^
    씨앗, 저두 요즘 덕분에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당~ 감사 ^^

  4. kanjang_gongjang 2004/12/22 10: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미류님 글 속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5. suworld 2005/01/12 12: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미류님의 이 글을 읽고 반성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은 멀까...

  6. 미류 2005/01/12 19:4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반성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싸~악 버리고 반성이 필요할 때 반성하면 됩니다. 근데 그게 뭘까? ... 자주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