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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위원회의 제주도 행에 대해


     지방자치위원회가 제주도에서 모였고, 그 때문에 뭍에서 가는 여러 시·도당의 지방자치위원장들이 전례없는(실제로 전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돈을 들여 회의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우리 시당 운영위에선 정해진 활동비에서 그만한 돈(얼마가 되었든)을 한꺼번에 지출할 수 없네, 있네 하면서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표결까지 했다고 하니 대략 난감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일로 시당 게시판에도 글이 올라왔으니 그 중 배부른 짓거리라는 투의 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떤 동지의 말마따나 제주도 동지들이 뭍으로 올라오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싸게 먹히니 욕 먹어 마땅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다른 동지의 말마따나 매번 제주도 동지들에게 올라오라는 요청만 할 수 있느냐, 그들에게 항상 희생(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을 강요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점은, 현재 우리 당의 돈 형편이 그닥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여러 시·도당 중 출장비를 지불한 곳은 우리 뿐이라니 그 시·도당 운영위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돈이 없긴 없나 봅니다. 이렇듯 돈이 없는 처지에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모임을 해야겠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일면 당연합니다. 그게 시·도당 돈이든 개인의 돈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한다면 그만한 돈을 항상 제주도 동지들(또는 제주도당)만 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식으로 전국 단위 회의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디서 회의를 하든 그 회의에 참석하는 성원들의 전체 비용(대체로 차비일 겁니다)을 산정하여 엔분의 일로 나누는 겁니다. 예를 들어 모두 이십 명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다 칩시다. 그 회의 장소가 서울이라 할 때, 이십 명 중 열 명(서울)은 별도의 차비가 들지 않고(지하철 요금 정도는 일단 무시하고) 나머지 열 명의 차비를 따지니 모두 사십 만원이라 합시다(제주도에서도 한 명의 동지가 올라온다고 하고). 엔분의 일로 나누니 각각 이 만원씩입니다. 그 이십 명의 회의 참석자 중 서울에 있는 동지들은 이 만원씩 내고 나머지 동지들은 더 내든지 더 받든지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모든 성원들이 오고가는데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도시를 찾으면 될 일입니다. 물론 꼭 짧은 시간만 따질 것은 아니되, 저는 전국 단위 회의라면 천안 정도가 가장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무슨 관광을 가는 것도 아니고 모여서 회의하고 뒷풀이하고 헤어질텐데 산에서 하면 어떻고 도시에서 하면 어떻습니까?

 

     어떤 단위(위원회든 뭐든)가 되었든 진지하게 논의하고 토론한 후에 전국 단위에서 공평한 출장비 지급을 이뤄냈으면 좋겠습니다(세부적으로 따져야 할 부분이 엄청 많겠습니다만).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런 결정들이 조직이기주의를 깨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덧붙여
     이건 지방자치위원회가 제주도 다녀온 것과 아무 상관없는 내용입니다만 꼭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동지는 개인적으로 다른 도시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KTX도 타고 새마을호도 타고 우등고속버스도 타지만 공적인 일로 갈 땐, 무궁화호를 타거나 일반고속버스를 타고 갔다옵니다. 물론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면 KTX도 탑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공금을 적게 쓰려고 합니다.
     출장갈 때마다 KTX, 도착해서는 택시... 이건 아주 심합니다. 우리 당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려니와 자기가 쓰는 그 당비가 어떤 돈인지 한 번, 아니 매번, 천 번이든 만 번이든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 당 당원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그 만 원에 얼마만큼의 땀과 눈물이 담겼는지 생각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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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바꿈

 

눈이 피곤하다는 평이 다수.

모니터에선 검정색 바탕 흰 글씨가 더 번져보인다는 것을 생각치 못한 탓이다.

흰색 바탕으로 바꿨다.

 

도끼가 너무 클라~식하다는 지적.

그래서 실감나는 도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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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토론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과일 중엔 사과가 제일 달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더 단 과일도 있다"고 한다.

처음 말 한 그 사람이 "더 단 과일이 뭐냐?"고 묻는다.

더 단 과일이 있다고 했던 그 사람은 "사과가 제일 달지 않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사과가 제일 달다고 했던 사람이 "그러니까 그 과일이 뭐냐?"고 다시 묻는다.

사과가 제일 달지 않다고 했던 사람이 "사과가 제일 달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한다.



위 두 사람은 "맛있다"라는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어떤 사람이 어떤 과일을 가장 좋아하든, 맛있다고 여기든 그것이야 말로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달다"라는, 곧 '측정(또는 평가)'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주관적인 기준으로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경우엔 더 '대응하는 과일'을 내 놔야 한다.

 

곧 어떤 사람이 "과일 중엔 사과가 제일 달다"고 했을 때,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사람은 "아니야. 사과보다 배가 더 달아"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 이후 사과와 배 중 어떤 과일이 더 단지 측정(측정하는 방법과 범위에 대해선 또 다른 토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사과가 제일 달다는 말에 그렇지 않다는 말만 하지 더 단 과일이 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이건 토론이 아니다. 우격다짐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할 땐 근거를 대란 말이다. 근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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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지방선거 땐

민주노동당에서 구의원으로, 시의원으로, 등등등으로 출마하려는 자들이 많은 것 같다.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일차적으로 이네들은 참 열심이다.

'내'가 출마하려고 주민들을 조직하고, '내'가 시의원되려고 '내' 시간 써가며 이런저런 토론회, 간담회에 나가고 그런다.

 

그런데...

일의 순서가...

어떤 사람이 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 바른 생각과 바른 태도로 당원들을 대하고.

그래서...

당원들이 그 사람에게 구의원 나가라고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당원들이 그 사람에게 시의원 나가라고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그렇게 조직되고 결의되어 구의원이든 시의원이든 나가는 것이 맞다.



'내'가 출마하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내'가 벌이는 주민 사업, 자기가 진행하고 있는 각종 당내 사업을 '내'가 구, 또는 시, 또는 국회의원이 되려는 과정에 필요한, 동원된 사업, 당원들로 본다.

그런 '나'는 당선될 수만 있다면 저 사람과 손 잡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 사람을 뽑으면 안 된다.

2006년에 구의원 한 명도 내지 못하고, 시의원 한 명도 내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사람을 뽑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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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거 하나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조직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기에 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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