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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당 사무실로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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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 그리고...

4월 2일(금)

 

▲ 전주역.

 

▲ 옆에서 본 전주역.

 

▲ '개찰구'라고 불렀던가? 요즘은 기차 탈 때나 내릴 때나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 표 사는 곳.

 

▲ 예전에 대합실이라 했던 '맞이방'.

 

▲ 맞이방에 걸려 있는 '천지' 그림.

 

▲ 역을 등지고... 택시를 타니 기사 말이 여기가 예전엔 번화가였는데 지금은 다 죽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 황량하게 보였다.

 

▲ 역을 벗어나면 곧장 '단선'. 전라선이 아직도 단선인줄 몰랐다.

 

▲ 기차 기다리면서...

 

▲ 내가 탈 무궁화호가 들어오고 있다.

 

▲ 조금 가다보니... 케이티엑스(KTX) 철로인 듯. 그럼 저건 호남선인가?

 

내 기억에, 이번이 세 번째일 것이다. 두 번은 십 년도 지난 예전에... 갔다왔다.

 

점심을 뭘 먹을까 하다가, 일 보러 간 근처에 느낌이 확 오는 '국수집'이 있어 국수를 먹었다.

맛이 참 묘했다.

엄청나게 맛있는 건 아니었는데(어쩌면 내 입맛이 그 국수에 익숙치 않은 탓일수도) 나중에 전주에 가게되면 다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맛이었다.

 

예전에 갔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도시가 참 깨끗하고 사람들은 따뜻했다.

 

※ 의외였던 거 하나. 전주에서 만난 모든 사람(역에서 표 파는 이, 택시 운전자, 식당 아주머니, 내가 길을 물었을 때 답했던 젊은 여성 등)이 전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더라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에겐 자기들도 쓰지 않나? 경상도에 가면 그렇지 않던데. 의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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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은 초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우리가 모일 즈음엔 이미 뻗었다고 했다.

여섯 명에서 두 명 빠져 네 명이 노닥노닥...

 

 

 

 

어제도 역시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헤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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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다른 방향, 다른 색깔

그냥 보자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집 근처로 오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김현수를 불렀다고 하길래 난 좋다고 했다.

 

 

 

많이 마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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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vil Never Rests."

하루도! 쉬지 않은 게 몇년이지?

잠깐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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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창규 위원장(왼쪽), 김윤기 사무처장

 

▲ 선창규 위원장(왼쪽), 김윤기 사무처장

 

▲ 박정순 동지(왼쪽), 선창규 위원장

 

▲ 이점진 여성위원장(왼쪽), 박정순 동지

 

▲ 안병용 동지

 

당 사무실 근처에서 저녁 먹고... 역시 근처에 있는 '투다리'에서 2차.

시당 돌아가는 이야기 하고, 선거 이야기도 하고.

이야기는 심각했지만 분위기는 매우 즐거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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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성희(MBC), 김현수(현차판매), 이경진(전국공공연구노조), 길홍동(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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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한 부분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꿨습니다. 요즘 전화기를 만들 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고장 나게 만드는지 오 년 넘게 사용하니 버튼이 잘 눌리지 않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말소리도 잘 안 들리는 것 같고 그랬습니다.
잘 아는 대리점에 가서 "가장 싸게" 할 수 있는 전화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동무이기도 한 사장이 대뜸 "너는 애니콜 안 쓰잖아?" 하더군요. 애니콜 말고 아무 거나 싼 것으로 달라니까 "넌 벨소리 직접 만들어 넣잖아?"랍니다.
싼 게 있긴 한데, 만들어 넣는 벨소리 용량이 적어서 네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고, 비슷한 값인 애니콜은 벨소리 공간도 넉넉하고 뭐도 되고 어쩌구 하더니, "그래도 애니콜 안 쓸 거지?" 다시 되묻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 물건을 살 때, 이런저런 기준을 들이댑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고르는 기준은 첫째, 싸고, 둘째, 제가 만든 벨소리를 마음대로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엠피쓰리를 넣을 수 있든 없든 카메라 화질이 떨어지든 말든 그런 것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따질만한 기준이 벨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새로 산 전화기는 벨소리도 두 개 밖에 넣지 못하고 넣을 수 있는 용량도 제한되어 있어서 라이브벨 수준으로 벨소리를 만들면 십팔 초를 넘기지 못합니다.
당연히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엔(지금은 덜 하지만)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은, 애니콜을 사용하는 '가책'과 비교하자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나는 성인이 된 이후 내 돈 주고 삼성 제품 산 게 단 한 개도 없다"고 했더니, 농담인 줄 알았는지 떠벌이는 것으로 봤는지 "텔레비전은?", "냉장고는?", "세탁기는?" 등등 묻습디다.
누군가 "삼성 제품 안 쓰다가도 결혼할 때는 사게 되더라"고 하기에 "혼수품 중에 삼성에서만 나온 게 있냐? 다른 회사 제품 쓰면 되고, 만약 그런 제품이 있다면, 나는 안 산다"고 했습니다.

제가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없는 게 아니고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무노조신화'라고 되도 않는 '선전'을 해대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노조 만든다고 하면 칩까지 달아 스물네 시간 감시하고 테러까지 자행하면서 그게 '자랑'인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삼성 제품 쓰지 말자고 하면 "그럼 엘지 것 쓰자는 거냐?", "뭐 엘지는 노동자에게 잘하는 회사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으로 논지를 흐리면 안 됩니다. 최소한 엘지는 조합이 있습니다. 그 조합이 어용이든 제대로 하지 못하든 조합이 활동하는 사업장입니다.
'조합 없음'이 자랑인 회사, 조합 건설을 폭력으로 막는 회사는 민주주의의 적이고, 공공의 적입니다.

홍세화 씨가 유럽의 어느 나라에 갔을 때 삼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그 나라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쓰지 않겠네요?"

불매운동? 그런 거 안 해도 됩니다. 그냥 내가 쓰지 않으면 됩니다.
컴퓨터 한 대를 조립 주문할 때도 "삼성 부품은 하나도 넣지 마십시오"라고 이야기하십시오.
저는 이게 진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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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당 소식지에 실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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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처럼

[설탕듬뿍 꽈배기]
델마와 루이스처럼


이건 꿈이야.
그가 묶여 있는 것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꿈이어야 해.


*
 

라면을 끓이려는데 수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얘가...
평소에는 소매 걷고 달려들어 물이 적네 많네, 스프를 먼저 넣어야 맛있네, 하며 나서던 애가 멍한 것도 아니고 뚫어져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쳐다보고만 있다.
무슨 일 있나? 힐긋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라면을 뜯기 시작했다.
언니.
왜?
언니 보면... 뭐랄까... 여자 같아. 이 말 알아? 여자 같다는 말?
얘가 왜 이래?
그래. 그래. 여성스럽다는 말이 맞다. 언니는 그냥 뭘 해도 여성스러워.
너... 무슨 일 있니?

 

그때는 지금처럼 자주 먹지 않았지만 그래도 별식삼아 먹곤 했는데, 삼십 명 먹을 라면을 끓이는 게 쉽지 않았다.
집하고 회사만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 삼십 명치 라면을 한 번에 끓여볼 일이 있나?
거기다 입맛은 또 각각이라 면은 꼬들꼬들해야 한다, 아니다 약간 퍼져야 한다, 달걀은 다 풀어라, 아니다 노른자는 터뜨리지 마라, 뭔 말이냐 아무 것도 넣지 말고 그냥 끓이는 것이 맛있다, 면서 다들 먹을 때마다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그 때는 서로 웃으면서, 그냥 주는 대로 먹지, 여기가 음식점이냐고 한 마디 할 여유가 있었다.
이젠 열 명 남짓 남았다.
삼십 명이 아니라 오십 명, 백 명이라도 자리를 지켜주기만 하면 라면을 맛있게 끓이련만.


*
 

서너 달 지나니 한 명, 두 명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 한 달이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위원장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길면 한 달이라고.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데... 문을 닫겠냐고 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가 대단한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라고 그랬다.
맞는 말이었다. 몰랐는데, 일할 때 회사에서 해줘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다 법에 있다고 했다.
법에 있는 것들을 해달라는 건데, 그게 뭐 대단하다고.
다들 그랬다. 금방 끝날 거라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
 

다들 후르륵거리며 먹는다. 아무 말 없이.
희는 입맛이 없다. 음식을 만든 사람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더니... 집에서는 몰랐는데 나와서 음식을 만들어보니 그 말이 맞다.
찬밥이라도 있으면 라면 국물에 말아 먹으련만 오늘은 그마저도 없다.


*
 

그 말은 수가 먼저 꺼냈다.
언니, 진짜로 죽여 버리고 싶어.
왜, 무단침입에 기물파손도 모자라서 살인까지 하려고?
웃기지 마라 그래. 우리가 뭘 잘못했우? 노동자가 노동조합 만든 게 잘못이우?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 그 새끼 죽이고 나도 죽자. 그 새끼는 인간도 아냐.
그만 해.
아냐. 할 수만 있으면 잡아다가 죽을 때까지 괴롭히고 싶어. 그래도 내가 당한 고통의 백분의 일도 안 될 거야.
그만 하라니까.
언니, 언니는 그런 생각 안 들어? 억울하다는 생각 안 들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냐니. 백 번, 천 번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오죽하면 전생에 무슨 죄가 있길래... 이 말을 달고 지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일로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전생의 죄가 아니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들어.
언니, 언니, 나는 말이우. 그 새끼를 잡아서 꽁꽁 묶은 다음에 밥도 안 주고 화장실도 못 가게하고 그래서...
수야. 난 말이지...

특별히 마음에 뒀던 것도 아닌데 그 말이 나왔다.


*
 

오초본드는 아들에게 처음 들었다.
희는 아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꽉 막혔다.
그다지 잘하는 공부는 아니었지만 웬만했던 녀석이었다. 2학년 때는 담임이 조금만 더 하면 외고도 갈 수 있겠다면서 집에서 조금만 신경 쓰시라고 하기도 했다.
그랬던 녀석이었는데... 엄마가 이렇게 지내고 있으니 공부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시험 때마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3학년 기말고사에선 터무니없는 점수가 나왔다.
지 아빠는 심하게 꾸짖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희는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냥... 엇나가지만 않는 것도 고마웠다.

어느 날인가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 아들 방에 가보니 조그만 비행기며 배, 자동차가 있었다. 모두 나무로 만든 것들이었는데 이 녀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 생각부터 들었다.
야자 마치고 들어온 아들에게 비행기 만들 시간이 있냐고 했더니 공부 잘 안 될 때 가끔씩 만드는 것이라면서 씩 웃는다. 어이없어서.
엄마가 이렇게 지내는 것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으니 다 알고 있다면서 또 씩 웃는다.
품에 있을 때나 자식이지... 클 대로 다 커서 같이 다니면 젊은 애인이라는 말 듣겠다고 수가 그랬다.
오랜만에 엄마를 봐서 기분이 좋은지 학교 이야기며 동무들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나무로 만든 자동차를 하나 집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중에 엄마한테 이런 차 사줄게, 그런다.
참내~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학원도 보내지 못하는데... 먹을 거나 제대로 먹는지 모르겠는데... 지 엄마 차 사줄 생각을 하다니...
잠긴 목소리로 그런 거 어떻게 만드냐고 물었더니 나무를 어떻게 얻고 조각칼로 어쩌구 오초본드로 붙이고, 설명을 해댄다.
오초본드? 그게 뭔데? 회사 이름이 오초야?
그게 아니고 오초 만에 붙는다고 오초본드란다. 손가락끼리 붙여도 붙는다고 제대로 붙으면 수술을 해야 뗄 수 있을 거란다.

그 때 그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진짜 그냥 스쳐갔다.
눈꺼풀을 붙여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어이없게도 사장이 묶여 있는 것을 보자 본드가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진짜 눈을 못 쓰게 만들 생각이었나? 두 눈 다?
두 눈이라니, 이 상황에서 눈 하나, 눈 둘을 따지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희는 겁이 났다.
어쩌려고?
죽이려고.
죽이긴, 수야, 정신 차려.
희는 수 눈이 무서웠다. 마치 눈에서 피라도 나는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수야, 너 왜 이래. 이런다고 될 일이 아냐.
언니. 나 그냥 이 새끼 죽이고 나도 죽을게.

그때 사장이 웃는 것 같았다. 잠깐 입 꼬리가 올라간 것 같았다. 비웃는 건가? 모르겠다. 비웃은 것 같았다.
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비웃어? 당신이 몇 명을 죽였는지 알아? 해고는 살인이야. 알아? 회사 문을 닫으면 다 죽는 거야. 알아? 아냐고.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해.
드라이버였나? 과도였나? 뭐였는지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는 들고 있던 그것으로 사장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안 돼. 수야. 안 돼.


*
 

언니, 뭐 해. 라면 끓이자고 했잖아. 꿈 꿨어? 소리는 왜 질러?
아니 그냥... 아무 것도... 아냐...

희 눈에서 눈물이 났다. 피보다 진한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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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03시 07분  미디어충청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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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 가장 편안하게


가장 편안하게

제 이야기를 좌파는 이래야 한다는 불편한 이야기로, 좌파의 윤리 강령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히려 다들 좀더 편안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까 제가 좌파들이 제 아이 사교육 시키는 일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풍경을 말씀드렸는데, 저는 '좌파가 어떻게 제 자식을 사교육 시키느냐'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아이 사교육 시키는 사람이 뭐하러 좌파를 하는가'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꼭 좌파로 살아야 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좌파로 살아야 한다고 강제한 일이 있습니까? 양심적인 자유주의자로, 이명박 비판하고 조중동 반대하고 춧불시위 참여하고 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럽지 않은 삶 아닙니까? 그런데 굳이 자신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불편하게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한국 사회에 좌파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자신을 좌파라 강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양심을 건사하는 자유주의자로 살지만 좌파들을 존중한다, 이런 품위 있는 자유주의자가 많아야 사회가 갈피를 찾게 되고 좌파도 제 역할에 전념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참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나같이 내가 가장 현실적인 좌파다, 내가 변화한 시대의 좌파다, 억지를 부리면서 묵묵히 활동하는 좌파들을 비현실적이니 관념적이니 깎아내리지요. 그런 태도가 조갑제 같은 극우세력의 이념 공격보다 훨씬 더 좌파에게 치명적입니다. 대중들에게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거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좌파가 그럴 수 있느냐, 난 좌파인데 이래도 되나, 이런 불편함을 버리십시오. 편안하게 사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가장 편안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존엄한 권리입니다. 좌파로 사는 게 편안하면 좌파로 살면 되는 것이고 자유주의자로 사는 게 편안하면 자유주의자로 살면 됩니다. 그게 사회에도 본인의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부산 강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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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11:43  규항넷



김규항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옮겼습니다. 밑줄은 제가 그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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