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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_ 산하

     

            

     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산하/ 인권운동 사랑방 반차별팀 자원활동가


 


 

 

● 들어가며

 

-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걸어가는 데 누군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쳤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린년이 어디서 담배를 피고 지랄이야?”

 

-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쉬는 시간,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차가 내 앞에 멈춰서고 갑자기 경찰이 나를 불렀다. “아가씨 몇 년생이에요?” 나는 황당해하며 되물었다. “ 그걸 왜 물으시는 데요?”, 내가 당돌하게 나가자 멋쩍은 듯 대답했다. “아니 그냥 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길래...”. “ 저 88년생 성인인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대차게 나갔다. 경찰이 말했다. “아니 성인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자가 대낮에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좀 보기가 그렇잖아요 그렇지 않나?” 조수석에 앉아있는 동료에게 긍정을 요구하기 까지 한다. “전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그럼 담배를 어디서 펴야 되나요?”하고 말하자 “아니, 그냥 좀 보기가 안 좋아서...” 라고 말끝을 흐린 후에 가버렸다.

 

- 친구와 함께 담배를 피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면서 나에게 뭐라 하신다. “나중에 기형아 태어나려면 어쩌려고 담배를 펴 애 잘못되면 다 여자 탓인데, 애 낳는 몸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건데 그렇게들 담배를 피우나 쯧쯧”

 

 내가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여성)흡연자로써 보낸 지난 일 년 동안의 시간이(정확히 말하자면 흡연여성으로 인해 받은 수많은 차별과,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사회적 규범·인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모두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더 폭력적이거나 더 은밀한 차별과 억압도 많았으나 그 모든 사례를 열거하기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나이가 어린 여자이기 때문에, 그냥 보기가 안 좋으니까, 아이를 낳을 몸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여자는 안 되고 나이가 많은 여자는 되는 이유가 뭘까? 흡연하는 여성의 모습이 길을 가다 차를 세울 만큼 눈엣가시가 되는 이유는?. 남자도 흡연하면 정자가 약해지고 수도 줄어든다는데! 여성 흡연에 대한 억압적 분위기 그리고 여성에게 금연을 요구하는 사회적 담론은 ‘흡연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방식 즉, 여성의 신체가 ‘아기를 낳는 모체’로써 인식된다는 점에서 성차별 적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여성 흡연 현상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과정을 살피고 두 번째로 흡연이 여성에게 사회적 금기로 작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본 후 세 번째로 나의 경험에기반하여 흡연과 젠더관계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내가 바라는 '여성 흡연· 흡연 여성'에 대한 사유를 피력하고자 한다.

 

 

● 여성 흡연 실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 인구는 13억 명으로 1년에 490만명이 담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흡연 인구는 약 1200만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흡연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금연 분위기가 일면서 한국인의 20세 이상 성인 흡연률은 남자의 경우 1980년 79.3%에서 2002년 60.5%로 20여 년 만에 18.8% 감소했으나, 20대 여성 흡연율은 1980년 1.4%에서 2002년 8.1%로 6배가량 크게 늘었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간 여성 흡연율이 증가한 것은 전 세계적 양상인데, 여성 흡연 인구의 증가는 먼저 선진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흡연자의 총수는 2억명 이상이며, 선진국 여성 평균 흡연율은 25% 전후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된 지난 20년 사이에 여성 흡연 인구가 급속히 증가 하였다.

 

 이렇듯 여성 흡연율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이나 제도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 흡연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흡연 여성의 역사

 

 여자가 번듯이 담배를 피워서 말세라면, 말세는 벌써 옛날에 왔다. 명성황후도 애연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 담배는 포르투갈이 일본에 전했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을 통해 조선에 전해졌다.  정조 임금도 즐겨 피운 담배는 양반뿐만 아니라 상민, 천민 그리고 여성과 아이도 즐겼다.- '조선 사람들은 담배를 몹시 많이 피우는데 심지어 네댓 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들 까지도 피울 정도여서, 남녀를 막론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하멜 표류기>-

 

 1910년도 담배광고를 보면 임신여성이 궐련을 피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의 습속>이라는 책자에는 담배를 피우는 도구를 성명하는 이가 남성 아닌 여성이며, 부덕을 정숙히 행할 상류층 부인이다. 이밖에 여러 자료에서도 결코 여성의 흡연이 사회적인 금기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왜, 누가, 여성을 흡연에서 배제하기 시작한 걸까?

 
 조선 사회가 보수적이 성격을 띠게 되는 시기는 남존여비와 같은 가부장적 사고가 짙은 사림계열의 성리학자들이 정계를 장악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형제들이 돌아가며 지내거나 시집간 딸도 모시던 제사를 적장자만이 지내고 상속도 적장자 위주로 이루어 졌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해짐에 따라 여성의 공간은 '집'으로 규정되었으며, 담배에도 예절이 생겼다. - 종은 상전 앞에서, 나이 어린 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아내는 남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또한 신분에 따라 담뱃대의 길이가 달라져 양반은 1m가 넘는 담뱃대를 물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근대 사회에서 왜 여성은 흡연에서 배제되었는가.(사)현대사 연구소> -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이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정숙하지 못하다는 범절이 통용되었고, 상류층의 여성들은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지 않음으로써 남 앞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기생이나 주막부녀들과의 신분적 구별을 두었다. 그러나 예외 적으로 가정의 연장자나 과부처럼 '사연이 있는 여인'들 에게는 담배가 허용 되었다. 여기서 기생에 대한 부정적 관념과 이들이 공개적으로 사용한 담배의 결합에서 오는 이미지는 지금까지 여성 흡연자를 제약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가 이후 '양공주'로 이어지면서 직업적 속성이 기생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담배를 허용하는 관행이 점차 관습법처럼 굳어졌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조선이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 할 것을 촉구한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술과 담배를 축첩이나 노름과 같은 죄악으로 규정하면서, 패가망신의 원이이며 사회적으로 해로운 풍습이며 국가의 재정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담배의 해로움을 밝혀낸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의 요구를 들 수 있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나라의 빚을 갚자는 때에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단연'이었지만 담배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세와 함께 일제 제정의 40%를 차지했다. 식민지 시절 개화를 주장하고 독립을 염원하던, 민족을 앞세운 선각자들은 '힘을 키워 나라를 되찾자'는 구호아래 여성들을 국민의 어머니로 규정한다. 여성들은 민족의 앞날을 책임질 아이를 근대적으로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자유와 저항의 상징


 서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담배가 전래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담배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의 종교서회는 여성에게 지속적인 입술운동을 하면 턱수염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고, 흡연 여성들은 품위가 없는 최하층 여성이거나 창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여성 해방 운동의 물결이 일어났을 때 흡연은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고, 당시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던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로라 몬테즈(Lora Momtez)는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웠다. 영국에서 여성 투표권이 허가된 1920년대 이후 담배 소비는 급속히 성장했고, 미국에서도 여성 투표권이 통과되고 난 후 담배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담배는 숭고하다」를 쓴 리처드 클라인는 "한 사회에서 여성이 어느 정도 흡연권을 누리고 있는가는 보편적 평등의 지표이자 시민 사회 내에서 여성이 전임 회원인가 여부를 가늠 하는 시금석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1980~90년대 패미니스트 사이에서 '담배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그들은 양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담배를 사유하고 소비했다. 그들에게는 여성이 담배 피울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다른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임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담배를 선택했다. 정치적 흡연가가 된 것이다.

 

 여자가 숨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더 이상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주제적인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여자라면 마땅히 베일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녀가 빨아대는 모든 담배 연기는 그녀가 호흡하기로, 그것도 전적으로 그녀 자신의 호흡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리처드 클라인>

 

 

● 나오며 +사족

 

 나는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임을 드러내고자 흡연을 하는 것인가?

 
 내가 당당히(?) 흡연을 하는 것은 굳이 숨길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나의 흡연 행위가 저항 또는 자유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물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강도의 차별을 경험했지만 내가 그 차별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의 상징으로써 흡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일상적인 행위가 누군가에겐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다는 사실이 거북하고. 심한 욕설을 듣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당할 뻔 했던 일련의 경험들이 나를 위축시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담배를 꺼내 물을 때 혹여나 나를 해치거나 쓴 소릴 할 만한 사람이 있지 않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골목길에서 갑자기 아저씨들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얼른 담배를 끄고 모른척하는 내 모습,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정말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시선이 어느덧 내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를 검역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는 발견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히려 ‘자유와 상징’이라는 구호마저 벗어 던지는 그냥 단순하고 명쾌한 그런 사유를 원한다. 별 것 아닌 담배에 여자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왜 담배를 피우니?"하고 물으면, "그냥 , 담배가 좋아서."하고 대답할 수 있는,

어떤 사건도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담배가 여자에게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단지 '기호'에 불과한  그런 담백한 사유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참고 문헌>

- 이윤숙. <담배로부터의 해방과 여성의 해방>. 2003.

- 서명숙.「흡연여성 잔혹사」서울: 웅진닷컴 2004.

- 고한나, <일제시대 여성 흡연에 대한 담론 분석>,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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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성으로 살아가기 - 대옹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기

-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김상희씨 인터뷰

대옹

 

 

“제 소원이요?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일찍 죽는 것에요”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 엄마의 대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장애를,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볼까? 불구, 불구를 가진 사람, 불행, 불행한 사람, 혼자선 살 수 없는, 그리고 그런 사람?!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면 ‘장애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나’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지도, 의사소통에 힘겨워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이 장애를 겪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만’을 위한 이동시설이 잘 갖추어지고, ‘그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이유가 과연 장애 그 자체 때문이라 할 수 있을지 여성장애문제를 고민하는 장애여성 공감의 김상희 활동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애인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오래 되었는데 과거와 비교해 우리 사회가 오늘날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가요? 예전에는 장애를 멀리하고 꺼려하기만 했었던 것에 비해 요즘은 좀 더 가깝게 느끼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장애문제가 나의 문제로 고민이 되고 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여기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려서부터 뇌성마비가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땐 (장애를) 아이처럼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끼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로 인식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과거와 같은 생각도 남아 있긴 하지만 언론 매체에 많이 드러나고 후천적인 장애들도 많아서 서로 다른 세계로 인식하는 생각은 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시선들을 많이 접해오긴 했죠. 장애가 주는 이미지가 워낙 부정적이라 장애를 가진 것만으로도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시선이 아직 많아요.

 

혹시 직접 겪는 차별이나 피해 같은 것들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뇌성마비 장애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보시다시피 저는 언어장애가 있고 휠체어도 타기 때문에 생활에 보조가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혼자 지하철을 타거나 어딘가를 갈 때 바닥에 물건을 떨어뜨리면 주워달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워요. 힘들게 말을 해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요. 다소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제 말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지 않아요. 언어장애를 낯설게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또, 사람들이 뇌성마비에 대한 편견이 많거든요, 제가 안면근육 마비 장애가 있는데, 사람들은 지적장애로 여기고 처음 만났는데도 (말을 걸때) 마음대로 반말을 하고 그럴 때가 많죠.

 

낯설게만 생각하고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에 반성도 하게 되고 공감도 하게 되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런 식의 생각들이 또 장애와 비장애를 나눠버리고 서로 다른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같은데요. 이런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이분법화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주체적이지 못하고 , 대상으로서만 규정되는 것을 경험 하시나요? 특히, 장애단체이면서 여성단체인 공감은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문제들이 주체성의 문제에서 더욱 고민스러울 것 같은데요.

 

주변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여성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꾸 저와 닮았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볼 때는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많이들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건 그 사람의 생김새나 모습은 보지 않고 장애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공감에서는 장애여성의 출산 육아 등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희가 왜 ‘장애여성들만 고민을 해야 되는가’를 문제로 제기하고 싶어요. 그 문제는 지금의 결혼제도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생각하고, 그런 이의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장애여성이) 원하는 결혼이라든가 출산을 얘기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저에겐 결혼이 굉장히 억압적인 제도로 다가오거든요. 결혼이 파트너하고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파트너의 가족과도 연결되는 일이잖아요. 그 파트너가 가족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 주변 사람들과 복잡한 연관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억압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 같아요.

 

‘장애’라는 것으로 규정짓고서 확실하게 분리시키는 문제가 특히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역할까지 강요받고 장애 여성에게는 더더욱 고민이 되는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다른 이야길 해볼까하는 데요? 요즘 장애운동 단체들이 4월20일 장애인의 날까지 대정부투쟁을 선언하고 농성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감도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공감은 어떤 활동에 주로 주목하고 있나요?

 

저희도 4.20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장애여성에 관련된 요구안은 많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여성장애인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하나하나 담아내지 못했어요. 일상적으로 하는 고민들인데도, 언어로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 주거권 문제에서도 장애인의 주거권을 보장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장애여성에게는 단순히 주거권 보장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거든요. 독립생활 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많은 중증장애 여성이 독립한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분들이 외부로부터 위협받는 경우가 많아요. 밤에 문을 두들겨 본다든가 문을 열어본다든가 하는 위협 말이에요. 또 장애여성문제가 꼭 당사자끼리만 고민을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공유하고 싶은데 장애여성 문제는 장애여성들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좀 아쉽다는 느낌을 받죠.

 

언어로 장애 여성의 문제를 정리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문제를 장애 여성만 고민하지 않고 비장애인이나 장애남성도 더 많은 고민들이 공유되는 것이 이런 여성장애의 문제의 언어를 만들고 목소리를 내는데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장애문제해결에 대해 정부적인 차원 외에 바라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장애인 콜택시 아세요? 노란색 봉고차. 저는 혼자 타고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활동보조인이 콜택시를 불러주면 혼자타고 가는데 기사님들이 되게 활동보조를 해주시는 분이 같이 타지 않은 것에 대해 굉장히 불편해 하세요. 왜 같이 가지 않냐고 계속 꼬치꼬치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제가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제가 언어장애가 있어서 목적지 설명을 잘 못할 수도 있다는 거에 대한 걱정도 하시더라고요. 장애에 대한 두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러한 것들을 바꾸어야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말을 많이 했는데, 가령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인데 그때라고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갖고, 인식이 하루 만에 바뀌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건 장애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을 갖고 있어야 인식이 바뀐다고 생각을 해요. 일상적으로 소통을 하고 같이 고민하는 노력이 서로에게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장애인분들이 시설이나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소통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도 장애여성 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장애여성을 만나보고 싶은데, 장애여성분들이 다 어디 숨어 계신지(웃음) 만나 뵙기가 굉장히 쉽지 않아요. 시설에 갇혀 계신 분들도 있을 거고 집에 갇혀 사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 언론에서는 그런 장애인들의 모습을 많이 비추어주고 있잖아요. (동정적이거나 극복만을 강요하는)그런 모습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단체 같은 경우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으면 좋겠다.(웃음)

 

그럼 공감에 대해서 좀 더 소개 해주세요.

 

공감에서는 지금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 성폭력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베이커리도 하고 장애여성 독립생활 센터도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서 장애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성폭력문제 중에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많은데 그에 대한 아직 대안이 없어 어떤 대안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어요. 또 독립생활 센터에서는 장애여성을 독립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올해엔 장애여성 주거권에 대해 주제를 잡고 활동할 계획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 보다 먼저 죽기를 바라는?! 바랄 수밖에 없는 영화 “말아톤”의 장면은 우리사회의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은 불행하고 우린 동정과 시혜만을 주거나, 혹은 초원이처럼 드라마틱한 극복만을 요구한다. 본인도 장애인이기에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던 김양원 목사가 인권위 비상임위원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런 김 목사의 임신한 장애여성의 낙태 강요와 같은 반인권적 모습에서 우리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더욱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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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기제; 지적차이 - 대옹

요즘 고민하는 제 고민거릴 그냥 써볼까 합니다 하하;

글쓰는게 처음이네요 먼저 소갤하면 반차별팀에서 석진담당하는 대용이라는 활동갑니다!

 

이 반/차별 프리즘을 쓰면서 뭘 써야할까 고민하다보니 요즘 내가 문득 들은 의문이 생각나더라구요. 지식의 차별?! 이라고해야되나,, 정보 독점에 관련한? 뭐 거창한건 아니고,,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사람과의 알고있는 분야나 배경 환경 다 다르잖아요. 당연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도 다르고요.

그런데 이런 각자 알고있는 서로다른 정보들 혹은 그 양?질?이 권력관계에 개입되기 시작하면 차별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것 같거든요. 뭐 예를들면, 더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선배는 당연히 후배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것이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배 혼자 존중받아야되고 우대받아야되는 그것이 선후배라는 권력관계와 맞물려서 일종의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력의 우선관계를 정당화 시켜주는 요소로 작용되는 것이지요. 이 요소로인해서 선배는 물론 후배도 당연하게 차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지요. (혼자만의생각일수도있습니다만)

여기 결정적으로 고민이 드는부분은 정보의 선점이 과연 차별의 정당화를 하는데 정말로 정당한 요소가 될수 있을까 이거든요. 먼저 알고 있는 정보는 공유하면 그 정보는 다른 의미에서 재해석되고 새로운 지식 정보를 창출해내는 기능을 발휘한다면 물론 정보의 선점이 의미가 없어지고 좋겠지요? 그런데 어디 사람맘이 그러하던가요,, 누구나다 나만 알고싶어하고 내가 어렵게 알아낸 정보를 지식을 누구한테 함부로 공짜로 알려주기 싫어하고들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카피라이트냐 레프트냐의 논쟁과도 맞닿는것도 같은데,, 근데 또 그렇게 선점하는 것에 대한 대가만을 인정하면서 대가를 지불하고 권력을 독점시켜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보, 지식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달까,, 이런 문제를 현실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지식의 선점,독점이 차별의 기제로 작용해버리는 이런 구조를 인정하기에는 제가 말하는 지식,정보가 무슨 학문적 연구를 통해 혹은 이러저런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과는 약간 다른 종류일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일종의 자연상태에 맡겨버리는 식의 돈,권력으로 해결해서는 역시 안되보이구요 ,, (에잇 몰라)  하하 이게 무슨짓인지요,, ㅋㅋㅋ 그냥 생각없이 제고민만 써버렸군요 ,,

저에게 힌트를 조금만 주시면 ㅋㅋ,, 제고민에 실마리가 될지도 ,, 읔,,, 여기까지만 쓸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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