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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3
    가족의 간섭-대옹(4)
    반차별팀
  2. 2009/09/13
    where are you from?, how old are you?-기정(6)
    반차별팀

가족의 간섭-대옹

-아 너무 내이야기라,,, 좀 그렇긴 하지만,,,,,일단 씁니다,,,,-

 

    가족관계에 있어서 수많은 조언, 충고, 참견, 간섭 등은 도대체 뉴규에게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강제적인 어떠한 형태의 것으로도 간섭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적절한 형태로(그것이 단순한 정보의 전달에서 강제적인 형태의 간섭까지)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게다가 가족이 경우라면 더욱 심한 간섭과, 잔소리와 같이 갖가지 형태로 더 쉽게 접근해 오지만 더더욱 그런 접근을 막지 않는다. 난 여기서 좀 더 가족 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든다. 도대체 가족은 나의 어디까지 파고드는 것이 가능하며 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배제는 당연한데 가족은 되는지 말이다.

 

    먼저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길 해보고 싶다.

 

    간혹, 나는 나의 동거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갑 : 니가 뭔데 이래랴 저래라야! 니가 엄마냐?

을 : 너?! 진짜 니가 미쳤구나? 가족이니까 하는 말에,,, 누나(, 언니, 형)한테 너?

 

    위의 대화에서 갑은 ‘가족 간에도 분명히 권력의 분배는 차이가 있고, 부모의 간섭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사람의 간섭은 배제하겠다’ 을은 ‘가족의 간섭은 정당하다와 가족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존칭어를 써야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 보인다.(갑은 확실하다,,,ㅋ) 그런데 갑의 전제를 살펴보면 가족 간의 권력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타인의 접근, 간섭에 대해서 허용과 배제의 선을 긋고 있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나이가 더 많고 덜 많고 혹은 적다의 차이? 혹은 날 낳았냐 아니냐? 더 친밀하냐 아니냐? 여기서 갑은 물론 글 쓰는 나이기 때문에 친밀감의 차이는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남는 나이와 출생 이 두 가지를 근거로 타인의 접근을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갑은 나이만이 아니라 또 부모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복합적으로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도 않은 사람의 간섭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차별적인 태도와 함께 삶의 근거를 오로지 출생에서만 찾는 수동적인 태도가 섞여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 전통적인 사상이 수평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출생과 그 출생에 따른 보은의 관계(흔히 말하는 부모님 은혜 같은?!)를 많은 이의 모태신앙처럼 정당화 시켜왔다.

 

    또 을의 전제는 타인의 간섭을 동거인의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정당화 시킨다. 을의 말이 정당화되기 위해선 가족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서로 공유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황상 그래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을은 또 우리는 서로가 도움의 주고받음이 필요하다고 공유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접근하고 간섭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을의 전제인 가족 내의 나이에 따른 확실한 존칭구분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불만인 사항이다. 특히 나이에 따른 존칭의 문제는 어디에 가든 한국어의 특징상 어디가나 따라붙는 내용이지만 특히 가족 내라고 말한 것은 가족과 나이가 만나서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족보, 항렬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전통적인 우리나라 가족관에서는 족보를 펼쳐서 자를 대고 쭉 그어보면 대체로 나이와 가족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에 따라 처음부터 호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항렬과 나이순으로 정해져 있는 이런 호칭에는 당연히 불평등한 권력이 분배 되어있다. (쌍둥이 마져도 호칭을 구분하는 ㄷㄷ) 이런 불평등을 호소하고 반발하는 사람은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가족관인 것이다. 게다가 같은 서열이지만 나이가 많은 언니, 형, 누나에게 대들 듯이 겨우 해보는 ‘너’라는 호칭을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쓴다는 것은 애초에 상상을 해 볼일이 없는 것이다.

 

    난 “가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하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를 일컫는 추상적인 정의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흔히 말하는 가족 관계의 뗄 수 없는 인연, 친말감 등에 대한 강조도 가족이니까 인연이고 친밀하다보다는 개별의 관계가 소중한 인연이고 친밀하니까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나에겐 어느새  준기,영례 ,미숙과의 관계는 없어지고 엄마,아빠,누나라는 가족관계만 남아있다

 

P.S우리집에서 보면 실명 별로인거 같아서 가명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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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you from?, how old are you?-기정

  얼마 전 2학기가 시작되고 첫 원어민수업이 있었다. 첫 시간인 만큼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Sccot은 우리에게 자신의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한국인들은 자기만 보면 where are you from?, how old are you? 또 심심치 않게 미국인이냐고도 묻는다고 하더라고요.(그는 호주인 이랍니다.ㅎ;;)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에게는 나이가 얼마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형제는 있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등의 개인 사항을 묻는 경우는 상당히 자연스럽죠.

 

 

반면, 외국인들은(주로 서구권) 그러한 개인적인 질문을 받는 것, 하는 것 모두 꺼려하며 심지어는 불쾌하게까지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개인적 질문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또는 그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여기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묻죠. 물론 그러한 질문이 우리의 입장에서 ‘관심 받고 있다’ 라거나 ‘친해지고 싶구나!’ 처럼 친근감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이 차별을 위한 예비과정에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작은 사례로 어디에 사느냐라는 질문에도 강북이냐 강남이냐에 따라 경제적인 정도는 물론 사회적 지위까지 격상되는 듯 여기는 풍조나(주로 트렌디드라마에서 잘 보여 주듯 말이죠..) 일단 똑똑히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나이에 따라서 대번에 하대를 강요당하죠.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결코 무시 못 할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봐요.

 

 

 이점을 보다 명확히 보기위해서는 위에서 비교되는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차이를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일단, 여전히 동양권의 지배적인 사상은 바로 ‘유교’가 아닌가 싶네요. 예전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기사에서 열강의 통치에서 벗어나 신흥공업국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인 우리나라와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다룬 내용 이였는데, 이들이 동양의 배경사상인 ‘유교’로 인해 강력한 가족주의와 단결, 애국심, 상위자에 대한 충성 등을 이야기하며 성장의 동력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점은 다른 한편에서 혈족외인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개성의 상실이나 자기의식의 부재 등의 문제를 갖고 있죠. 또한 출신성분과 같은 개인사항을 묻는 것에서 아직도 지역감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연고주의가 작용할 수 도 있고요. 그 외에도 학벌이랄지, 부모님의 직업이나 집안의 내력(형제관계나 조상), 나이를 묻음으로(무슨 일만 있으면 “민증까봐~ “라고 하듯.) 학벌차별이나 권위주의, 연령주의(선거법에서 쓰이는 것과 다른.)등의 선입견들이 작용한다는 것이고 사람을 판단 할 때 그 사람 본연의 개성이랄지 능력들의 내적요소가 아닌 명패나 소속, 가문 같은 외적요소가 판단과정에서 효과 한다는 것이죠.

 

 

 반면 서양권의 지배적인 사상을 꼽자면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인간중심사상과 같은 맥락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있으_(비버리지 보고서나 인권신장촉구……._신학에 바탕을 두었던 경제관이 영향을 미친 자본주의가 있죠. 뭐 지금을 한마디로 하면 ‘능력주의’가 아닐까 싶어요. 연령(나이)주의나 혈연-지연 등의 수구권위주의와(좋지 않은 권위주의라고 할까요?단어가ㅎㄷㄷ;) 상이한 모습이죠.

 

 

 물론 ‘능력주의’가 최상이라고, 무결하다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자면 폐쇄적 개인주의와 그에 따라 인간관계가 상당히 형식적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죠. 또한 물질만능주의도 이에 무관하지 않고요.

 

하지만 적어도 혈연, 지연, 학벌, 나이와 같은 외적 판단 요소들의 영향에서는 자유롭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문화 차이라고 볼 수도 있죠. 세계는 결코 일원적이지도 독자적이지도 않는 발전을 보였기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근대라는 시대에 접어들어 어떤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과 발명들로 인류는 점점 작은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점과 단지 거리상의 단축이 아니라 문화의 교류와 공동화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어떤 합의를 봐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위처럼 동서양의 비교에서 보듯이 서로 좋기도,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적어도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사람만의 가치(내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죠. 너무 어려워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지 못해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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