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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9/25
    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6)
    반차별팀
  2. 2009/09/15
    "아이돌"도 이 '세상'을 뜨는구나 by 꿈의택배(1)
    반차별팀
  3. 2009/09/13
    가족의 간섭-대옹(4)
    반차별팀
  4. 2009/09/13
    where are you from?, how old are you?-기정(6)
    반차별팀
  5. 2009/09/06
    영어? 짜증나! - 돌진(12)
    반차별팀

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

 

자자.. 까먹을랑 하면 돌아오고, 지겨울랑 하면 새로운 주제로 우리의 '차별'감수성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사랑방 반차별 프로젝트의 야심찬 小프로젝트,"그 때, 내가 차별했어!"

 

이번의 새로운 주제는 바로

"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 입니다.  감이 팍 오시죵?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중, 그 뿌리가 깊고 심각한(물론 다 중요하지만.-.-) 차별 중 하나는,

학력에 대한 차별인 것 같아요.

'학력'이라고 하면, 초졸, 중졸, 대졸 등의 어느 정도까지 교육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흔히는 의미하지만

"어떤 학교"를 나왔냐 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학벌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겠지요.

학벌(學閥)이란 "특정 학파 또는 특정 학교 출신자가 어느 직업 혹은 특정 기업, 특정 집단 내에서 암묵적인 지위나 세력을 형성하여 그것을 자기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세력을 확장하는 데 이용하는 행위나 그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위키백과)

 

그렇다면 학벌을 차별한다 함은,  어떤 특정한 '학벌'에 속함으로 해서 사회에서 위치가 달라지며, 누군가를 대할 때 어떤 '학벌'인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거겠지요.

 

어떠신가요, 생각을 더듬어.. 누군가를 학력(학벌)로 하여금, 차별해본 적.

언제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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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도 이 '세상'을 뜨는구나 by 꿈의택배

 

 

"아이돌"도 이 '세상'을 뜨는구나 

 

 

 

2PM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다만 '오후 2시'라는 뜻 밖에는 알지도 못했고, '니가 밉다'와 '어게인 어게인'이 그들의 노래임을 구분하는 것도 굉장히 대단한 것일 만큼 관심이 없다. 그랬던 내가 2PM에 '재범'이라는 사람이 있고, 그가 몇 살이며,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불과 하루 만에.

 

하루종일 아이돌 그룹 2PM의 재범 탈퇴와 그의 출국에 대한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2PM의 재범이 4년 전, 연습생이전 시절에 미국 사이트에 올렸던 글에서 "한국인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하는 저질 랩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정말 멍청하다",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허상이었다" 등의 말을 쓴 것이 4년이 지난 지금 알려져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이다. 구설수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일파만파 퍼져서 혹독한 '국민'들의 비난 세례를 받으며, 그는 결국 오늘 저녁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마치, 급히 이 '한국'에서 쫓겨나듯.

 

그러한 "한국 비하" 글이 문제로 터지고 난 후, 그는 자신이 4년 전에 그런 글을 썼던 것은 맞지만 그 연습생 시절 가족과, 살던 곳으로부터 혼자 떨어져서 너무 힘들어서 그 자신의 힘듦을 주변 상황으로 돌리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앞날에 대한 불안과 한국에서의 부적응 등으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과문을 올렸으나 여전히 "재범 한국 비하"라는 화제는 끊이지 않았고, 며칠만에 몇 년 동안 오로지 이것만을 바라보고 왔을 그룹에서 탈퇴하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는 꼭 2PM에서 탈퇴해야만 했을까.

그러나 그 물음은 명제로 대답하자.

이 '대한민국' 에서 그는 그룹을 반드시 탈퇴해야만 했고, 그를 탈퇴시켜야만 했다.

 

나는 그의 사과문이 진심일 거라고도 생각하며, 심정적으로 사실 그를 이해할 수도 있다.

지금보다 4년이나 전, 모든 가까운 사람들과 떨어져 당시 자신이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는 '연습생'이었던 자신의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내밀한 공간에서 만이라도 그것을 덜어놓고 싶지 않았을까. 너무도 많은 이가 바라는 스타를 꿈꾸지만,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혹은 하늘로 올라갈 수 조차 없는 것이 그 세상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느끼고 있었을텐데, 그런 그가 얼마나 불안함과 휩쌓인 10대 후반을 보냈을까?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공교롭게도 나와 그는 동갑이다. 나는 끊임없이 방황하는데,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했을, 그리고 지금보다 더 어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현명하지 못했을 4년 전, 나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론 그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그러나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하나. 우리들은 그런 '한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반성할 당분간의 시간마저도 결코 허락할 수가 없었던 것인가? 구석으로 끝끝내 몰아부쳐, 결국은 그 날 당장 미국으로 떠나고야 말게 한 대단한 이 애국심. 아, 이제 새들도 세상을 뜨는 이 나라에는, 연예인도 애국 때문에 나라를 뜨는구나.

 

나는 두렵다.

지금보다 훨씬 달랐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몇 년 전의 글 몇 편으로 그의 운명을 완전히, 완벽히 바꾸어놓을 정도로 확실한 이 무언가, 그 실체 없지만 이 나라의 곳곳에, 무엇보다도 명징히 실제하는 이 공포감에 몸이 떨린다. 그가 탈퇴를 선언하고몇 시간 되지 않아

부리나케 오후에 올라온 프레시안의 이동연의 글 "2PM 재범 탈퇴, 나는 공포를 느낀다."는 정확히 이 '공포감'을 짚고 있다. 그렇다, 나는 두렵다. 나는 공포를 느낀다.

 

이 나라에서는 가장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돌 가수조차 나라를 위해, 애국을 위해 노래 불러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정치적 올바름'이라기 보단 맹목적, 도덕적 애국주의에 빠진 이들을 우리는 아이돌에게서까지 바라야만 하는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방식은, 늘 국가와 민족에 헌신을 다 하는 것이어야 하는걸까? 한국의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나의 그 사랑을 "조국"에 돌려주기 위해 국위선양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가? 이 거대한 써클, 한국을 유령처럼 늘 배회하는 애국과 조국에 대한 요청. 우리는 왜 애국이 아니면 안되는가. 나는 이 지나친 애국심이 불편하다. 이 지나친 국가에의 복종과 애정을 강요하고 심지어 명령하는 익명들의 목소리, 그 거대한 목소리가 불편하다.

 

4년도 더 전에, 나 또한 가수 유승준이 군대 문제로 한국 국적을 포기했을 때 분명 사람들 틈에 끼어서 군중 속에서 그를 향해 애국주의적으로 소리쳤을 것이다. 당신은 비겁하고, 나쁜 것이라고. 그래, 거짓말은 나쁘다 쳐. 하지만 그 때 난 정말 그의 거짓말이 나빴던 걸까? 그 거짓말만 싫었던 걸까? 몰래 국적을 포기한 게 괘씸했던 게 아니라? 한국은 4년도 더 전, 유승준을 강제 출국 시켰던 그 때와 하나도 변한 것 없이 2PM의 재범을 (사실상, 상직적으로) 강제 출국 시켰다. 4년이 지난 후, 그 때와 지금의 자신은 많이 달라졌다고 반성한 재범보다도 한국 사회의 낮은 성숙도를 차라리 더 혹독하게 비판하고 싶다. 여전히 국가(민족)이라는 구도, 끊임없이 "글로벌"과 세계화를 외치지만 한국은 이토록 그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속이 마치 편하고 그것으로 인해 보호받는 듯, 마치 끓여야만 부패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런 독하고 해로운 방부제를 넣지 않는다고 해서, 부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국/국가주의에 대한 주제만 나왔다 싶으면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이 되는 우리들은, 이제 조금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사실 나는 흔히 '교포 출신(대부분 미국) 연예인'이라고 알려진 이들에 대한 불신감이랄까, 반감이랄까, 하는 감정이 있어왔다. 특히 영어권에서 살다가 와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특히 한국보다 선진국인 나라에서 오래 살다 왔다는 '교포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의 인기에 붙는 잉여의 권력이자 특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연예인으로서의 끼/실력'와 무관하게 추가로 붙게 되는 일종의, 식민지적 '이미지 마케팅' 처럼 여겨졌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며, 미국(혹은 영어권 어딘가)에서 살다 왔다는 것을 의식하는 이들의 욕망/선망을 잘 이용하는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것은 일면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억지로 "살기는 미국(혹은 어딘가)에 살았지만, 항상 진심으로 한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해왔어요." 라는 말로 그러한 '상대적 박탈감'(영어를 그들처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그러나 하고 싶고- 한국보다 더 "잘 사는" 곳에 살지 못했다는)을 위로해주길 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타국에서 살다가 연예인을 하기 위해서만 한국에 왔을 수도 있고, 실제로 (울 언니가 '교포 출신' 가수 P모에 대해 싫다는 말을 하며)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다가 자신이 살던 곳에 가서 몽땅 다 쓰고, 다시 돌아와서 돈을 벌어가기를 반복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감정적으로 얄밉기는 할지언정, 우리들이 애국과 국가를 느끼기 위해 그들의 음악과 연기를 감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둘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혀 관련을 맺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망측하고 건방진 상상은, 아직은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상상력일까.

 

몇 십 년전의 극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애국가를 경청"하곤 "주저 않았"다. 끼룩끼룩, 마치 비웃듯이 혹은 울듯이 새들도 세상을 떴다. 그러고 나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그러나 우리들은 보이지 않지만 극장 화면보다 훨씬 더 큰 그것을 향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맹세를 하고, 애국을 하고, 주저 앉곤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리하여 끼룩끼룩 새들 뿐만 아니라 '아이돌'까지 이 "세상"을 뜬다.

 

 

by 꿈의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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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간섭-대옹

-아 너무 내이야기라,,, 좀 그렇긴 하지만,,,,,일단 씁니다,,,,-

 

    가족관계에 있어서 수많은 조언, 충고, 참견, 간섭 등은 도대체 뉴규에게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강제적인 어떠한 형태의 것으로도 간섭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적절한 형태로(그것이 단순한 정보의 전달에서 강제적인 형태의 간섭까지)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게다가 가족이 경우라면 더욱 심한 간섭과, 잔소리와 같이 갖가지 형태로 더 쉽게 접근해 오지만 더더욱 그런 접근을 막지 않는다. 난 여기서 좀 더 가족 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든다. 도대체 가족은 나의 어디까지 파고드는 것이 가능하며 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배제는 당연한데 가족은 되는지 말이다.

 

    먼저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길 해보고 싶다.

 

    간혹, 나는 나의 동거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갑 : 니가 뭔데 이래랴 저래라야! 니가 엄마냐?

을 : 너?! 진짜 니가 미쳤구나? 가족이니까 하는 말에,,, 누나(, 언니, 형)한테 너?

 

    위의 대화에서 갑은 ‘가족 간에도 분명히 권력의 분배는 차이가 있고, 부모의 간섭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사람의 간섭은 배제하겠다’ 을은 ‘가족의 간섭은 정당하다와 가족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존칭어를 써야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 보인다.(갑은 확실하다,,,ㅋ) 그런데 갑의 전제를 살펴보면 가족 간의 권력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타인의 접근, 간섭에 대해서 허용과 배제의 선을 긋고 있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나이가 더 많고 덜 많고 혹은 적다의 차이? 혹은 날 낳았냐 아니냐? 더 친밀하냐 아니냐? 여기서 갑은 물론 글 쓰는 나이기 때문에 친밀감의 차이는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남는 나이와 출생 이 두 가지를 근거로 타인의 접근을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갑은 나이만이 아니라 또 부모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복합적으로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도 않은 사람의 간섭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차별적인 태도와 함께 삶의 근거를 오로지 출생에서만 찾는 수동적인 태도가 섞여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 전통적인 사상이 수평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출생과 그 출생에 따른 보은의 관계(흔히 말하는 부모님 은혜 같은?!)를 많은 이의 모태신앙처럼 정당화 시켜왔다.

 

    또 을의 전제는 타인의 간섭을 동거인의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정당화 시킨다. 을의 말이 정당화되기 위해선 가족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서로 공유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황상 그래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을은 또 우리는 서로가 도움의 주고받음이 필요하다고 공유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접근하고 간섭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을의 전제인 가족 내의 나이에 따른 확실한 존칭구분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불만인 사항이다. 특히 나이에 따른 존칭의 문제는 어디에 가든 한국어의 특징상 어디가나 따라붙는 내용이지만 특히 가족 내라고 말한 것은 가족과 나이가 만나서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족보, 항렬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전통적인 우리나라 가족관에서는 족보를 펼쳐서 자를 대고 쭉 그어보면 대체로 나이와 가족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에 따라 처음부터 호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항렬과 나이순으로 정해져 있는 이런 호칭에는 당연히 불평등한 권력이 분배 되어있다. (쌍둥이 마져도 호칭을 구분하는 ㄷㄷ) 이런 불평등을 호소하고 반발하는 사람은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가족관인 것이다. 게다가 같은 서열이지만 나이가 많은 언니, 형, 누나에게 대들 듯이 겨우 해보는 ‘너’라는 호칭을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쓴다는 것은 애초에 상상을 해 볼일이 없는 것이다.

 

    난 “가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하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를 일컫는 추상적인 정의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흔히 말하는 가족 관계의 뗄 수 없는 인연, 친말감 등에 대한 강조도 가족이니까 인연이고 친밀하다보다는 개별의 관계가 소중한 인연이고 친밀하니까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나에겐 어느새  준기,영례 ,미숙과의 관계는 없어지고 엄마,아빠,누나라는 가족관계만 남아있다

 

P.S우리집에서 보면 실명 별로인거 같아서 가명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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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you from?, how old are you?-기정

  얼마 전 2학기가 시작되고 첫 원어민수업이 있었다. 첫 시간인 만큼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Sccot은 우리에게 자신의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한국인들은 자기만 보면 where are you from?, how old are you? 또 심심치 않게 미국인이냐고도 묻는다고 하더라고요.(그는 호주인 이랍니다.ㅎ;;)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에게는 나이가 얼마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형제는 있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등의 개인 사항을 묻는 경우는 상당히 자연스럽죠.

 

 

반면, 외국인들은(주로 서구권) 그러한 개인적인 질문을 받는 것, 하는 것 모두 꺼려하며 심지어는 불쾌하게까지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개인적 질문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또는 그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여기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묻죠. 물론 그러한 질문이 우리의 입장에서 ‘관심 받고 있다’ 라거나 ‘친해지고 싶구나!’ 처럼 친근감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이 차별을 위한 예비과정에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작은 사례로 어디에 사느냐라는 질문에도 강북이냐 강남이냐에 따라 경제적인 정도는 물론 사회적 지위까지 격상되는 듯 여기는 풍조나(주로 트렌디드라마에서 잘 보여 주듯 말이죠..) 일단 똑똑히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나이에 따라서 대번에 하대를 강요당하죠.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결코 무시 못 할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봐요.

 

 

 이점을 보다 명확히 보기위해서는 위에서 비교되는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차이를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일단, 여전히 동양권의 지배적인 사상은 바로 ‘유교’가 아닌가 싶네요. 예전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기사에서 열강의 통치에서 벗어나 신흥공업국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인 우리나라와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다룬 내용 이였는데, 이들이 동양의 배경사상인 ‘유교’로 인해 강력한 가족주의와 단결, 애국심, 상위자에 대한 충성 등을 이야기하며 성장의 동력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점은 다른 한편에서 혈족외인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개성의 상실이나 자기의식의 부재 등의 문제를 갖고 있죠. 또한 출신성분과 같은 개인사항을 묻는 것에서 아직도 지역감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연고주의가 작용할 수 도 있고요. 그 외에도 학벌이랄지, 부모님의 직업이나 집안의 내력(형제관계나 조상), 나이를 묻음으로(무슨 일만 있으면 “민증까봐~ “라고 하듯.) 학벌차별이나 권위주의, 연령주의(선거법에서 쓰이는 것과 다른.)등의 선입견들이 작용한다는 것이고 사람을 판단 할 때 그 사람 본연의 개성이랄지 능력들의 내적요소가 아닌 명패나 소속, 가문 같은 외적요소가 판단과정에서 효과 한다는 것이죠.

 

 

 반면 서양권의 지배적인 사상을 꼽자면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인간중심사상과 같은 맥락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있으_(비버리지 보고서나 인권신장촉구……._신학에 바탕을 두었던 경제관이 영향을 미친 자본주의가 있죠. 뭐 지금을 한마디로 하면 ‘능력주의’가 아닐까 싶어요. 연령(나이)주의나 혈연-지연 등의 수구권위주의와(좋지 않은 권위주의라고 할까요?단어가ㅎㄷㄷ;) 상이한 모습이죠.

 

 

 물론 ‘능력주의’가 최상이라고, 무결하다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자면 폐쇄적 개인주의와 그에 따라 인간관계가 상당히 형식적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죠. 또한 물질만능주의도 이에 무관하지 않고요.

 

하지만 적어도 혈연, 지연, 학벌, 나이와 같은 외적 판단 요소들의 영향에서는 자유롭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문화 차이라고 볼 수도 있죠. 세계는 결코 일원적이지도 독자적이지도 않는 발전을 보였기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근대라는 시대에 접어들어 어떤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과 발명들로 인류는 점점 작은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점과 단지 거리상의 단축이 아니라 문화의 교류와 공동화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어떤 합의를 봐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위처럼 동서양의 비교에서 보듯이 서로 좋기도,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적어도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사람만의 가치(내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죠. 너무 어려워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지 못해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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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짜증나! - 돌진

#1.

중국에 있을 때였다. 베이징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난 아직 중국어를 공부한지 얼마 안되던 때라 말 한 마디 제대로 하기 어려워하던 때였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와, 중국에서 먼저 공부를 시작해 중국어를 쏼라쏼라 유창하게 잘 하던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 관광지에 놀러다니고 있었다. 한창 친구 녀석들과 부산스럽게 이야기하며 놀러다니고 있었는데, 한 중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헬로. 웨어 아 유 프롬?"

아무래도 하는 말이 다르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던가보다. 영어로 물어왔다.

나와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에 한 중국어 하던 다른 친구가 중국어로 대답했다. 유창하게.

"니하오. 워먼 총 한궈 라이더."

말을 걸어온 중국인은 호기심이 일었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엥? 그런데 이게 뭐야..?

그 중국인은 계속 영어로 뭐라뭐라 말을 했다!(그 사람은 네이티브 영어 사용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친구는 계속 중국어로 뭐라뭐라 대답을 하고.(그 친구는 영어보다 중국어로 말 하는 게 더 편했을테니까)

지금 이게 뭐 하는 시추에이숀? @.@

 

#2.

중국에서 여행을 하던 중 지인을 만나러 호텔에 갔다. 그 호텔은 으리으리하게 좋은 호텔이었다.(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쉐라톤호텔!) 왠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들어가는 게 조금 어색한 호텔이었는데, 배낭여행객답게 허술하고 꾀죄죄한 옷차림으로(배낭여행객의 특권 아닌가!) 호텔에 들어갔다.(배낭은 메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배낭을 메고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로비를 지나 데스크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호텔 직원이 팔로 막아서며(!) 어디 가냐고 물었다. 중국어로.

"니 취 나-ㄹ?"

호텔에서 손님한테 직원이 팔로 막아서며 어디 가냐고 묻는 게 한 편으로는 매우 놀랍기도 했지만, 별 생각 없이 "사람 좀 만나러 왔다"고 중국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만나러 온 사람 이름이 뭐냐고 또 물었다.

아니, 데스크 가서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도대체 당신이 왜 막아서며 묻는 건데?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만나볼 사람 이름을 말했다. 그 사람 이름은 한국어 이름.

"워 라이 자오 김개똥.(나는 김개똥을 찾으러 왔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의외라는 듯 흠칫 놀라며 "누구?"라며 다시 물었다.

내 입에서 중국어 이름이 나온 게 아니니 당황했겠지.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김, 개, 똥"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지가 데스크에 가서 알아보곤 방번호를 알려주며 구내전화로 전화를 먼저 해보고 확인 후 올라가라고 했다.(원래 비싼 호텔은 다 이런 거? -_-;;)

전화 해서 확인을 했더니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로 날 안내했다. 알고 보니 그 호텔 엘리베이터는 무슨 카드 같은 걸 찍어야 작동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내 옷차림이 꾀죄죄하고 그냥 허름한 중국인처럼 보이니까 날 무시했던 것 같다.(외모로 인한 차별!) 나를 무슨 불법침입자처럼 대하다가 외국인임을 알고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그 사람. 괘씸했다.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난 더 무시당했을 거 아냐. 그리고 중국인이 '중국인'을 이렇게 무시하고 차별하다니. 재수없어도 유분수!

'내가 처음부터 중국어로 말하지 않고 영어로 말했어도 이 사람이 날 이렇게 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괘씸한 마음에 영어로 물었다.

"(매우 거만하게)헤이, 익스큐즈미. 왓츠 유어 네임?"(호텔에 불친절 컴플레인할라고)

그랬더니 그 사람은 갑자기 표정이 눈 녹듯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한껏 친절하고 호의적인 목소리로

"폴리. 마이 네임 이즈 폴리"

라고 대답했다.

아...어이 상실. 영어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구나!

 

#3.

서울에서 진행된 '북한인권 무슨무슨 국제회의'.

화려한 초특급 호텔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 참가하는 것만도 위화감이 팍.

'국제회의'라지만 발표자를 제외한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인. 게다가 초특급 호텔에 걸맞는 초특급 통역 장비도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 발표하러 나온 한 국회의원 냥반이 평소 과시하지 못했던 자신의 영어 실력을 '국제회의'를 빌어 과시하고 싶었던지 영어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을 대표한다며 여의도에서 깝죽거리는 사람이 한국인이 대부분인 청중 앞에서 영어로...에헤라디야~(언어의 우월성이나 '민족언어/민족문화' 따위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토론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기도 전에 청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고함이 터져나왔다.

"한국어로 해, 한국어로!"

"지금 뭐 하는 거야!"

수구보수 꼰대 할아버지들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꼰대질'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속이 다 후련했다.

꼰대들의 막강 꼰대질 앞에 의원 냥반도 고개 숙이고 한국어로 발표하는 걸로 바로 변경했다.

 

#4.

(뭐, 본의 아니게 중국에 있을 때의 경험을 많이 쓰다보니 마치 중국인이 특별히 영어우월주의를 갖고 있고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 대해 차별적인 것처럼 오해될 수는 있겠으나, 사실 우리 나라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중국에 대해 더 큰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시길! 혹시라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정말정말 죄송. 결국 영어우월주의는 중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고, 한국의 영어우월주의는 중국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는 거. 한국은 대통령님까지 친히 나서시니 세계 어디든 맞짱 떠도 한국이 이길 판. 결국 이런 현실이 매우 재수없고 차별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영어 조기교육에, 영어학원 열풍에, 영어 조기유학까지...영어, 영어, 영어...

영어 공용어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는 이 희한한 현실.

영어 잘 하는 사람에겐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다.

전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면 한번 더 돌아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

영어를 잘 하면 왠지 능력있어 보이고, 사람에 대한 호감도 증가한다. 인기도 높아 지는 듯.(쉣!!!)

어딜 가나 어떤 나라 사람을 만나든 일단은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된다. 그 중 영어권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많은 경우)

이주민들을 만나도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따지기 전에(혹은 따질 수도 없이) 영어로 말을 한다.(편의상 어쩔 수 없는 면도 확실히 있긴 하다)

대부분의 회의에서 제공되는 통역은 영어.(이것도 뭐 편의상...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영어, 영어, 영어. 편의상 영어만 제공되고, 편의상 영어가 중심이고, 편의상 영어가 제일 멋있어 보이고, 편의상 영어가 제일 능력 있고, 편의상 영어가 주도권을 쥐게 되고, 편의상...)

영어를 잘 하는 서구 출신 사람들은 전세계 어딜 가나 대접받고 인기도 좋고 영어로 먹고 살 수도 있다. 전세계 1등 시민!

연예인을 하더라도 영어 잘 하는 연예인은 다르게 보인다. 설령 그가 한국어는 잘 못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무슨 마을에 가면 거기선 영어로만 이야기해야 한다. 쳇! 마을 이름도 '영어마을'이다.

 

뭐, 현실이 이러니 영어가 짱 먹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영어', '잉글리시' 말도 왠지 고급스럽고 우아해보인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들은 영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와는 확실히 다르다.

 

편의상! 어쩔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건 분명히 알겠다. 나도 이해하고, 동의한다.(동의할 수밖에 없지...끙)

그치만 억울하다.

 

영어 이외의 모든 언어가 차별당하는 게 억울하고(한국에서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영어 이외 모든 언어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게 한심스럽고, 중요한 자리에서 영어만 나오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마이크를 주도하는 게 짜증나고, 영어를 잘 못하면 중요한 소통에서 소외되는 것도 화나고, 그러면서도 영어를 잘 하고 싶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도 씁쓸하다구!

 

아....영어, 영어, 영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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