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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덟 번째 이야기(5/11)

 

2011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덟 번째 이야기(5/11)

 

22. 섬서성 역사박물관

다른 나라 도시를 방문하면 우체국과 함께 가능한 방문하고자 하는 곳은 박물관이다. 하얼빈, 베이징, 앙코르왓, 프놈펜, 호치민에서 그러했고, 오늘 시안의 섬서성 역사박물관을 방문할 차례이다.

! 참고로 캄보디아를 방문하실 경우, 그리고 당신이 조각과 신화적 상징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수도 프놈펜의 왕립박물관을 가보시길 추천한다. 앙코르왓의 건축물을 제외한 주요 장식물과 조각물은 왕립박물관에 다 옮겨져 있는데 이 박물관은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달리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유리격벽이 없어 전시물을 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볼 수 있다.

섬서성 역사박물관 역시 대안탑 부근에 있다.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해 몇 정거장을 걸어 찾아가니 매표소 앞의 줄은 장사진이다. 무료입장권을 받기 위한 줄이다. 족히 30분은 더 걸릴 듯하여 20위안짜리 유료 입장권을 끊어 입장하였다.

커다란 해태상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섬서성을 중심으로 중국이 번화했던 시기인 진, , 당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많은 중국인 학생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일본인과 프랑스인들이 특히 많았다. 유물의 보존 상태는 좋아보였는데, 플래시를 제외한 사진 촬영은 허용되었다. 늦은 셔터 속도를 감안해서 유리벽에 렌즈를 붙이고 천천히 촬영하였다. 박물관을 촬영할 수 있다는 흥분이 너무 많은 촬영을 하게 만들었다.

병마용의 유물 중 발굴 상태가 좋은 인물상이 전시되어 있고, 슬라이드와 영상물로 계속 보여주는데, 참 흥미 있는 것은 이 병사들의 머리 장식모양이 같은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참 다양하다. 조각물이 그 시대의 반영일터인데, 병마용의 인물들은 매서운 눈초리에도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 미소를 지으며 날렵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복과 가옥, 도시의 변화를 볼 수 있었고, 유료입장권만 허락되는 특별 유물전시회를 통해 보석 장신구를 둘러볼 수 있었다.

두 시간여의 유람을 마치니 점심시간이었다. 인근 식당을 찾다보니 반찬가게 같은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고기반찬과 야채반찬이 한통 가득 담겨져 있어 사람들이 지정하는 대로 접시에 담아 판다. 야채로 4찬을 하면 6위안, 고기로 4찬을 하면 15위안이다. 우리는 고기 하나와 야채 셋 반찬으로 7위안에 점심을 때울 수 있었다.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박물관 직원들도 많이 찾는 집이었다.

 

23. 드디어 비자를 발급받다.

식사 후, 은행에 들려 1위안으로 돈을 교환하고 천천히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들렸다. 여전히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에 비자를 오늘 준다고 해서 왔다하니 귀찮은 표정이 역력하다. 삼십여 분을 대기하니 아마도 오가는 사람들이 재들은 왜 여기에 있냐는 듯 대화하는 것 같다. 상관이 빨리 처리해서 보내라는 지시를 하는 것 같더니 그제야 관련 부서에 전화를 한다. 다행히 다른 부서 담당자가 잠시 외출이라는 설명을 해준다.

다시 삼십여 분 뒤, 한 뭉치의 여권이 들어오더니 내 여행증명서(임시 여권)를 찾아 건네준다. 이제 안심이다. 아내의 얼굴도, 내 얼굴도 이제야 폈다. 며칠 동안 여권 분실로 조마조마하고 다투던 일이 이제 끝났다. 아내가 기념으로 인증 샷을 찍자고 해서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시안시경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한방 날려주었다.

이제 남은 오후는 시안시 서부로 버스를 타고 나가보기로 했다. 아방궁 세트장이 있지만 그리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중심부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를 타고가면 되는 거리이니 가서 볼 수 있으면 보고, 아니면 돌아오는 것으로 하였다.

시안시 서부는 쇠락한 공장지대이다. 비포장 길도 많았고 버스는 마을버스로 시쳇말로 좀 후졌지만 차장 역할을 하는 젊은 남녀들이 있어 잔재미를 더해주었다. 중간에 토문공원이라는 지명이 있어 무슨 유래가 있는 곳인가 들러보았지만 그냥 간단한 놀이기구가 있는 근린공원이었다. 아방궁에 도착한 시간이 다섯 시쯤 되다보니 문은 잠겨 있어서 다시 시내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대단한 볼거리는 못 보았지만 그냥저냥 돌아다니면서 사람 사는 모습 보는 것도 괜찮다.

 

24. 뮤지컬 몽회장안(夢回張安)’

시안 시내 종루 주변에는 극장이 몇 군데 몰려있는 거리가 있었다. 며칠 전 시내를 걷다 눈여겨 보아두었는데 오늘 공연을 보기로 하여 리플렛을 모으며 살펴보았다. 소극장에서 차나 저녁식사를 제공하면서 하는 공연도 있었지만 우리는 대극장의 공연을 보기로 하였다.

입장권은 1인당 200위안(33,000)이었다. 점심을 7위안에 먹고, 30배 가까운 돈을 문화생활에 쓴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또 볼까싶어 관람하기로 하였다. 매표소는 아직 열지 않았고, 주변을 서성거리니 암표상이 100위안 정도의 가격으로 흥정을 붙여온다. 마음이 혹하기는 하였지만 괜한 말썽에 휩싸이고 싶지 않아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잠시 입장시간이 남는 관계로 간식으로 중국식 오징어 구이를 먹으며 기다렸는데 이거 참 매콤하면서 쫄깃하게 즐거움을 준다.

극장은 매우 컸으나 관람객은 5~60명 남짓이었다. 그러다 보니 앞좌석에 발을 얹어놓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마저 있었다. 그러한 불쾌감을 제외한다면 공연의 규모나 내용면에서 박하지 않은 점수를 줄만 하였다.

공연은 몽회장안이라는 제목처럼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배경을 춤과 노래로 엮은 가극이었다. 나름 3D 무대를 만들기 위해 영상과 레이저 빔까지 동원하였다. 중국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으면 대략적인 내용 파악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젊은 배우들은 끊임없이 의상을 바꿔 입으며 열연하였으나 간혹 집중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하였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안의 판매점에서 경극 패왕별희와 혁명가극 공연 DVD를 저렴하게 구입하였지만 아직도 비닐포장 그대로 책장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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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성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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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 발굴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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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급 인증 샷, 아방궁, 몽회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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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일곱 번째 이야기(5/10)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일곱 번째 이야기(5/10)

 

19.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

시안에서 다섯 번째 아침이다. 담배도 필 겸 민박집 주변 산책을 하면서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걱정이 늘었다. 애초 삼일 계획으로 시안을 방문한 것이라 체류일자가 늘어나니 느긋하게 머물자면서도 조급해진다.

가이드북을 보니 어제 다녀온 대안탑 밑으로 대당부용원이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가이드북도 시간나면 가보라니 우리처럼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인 듯하다. 그러나 민박집 안주인은 ‘별론데요’라며 추천하지 않으신다.

어찌됐든 가는 길에 시안 남부 구경할 겸 나섰다. 버스로 50분쯤 달려가니 잘 꾸며진 거리옆으로 대당부용원 서문 입구가 보인다. 비가 조금씩 오는 날씨라 찾는 이는 한산했지만 입장료는 1인당 90위안으로 가이드북에 써있는 68위안보다 비쌌다. 한화로 15,000원이다.

우리 부부가 한국에서도 놀이동산을 별로 간 적이 없었는데 단 한번 갔던 곳이 2008년 12월 에버랜드였다. 입장료 할인을 받기 위해서 체크카드를 만들고, 식당이 비싸다고 해서 먹을거리는 미리 장만해서 놀다 왔는데 당시 에버랜드에서 쓴 돈이 30,500원이었다. 500원은 전자오락한다고 쓴 돈이니 에버랜드 입장료와 같은 돈을 중국 테마파크에 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만큼 재미없으면 어쩌나하면서도 기왕지사 온 것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테마파크 지도와 각종 공연 일정이 담긴 리플렛을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놀이기구도 없고, 드라마 세트장처럼 꾸며놓고 작은 공연을 여기저기에서 펼치고 있었다. 처음 들어간 곳은 중국 전통음악을 공연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연주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안정된 음악을 들려주어서 시작은 즐거웠다.

거리를 이동하다보니 사자춤 공연을 준비 중이다. 중고등생 또래의 청소년들이 준비하고, 두 명이 사자복을 입고 있다. 전문적으로 배우는 과정인 듯 하다. 바닥에 매트를 깔기는 했지만 1~2미터 높이의 봉을 뛰어넘어 다니는 것이 여간 아슬아슬하였지만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듯이 멋진 묘기를 보여주었다.

어설픈 손오공 마술쇼와 이태백을 주제로 한 마당극(?)을 보고 밖으로 나서려고 하는데 한 무리가 북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도 청소년들이 주 구성원이다. 장구를 좀 친다는 아내도 칭찬하는 수준의 공연으로 마무리하였지만 대당부용원을 나서면서 어째 많이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20. 천하제일면(天下第一面)

오늘부터 출입국관리소에 방문해야 한다. 비자가 모레이면 나올 예정이라지만 불안한 마음에 하루라도 먼저 받으려면 비자 발급처에 자꾸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를 보면 버스노선이 색깔로 구분되어 그려져 있다. 대당부용원에서 시경(출입국관리소)은 한번 갈아타면 갈 수 있는 길이다. 지도를 보니 갈아탈 만한 곳 주변에 천하제일면 분점이 보인다. 비싼 집은 아니더라도 가이드북에 소개된 곳이니 조금 걸어서 찾아가 보았다. 두시가 조금 넘어 식당은 여유있게 식사를 하는 중국인들을 제외하고는 한산하였다. 다행히 메뉴판에 사진과 영어로 된 설명이 있어서 먹고싶은 것을 고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고추잡채와 비슷한 요리와 꽃빵, 그리고 면요리 두 개를 골랐다. 요리는 맛있었지만 아내의 면요리는 맵고 짜서 입에 맞지 않았다. 꽃빵에 찍어먹던 돼지고기 오이볶음에 밥을 비벼먹으면 맛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기밥을 주문하려 일하시는 분을 불렀다. Mifan(米饭)이라는 말을 몇 번을 반복했는데 주문받는 아가씨 표정이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난감해한다. 결국 아내는 수첩에 쌀밥이 듬뿍 담긴 밥공기를 그려서 米자를 써넣으니 이제야 웃으면서 Mǐfàn하면서 밥을 갖다 준다. 내 발음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21. 출입국관리소

4일 전에는 애가타서 쫓아다녔는데, 오늘은 출입국관리소에 와도 마음이 조금 여유롭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제지할 듯해서 먼저처럼 다른 동을 이용하여 사무동으로 넘어갔다.

비자 발급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에서는 다섯 명이 근무를 하는데 나름 여유 있는 근무환경이었다. 젊은 여자 경찰이 영어를 나보다 잘해서 내일 청두로 떠나야 한다고 사정을 이야기하니 상관과 유관부서에 상의를 하더니 내일 이 시간쯤 방문하라고 한다.

마음이 가뿐해져서 시내로 다시 들어와 커피도 먹고, 우체국(다른 도시에 가면 우체국을 방문하는 편이다. 엽서나 값싼 기념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을 구경하면서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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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GO가 소개하는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곳 50선 PDF 편집판

 

 

지난 번 카톡스토리에 올린 링크를 다운받아 출력할 수 있게 책자로 정리했습니다.

물론 외국인의 시선에서 만든 것이고, 개인에 따라 취향이 다르므로 순위를 굳이 매길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냥 참고로 보실 분만 보시길^^

 

A5판으로 편집하여 2장씩 모아서 PDF로 변환되었으니 그냥 출력하시면 됩니다.

가능한 잉크 절약을 위해서 출력을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50 beautiful places in Korea.pdf (2.07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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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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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섯 번째 이야기(5/9)

 2011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섯 번째 이야기(5/9)

 

16. 시안 시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출근하는 날은 그리 안 떠지는 눈이 휴일과 놀러만 오면 새벽같이 떠지는 것을 아내는 마치 초등학생 같다고 놀리곤 한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우리는 새벽에 공항으로 가서 티베트로 가야되지만 이제(또는 아직은) 가보지 못한 티베트가 되어버렸다. 민박집 주인에게 어제 성도로 갈 수 있는 기차표 예매를 부탁했기에 앞으로 나흘 동안 천천히 시안시를 둘러볼 일만 남았다.

민박 주인도 깨지 않은 시간, 조심스럽게 거리로 나와 거닐었다. 아직 출근이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파는 노점 몇 군데가 준비하고 있고 거리는 한산하다. 중국인들은 아침을 주로 간이식당에서 죽과 비슷한 음식과 소없는 찐빵으로 사먹는다고 한다. 민박집 앞도 많이 있지만 거리의 냄새는 비위 좋은 나도 부담스러워 결국 시안을 떠나는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뒤에 가본 청두 시는 거미줄과 같은 방사선형 도로형태이지만 시안 시는 격자형 도로로 형성되어 있다. 시 한가운데 있는 명대성벽의 동서남북 주요문과 그 사이를 잇는 간문을 이어 도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머문 민박집은 시안시의 북쪽의 주거단지인데 근방에 외곽순환도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나마 최근에 조성된 지역인 듯하고 그 외곽에는 여전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 중이다. 돌아다녀보니 시안 시는 방위별로 도시계획 특성이 보였는데, 동쪽은 재래시장이 밀집되어 있는 상업단지, 남쪽과 서남쪽은 금융, 행정 등 업무단지로 조성하고 있는 듯하였다. 서쪽은 주로 공업단지인데 도로포장 상태도 나쁜 것이 새로이 조성될 듯하다.

도로와 도시 이야기가 갑자기 나왔지만 나온 김에 더 보자면 시안 시에는 많은 연구소가 있다. 비록 가볼 기회는 없었지만 군사관련 연구소는 중국내에서 제일 많다고 한다. 내륙도 한참 내륙도시인 시안에 잠수함개발 연구소가 있다니, 연구소간 협업 문제로 이해하려해도 의아하다. 아마 그 이유는 어쩌면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군사적 긴장관계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국 공산당은 193410월부터 193610월까지 장제스의 포위망을 피해 중국 서남부의 장시성과 푸젠성의 근거지를 포기하고 시안이 있는 산시성으로 장정(長征)을 오른다. 장정은 단지 피난길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농촌지역에 뿌리내리는 기회이기도 하였고, 마오쩌뚱과 저우언라이의 정치적 복권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 도착지인 시안에 대한 감동은 우리의 상상이상일 것이다(물론 모든 역사에서처럼 신화를 만드는 측면도 있겠지만). 짐작하는 다른 이유는 군사적 문제이다. 연안과 가까운 도시보다는 군사첩보 방어나 유사시 안전하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은 내륙에서도 미군의 주요 전력인 항공모함을 잡을 수 있는 지대함 미사일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티베트 문제, 중국식 표현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보면 인민해방군은 반제국주의 인민의 군대가 아닌 또 하나의 제국 군대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듯싶다.

 

17. 명대(明代) 성벽, 고전과 현대의 경계

출근시간을 조금 넘어 민박집을 나선다. 오늘은 남문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남문에서 성벽을 올라 동문께로 걸어 나가려 하였다. 남문 버스정류장에서 남문 출입구로 가는 길은 횡단보도를 찾기 쉽지 않아 눈치껏 무단횡단을 해야 했다. 문 안쪽의 진은 버스주차장으로도 쓰이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우리가 거의 첫 손님인 듯하다.

앞서 밝힌 대로 명대성벽은 전체 길이가 13.6km, 높이가 12m, 폭이 15m에 이른다.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이 성벽도 당나라 장안성 성벽에 비하면 1/9도 안된다니 사극에서나 듣던 장안성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오늘은 날씨가 흐렸다. 덕분에 더위는 피하였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멀게만 느껴졌다. 각자 자전거를 타면 좋으련만 아내는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8~9년 전에 나에게 배우겠다고 하다 여느 운전교습처럼 싸우고 끝낸 뒤 배울 기회가 없었다. 성벽 위에는 전기차도 운행하고 자전거 대여소도 있다. 2인승 자전거를 빌려서 출발해본다.

가만히 있지 말고, 페달 밟아.”

중심 잃지 않게 몸 흔들지 마.”

잔소리를 해대면서 출발한 자전거는 돌바닥을 구르면서 나아간다. 주행속도에 비례해서 맞는 바람이 더 시원하다. 아내는 자전거 방향을 조금만 돌려도 질겁하였지만 폭이 넓은 성벽의 안팎으로 고루 보자니 자연히 자전거는 지그재그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주었다.

처음 밝힌 대로 시안시하면 떠오른 것이 만화 시마과장이 성벽에서 바라본 중국의 변화였기에 우리는 자주 멈춰 서서 도시를 내다보곤 하였다. 남문 안은 고문화거리가 있어서 옛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었고, 성벽 밖은 방송국과 신문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안팎의 경계가 너무나 명확했다. 발전을 건축과 도시 확장이라는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중국 서부는 발전하고 있다. 물론 빌딩 숲 너머 외곽과는 또 다른 경계를 이룰 터이지만.

한 시간여를 자전거로 성벽을 돌아본 우리는 이런 거는 절대 단체관광에서 경험하지 못할 거야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성벽을 내려왔다. 공식기념품점을 둘러보다 의외로 싼 가격에 사진첩을 하나 구매했다. 2.500원이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 기념품으로는 사진엽서를 주로 사는데, 내가 찍은 사진보다 더 그 곳의 감흥을 기억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엽서 값에 사진첩을 구매하고 더 뿌듯한 마음에 고문화거리로 걸어갔다.

고문화거리는 우리의 인사동과 비슷하다. 문방사우를 팔던 상점가가 관광거리로 특화되었다. 거리 초입부터 우리의 관심은 오카리나와 비슷한 악기에 쏠려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라 불리는 악기는 도자기로 구워져서 입으로 부는 폐관악기이다. 우리를 위해 멋지게 한 곡 불러준 젊은 주인에게 미안하였지만 장식용은 소리가 안 좋고, 소리가 좋은 것은 값이 비싸니 몇 군데 흥정을 하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화거리 끝에는 비림박물관이 있었다. 비석이 숲을 이룬다고 해서 비림인데 생각보다 많이 비싼 입장료와 배고픔으로 지나치기로 하였다. 동문 방향 주거지역으로 길을 틀어 걸었다. 만만한 동네 식당을 찾고 있던 중 손님이 한 무더기 빠져나가는 조그만 식당이 보여 들어섰다. 아는 메뉴명은 량피와 단단면, 건피면 뿐이니 비슷한 메뉴 명을 찍어서 주문을 한다. 아주머니가 직접 수타로 면을 뽑는 사이 아저씨는 말을 걸어오지만 서로 못 알아듣는 것은 당연하다. 국적확인하고, 나이 확인하니 나보다 너댓 살 많다. ‘따거라고 해주니 웃는다

 

18. 소안탑과 신발쇼핑

다시 버스를 타고 소안탑으로 향했다. 삼장법사 현장이 요청해서 건립한 대안탑보다 아기자기하다해서 먼저 들리기로 하였다. 소안탑 매표소에서 안내문을 보니 외국인도 여권소지자는 무료입장이라고 적혀 있다. 억울하게 4,500원을 입장료로 내야한다. 아내는 그냥 자기도 돈 주고 가겠다며 이상한 의리를 부린다. 간단히 박물관을 구경하고, 비오는 경내를 걷는 풍경도 고즈넉하고 좋았다. 소안탑 앞에 가니 무료 입장객은 내부에 들어갈 수 없고, 우리처럼 표를 구입한 이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13층을 올라가면 뭐하냐하면서도 악착같이 돈낸 값 받으려는 사람처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대안탑으로 이동하려는 중에 중국버스카드를 사기로 하였다. 시안시의 버스 값이 1~2위안이라 싸지만 카드를 쓰면 0.5~1위안으로 줄어드니 다른 도시에서도 이용되면 비용도 아끼고 기념품도 될 듯하다. 진즉 밝혔듯이 중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버스 충전을 해주는 곳에서 손발 짓을 해가며 물어보니 은행에 가란다. 은행에 가니 자기네 은행은 안 되고, 우리 한국은행 같은 중국은행으로 가란다. 국가은행이라 은행원들이 영어로 설명해준다. ‘카드 구입비가 비싸고, 시안 시에서만 사용가능하다.

대안탑 주변은 잘 꾸민 관광상품 거리였다. 소안탑부터 내리던 비는 더욱 거세져서 신발을 홀딱 적셨다. 결국 우리는 관광을 포기하고 내일 신발을 말릴 동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사기로 하였다. 시내 매장으로 나오니 소위 메이커 신발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 비쌌다. 아내의 신발은 지하도 매점에서, 내 신발은 중저가 의류 매장 한켠에서 쇼핑을 하였다. 싸게 구입했지만 그 신발들은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신발장 밖으로 나와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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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대성벽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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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대성벽 남문에서 바라본 고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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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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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식당 따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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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안탑 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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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안탑과 대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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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다섯 번째 이야기(5/8)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다섯 번째 이야기(5/8)

 

13. 懸崖撤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화산을 가고 싶었던 것은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난 절대로 산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산과 자연이 주는 신선함과 경외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럼에도 화산을 찾은 이유는 화산의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깍아오른 절벽과 같은 산과 그 산을 오르기 위해 낭떠러지와 경계하는 길은 무한한 경외감을 주었다.

2004년, 지하철 공동파업을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집행부에서 조직과 대외협력을 맡고 있던 나는 파업 돌입의 최종 선택은 위원장에게 있지만, 파업을 전제로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위원장은 내가 무척 신뢰하는 동지였고, 이러저러한 내막이 있는지라 직책상 부서장중 쟁의부장과 나는 파업을 들어가면 같이 구속될 각오까지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런저런 고민이 안들 수 없었다. 집에 있는 책과 자료들을 치우고, 부모님께 혼자 찾아가 안부를 여쭙고 돌아오는 길이 가뿐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떠올렸던 글귀가 懸崖撤手丈夫兒이었다.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을 때 손을 놓아야 진정한 장부다’라는 말처럼 장부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을 놓아야 한다면 편하게 손을 놓자라고 다짐하며 노동조합 사무실로 돌아왔었다.

나의 미련스런 걱정과는 달리 파업은 중도에 끝났고, 벼랑 끝에 손을 놓을 일은 없었지만, 화산 사진을 보면서 懸崖(현애)가 자꾸 떠올라 가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14. 화산 가는 길

화산은 시안시에서 120㎞에 떨어진 곳에 있다. 요 근래에는 화산역이 생겨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가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다보니 표를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중국인 여행사의 화산패키지를 이용하였다.

아침 일찍 민박집 앞에 대기하던 미니버스는 몇 군데 호텔을 돌며 중국인 여행객들을 모으더니 동문 근처에서 다시 여러 팀의 버스를 합쳐서 출발한다. 한 시간을 넘게 시안시만 빙빙 돌았던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젊은 중국인 가이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유일한 외국인인 우리를 염려하며 눈길을 주곤 하였다. 여느 버스처럼 중간에 휴게소 겸 판매장에 멈춰서더니 승객들을 안내하지만, 우리도 가냐는 눈짓에 버스에 있으라고 몸짓을 해준다. 심심해서 혼자 따라 가봤더니 한약재를 파는 곳인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중국인들이 영상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버스는 다시 화산입구의 식당가로 가서 점심을 먹으라고 한다. 점심 값은 별도였다. 식당을 둘러본 우리는 그냥 미리 싸간 빵과 음료로 점심을 하기로 하고 간이 휴게장소에 앉아 쉬었다. 우리 옆에는 젊은 중국인 연인이 우리처럼 싸온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는데, 간단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였다.

식당가 인근에서 화산 케이블 탑승장까지는 별도의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차량 출입을 최대한 통제하기 위해서 이다. 탑승장에서 가이드는 탑승권을 나누어주면서 5시까지 내려오라고 말한다. 케이블카는 6인이 타게 되어있어서 60대 노부부들과 함께 올라탔다. 짧지 않은 시간을 올라가다보니 간단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베이징(?)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15. 화산(華山)

해발 2,100미터인 화산은 중국 오악(五岳: 태산, 화산, 형산, 향산, 숭산)중 서악으로 불러지는 곳으로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화산파의 본산이다. 거대한 화강암 다섯 봉우리가 온 몸을 두드리는 이 위압적인 절경은 진시황제조차도 친히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정도의 위엄을 지니고 있다.

화산 등반은 케이블카로 연결된 북봉에서 몇 개의 령을 지나 남봉까지 가는 것이 정석 등반코스이다. 그러나 이미 두시가 넘은 시간에 5시까지 저 많은 사람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려면 남봉은 커녕 동봉과 서봉도 못 볼 판이었다. 유명한 낭떠러지에 널빤지 길인 장공잔도(長空棧道)는 남봉가는 길에 있는데 하는 아쉬움은 컸다.

그러나 여유있게 산을 오르는 아내와 달리 헉헉거리며 돌계단을 오르는 나는 차라리 일찍 내려오라는 가이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사진도 좋지만 이거 다 타다가는 내가 죽겠다하며 역시는 산 사진은 보는 것이 좋아하며 생각해본다.^^

굽어 오른 산등성이를 좁디좁은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하얀 화강암 사이로 난 초록의 나무와 녹슨 철주를 따라 걸어놓은 붉은 색의 소원띠만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불교와 도교사원, 기도암이 줄지어 있었고, 때때로 중국인들은 향을 올리며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짐작컨대 평균 60도의 경사로임에도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이었다. 큰 소리로 일행을 부르는 사람도 한국인이었다. 중국인들은 운동화에 때로는 구두를 신고, 음료와 간식을 봉지에 들고 앞산 가듯이 편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도 그랬었다.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관악산을 올랐고 산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은 등산복 왼편 가슴의 브랜드 로고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산의 반도 즐기지 못한 등반이었지만 바위를 뚫고 자라나는 소나무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을 가진 화산의 짐꾼을 보면서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지는 못할지언정, 낭떠러지 앞까지 주저하지는 말아야하는데 하는 생각만 허허로이 머리에 남았다.

혹여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아침 일찍 산에 올라 머물거나 북봉의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화산의 일출과 일몰을 보고 싶다. 그러다가 손놓는 것은 아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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