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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9월 수한이네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기 (3)

 7. 올레 7길

아침에 강정마을 평화센터에 들려 인사를 하고 삼거리식당으로 아침 식사를 하려 왔습니다. 반찬은 어제와 같지만 특식으로 계란 프라이가나왔습니다. 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활동가께서 마침 화장품이 떨어졌는데 은경 씨가 가져온 것을 주셨다며 더 맛있게 해주십니다. 커피까지 잘 얻어먹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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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레 길을 나섰습니다. 풍림콘도를 따라 한참 걷다보니 은경 씨가 ‘제주올레 길은 표식이 없어?’ 묻네요. 아차! 생각 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급히 스마트폰 지도를 찾아보고, 무작정 샛길로 들어갔습니다. 바다로 연결되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찾다가 해안가 돌길을 찾았습니다. 올레 7코스는 바당(바다)길이라 해안을 따라 펼쳐집니다.

검은 현무암과 파란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길이라 속도가 나지 않고, 태풍 피해로 돌이 무너진 곳과 길이 유실된 곳이 많아 약간 위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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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바당길이 끊어진 곳은 밭 샛길로 다니고, 다시 바당길이 이어지면 해안으로 나가는 것을 반복하며 걸어가니 썩은 섬(서건도)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부산에서 의경들이 수해복구 작업지원을 나와 있더군요. 고생한다는 말을 나누니 ‘올레길 걸으세요? 저도 작년에 걸었습니다.’라고 반갑게 인사하더군요.

서건도가 바로 보이는 곳에 최근 만든듯한 예쁜게스트하우스가 있습니다. 주인이 없어서 허락받지 않고 수돗가에서 물도 뜨고,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들려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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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섬에서 법환 마을까지 이어지는 바당길은 바위가 험하고 많이 무너졌는데 무너진 길이 안정되지 않아서 조심스레 걸었습니다. 법환 마을에 이르니 해안가 도로가 포탄을 맞은 듯이 무너졌습니다. 태풍이 참 무섭습니다. 이번 볼라벤 태풍 때, 방송사들은 법환 포구에서 기상 속보를 전했습니다. 예년에는 강정포구에서 촬영을 했다더군요. 방송사 입장에서는 영상이 잘 나오는 즉, 해일이나 바람이 심한 곳을 찍겠지요? 일부러 강정을 피하는 방송사의 꼼수를 보는 듯합니다.

법환 포구의 끝에서 더 이상 바당길을 이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외돌개까지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마을을 걷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돌담 사이로 새로 지은 집과 오랜 집이 마주하고, 재일동포 제주도민 공덕비와 펜션들도 이웃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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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여고를 지나 외돌개에 도착했습니다. 신혼여행 때 왔지만 또 다른 느낌입니다. 대장금 촬영지라 간판붙인 거는 별로지만 전망데크를 잘 정비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외돌개 옆에는 황우지해안이 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면 가파른 계단이 있고, 그 아래 해안 비경이 숨어 있습니다. 해안에는 열 두 개의 동굴이 있는데 이는 일본군 자살특공대가 제주도민을 동원해서 파놓은 인공동굴입니다.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지만 멀리서만 봐도 맑은 물과 바위섬이 있어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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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귀포시로 나가는 길에 올레길 쉼터가 보입니다. 밖에 나와 계시는 주인아주머니는 그냥 쉬었다가라며 당신을 올레 7길 지기라고 소개하십니다. ‘올레 7길이 태풍에 너무 피해를 입어 복구가 쉽지 않은데, 어찌 걸었어요?’라며 걱정해주십니다. 잠시 쉬어가면 좋겠지만 점심도 거르고 걸은 걸음이라 빨리 숙소에 가기 바빴습니다.

 

8. 백패커스홈 게스트하우스

다시 40분여를 걸어 드디어 숙소로 왔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보았지만 직접 보니 참 예쁜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입구에서는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던 주인장이 인사를 하시고, 안내를 하는 스텝들은 무엇을 물으면 밖으로 나와서까지 알려줍니다.

샤워 전에 관촌밀면이라는 식당을 소개받아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밀면은 괜찮았지만 부산 초량밀면이 더 푸짐하고 싸고 맛있었습니다. 고기국수는 처음 먹어보았지만 느끼하지 않고 좋았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4명이 함께 잘 수 있도록 별도 방을 주었습니다. 남녀 순서대로 샤워를 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주인장이 저녁 바비큐에 쓸 장작을 패다가 우리더러 해보랍니다. 덜컥 도끼를 잡자 지름이 50Cm되는 새로운 장작을 내옵니다. 한 백번쯤 쳐야 쪼개질 것이라는 말에 오기가 나서 둘이 번갈아 장작질을 했습니다. 주인장은 일거리 맡겨두고 떠났지만 어차피 시작한 거 끝까지 하자며 70여 번 정도 내리쳤습니다. 매니저가 저녁에 맥주 한잔 서비스로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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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투숙객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녁 바비큐가 시작되었을 때에 참석자는 우리 4명을 포함한 6명이었습니다. Jack을 만난 것은 음식을 담기 위해 줄을 섰을 때였습니다. 가벼운 눈인사와 인사를 서로 건넸지요. 막걸리를 사서 들어오는 길에 보니 혼자 떨어져 식사를 하기에같이 자리를 하자고 먼저 청했습니다. 착하고 진지한 인상의 Jack은 저희 자리로 왔고 안 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이야기도 하고 술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김해에서 원어민 보조교사로 2년간 일했다는 Jack은 제주도에 학원 강사를 하기위해 어제 들어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하다보니 이 친구가 흥미로워진 계기가 있습니다.

저희보고 제주도 어디에 다녔냐기에강정마을에 갔다고 하니 그 곳이 아름다운 곳이냐 묻더군요. 그래도 2년간 한국에 있었다기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서 반대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했더니 자기도 반대하며 4대강 사업에 자신은 반대한다고 하더군요.

이제 우리 모두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건축이 부전공이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건축은 문제가 있으며 그래서 환경건축으로 더 공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Jack은 또한 제3세계 환경수탈을 반대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그룹에도 관심 있게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Jack의 고향인 미국 덴버의 산과 도시 상황에 대해 그의 아이패드를 보며 들을 수 있었고, 그가 친구와 둘이 했던 몽골 카약여행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도 보여주었지요.

7시에 시작한 식사와 대화는 11시 반이 되어서 끝났습니다.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서로 친구를 맺었고, 서울에 오면 연락하라는 나의 말에 Jack은 다음에 제주에 오면 자신의 아파트에서 묵으라고 하더군요. Jack이 이제 만 30세가 되었으니 10살 차이지만 재미있고, 눈빛 좋은 친구를 만나서 모두 유쾌한 자리였습니다. 다만 수한이가 통역하라고 시킨 질문은 고급 문장이라 제 영어 수준으로 저렴하게 통역하느라 힘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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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라산 영실 등반

원래 계획은 한라산 백록담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정이 짧아져서 정상 등반은 어제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서귀포 관광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짧은 길이라도 한라산을 밟아보자고 정했습니다.

짐을 싸서 게스트하우스에 보관하고 버스를 타고 1100도로가 시작되는 중문삼거리로 갔습니다. 갈아탈 버스는 40여 분 뒤에나 오겠더군요. 정류장에는 싱가포르(?) 계열의 외국인 부부와 노모, 한국 젊은이 세 명이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은 분들인데, 아침에 제가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지요. 외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을 하는 게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마 여자 분이 한국인들과도 계속 대화로 맛있다는 표현을 배우는 것이 호기심과 적응력이 좋으신 듯합니다.

1100도로 버스는 영실매표소 입구에 승객을 내려줍니다. 이곳에서 영실입구까지는 택시나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도보로 이동하고, 외국인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한 40분 걸린다는 택시기사 말은 내려오는 발걸음을 말한 건지 한참을 걸어 영실입구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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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은 말 그대로 신성한 영이 사는 계곡입니다. 제주 민속의 기원인 설문대할망과 오백나한의 전설이 있고 영실기암과 까마귀들이 이상하리만큼 어울리는 곳이죠. 영실 코스를 통해 윗세오름을 한 시간 정도를 오르다보면 영실기암이 나옵니다. 영실기암을 둘러싼 전설을 잠시 보겠습니다.

제주도에 살던 설문대할망은 몸이 아주 커서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발 하나는 성산일출봉, 한 발은 북쪽 관탈섬에 닿고, 서귀포 문섬은 빨래할 때 쓰곤 했습니다. 할망에게는 아들이 500명 있었는데, 어느 날 할망이 죽을 쑤다가 실수로 솥에 빠져 죽었답니다. 아들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 먹다가 솥에서 뼈를  발견했답니다. 막내아들은 슬픔에 잠겨 서쪽으로 달려가 무인도 차귀도의 바위가 되고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통곡

을 하다가 몽땅 바위로 변했답니다.한라산 영실기암의 오백장군 바위가 바로 그 형제들이죠. 한라산이 바로 설문대할망의 상징이니 죽어서도 할망과 아들들은 같이 살게 되었고 봄이면 아이들의 한 많은 눈물이 철쭉오로 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실기암은 처음에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잠시 후, 구름이 걷히면서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그 옆에 까마귀들은 쉼 없이 울어 됩니다. 과히 영주십경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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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참을 산길을 오르면 고원지대가 나옵니다. 선작지왓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노루샘도 있습니다. 넓은 구릉 위로 한라산 정상이 봉긋이 모습을 드러내고 다가오라고 손짓합니다. 물론 지금은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통제되어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셔터 눌리는 소리가 많아지고 저 역시도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한참 처집니다.

윗세오름을 통해 돈내코 방향으로 내려가고자 했지만 통과시간이 지나서 통제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리목 방면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리목 길은 제주 방향의 오름을 잘 관찰할 수 있지만 길 풍경은 많이 단조롭습니다.

이후 다시 서귀포로 나와 짐을 찾고 제주시로 이동을 합니다. 버스에서부터 잠이 쏟아지더니 제주시에 도착해서는 온 몸이 쑤십니다. 평소 운동 안하는 사람에게 영실 탐방로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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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주향교, 사려니숲길 그리고 교래자연휴양림

어제 밤, 꿩탕과 자리회무침 등으로 푸짐히 식사를 마치고 지인 씨와는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지인 씨만 월요일 아침 일찍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가서 출근해야 하니 조금 아쉽습니다.

오늘은 교래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할 예정입니다. 16평되는 초가집을 4만원에 예약하느라광 클릭질을 하였지요. 오전에는 제주시내 구경을 하고, 오후에 숙소에 짐을 풀고 사려니숲길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우리는 먼저 용두암과 용연을 둘러보고 걸어서 시내를 관통하기로 하였습니다. 발걸음은 이어서 제주향교로 향했습니다. 향교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살뜰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유교부녀회의 어르신들이 안내를 자청하시기도 하고 건네는 인사에 친절히 응대해주십니다. 마당에서 새로 감물을 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멀리서도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향교에는 공자사당과 아마도 탐라국의 관직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제주 곳곳에 있었을 공덕비를 모아두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옆의 고등학교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제주 사회를 이끌었을 선비들의 유적이겠지요.

관덕정과 목관아는 향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나옵니다. 애초 기단만 남은 유적지에 새로이 건물을 올린 것이지만 18세기 초의 탐라순력도를 토대로 복원하였고, 복원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지르한 건축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도 나눠 가진 역사와 문화를 보는 듯해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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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꼽시계를 맞추러 동문시장으로 향합니다. 시장 구경의 저의 오랜 취미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동네인 쑥고개시장은 저의 놀이터이자 부러움, 상상력의 대상이었죠. 동문시장을 질러 안으로 들어가면 광명식당이 나옵니다. 50년 역사의 순대국입니다. 예전 여사장님이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집이라 숙소에서 추천받았습니다.

든든한 순대국과 막걸리 낮술로 배를 채우고 교래자연휴양림으로 버스를 타고 떠났습니다. 휴양림에 짐을 맡기고 사려니숲길로 가는 길은 제주의 목장지와 삼다수 용출지를 접해 있습니다. 요사이 제주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가 사려니숲길일 것입니다. 힐링 열풍과 함께 사려니숲길에 대한 찬사가 많아 꼭 일정에 넣고자 하였지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었습니다. 80년 수령의 삼나무숲이 주는 향은 좋았지만 신작로처럼 넓게 만들어 놓은 길은 숲과 길을 분리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가면 좋아지겠지 기대하며 걸었지만 길은 끝내 실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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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휴양림 안의 곶자왈을 걸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려 녹음을 짙게 하고, 상쾌한 내음이 코를 찌릅니다. 길에서 만나 누런 소들은 눈방울 껌벅거리며 이방인들을 쳐다봅니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숲에서 나를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정말 상쾌한 길이었습니다.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오름길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에 또 하나, 돌문화공원이 있습니다. 40여 분 훑어보고 나왔지만 우리 일행 모두 다음에 여유 있게 둘러볼 곳으로 꼽았습니다. 제주의 화산 활동 등 암반과 관련된 과학 자료부터 돌하르방 등 민속자료까지 제주 돌에 대한 모든 문화가 모인 곳입니다. 다른 분들도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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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행 마치기

태풍으로 이틀 일정을 접고 다녀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래도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게 해주었던 강정마을 활동가들, 여행의 우연한 만남을 채워준 Jack 등 좋은 사람도 만나고, 정상은 아니어도 한라산의 큰 자락을 안길 수 있어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아직 제주의 내밀한 속살은 보지 못했지만 살포시 하나하나 들추어보고 싶은 관음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한 곳에 머무르거나 아주 천천히 둘러보면서 느낌을 온전히 가져볼 것입니다.

저는 혹시 조만간 또 제주에 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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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9월 수한이네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기 (2)

5. 천제연 폭포와 대포 주상절리

아침 6시 반, 설핏 깬 잠을 자고 있는데 은경씨의 기상 문자가 옵니다. 집에서는 매일 나를 깨우느라 고생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보통 제가 먼저 일어나는데 의외입니다.

서둘러 씻고, 아침잠이 많은 수한이를 깨워 천제연 폭포로 갔습니다. 제주의 자연 관광지는 대부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되기 때문에 일찍 혹은 늦게 갈 경우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11년 전, 신혼여행에서 천지연 폭포에 입장권 샀다가 30분 사이로 그냥 입장하는 것을 보고 꼭 해보리라 다짐했었죠.^^

천제연 폭포는 간단한 산책로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세 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면서 볼 수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태풍으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아 폭포 소리가 시원하게 들립니다. 두 번째 폭포에서는 물안개가 기분 좋게 뺨을 만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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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1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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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2폭포>

 

배고프다는 일행들의 아우성에 숙소로 돌아와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하고, 대포 주상절리로 택시로 이동하였습니다. 네명이 가니 버스비보다 적게 들더군요. 다만 입장료가 2,000원 있습니다. 제주도가 중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서 중국인 관광객이 참 많았습니다

주상절리는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서 다각형(보통은 4∼6각형)이며, 두꺼운 용암(약 섭씨 1100도)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서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곳의 주상절리는 높이가 30~40m, 폭이 약 1k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규모면에서 최대라고 합니다.(제주도 관광 홈페이지 인용) 제주도에서는 지삿개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사실, 대포 주상절리는 하도 유명하고 어렴풋이 신혼여행 때 온 것 같아서 깻깍 주상절리를 가볼까 했습니다. 병풍처럼 늘어져 있고, 올레길과 연결되어 있어 가까이 가볼 수 있어 더 장엄한 멋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강정으로 가는 발걸음에 반대 방향이라 대포 주상절리로 온 것입니다.

주상절리의 전망데크에 서면 검은 현무암으로 푸른 바다가 하얀 포말을 부딪치는 모습이 잘 보입니다. 마치 수 억년을 버티어 온 삶에 때로는 장난치는 것처럼, 때로는 꽃가루를 뿌려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찌 보면 한낱 돌덩어리이지만 다른 감상이 드는 것은 꿋꿋하지 못한 내 삶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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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 주상절리>

 

6. 강정마을

우리가 강정마을에 도착한 것은 11시 반 정도 된 시간이었습니다. 평화센터에 미리 전화를 드렸지만 하루 일정으로 머문다고 말하는 게 너무 민망했습니다. 일정표에 보니 11시 천주교 미사, 15시 개신교 미사, 20시 촛불문화제 그리고 일인시위 계속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평화센터 안팎의 담벽은 연대의 메시지와 포스터, 미술작품으로 넘쳐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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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평화센터>

 

안내를 받은 우리는 우선 천주교 미사가 열리고 있는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으로 갔습니다. 마을과 채 100M도 안되는 곳입니다. 제주의 어느 성당에서 오신 성도님들과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고, 우리도 조용히 그 뒤에 서서 미사를 같이 보았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젊은 사제를 도와 벽안의 노사제가 마이크를 들어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대부분이 장년인 40여명의 평신도들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천주교 미사가 비 신도들에게는 좀 길더군요. 중간 중간 문정현 신부님께서 말씀과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강정에 와서 수치스런 일도 많이 겪었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이 예수의 길이다’라시며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시더군요. 아주 단순한 가사이지만 구럼비 바위로 상징되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자, 다짐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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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미사와 방송차량>

 

미사를 마치고 해군기지 공사장과 올레길이 맞닿아 있는 길거리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얻어 마시며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길거리 카페는 올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강정마을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합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올레꾼들이 지나가는 길에 꼭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대만에서 온 평화활동가가 그렸다는 엽서를 기념으로 구입했습니다. 역시 엽서가 여행지에서의 최고의 기념품입니다.

올레 7코스가 해군기지 건설로 막히면서 감귤하우스 옆으로 낸 올레길을 따라가면 삼거리 식당이 나옵니다. 이곳은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는 평화활동가들을 위한 식당입니다. 강정주민과 전국에서 보내준 식자재로 운영하는데 강정마을 방문자들도 소정의 금액을 내고 식사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내일까지 두 번은 여기서 식사할 예정입니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식당은 간판은 없지만 ‘밥먹고 힘내자’는 글씨가 적힌 대형 보자기가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김치와 각종 무침이 반찬통에 가지런히 담겨있고, 아마 끼니마다 달라지는 제공식인 듯한 햄 부침이 한 쪽에 놓여있습니다. 국은 호박을 깍둑 썰어 넣은 된장국과 돼지고기를 육개장식으로 넣어 만든 김치찌개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이 지난 뒤라 맞이해주는 사람은 없어도 알아서 먹고, 알아서 씻어놓고, 알아서 돈을 내고 나오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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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식당>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해군기지 공사장 펜스를 따라 구럼비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걸었습니다. 태풍으로 날라간 펜스 사이로 공사장이 보이기에 다가섰더니 덩치좋은 청춘이 다가옵니다. 아마 알바로 경비용역을 하는 듯 합니다. 굳이 들어갈 생각없다고 했더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더군요.

공사장 펜스가 끝나는 곳에는 강정포구가 있습니다. 지친 나머지들과 달리 어느새 수한이는 포구를 가로질러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고 있습니다. 포구는 서너 척의 어선만 있을 뿐이고, 포구횟집은 아무 손님도 없었습니다. 등대까지 갔다 온 수한이는 바다에 배가 반 쪽난 것이 보여서 자세히 보려고 가보았답니다. 배는 아니고 무슨 구조물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풍으로 침몰된 케이슨이었습니다. 케이슨은 방파제 건설을 위한 기초 구조물로 9,800톤이 되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개당 70억원 가량 한답니다. 보통은 6개월 이상 건조해야 독성이 빠지는데 해군기지 공사단은 케이슨을 만들자마자 바다에 투하했습니다. 현재 투하된 7개 모두 파손되거나 침몰해서 공사단 측도 멘붕이 와서 모든 공사가 중단되어 있다더군요. 강정마을은 예부터 제주도에서도 해일이 심한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이 바닷가를 피해 안쪽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웃 법환마을만 해도 바닷가에 면해 있는 것에 비교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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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공사장과 범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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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보이는 구럼비 바위의 끝 자락과 강정포구>

 

다시 평화센터에 들려 오늘 묵을 마을숙소를 안내받았습니다. 평화센터에서는 세계자연보전총회에 쓸 피켓을 제작하고 계셨는데 어찌 그리 예쁘게도 만드시는지 피켓 하나하나가 그냥 예술작품입니다. 마을회관 4층에 활동가들이 머무르는 숙소가 있어서 자리가 있으면 방문객들도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근처에 민박도 많이 있지만 우리는 마을숙소에서 머물고 민박비 정도라도 연대기금으로 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짐을 풀고 1층 사무실에서 잠시 활동가들을 만나고 냇길이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냇길이소는 ‘나는 딴따라이다’에서만 공개된 알려지지 않은 강정의 명소라고 하더군요. 길거리 카페의 주인장은 찾기가 쉽지 않다며 약도를 그려주며 마을 분들에게 신성시되는 곳이니 발을 담그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참 마을과 비닐하우스를 지나가니 길 끝이 나왔습니다. 상수도보호구역이라는 푯말이 보이지만 강정천 상류만 보일 뿐 소(沼)는 보이지 않네요. 워낙 감쳐진 곳이라 안내판이 없나 싶고, 풍광도 좋은 것이 여기쯤이 냇길이소인가 싶어 머물다가 돌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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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천의 투명한 물>

 

아까 들어온 길이 아닌 강정천 길을 따라 걷다가 그늘에 잠시 쉬는데 날쌘돌이 수한이는 또 어딘가를 부지런히 들어갔다 나오더니 여기가 냇길이소 같다고 합니다. 그제야 한 쪽에 있는 푯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가파른 길을 따라 걸어가니 아담하지만 예쁜 냇길이소가 우리를 맞이해주더군요. 드디어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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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냇길이소>

 

들뜬 기분으로 다시 해군기지 공사장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은 오후 4시를 훌쩍 넘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낮부터 공사장 정문을 막고 있던 활동가들을 대신해서 피켓팅을 시작했습니다. 더위와 햇볕, 도로위의 차 소음은 아직도 여전해서 1시간 반의 피켓팅도 지치는데 하루종일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솔직하게 말하면 이 날은 경찰과 충돌이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해군과 공사단 측도 케이슨 침몰 이후 공사가 잠시 소강상태이었는데 저희가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매일같이 해군과 경찰의 도발이 일어나 주민과 활동가들이 많이 다쳤더군요. 미리 수한이에게는 큰 충돌이 나도 조금만 몸조심하자고 말했지만 정작 상황이 벌어지면 저 스스로도 자동반응이라 여행일정을 망칠까 염려되었지요. 다행히(?) 6시에 활동가들이 피켓팅을 접자고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저녁식사 전에 강정천을 따라 하구로 내려갔습니다.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강정은 물많은 마을이라더니 참 물이 맑고도 많습니다. 이후 다른 곳을 가니 강정마을의 물이 얼마나 풍부한지 더욱 알게 되더군요.

강정천에서는 휴가 나온 가족들이 은어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구의 바다와 맞닿는 곳에서 바라보는 해 저무는 바다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고개를 돌려 바로 옆 해군기지 공사장을 쳐다보지만 않는다면요. 나중에 이 풍경이 그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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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천 풍경>

 

저녁식사는 ‘35년 전통의 양동치킨’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애초 가려는 물질식당이 낮 장사만 해서 돼지두루치기냐 치킨이냐로 잠시 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내일 저녁 메뉴가 돼지 바비큐이니 닭고기를 먹자’고 했고 수한이는 ‘나중에 회사가면 사람들이 뭐 먹었냐고 물을텐데 어제는 햄버거, 오늘은 치킨이면 할 말 없다’며 두루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먹는 거에 불평하지 않는 수한이가 먹는 걸로 투덜된 최초의 사례일 것입니다. 결국 투표를 해서 3:1로 양동치킨으로 가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과 맥주를 시켰습니다. 맥주는 매우 시원했습니다. 노즐 관리를 잘 하는 듯 했습니다. 양동치킨이 뭐냐는 제 질문에 주인장은 광주 양동시장에서 시작된 프랜차이즈라고 하더군요. 치킨도 4명이 먹기에 부족하지 않데 많이 나왔습니다.

촛불문화제가 있어 먹고싶은 술을 조금만 하고 평화센터로 갔더니 이번 주는 자연보존총회 대응 준비 관계로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혹시 연대발언 시키면 수한이가 하기로 결정했는데요^^ 허탈해진 수한이를 데리고 편의점 맥주로 입맛을 다시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방에는 6명이 잘 수 있는데 영상 활동가 1명만이 숙소에 계셨습니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배를 피우러 같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마을주민회의가 끝나고 간단한 뒷풀이를 준비하시더군요. 룸메이트가 같이 가자길래 우리는 맥주와 치킨을 준비해서 자리에 합석했습니다. 강동균 마을회장과 편의점 앞에서 잠시 마주친 멋쟁이 부녀회장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35년 전통의 양동치킨’을 보시더니 ‘35일 전통’이라고 웃으시면서 정정해주십니다. 성함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문성현 금속위원장을 많이 닮으신 신부님까지 마치 역전의 용사들이신데 한없는 부드러움과 강정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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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9월 수한이네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기 (1)

 * 이번 여행기는 세 편으로 갑니다. 중간 중간 사진이 많이 들어가서 스크롤 압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시작

사실, 올 해에는 여행을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주머니 사정을 비롯한 이러저러한 일로 인해 여행이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지요.

그러나 작년 연말에 끝낸 지리산 둘레길~일본 큐슈 여행기와 연초부터 진행 중인 중국 서안~성도 여행기에 대한 마누라의 전폭적인 응원 덕에 가벼운 여행 일정을 잡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다시 여행을 꿈꾸니 일주일 정도는 가야 직성이 풀리겠더군요.

그래서 잡은 방향이 ‘제주도 가장 저렴하게 다녀오기’였습니다. 예산은 이동수단을 포함하여 1인당 35만원 이내로 하기로 하고, 일정은 두달 치 야간 휴무를 잇대어 가려니 10월 말~11월 초 일정으로 가려 했었죠.

그런데 저가항공을 알아보니 주말보다는 주중이 싸더군요. 그리고 여행가자고 한 때가 5월 초이니 6개월을 기다릴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정을 8월 28일에 출발해서 9월 4일에 돌아오는 7박 8일로 변경했습니다.

날짜가 잡히니 바로 항공권을 발권했습니다. 편도 18,900원, 유류할증료 등 모두 더하니 두 명이서 14만 원짜리 항공권이었습니다. 11년 전, 제주로 신혼여행갔을 때에도 일인당 15만원이었는데 엄청 싼 가격이었습니다. 항공사는 진에어를 이용했는데 싼 가격이라도 여정 변경과 환불이 가능해서 좋은 것 같아요. 변경 안되는 항공사도 많으니 주의하세요.

이제 남은 일은 남들의 여행기도 읽고, 여행지 정보도 모아서 우리만의 여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여행 준비하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중 30~40%는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 준비하면 제주도 전체 지도와 주요 방문지 지도를 먼저 구합니다. 전체 지도를 보면서 대략적인 경로를 십 수번 그렸다 지웠다 합니다. 그 뒤, 방문지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세부 지도를 보면서 이동 경로를 그립니다. 이것을 수 차례 반복하면 머리 속에 지도가 박혀집니다. 물론 지도도 출력해서 갑니다만 충분히 숙지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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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행

재작년 수서기지로 강제 이동당한 후에 수한이와 술자리가 부쩍 늘었습니다. 특히 교대근무로 옮기면서 같은 을반이다보니 더욱 그러했지요.

우리는 6월 어느 날, 광장시장 순희네 빈대떡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휴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 별 계획이 없다 길래 저는 제주도로 같이 가자고 하였죠. 저와 수한이의 아내 지인씨는 노동조합 집행부에서 사무간사를 맡았기에 잘 아는 사이였고, 제 아내와 수한이는 현장모임에서 같이 활동하였기에 잘 아는 사이입니다. 다만, 제 아내 은경씨(평소에 이리 호칭하지는 않습니다. 글의 편의상^^)와 지인씨는 수한이의 결혼식외에는 같이 자리한 적이 없어서 여행 전에 몇 차례 사전 모임을 빙자한 술자리를 가져 친해지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지요.

사실 여행가서 혼자나 둘이 가면 맛난 음식도 골고루 먹어보지 못한답니다. 또 여행지에서 다투기라도 하면 둘이서는 오래 갈 수 있는데, 동행이 있으면 쉽게 풀 수밖에 없답니다.

 

3. 루트 잡기

한이네의 항공권을 예매하고, 여행 루트를 대충 세워서 6월 말, 7월 초쯤 술자리를 가지고 1차 논의를 했습니다. 스케쥴러는 내가 맡기로 하였습니다. 걷기를 중심으로 하다보니 7박 8일의 일정이라도 제주도의 사분의 일 정도를 걸을 수 있을 듯 했습니다. 출발점을 제주도의 9시 방향인 한림포구로 할 지, 3시 방향인 성산포로 할지부터 수많은 루트를 머리에 그렸다 지웠다 하면서 루트를 그려나갔습니다. 

우리가 세운 루트는 용수저수지에서 시작해서 모슬포와 가파도를 거쳐 산방산, 화순해변을 걷고, 강정마을에 하루 머물고 다시 서귀포까지 걷고, 한라산 등반후 제주시로 이동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지인씨가 휴가 일정이 변경되어 목요일 밤에 도착하여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출발하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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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최종 확정된 일정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원 자료 그대로 공개합니다. 여행자료를 만드면 이처럼 일정표를 맨 앞에 만들고, 세부 정보나 지도, 회화는 뒤쪽에 편집합니다. 필요한 전화번호는 미리 다 메모해가는 것입니다.

예산은 다른 여행기나 여행정보에서 대략 확인하는데, 해외의 경우 가예산의 25%, 국내의 경우 15% 정도를 예비비로 책정해서 간답니다. 그런데 저는 예비비를 지출하는 경우가 별로 없답니다. 거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이번 여행도 두 팀이 항공권 제외하고 90만원 정도로 예산잡아서 수한네 50만원, 우리 60만원을 모았는데 결산내보니 90만원을 지출했더군요. 깨알같은 제 자랑이었습니다.^^  

 

일자

시간대

일   정

8/28(화)

특징

★제주도내 가장 큰 철새도래지 용수저수지, 孝나눔 모모에서의 하룻밤

오후

•제주도로 gogo~ssing(13:30 동대문문화공원역 5호선 미팅)

저녁

▫밥: 옥성식당 순대국(보성시장, 010.9840.6006, 064.755.6006)

•숙박: 제주모모 http://cafe.daum.net/jejumomo  (010.9838.7841,070.7738.7841)

•숙박2: 신강남(010.4151.5939), 숨(070.8810.0106), 미라클(064.743.8954)

교통

•공항→보성시장 : 100번, 광양 정류장 하차

•보성시장→시외버스 터미널 : 택시

•시외버스터미널→용수교차로: 서일주버스(19시, 19:30, 20시, 70분 소요)

예산

교통(1.5), 숙박(0), 식사(2.5), 관광(), 기타()

40,000원

8/29(수)

특징

★서귀포와 제주를 잇는 바당 올레길, 가장 낮은 섬 가파도의 휴식과 만찬

오전

▫밥: 자체식(라면)

•올레길 13코스 일부(용수저수지)→12코스 일부(신도포구) 역올레(약 13㎞)

 http://www.jejuolle.org/?mid=40&act=view&cs_no=12

오후

▫밥 : 해루(물회/매운탕, 신도포구,064.772.2200)

•신도포구→모슬포항→가파도 입도(15시 배타기)

•올레길 10-1코스(가파도, 약 5㎞)

http://www.jejuolle.org/?mid=40&act=view&cs_no=18

저녁

▫밥: 민박집 용궁정식

•숙박: 가파도 민박(011.697.7083),   http://www.gapadominbak.co.kr/

•숙박2: 잠(010.5094.4502,)가자올레(010.3823.7667),봄꽃(016-258-6008)

교통

•신도포구→신도2리(도보10분)→모슬포항(10:50,14:00,15:27 버스 25분) ※신도1리(도보30분) 서일주버스 많음

예산

교통(0.3), 숙박(4.0), 식사(4.5), 선박(2.4), 기타(0.3)

115,000원

8/30(목)

특징

★산방산과 바다로 이어지는 해변이 아름다운 올레길

오전

▫밥: 민박집

•올레길 10코스 (모슬포→화순, 약 15㎞)

http://www.jejuolle.org/?mid=40&act=view&cs_no=10

오후

▫밥: 화순포구 황금미락(064.794.6789) or 바당올레횟집(064.794.8558)

•올레길 9코스 (화순→대평, 약 7㎞) http://www.jejuolle.org/?mid=40&act=view&cs_no=9

저녁

▫밥 : BBQ(16시 전 예약) 혹은 간단 식사후 막걸리 파티

•숙박: 중문G/H J.J (064.738.8151)  http://cafe.naver.com/youngclubjj

교통

•대평→G/H 이동: (도보 10분)→대평리 정류장(일반100번)→(9개 정류장)중문관광단지입구 하차, 제주미향 골목 5분

•공항→G/H 이동: 1번 출구 옆 리무진버스 600번(22시 막차, 이후 심야버스), 여미지식물원 하차 • 064.738.1700(중문 콜택시)

예산

교통(0.7), 숙박(8.0), 식사(9.0), 관광/배(), 기타(0.3)

180,000원

8/31(금)

특징

★주상절리, 강정 구럼비

오전

▫밥: G/H제공 조식

•대포 주상절리 관람후 강정 이동

오후

▫밥: 강정마을 몰질식육식당(064.739.1542)

•강정마을 산책, 문화제 참석

저녁

▫밥: 강정마을 식당

•숙박: 서부민박(064.739.1851), 오막살이민박(010.6789.5142), 바다와 섬 민박(064.739.5866)

교통

•G/H→주상절리: 택시, 주상절리→강정: 일반5번 버스(강정초, 30분 소요)

•강정마을 방문자 접수: 010.4571.0988

예산

교통(1.0), 숙박(5.0), 식사(5.0), 관광/배(1.0), 기타()

120,000원

9/1(토)

특징

★인기 올레길 7코스와 서귀포의 밤

오전

▫밥: 강정마을 식당

•올레길 7코스 일부(강정천~외돌개, 약 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ampermoon&logNo=100160049571

오후

▫밥: 천지올레(몸국, 제주육개장 064.762.9191)

•올레길 8코스(외돌개~이중섭거리 약 4㎞)

저녁

▫밥: G/H BBQ

•숙박: 제주 백패커스홈 G/H(064.763.4000)

교통

•저녁 천지연폭포 음악회 있음

예산

교통(), 숙박(8.8), 식사(8.0), 관광/배(), 기타(0.2)

170,000원

9/2(일)

특징

★한라산에 올라보자!

오전

▫밥: 민박식

•한라산(성판악코스) 등반 http://ldn1118000.blog.me/140160571258

오후

▫밥: 김밥 준비

•한라산(관음사코스) 하산후 제주시 이동

저녁

▫밥: 춤추는 오병장의 돼지꿈(064-724-0092)

•숙박: 제주시 신강남게스트텔(010.4151.5939)

교통

•올레옮김이(010.2699.1892) 이동이삼촌(010.2870.8202, 010.5160.8202)

•서귀포→성판악 : 시외터미널 버스 이동, •관음사→제주시 : 1번 버스(제주민속박물관 하차)

예산

교통(2.0), 숙박(5.0), 식사(6.0), 관광/배(), 기타(2)

150,000원

9/3(월)

특징

★휴양림 그리고 숲길

오전

▫밥: 민박식

•장보기 및 교래자연휴양림 이동, 휴식 http://www.jejustoneparkforest.com/

오후

▫밥: 토계정(064.783.2297)

•사려니숲길 http://xylitol4132.blog.me/100156836707

저녁

▫밥: 쫑파티

•숙박: 교래자연휴양림 http://www.jejustoneparkforest.com/

교통

•제주→휴양림 : 516도로 이용

예산

교통(0.5), 숙박(4), 식사(4.0), 관광/배(), 기타()

85,000원

9/4(화)

특징

★돌문화공원 살짝 보고 집에 가기

오전

▫밥: 자체식(밥&라면) or 양대곱(064-724-0792)

• 짐싸고 돌문화공원 관람후 10시 반 공항으로 출발

예산

교통(1.0), 숙박(), 식사(1.5), 관광/배(), 기타(0.5) 

30,000원

  

4. 태풍 볼라벤과 덴빈

드디어 출발을 일주일 앞두고 태풍 두 개가 몰려온다는 기상뉴스가 나옵니다. 아직 경로가 유동적이라는 뉴스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태풍 피해가 발생한다면 놀러간다는 것이 왠지 꺼림칙한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드디어 출발 2일전 마지막 야간근무를 할 때, 태풍 볼라벤이 제주도와 한반도를 강타하는 것은 확실해졌습니다. 마지막 바람은 항공이 좀 지연되어도 그 날 밤 비행기라도 들어가는 것이었죠.

8월 28일 오전, 배낭을 꾸리고 출발을 대기하고 있는데 항공사로부터 결항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항공변경을 해준다길래 제일 빠른 항공편을 물었더니 정확히 이틀 뒤, 같은 시간대입니다. 좌석이 부족할까봐 일찌감치 재 예약을 하고나니 한 두시간 후부터 다음날 취소된 좌석이 쏟아졌습니다. 아뿔싸! 이제 예약 변경을 하려면 추가금액이 발생합니다.

하루 늦게 출발하는 것은 괜찮은데, 걱정은 덴빈이었습니다. 하루걸러 제주도로 올라온 태풍 덴빈 때문에 또 다시 결항이 된다면 이번 여행 자체를 포기해야 싶구나하니 기다림이 짜증으로 변해갔습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출발 전날부터 여행모드로 바꿨습니다. 수한이와 같이 용두동 쭈꾸미골목에서 앞풀이를 하고, 다음 날 오전에 짐싸들고 만나서 영화도 보고, 낮술도 한 잔하면서 미리 여행 기분을 내기로 한거죠. 그러다가 결항되면 갑자기 떠오르는 곳으로 지르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8월 30일(목), 오전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만난 우리 세명은 영화 ‘도둑들’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인근 김삼보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에 막걸리를 각 1병씩 먹고 김포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항공은 지연, 또 지연되면서 결국 예정시간 3시간 뒤에나 탈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1시간 반 뒤에 지인씨가 다른 항공으로 오기로 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제주공항에서 죽치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 메뉴는 수한이를 투덜거리게 한 롯데리아 유러피안 치즈버거 세트입니다. 일상에 별 불평을 하지 않는 수한이가 투덜거린 이유는 나중에 밝힙니다.^^

오늘 숙소인 중문 JJ 게스트하우스까지는 버스로 40분, 도보로 10분이 걸렸습니다. 11시가 다 된 시간이라 조심스레 라운지로 올라갔더니 십 여명의 젊은이들이 즐겁게 막걸리를 먹으면서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안내를 해주신 안주인은 올라오셔서 막걸리 한 잔 하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먹어야지요!

너무 늦게 도착해서 먼저 어울린 젊은 친구들의 모임에는 끼지 못하고 한 켠에서 자리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같이 어울렸겠지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 4시까지 들락날락하며 떠드는 청춘들 덕에 푹 쉬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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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열 번째 이야기(5/13)

2011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열 번째 이야기(5/13)

 

<지난 여행기>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첫번째 이야기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두 번째 이야기(5/5)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세 번째 이야기(5/6)]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네 번째 이야기(5/7)]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다섯 번째 이야기(5/8)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섯 번째 이야기(5/9)]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일곱 번째 이야기(5/10)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덟 번째 이야기(5/11)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아홉 번째 이야기(5/12)]

바람빛님의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열 번째 이야기(5/13)]

 

27. 중국 여행의 또 다른 재미, 기차여행 (2)

여행에서 받는 즐거움은 다른 것을 본다는 것이다. 나와 익숙한 것을 떠나 새롭고 어쩌면 낯선 것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나를 좀 더 객관화하는 과정이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것을 느끼는 즐거움 중 가장 큰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여행지에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고, 시장이나 항구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 기회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길을 지나다 뵙는 주민들과 다른 여행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정말 다양한 삶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나 중심의 삶에서 조금이나마 겸손해질 수 있게 해준다.

2009년 캄보디아를 갔을 때, 앙코르앗에서 잘 생긴 친구가 툭툭이(오토바이 택시) 기사를 해주었다. 그와 우리는 삼일 동안 현지식당을 다니며 저녁을 먹었고, 수고비 지불이 끝난 다음 날, 그는 우리에게 호수로 놀러가자며 통닭과 맥주를 한 아름 사왔다. 식사를 할 때 마다, 구걸을 하는 어린이와 엄마에게 마음 아프지만 잠깐의 동정이 그들을 구걸상태로 영속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냉담하게 굴던 우리들과 달리 그는 적은 돈이라도 쥐어주곤 했다. 작은 토굴에서 산다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답했다. “내가 그들보다 더 버니까.” 간단한 답변에 한참을 멍해져 있었다. 논리 이전에 마음이었다. 그 뒤 만났던 프놈펜의 공사장에서 아기보는 아가씨, 관광객을 기다리는 툭툭이 기사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파고다왕궁의 청년 등 그들과의 대화가 없었다면 캄보디아와 그 여행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번 기차 여행을 통해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우리가 탄 기차는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를 출발하여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로 가는 기차였다. 기억에 36시간을 달리니 기차인데 우리는 청두까지 약 16시간을 타고 왔다. 윈난성은 기후가 좋아 차 재배지로 유명하지만 중국에서는 변두리 중 변두리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차 칸은 끊임없는 대화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 모두가 일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활기차게 대화를 나눈다. 우리 칸의 40대 남녀도 어제 하도 대화를 진지하게 하길래 부부인 줄 알았는데 밥 먹을 적에 따로 먹는 것이 처음 보는 사이인 것이다. 어찌하다 우리하고도 이야기를 하게 되어 우리 칸의 할아버지와 떨어져 있던 할머니까지 오시고 외국인이라고 호기심있는 눈초리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40대 남자 분과는 같이 담배도 나누어 피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내가 피우고 있던 남중해라는 담배를 보더니 마오쩌뚱이 즐겨피던 담배라고 한다. 그러면서 운남이라고 적힌 담배를 펴보라고 준다. 12mg이라 무척 독한 담배였지만 끝 맛이 무척 부드러운 담배였다. 나중에 담배가게에서 살펴보니 내가 피던 것이 10위안이었는데 이 담배는 30위안(5,100)짜리였다. 허름한 행색과는 달리 달변에 유쾌한 성품, 그리고 적지않은 재력(?)을 지닌 분이었다. 일행 중 다른 여자분은 공무원인지 시간이 나면 지방법률 책을 보고 있었다. 행색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일행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이야기 나눈 분은 아이 엄마이다. 밤새 칭얼대던 여자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등 아침부터 활기차게 뛰어놀고 잠이 드는데 자리가 좁아 엄마가 잠을 못 이루길래 우리 침대를 양보하였더니 그 다음부터 무차별 간식 폭격을 하는 것이다. , 해바라기씨부터 닭발까지 가지고 온 모든 간식은 종류별로 계속 맛을 보라고 건네준다. 우리가 가진 회화책을 살펴보면서 질문을 하고, 우리 수첩에 중국에 병음을 달아 필문답을 이어간다. 자신들의 집은 서창이라는 쿤밍시 가기 전의 도시라며 언젠가 한번 찾아오라며 주소와 전화번호, 환영문을 수첩에 적어 건네준다. 환영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들이 서창에 오게 되면 나에게 전화해라. 내가 당신들을 마중나갈 것이다. 서창 사람들은 매우 좋고, 매우 열정적이며 풍경 또한 뛰어나다. 한국인 친구 손승권과 000를 환영한다. 여행 중 안전에 주의해라.’

마지막 문장도 그렇고, 가방에 무전기가 있기도 하길래 공안(경찰)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서창이 아마 군사도시라고 한다. 아무튼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아내는 이번 여행 중 기차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면서 다음에 또 오게 되면 꼭 기차를 타자고 한다.

 

28. 삼국지 촉()의 수도, 청두(成都)

드디어 청두에 도착했다. 분지 지형인 청두의 첫 인상은 보슬비와 흐릿한 날씨이다. 역사를 나와 지도를 하나 구입하고, 어제 전화로 예약한 숙소를 찾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헤맸지만 직통노선을 찾지 못하고 택시로 이동하였다. 아직은 도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청두는 중국 서부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앞에 밝혔듯이 교통 요충지이기도 하고, 충칭(重慶)과 시안과 더불어 서부벨트의 중심 도시이다.(최근 보시라이 실각 이후 중국공산당 좌파의 충칭모델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사항이다.)

이곳에서는 현지 유스호스텔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룽탕(龙堂)유스호스텔은 콴샹즈(寬巷子)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콴샹즈는 청대 문무관원이 살던 거리로 한()족은 출입이 금지된 거리였다. 그 아래 자이샹즈거리에는 만주족 사병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이 두 거리가 모두 2004년에 현대적으로 해석된 옛 길로 재탄생되었다. 마치 우리의 인사동과 북창동 길을 합친 듯한데 훨씬 고전적인 멋을 살려내었다. 옛 가옥을 되살린 집들은 대부분 전시관과 기념품점, 음식점으로 변경되어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개발 전의 사진을 입체감 있는 부조물과 함께 설치해서 기억을 놓지 않고 있다. 거리를 들어서는 사람들 모두 탄성을 지르면서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동상처럼 분해서 있는 사람, 훨씬 더 다양한 간식거리들, 사진전시회 등 눈길이 바빠진다.

룽탕(龙堂)유스호스텔에 들어서니 예약이 잘못되어 있다. 이틀을 예약했는데, 하루만 되어있다고 한다. 예약전화를 받은 이는 분명히 자기는 그렇게 들었다고 한다. 영어못하는 내가 져야지 하는 수 없다. 단체 손님이 와서 내일 방을 옮길 수도 있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유스호스텔은 중국 가옥을 개조해서 지은 곳이라 나름 운치가 있었다. 서양 배낭여행객들 뿐 아니라 중국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하였다. 다음 날 두장옌과 칭청산 투어를 신청하고 문화공원으로 나섰다.

 

29. 쓰촨(四川) 오페라 천극(川劇)

이미 밥보다 공연관람에 훨씬 많은 여행경비를 쓰고 있지만 오늘은 쓰촨 오페라라고 불리는 천극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가이드북의 소개에 따라 슈펑야윈이라는 극장을 찾아 나섰다. 시간도 여유 있고, 지도를 보니 멀지 않아 도시 구경도 할 겸 걸어서 찾아갔다. 극장은 아직 티켓팅도 시작하지 않아서 안내원이 여유있게 극장을 설명해주면서 좌석과 서비스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제일 싼 표를 구하고자 했으나 그리 크지 않은 가격 차이에 앞 세 번째 줄 표를 구하였다.

문화공원 주변은 차 상점이 많았으나 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은 오리보트가 있는 호수도 있는 근린공원이었다. 쭈욱 지나쳐 나온다는 것이 엉뚱한 길로 나가서 극장으로 어찌 가야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는데 비도 오고, 배도 고파서 식당에 들어섰다. 마파두부 요리를 시켰더니 한 대야를 가져온다. 이번에는 밥을 제대로 주문해서 든든히 채우고 나니 공연시간이 다가왔다.

천극은 다양한 단막의 공연이다. 차따르기 기예부터 해금과 비슷한 얼후 연주, 인형극, 그림자극, 콩트 그리고 변검 공연이 이어졌다. 차따르기는 이제 배우는 신인 같았지만 다른 공연은 나름 연배를 지닌 공연자들이 완성도있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촬영이 가능해서 변검 공연에서 카메라를 연사에 두고 0.5초 연사로 촬영해보았지만 그 신기의 과정은 밝혀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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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아홉 번째 이야기(5/12)

2011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아홉 번째 이야기(5/12)

 

25. 시안에서 마지막 낮

드디어 우리는 오늘 시안을 떠난다. 지난 5일에 입국해서 78일 만이다. 그제 민박집 사장님을 통해서 청두행 기차표를 구했다. 수수료 100위안을 더해서 490위안(8만원)이다.

이 도시에서 3박을 하려는 계획이 7박으로 늘어났지만 이제야 도시가 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떠나야 한다니 조금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쇼핑센터에 가기로 하였다. 그동안 동쪽으로는 성벽 밖에 살짝 나가보았지만 우리 동대문처럼 의류, 가방 등 패션타운이 밀집한 광복로 거리까지 나가보지는 못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엄청난 인파가 길을 메우고 있었고, 많은 짐꾼과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유명 브랜드숍부터 부자재 도매상까지 다양한 업종이 얼추 10여 개 빌딩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도매를 떼러 온 이들이 한 짐 가득 나르는 것이 우리 동대문 쇼핑타운과 다를 바 없었다. 아내 동료 아이에게 줄 간단한 기념품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사고자 하는 것은 없었지만 괜스레 가격도 물어보고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옷의 품질은 나름 괜찮았다. 중국산하면 갖는 선입견은 싼 물건만을 들여오다 보니 생긴 일 아닌가 싶다. 결국, 청바지와 티셔츠 , 배낭을 구매하고 민박집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였다.

시안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결국 티베트를 못 갔지만 한 도시에서 천천히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여행지를 급히 돌아다니지 않고 돌아볼 수 있어 좋았고, 저녁이면 시장과 마트에 들러 그들이 먹는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이나마 도시의 구성과 흐름에 대해 느낄 수 있었고, 더 넓게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시안에서 융성했던 과거 문명과 그들의 표현대로 굴기하는 현재 문명을 느낄 수 있었고, 중국의 연안 중심 경제가 서부 내륙으로 뻗어가는 과정에서 중심과 변두리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26. 중국 여행의 또 다른 재미, 기차여행 (1)

짐을 챙겨 기차역 주변 맥도날드에서 커피로 시간을 보내다 기차역으로 갔다. 정말 엄청남 인파가 기차역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기차표를 확인해서 입장을 시키다보니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 대합실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 틈새로 한편에 앉아 1시간여를 대기하였다. 드디어 승강장 출입문이 열리자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력질주를 한다. 지정석인데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따라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중국 기차 좌석은 롼워(軟臥), 잉워(硬臥), 롼쭤(軟座), 잉쭤(硬座)로 구분된다. 롼워(軟臥)2층 침대칸으로 41실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안전한 대신에 요금이 항공권 수준이다. 잉워(硬臥)3층 침대칸으로 만약 꼭대기 층에 표를 구할 경우 조금 아찔하다. 롼쭤(軟座)와 잉쭤(硬座)는 좌석으로 푹신한 정도와 좌석 폭에 차이가 있다. 이번 여행까지 기차를 세 번 타보았는데 모두 3층 침대칸이었다. 1층 침대 사이에는 테이블이 있고 뜨거운 물이 담겨져 있는 보온병에는 승무원이 항상 물을 가득 채워준다. 통로에는 간이 좌석이 있어 음식을 먹거나 창밖을 쳐다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구한 표는 서로 다른 침대칸이었다. 탑승 후, 승무원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손짓발짓하면서 이야기하니 못 알아듣는다. 침대칸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어오면서 구경하고 있어 얼굴을 빨개지고 난감해졌다. 그 때, 젊은 여학생이 영어로 도움을 준다. 설명을 듣더니 다른 칸에 일행이 있는 사람을 찾아 표를 바꾸고, 다른 칸으로 가서 붙어있는 침대칸으로 표를 바꾸어서 건네준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마땅히 인사할만한 게 없어서 간식으로 가져간 양갱이 하나를 여러 차례 사양 끝에 전해주었다.

 

2005년도 중국을 처음 갔을 적, 하얼빈에서 그러했다. 연길과 백두산을 들렸다가 먼저 귀국하는 친구를 보내고 하얼빈, 심양, 단동을 거쳐 배를 타고 귀국하는 계획을 세웠다. 연길에서 하얼빈을 갈 때는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표를 구했기에 어려움을 몰랐는데, 하얼빈에 도착해서 매표소에 가는 순간 모든 계획을 바꿔야 했다.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어서 표를 구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전광 안내판을 유심히 쳐다보니 기차 편과 요금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시간과 열차 종류, 베이징을 메모해서 20분 이상을 줄을 서서 창구에 다다랐다. 기차 값으로 200위안을 내놓자 매표원은 400위안이라고 써 보이며 뭐라 말한다.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저기에 200위안이라고 쓰여 있다라고 해도 팅부동이라며 다음 사람을 부른다.

부아가 났지만 뒷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 다시 줄을 서러 가는 순간,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젊은 철도공안이 나를 부른다. 어디를 가냐고 묻기에 밍티엔(明日) 베이징(北京)’이라고 하니 아까 구하고자 했던 기차보다 한 단계 아래로 표를 대신 사준다. 물론 가격도 전광판대로였다. 감사한 마음에 음료수 한 병을 건네고자 했지만 끝내 사양하였다.

이야기가 잠깐 샌 김에 좀 더 새보자!

이거 써도 될지 모르지만 작년 언젠가 못 보던 빨간 캐릭터 티셔츠가 보이기에 아내에게 물었다. 몇 달 전, 아침 근무 중에 대만인 여성이 게이트 앞에서 난감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인천공항으로 가야되는데, 교통카드를 다 쓴 줄 모르고 한국 돈을 모두 환전해버렸다는 것이다. 1년에 두어 차례 한국을 방문하는데 지금 아침 비행기이다 보니 은행 영업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개인 돈으로 공항까지 갈 수 있는 돈을 충전해 주었고, 별 기대 없이 소속과 이름을 메모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비번 때, 대만인이 찾아와 기념품과 빌린 돈을 맡기고 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는 오래간다.

 

도움으로 자리 잡은 기차 칸에 가보니 1층에는 예닐곱 살 정도의 아이와 엄마, 40대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우리 자리는 1층과 3층이었다. 자리를 잡으면 승무원이 자리표와 승차권을 바꾸어준다. 이것은 승객이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게 확인해서 깨어주기 위해서이다. 이미 11시가 넘어서 침대칸은 소등되고, 시끄러운 대화는 잦아들면서 우리도 잠자리에 누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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