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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싱가폴

5학년이 되던 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친구 잘둔 덕분에 친구의 친척집에 머물면서 아이들 돌봐주는 조건으로 보름정도 싱가폴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다녀왔다.

 

당시 들인 돈은 우리 나라 돈으로 100만원정도. 내돈 30, 부모님돈 70  

그리 싸게 간것도 비싸게 간것도 아니다.

비행기 왕복이 50만원 좀 넘었던 기억이 나고..



싱가폴은 우리나라 보다 1시간정도 늦고 싱가폴 달러는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SDG 1S$=700원 정도 된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물가가 상당하다. 싱가폴이라는 이름의 유례는 예날 싱가폴에서 묘하게 생긴 동물을 발견했는데 그 동물을 사자로 오인해 singa pura(사자의 도시)라고 부르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1819년 영국 스탬포드 래플스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견제하기 위해 노호르 주의 술탄으로 부터 싱가폴을 사들여 이 곳에 자유무역항을 건설했다. 말레이 반도와 인근 여러 나라를 관할하는 영국의 무역거점으로 성정하게 됐다. 이후 1921년 영국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군사, 경제적으로 영국의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의 핵심이었다.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싱가폴에 쳐들어와 싱가폴 사람들을 학살하는 대학살극을 벌어서 그런지 상당부분 나쁜 감정들이 있다고 하고 195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말레이시아로 부터도 완전히 독립한 상황이고. 도시 규모는 서울보다 좀 큰 편인데 경제적 규모나 세계적인 지위를 볼때 비교가 안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알려 진 것 처럼, 싱가폴에 갈때 껌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가지고 가다 들키면 벌금을 내야 하고 당연히 압수 당하고. 길거리가 깨끗한거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안전장치들도 잘 되 있어서 지하철의 스크린 도어나 도로 표지 판등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 물론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버리는 일도 없고, 차들도 모범적이고.. 인공도시 답게 조경도 멋지던데, 친척분의 말로는 간판의 높이과 크기 숫자를 비롯해 건물 높이와 모델등 왼만한 것은 다 국가가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리콴유나 싱가폴 사회 통제적 분위기와 성형등을 보름 동안 뭐 판단할 것 조차도 없었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발판을 딛고 있는 사회의 역동성(센토사 섬으로 가는 케이블 안에서 본 항구의 번잡한 움직임, 넘치는 관광객, 지하철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활기)과 그들이 보이는 자부심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넘어온 사람들과의 경제적 불균형의 아이러니들이 마구 잡이로 섞여 있었다.


 아마 이 사진에서 날 찾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센토사 섬에 있는 사자상 근처에서 찍은 거다.

 

2001년 여행에서는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를 갔다. 말레이시아의 여행은 정말 집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특히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콸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에도 가보고, 절도 다니고, 팬이 도는 싸구려 여관에서도 자보고..

 

2000년과 2001년의 겨울은 참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나름대로 현장이란 곳에 기웃기웃하다가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학교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처절한 현실도 느꼈고, 정말 오아시스 같은 여행을 친구랑 갔다 왔다. 남은 사진도 몇장 없고, 준비된 동선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가 와서 솔직히 어디어디를 갔다 왔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내 도피여행의 시작이고, 첫 외국어를 하는 세상에서 단 둘만이 한국어를 하는 놀라운 현실을 체감한 기회이기도 했다.

 

친구와 나의 영어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험이 있었는데..

싱가폴에 있는 유명한 도서관에 가려고 왠 사람에게 길을 물어 봤다.

"우리에게 길좀 알려 달라" 그랬더니 그 외국인이 한참을 영어로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 주고 난리가 났다(우리가 만난 싱가폴 사람들은 정말 다 친절했다) 그러더니 맨 끝에 "Are you follow me?" 라고 물었는데 우린 팔로우만 들은거다. "아니 이 사람이 우리한테 어쩔려고 따라오라는 거야. 야 안돼!" 갑자기 땡큐 라고 대답해 버리고 확 돌아서 버렸다. 어찌나 그 외국인이 황당했을까..

 

이런 경험도 있었다. 센토사에 가려면 케이블 타고 가면 케이블 타고 와야 한다. 그사실을 사전에 몰랐던 우리는 매표소에서 갈때는 케이블을 타고 가고 싶고 올때는 배를 타고 오고 싶다는 말을 한참을 하고 있었는데 안내원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왕복하지 않겠다는 말로 "go but No Return"이라고 말을 했는데 안내원이 상당히 당황해 하더니, 나중에 우리의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한국말로 "왕복해야 해요"라고 대답을 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하.. 웃으면서 땡큐를 연발했었다.  

 

 같이 여행했던 내 친구가 다시 싱가폴에 간다. 다시 그 친척집에 간다. 아직 국가 공인 선생님이 되지 못한 내 친구는 요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상당기간 싱가폴에 묶여 있게 될 것이라는 겁을 주며 '너네가 그리울 거야'라는 말을 연발한다.

 

오뚱이가면.. 정말 심심할 텐데.. 약방의 감초 같은 오뚱이 가면 우리끼리 모여도 참 서먹서먹 할 텐데.. 오뚱이 아이들 수영장에서 다이빙 한다고 난리 치면서 머리 박는 사고가 없기를, 영어 때문에 압박받지 않기를..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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