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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으로 살아남기 (2): 민주노동당 분열 어떻게 봐야지?

복습이 예습보다 중요하다는게 내 공부론의 핵심이지만, 여기서 복습하자고 하면 글 읽는 분들 화낼 것 다 알아서 간단하게 줄인다. 간단 복습의 핵심은 창당은 조직 어느 정도 있으면 가능한데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열라 어렵다 되겠다.

잠시 이번 글에서는 일반론을 벗어나서 민주노동당의 최근 분열 상황을 살펴보면서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의 조건을 만드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살펴보자.

뭐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세력 중에 일부는 초기에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나는 그 두가지가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유였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만으로도 민주노동당을 탈당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도대체 내가 저런 사람들하고는 같이 당 못하겠다고 탈당하는데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이유로 나가는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민주노동당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정당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일부 내용은 그런 설명을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정신 상태가 솔직히 의심스럽다. 사기꾼한테 어떤 사람이 넌 사기꾼이야 그래서 난 너랑 친구 못해 했다고 하면 그런 말한 사람이 잘못했다해야 하나? 민주노동당 전체를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면 그건 좀 이해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건 혼자 속으로 화내고 말 일이지, 그런 말 나올때까지 입 닥치고 있던 사람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좀 이야기가 옆길로 센 듯하다. 그래도 그리 주제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여튼 종북주의·패권주의 논란과 함께 가시화된 민주노동당 분열 사태가 그런데 급속도로 확대되고 진보신당이 출범할 수 있었던 동력이 어디에 있을까? 분당에 대해서 회의적이던 심상정도 돌아서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일종의 생존본능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민주노동당은 안 돼"라는 생각이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이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지지도 받지 못하고 이해를 대변할 힘도 갖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로 성장한 당이다. 정당의 성립 모형이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자 조직의 성장과 배타적 지지를 기반으로 정당도 성장한다는 모형이다. 한마디로 민주노총이 잘 되면 흥하고 못 되면 망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노동자계급 중심성", "대중정당", "계급정당", 뭐 같다 붙이는 말은 많아도 실제 돈 나오고 표나오는 것은 바로 이 '노동당' 모델의 작동 방식에서다. 잘 알다시피 민주노총 요즘 많이 힘들다 노동운동 자체가 어렵다.. 민주노동당 잘 안 되는 것은 이 노동당 모델에서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는 잘 될 까? 이 노동당 모델에서는 그 해답을 제시해야 할 제일 주체는 노동운동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비정규직을 되내이는 수준에서 크게 나아간 것 같지 않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잘 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음 써놓고 보니 오만한 태도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내 한계가 분명하다고 밝혔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시는 센스를 기대함다.)

조금 더 이 '노동당 모델'이 민주노동당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 보면서 그 한계와 가능성을 좀 살펴보자. 우선 좀 단순화해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만들기의 과정을 살펴보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민주노동당은 헌법소원도 내고 해서 적은 의석수나마 정당명부투표제를 도입해서 비례대표를 통해서 국회에 진출할 길을 열었다. 일정 수준(현재는 3%)의 지지율을 넘기면 비례대표 의원이 탄생하게 된다. 이 비례대표 한 자리를 따기 위해서 여러가지가 필요하지만 항상 필요한 것이 표와 돈이다. 민주노총 열심히 돈도 모아다 주고 표도 모아왔다. 민주노총과 상관 없이 노력한 당원과 지지자도 많지만, 어쨌든 노동당 모델과 민주노동당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막대했다. 2004년 총선 구도도 나쁘지 않았고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상근자, 당원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해서 비례 8명, 지역 2명이라는 정말이지 기적같은 성과를 냈다. 산업화와 도시화 초기의 서구 국가도 아니고 21세기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노동당 모델이 이런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성과를 낸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기적이고 그 앞날을 기대해도 좋은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렇게 정당명부투표제를 잘 활용했고, 앞으로 이렇게 당선된 비례 국회의원들을 다음 총선에서 의무적으로 지역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한 번 생각해보시라. 매 총선마다 5명 정도가 비례로 당선된다고 치고 이 사람들이 다음 총선에서 지역에서 비례로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당선된다면 몇년이면 국회의 절반을 차지할까? 첫번째 총선에서 5명, 두번째 총선에서 10명, 세번째 총선에서 15명, 네번째 총선에서 20명...  이런식으로 하면 현재 민주당 수준인 80석을 채우는데 필요한 총선은 16번이다. 64년 걸린다. 하지만, 사실 과반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단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20석만 채우면 또 국민들의 인지도도 달라질 것이고 재정 상황도 이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개선될 것이다. 매번 총선에서 비례가 5명이 아니라 10명, 20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그 시간은 급속하게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한 10년 20년 보고 해볼만한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계산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2008년 총선을 보자. 민주노동당은 3명의 비례 국회의원과 2명의 지역의원을 당선시켰다. 진보신당은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할 점은 진보신당이 총선을 치룬 형식을 살펴보면 정확하게 민주노동당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선 되었더라도 그건 진보신당의 새로운 모델이 제시되고 성공한 사례로는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비례로 인지도 쌓고 지역 출마하는 모델 말이다. 2004년에 비해서 민주노동당은 반쪽이 났다. 정당명부투표제가 민주노동당에게는 2004년에는 득이 됐지만 2008년에는 내가 보기엔 손해였다. 친박연대와 같이 급조 코미디 정당이 실제로 정당명부투표에서 3위를 함으로해서 지역에 충분한 출마자를 낼 수도 없던 정당(?)이 엄청난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창조한국당도 뭐 비슷한 득을 봤다. 다시 돌아가서 무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던 모델이 살짝 뒤짚어보니 끝도 없는 나락의 길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비례대표후보를 두고 벌어지는 당내 자리 다툼으로 인한 당력의 소모와 분열은 빼고도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의석 늘리기 전략과 관련해서 조금 더 비관적인 상황을 짚어본다면, 솔직히 이번 비례대표로 당선된 3인 중에 다음 총선에서 지역에서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비례의원이 지역에서 살아돌아오는 것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마도 현실성 있는 판단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지속적인 정당지지율 상승으로 비례의석만 꾸준히 늘려가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것으로는 정당지지율이 거의 40%가 되어야 겨우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수준 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 정도 지지율이면 이미 집권 가능한 수준 아닌가.

너무 국회의원 수로 정당의 성패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론을 제기할 분도 있을 것이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말한 사람들의 지지가 정당투표율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명백히 지지자와 정당의 결속이 잘 안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리고 의회를 통해 지지자의 이해를 반영한 법률과 예산이 배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 내에서 "거대한 소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현재까지도 그런 이야기 쓰는 사람들 많다. 국회 의석수는 작아도 대중적인 운동의 힘과 연결하여 의석수 이상의 힘을 국회에서 사용하자. 나는 이 전술이 전술 자체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분명 민주노동당의 의원들은 국회의원 수로 보아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국회에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대한 소수"가 항상 "소수"에서 벗어날 방법은 제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민주노총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가 되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지난 17대 수준의 활동만 해준다면 글쎄 앞으로 한 10년은 민주노동당은 5%, 의석수 5명 정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에 남아있건, 탈당을 했건 간에 민주노동당에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 이런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해할 사람들이 아니다. 숨이 턱 막히고 머리 속에 "한계"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노동당 모델'의 한계 말이다. 조합주의적이다, 개량적이다, 의회주의에 빠진 정당이다 이런 좀 고상한 이야기말고 그냥 국회에서 제 목소리 제대로 내보고 싶은데 그게 왠지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서 진보신당이 만들어졌다고는 보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따르고 있는 이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정당 모델을 찾아보자 정도가 진보신당의 추진 동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 모델을 버리자고 할 용기가 또는 힘이 없었던 것도 아닐까 싶다. 참으로 여기서 난감한 것은 민주노동당 모델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걸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모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모델을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게을러서 또는 무능력해서라고 주장한다면 참 반박하기 거시기해진다. 이 문제는 결국 열심히 노동운동하고 정당운동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분히 비실증적인 방식으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보불로그에 이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신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분들이 이야기를 이어주시면 좋겠다.

너무 국회의원 수만 가지고 민주노동당의 성패와 분열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글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당원과 지지자들의 기대와 민주노동당의 성취가 불일치하고 있고 이것이 개선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로 '노동당 모델'이 현실에서  방황하거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정도를 지적했다고 이해해주시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련다. 다음에는 좀 이야기를 일반화시켜서 그럼 도대체 민주노총이라는 든든한 빽을 가진 민주노동당도 한계가 있다면 한국에서 지역주의, 명망가의 인기, 돈을 떠나서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이라는게 살아남을 수 있는 뭔가 비빌 언덕이 도대체 있기는 한건지 좀 따져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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