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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중견 작가하면 단연 김영하와 김연수다. 이 두 작가는 일단 무지 유명하고 나름 앞날이 유망해서 내놓는 작품마다 늘 주목을 받는다. =이 둘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서로 다르다. 그 두 가지 이유는 내가 세상을 대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김연수는 끊임없이 90년대를 이야기한다. 김연수는 언제나 '역사적 진실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이 질문 안에는 90년대 운동의 패배의식이 짙게 드리워있다. 그는 하필 소련이 망한 91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그 해에 수많은 열사투쟁 속에서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식어가는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과거를 재해석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수정하려는 노력은 삶의 의지가 발동한 것이겠지만 작품 전반에 짙게 드리운 회의적인 시선과 어두운 그림자는 희망의 언어를 압도해버린다. 당연히도 이것이 그의 소설을 읽는 이유인데, 또 당연히도 슬슬 그의 작품이 부담스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이 동화되는 소설만큼 매력있는 소설은 없다. 그러나 그 감정이 너무 과하면 힘겹다.
김영하 소설은 신선하고 재밌다. 초기 소설들은 소재 자체가 특이해서 흥미롭고 [아랑은, 왜]같은 소설은 형식이 파격적이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 문장은 짧고 간결해서 쉽고 빠르게 읽힌다. 비유는 유쾌하고 문체는 영화처럼 감각적이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일본 소설과 비슷한 것도 아니다. 나름 등장인물들이 처절하고 너절한 모습을 보이는데다 [검은꽃]이나 [빛의 제국]처럼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도 써왔기 때문이다. 또 소설 속에 20-30대 마이너리티 골방 백수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공감 가는 측면도 있다.
그런 김영하가 내놓은 신작 소설 [퀴즈쇼]. 20대를 위한, 인터넷 세대를 위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소설은 비루한 20대 청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여전히 재밌고 흐름은 경쾌하다. 문장이 이전보다 가벼워져서 일본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후반부가 조금 지루한 느낌이고 결말은 허탈하지만 성장소설은 늘 흥미롭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소설과 영화 제목이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장면과 함께 20대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된다.
[접속] : 97년 개봉작. 대학교 2학년 때 소개팅했던 애랑 같이 본 작품. PC통신 나우누리에서 채팅으로 나날을 보내던 때라 꽤나 공감했던 작품. 채팅으로 멋진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환타지가 자취생들의 밤을 가득 채우던 나날.
[88만원 세대] :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던 책. 비참한 20대의 삶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만으로도 훌륭한 책. 386세대가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잃지 않으려고 20대를 착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매우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책.
[파이트 클럽] : 오...이 영화는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별 볼일 없는 노동자들이 은폐된 공간에 모여 주먹질을 해대며 열광하는 그 모습. 인간심리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고든 영화. 에드워드 노튼의 진정한 매력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영화.
[우연의 음악] :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 심리의 변화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는 폴 오스터의 소설. 갇혀 있는 세계와 열린 세계. 두 세계의 차이와 유사성. 자발적인 구속과 복종.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
결국 밀폐된 공간에서 퀴즈쇼를 벌이며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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