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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8] 유럽 여행 정리

이렇게 급(??)마무리 하려던 여행 계획이 아니었는데...늘 시작은 거창하고 끝은 개판이듯...지루함과 게으름을 핑계로 하루 하루 미루다가...보석처럼 빛나던 여행의 느낌은 점점 희미해지고 이젠 팩트조차 가물가물. 오래된 파피루스 문서처럼 살살 기억을 되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시점. 그래서 지금 끝내야 한다는 조바심.

마무리는 해야겠고, 왜냐면 마무리 없는 연재란 이상하게 찜찜하고, 숱하게 만들었다 없애버린 포털 싸이트 아이디와 미니홈피와 이메일을 생각하면, 이젠 기록 했다가 뭉텅이로 버리는 일은 그만 하겠다고, 천 년 만 년 진보넷 블로그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잖아.

그래도 다행인 게 여행 중 일기를 엄청 많이 써두었다. 그 내용을 토대로 이제 마무리를 해보려고..
그냥 순서 없이 전체적인 느낌을 살리는 수준으로....

1. 역시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건 고생했던 기억들이다. 매일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에 젖어 제대로 말리지도 못했던 텐트가 뿜어내던 꼬랑내. 습습한 옷, 습습한 잠자리, 습습한 이불...  '다음에 자전거 여행가면 어떤 천재지변과 인재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준비란 게 대부분 장비 문제다. 그 때 고생했던 경험했던 결과가 일본 여행에 반영되어 장비면에서는 엄청나게 발전했다.(이건 일본 자전거 여행에 쓰자) 그러나 여전히 비에 대한 대비는 불만족스럽다. 비가 온다고 무작정 쉴 수는 없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완벽하게 대처하려면 옷을 잘 골라야 하는데...먹는 건 그냥 저냥 좋았다. 대형마트에서 골라먹는 싸구려 인스턴트 음식도 다양하게 차려 놓으면 늘 신난다.

2. 인간관계. 여럿이 가는 자전거 여행은 끊임없이 관계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가 없다. 처음엔 호흡이 맞지 않아 이런 저런 작은 일들이 있었는데 차츰...뭐랄까...서로 조금씩 나서거니 물러서거니 하면서 나름 호흡을 맞췄던 거 같다. 어느 정도 역할 분담도 이루어지고. 이 번 일본여행에서는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태도를 너무 대놓고 유지하다보니 심적으로는 편했는데 좀 여행이 맥아리 없다는 느낌도 받았다. 고생한 만큼 얻는 것도 많지만 자꾸 편해지고 싶었다. 다음 자전거 여행은 좀 더 단촐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닥치면 또 모르겠지만....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어지간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그래서 언어 문제가 수월한 국내 자전거여행을 1, 2년 안에 시도할 생각이다.

3. 일본 여행과 비교하자면 자연, 사람, 풍경, 감성, 교훈, 고민 등등 그 모든 게 유럽에서 훨씬 강력했다. 물론 여행 날짜가 훨씬 길어서 단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선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새로운 공기가 아니라 뭔가 익숙한 공기. 물론 친구들 선물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먹고, 살 때마다 기분이 좋았지만 그게 자전거 여행의 목적은 아닌 거 같다.

4. 유럽인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많이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내 삶에도 여러 모로 자극이 되었다. 6시면 문 닫는 대형마트들, 너무나 깨끗했던 독일 캠핑장, 그에 대비되는 너무나 시끌벅적 지저분한 암스테르담 캠핑장, 자기 앞마당에 텐트를 치게 했던 친절한 벨기에 부부, 한국을 이슬람국가로 생각해서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을 실감케했던 사람, 연신 '곤니찌와'와 '니하오'를 외쳤던 사람들, 유일하게 한국어 팜플렛이 전시되어 있었던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그 팜플렛에 박힌 삼성 로고... 순간 순간에 대처하는 그들의 감정과 느낌, 편견과 지혜. 그 모든 걸 읽어내고 싶었지만 앞으로는 여행에서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을 거 같다.

첫 여행이라 너무 설레였고 그 만큼 달려들고 싶었고 어설퍼서 힘들었지만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그런 여행이었다. 결과적으로내게 남은 성과 하나를 말하자면 세상은 넓다는 걸 알았고  그 세상 속에 나도 함께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는 사실.

안녕. 언제 또 그곳에 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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