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해당되는 글 2건

  1. 우도에서 제주시 , 그리고 서울 (4) 2007/12/05
  2. 제주 - 물드리네 (8) 2007/12/03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제주도 여행기

1. 비행기와 자전거
2. 공항에서 신창리까지
3. 물드리네
4. 고산에서 우도까지
5. 우도에서 제주시, 그리고 서울


드디어 마지막 일기가 될것인가.

#우도- 조천 : 바람과 씨름하다

닷새째는 보일러 꺼진 방에서 추위에 오들대며  아침부터 식은 밥을 먹고, 김밥용김에 딱딱하게 굳은 찬밥을 고추장에 대충비벼 말아가지고 점심을 마련해서 출발했다. 이제 반찬이 고추장이랑 김, 양파짠지 밖에 남지 않았다. 찌뿌두한 몸으로 밖을 나서니 전날 저녁부터 무섭게 불어대던 바람이 계속이다.  9시배를 타고 나가려면 한 40분 정도 우도를 돌 시간이 나서 해안도로를 조금 돌다가 시간이 되서 하우목항에 표를 사러 갔다. 에 그런데 하우목항에서는 11시부터 나가는 배가 있단다. 우도에는 우도항, 하우목동항 두곳이 있는데, 우도항에서나 9시에 배가 있다는거 .. 그래서 그때부터 미친듯이 달린다. 해안은 바람이 더 거세고  마을이 더 좋으니 마을쪽 길로 가자 해서 급히 달리며 우도를 마지막으로 핥아 먹고 아슬아슬하게 배를 탔다. 나는 먼저가서 배를 잡고 이완은 표를 끊어오니  가까스로 탈수 있었다. 아 우도 안녕!

이날은 공룡이 소개한 조천에 있다는 애기똥풀님 집으로 목적지를 잡았는데, 이곳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안가에 있는 곳이 아니다. 성산항에서 한번도 달려본적 없는 도로로 갈것인가 돌아가는 길이지만 안전한 해안도로로 가다 조천리에서 안으로 들어갈까 고민이 된다. 성산항 대합실에가서 몸도 좀 녹이고 한번 물어보자 해서 대합실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컴퓨터가 있어서 그 김에 일요일 서울에 올라갈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에고 딱 아침 9시 표밖에 남지 않았다. 급히 표를 예매하는데 어쩌다 보니 거의 한시간이 흘러버렸다. 율무차 한잔씩을 먹고 직원들에게 길을 물으니 해안도로가 아니면 자전거 도로도 없고 위험해서 못간다고 겁을 준다. 그래 할 수 없지 돌아가자하고 나섰다. 가다가 갈수 있으면 한번 가보고.

바람이 바람이 미친듯 분다. 온몸을 때리고 밀어내는거 같다. 지금까지 바람은 바람이 아니었던가. 내리막에서도 패달을 놓으면 자전거는 정지한다. 구름에 해도 가려서 추워죽을거 같다. 짜증이 밀려온다. 바람과 씨름을 하면서 바람에게 애원하고 성질내고 욕하면서 혼자말을 해봐도 달라지는건 없다. '이봐 그만할때도 됐잖아. 아 제발 좀 날 놔줘. 이제는 좀 뒤에서 밀어주면 안되겠니?' 진짜 속으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 이제 이완이 말하지 않아도 히치가 절실하다, 쌩쌩 지나치는 트럭 뒤꽁무니를 매달리듯 처다보다가 결국 세화까지 4-5키로를 남기고 트럭을 얻어탔다. 그런데 이 트럭도 멀리 가는 길이 아니라 세화도 못미쳐 내려야 했다. 죽자고 죽자고 달렸는데 한시간 넘어서 12키로 밖에 못갔다. 거기가 김녕. 지칠대로 지쳐서 김녕 바닷가에서 아침에싼 김밥을 먹었다. 와우 덜덜덜, 가죽같은 김밥김 돌덩이 처럼 차가운 밥. 잘하면 목에 걸려 체하겠다 싶었다. 구름에 가린 해가 살짝 나올때마다 햇살의 미세한 따뜻함 조차 금방 알아차릴수 있도록 몸은 민감하게 얼어버렸다. 정말 이대로는 못가겠다 싶어서 밥먹고 나온길에서 히치를 다시 시도했다. 10분을 기다려도 차를 못잡았다. 트럭이 있어도 다 뒤에 짐이 그득하고... 그러다 1시쯤 조금 넘었나 양파를 실은 트럭을 잡았는데, 시내까지 가신단다.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셔서 양파가 다칠지 모르는데도 조금 남은 공간에 자전거를 실어주시고 조천까지 얻어탈수가 있었다.


▲덜덜덜 히치를 하자


조천리, 해안 도로와 1118번 도로가 만나는 부분에서 내려서 1118번 도로를 타고 목적지 까지 올라가기 시작한다. 제주도는 중앙에 한라산이 있어서 해안에서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애기똥풀님이 그길을 자전거 타고 오실수 있을까요? 했던 이유를 금새 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한시간 넘게 오르막에 오르막 밖에 없다. 한번도 내리막은 커녕 평지도 안나온다. 그래도 바람은 잠시 쉬는지 쫒아 오지 않았고, 아니 해안에서 중앙으로 불고 있어서 바람을 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쪽은 구름도 별로 없어서 곧 몸이 녹기 시작했다. 얼었던 몸이 오르막을 오르고 햇빛을 받으니 녹기 시작해서 손이 저려온다. 손목을 꼭 묶었다 풀어서 피가 통하는 것처럼. 길도 예쁘다. 1차선 도로에 양쪽으로는 가로수 나무들이 빽빽하고 그 틈틈히 귤농가가 비친다.  다니는 차도 별로 없어서 자전거 도로가 없어도 하나도 위험치 않다. 조금씩 지날때마다 풍경이 바뀌니 달릴맛이 점점 난다. 한번 정도 내려 끌바해서 올라가긴했지만 재미나더라. 오르막이 재미있다는 변태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낑낑 비틀비틀 올라가면서도 헉헉대면서도 입은 웃고있는 나를 느낀다. 오르막에 어느정도 올라 뒤를 돌아보면 저 해안까지 보인다. 산에 오른거 같아.

그렇게 한시간넘게 달리다 드디어 97번도로-번영로 교차점에 도착했다. 이제 번영로라는 도로를 조금타면 애기똥풀님 댁이다. 번영로는 꽤 넓고 자전거 도로도 있네, 괜히 돌아왔다 생각하면서 달리는데 이내 1차선으로 좁아지고 차들도 엄청다니고 도로 중간중간이 공사중이라 대형 트럭들이 1차선 도로를 꽉채우고 옆을 부앙 지나친다. 아찔. 비틀대며 긴장을 바짝하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다. 야호. 오늘이 정말 힘들었던거 같아. 달린 시간은 얼마 안되는데 , 정말 추위는 무섭구나. 아니 첫날 바람빠진 타이어가 더 힘들었나? 암튼...애기똥풀님 집에 들어섰을때의 감동이란.

마음속으로 바라고 바라던 따뜻한 유자차대신, 모과차를 마실수 있었고 몸이 녹으면서 얼굴에 열이 피어오른다. 바구니에 내어오신 수북한 귤을 미친듯이 까먹고 뜨끈한 물에 샤워를 하고 방에 일치감치 들어가 누웠다. 원래는 일찍 도착해서 근처 오름에 올라보자는게 계획이었는데. 방에 들어서고 나니 그 바람 속으로 또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이날은 저녁식사 전까지 잠을 자고, 저녁을 어김없이 세공기를 싹싹비웠다. 애기똥풀님이 놀라시며 정말 잘드시네요한다. 아하 얼마나 맛있던지.

밥먹고 방에 들어와 뒹굴뒹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꺼운 책을 가져 갔는데, 지금까지는 거의 읽을 시간이 없었다. 음 앞에는 쉬운거 같았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어렵고 재미없지? 읽다가  이완과 조금 떠들었다. 무슨이야기를 했더라. 이제라도 진안에 어떻게 갈 방법이 없을까 의논을 했지만 아무래도 쫒겨서 가게 될거 같다는 생각에 너무 아쉽지만 깨끗이 포기하자는 이야기.. 요즘 하고 싶은게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러게.. 근데 뭐 심각하다면 심각하고 또 아니라면 아니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찌감치 잠에 빠져들었다.




# 마지막날 , 오름 , 제주시 , 그리고 안녕

6일째 날이다. 6시 반부터 일어나서 애기똥풀님이 차려주신 맛있는 밥을 또 얻어 먹고, 아침이라 두공기 (한공기 먹고 끝내렸더니, 애기똥풀님이 어제 밤에 먹는거 보고 밥 많이 하셨다고 더먹으라셨다..) 짐을 챙겨나오니 9시다. 오늘은 제주시에 있는 미류네 집에 가면 일정이 끝난다. 

번영로로 쭉 달리면 제주시라서 위험하긴하지만 번영로를 탔다. 달리다 도깨비 공원이라는 허섭하고 웃긴 곳에 살찍 기웃거리고 길가서 가장 가까운 세미오름으로 향했다. 그냥 작은 뒷동산 같은 곳이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서 좀더 야산다운 느낌이고. 아기자기하고 포슬포슬한 느낌이다. 이삼십분 올랐나. 꼭대기다. 사방이 두루보이고 하늘이 머리위에 걸렸다. 이 지역 자체가 상대적으로 조금 높아서 그런지 아래를 보면 깨나 높은 산에 오른거 같다. 저멀리 해안선까지 보이니 말이다. 조금 더 가 저 쪽 봉우리?에 오르니 파노라마 사진처럼 360도가 쫘악 보인다. 동쪽에는 오름이 좋은게 많다하여 두세곳은 가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오르니 좀더 욕심이 난다. 그곳을 관리하시는 분인듯한 할아버지께 가는길에 올라가볼 오름이 더 있나 여쭤보니 에고 없단다. 아쉽지만 뭐 여기도 좋다하면서 처음 봉우리(봉우리라고하기 뭐하네..)로가서 애기똥풀님이 아침에 챙겨준 군고구마랑 귤을 까먹으며 또 잠시간 신선 놀음을 하고 내려왔다.


▲자전거와 짐을 내려 놓고 오름에 올랐다


▲세미오름


내려와서는 다시 번영로를 타는데 길이 여기부터는 좀 넓어져서 자전거 도로가 잠시 있는 구간이었다. 그리고 제주시 방향은 그냥 내리막이라 쉬이 내려간다. 그렇지만 얼마지 않아서 길이 1차선으로 좁아지니 정말 위험하다. 차들은 너무 빨리달린다. 그래서 교차로에서 작은 마을쪽으로 빠지는 길로 내려섰다. 전날 해안선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만큼 이제는 미친듯 내리막이다. 길은 시멘트 포장이라 덜덜덜 하는데 더 재미있다. 차도 없으니 미친듯 날아 내려간다. 흘끗 흘끗 지나치며 목장에 송아지며 소들을 보며 한 10분 쭉 내리막만 달리다 보니 마을이 나온다. 마을 밖으로 나서니 또 그럴싸한 도로. 동쪽으로 길을 잡고 따라 가니 이길은 또 오르막이다. 에고 결국 다시 번영로로 만나는 도로였다. 영락없이 번영로를 타고 제주시까지 가야한다.

이때부터 제주시근처까지 완전 긴장상태로 내려왔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죽을지도 몰라 이런 분위기로 덜덜덜 하면서 이완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마구 내려왔다. 근데 또 이게 내려오고 나니 재미있다. 이완도 무사히 내려와서 내생각에 동의를 해줬다. 크.

생각보다 너무 일찍 제주시에 들어와서 미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를 안받으신다. 어차피 점심 도시락은 어디서 먹고 들어가야지 싶어서 근처 바닷가쪽으로 내려갔다. 화북이라는 곳이었는데, 공장지대라 길을 잘못들었나하고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니 , 친절한 아주머니가 근처 부두에 가보라며 길을 알려주신다. 작은 부둣가가 나왔는데, 고요하니 참 좋다. 막걸리 소주가 딱 생각나는 곳이다.



▲화북 부둣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마치 그림같이 고요한,


▲ 도시락을 먹자




▲ 물비늘이 반짝 반짝

밥을 먹고 볕을 쪼이다, 미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아 그 집으로 향했다. 조금 헤매긴했지만 금방 찾아 들어갔다. 집이 반질반질 윤이 난다. 이집에 20년이나 사셨다니 닦고 닦아 길이 들었나보다. 어머니가 내어주신 메밀차를 마셨는데 , 처음먹어보는데 고소하고  코코아향이 난다.  어머니가  열심열심 제주시 안내를 해주셔서 들어보는데 우리가 하루에 다 가기는 힘들거 같다. 결국 오름 같은게 없는지 여쭤 보고 근처에 있다는 사라봉에 가보기로했다. 짐을 풀고 가벼이 자전거를 타니 참 좋다. 사라봉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묶어놓고 오르니 또 여기도 좋다. 여긴 정말 그냥 서울에 있는 뒷산같다. 동네에서 운동나온 사람도 많고, 그래도 오르면서 바다도 보이고 꽤 멀리 까지 보이니 재미나다.

전국 팔도에 가도 요즘에는 똑같은 츄리닝에 장갑 선캡을 하고 괴상한 포즈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모습들이 참 너무 기묘해서 영상으로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이야기를했다. 뭔가 음모가 있을거 같다는 이야기.. 요즘 동네 쉼터 마다 보이는 보라색의 정체 모를 운동기구가 제주도에도 아니 우도까지 와있다.(뭔지 아는 사람은 알거다.) 뭔가 무서워.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려와서 호떡도 하나 사먹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막걸리를 사지 않은게 생각나서 자전거만 묶어두고 다시 집앞으로 나왔다가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500원짜리 떡볶이를 사먹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가서 먹는데 운동하는 사람들, 꺌꺌대며 딱지치는 아이들, 간만에 그 어렸을때의 홍조띤 저녁냄새를 맡는 기분이었다.  막걸리를 사들고 들어가 씻고 저녁을 먹었다. 음 이번에도 세그릇이 들어간다. 봄동 배추나물, 백김치, 갓김치, 콩장, 냉이 된장국 오오 맛있는거 천지였다.

맛나게 먹고 방에 들어와 막걸리를 비운다. 이완이 전날 성산항 대합실에서 뽑아먹은 율무차 종이컵을 씻어서 여태 가지고 있다가 꺼내서 재활용을 한다. 오오오 멋지다.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감동의 종이컵에 술을 마시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들과 만나서 변화하게 된것들에 대해서..  그러다 연기가 피우고 싶어 동네 산보를 나갔다. 운동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시이소를 타고 구름다리에 올랐다, 철봉에도 매달리고 꺌꺌꺌 이유없이 웃다가 들어와 술을 마져 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참 예쁘다.

그렇게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다시 자전거를 포장해서 넘기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 꿈같았다. 어떤게 현실인지 감각이 안돌아온다. 너무나 이상한 마음으로 또 변화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올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변화하고 돌아다니고 했던거 같다. 글쎄 이게 맹목적인, 허허로운 느낌이 들때도 종종 있지만, 이유가 있을거야.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가. 그건 어느날 내가 슬쩍 주워 올릴수 있게 될 거 같다. 지금은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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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5 13:05 2007/12/05 13:05

제주 - 물드리네

from 너에게독백 2007/12/03 15:45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제주도 여행기

1. 비행기와 자전거
2. 공항에서 신창리까지
3. 물드리네
4. 고산에서 우도까지
5. 우도에서 제주시, 그리고 서울


물드리네로 가는길, 차안에서 보니 밝을때 보면 참 이쁠거 같은데 어두울때 와 아쉽다.  도착하니 컴컴한데 마당에서 세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개집을 짓는다한다. 여자 둘과 남자아이 하나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너무 어두우니 이만 접자면서 우리를 불러 자 이것 좀 옮겨달라 바로 일에 투입이다.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고 통성명도 안했는데. 흐흐.  뭐 일이랄것은 없고 쓰던 나무들을 한 곳에 모아 비올것을 대비해서 비닐을 씌우는것을 도왔다. 그리고 집에들어서니 집이 참 소담하다. 갈색 빛 커튼, 보자기, 방석이 자연스럽게 앉아 있고 통나무로된 탁자 겸 식탁 그리고 안쪽에는 난로까지. 좋구나..  두리번 거리고 있어도 말거는이 하나 없고 각자일에 바쁘시다. 약간 어색하니 앉아 있으려니 자인이라는 분이 말을 걸어오신다. 자인씨는 이 집에 사는 분은 아니고 친구분이신데 일이 많아 도우러 왔다고 하시며 이것저것 물으신다. 밥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니 그곳에는 총 세명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까무잡잡하고 장난기 어리게 생긴 소년같은 미선과  안경 위로 눈을 치뜨는게 너무 귀여운 선자 그리고 미선의 아들 복숭아 같은 얼굴을 가진 소년 하린. 

저녁밥상이 차려지고 이완과 나는 당황했다.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까서 올린 꼬막들이 한접시에 갈치 무조림이 올라와있는게 아닌가. 이건 분명 우리를 위한 특별 요리인거 같은데.  마주앉아 눈짓을 주고 받다가 나는 그냥 웃으며 조용히 피해 먹었다. 그런데 한분이 갈치조림 많이 있으니 좀 먹으란다. 당황하고 이를 어쩌나 하는데 이완이 대뜸 말을 한다.

"저희가 채식을 해서요 , 저희가 반찬을 가지고 온게 있는데.."
 뭐 결론은 아주 심플했지.
" 아 그래요?  그럼 진작 말을하지 편안히 먹어요." 
" 역시 평소에 먹던대로 먹어야돼~"
이완과 내가 싸온 반찬을 꺼내니 한상이다. 콩장, 채식 김치, 무말랭이, 김, 깻잎..

난 왜  그 순간 긴장했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면 되는것을. 내가 참 언제나 갈등 상황을 회피하는구는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 늘쌍 갈등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긴장하고 사는구나 싶기도했다. 아무튼 그 순간의 즐거운 전화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왜 채식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듣고 싶어하고 아들 하린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며, 채식을 하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는 소리까지. 우리가 싸온 반찬도 참 맛있게 나누어 먹고 하니 참 좋았다.

이 집서는 우리를 묵어가게 해줄 요랑으로 저녁에 받아들였다는것을 알았다. 우리는 오기전에 연락했을때 하루 묵어가는 것은 어렵겠다고 하셔서 S의 어머니 집에 묵어가겠다 이미 약속을 해버렸는데 말이다. 알고보니 이 분들은  자신들도 우리를 본적도 없는 사람인데 전화통화만으로 재워주겠다고 하는것은 어려웠고 낮에 오면 같이 보고 하는거 봐서 이쁘면 재워주자 하고 계셨단다. 그렇지, 듣고보니 그것도 그렇다. 그래서 이날은 S의 어머니와 약속이 있으니 가서 자고 , 다음날 와서 일을 돕겠다 했다. 어차피 여유있게 다니기로한거 오늘 잠깐 이렇게 스치고 가서 뭐 하나 싶기도 하고 일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고.

모두의 경이로운 눈빛을 받으며 남 한그릇 먹을때 밥을 3그릇이나 해치우고, S의 어머니께 드릴 천연염색한 손수건을 사서 다시 그집으로 향했다.

S의 어머니는 정말 다감하신 분이라 우리를 너무 걱정하고 계셨던거다. 밥먹기 전부더 사이사이 계속 전화가 왔고 날이 어두운데 자전거를 타고 온다니 어디냐.. 낙천리에요 했더니 거기가 얼마나 멀고 어두운데 거기 있느냐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시겠다 하시는것을 극구 만류하고 갔더니 면사무소 앞에 차를 타오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다. 아이구.. 죄송해라. 어머니 차를 타고 1-2분 들어가니 집이다. 어머니가 참 귀여우시다. 말투랑 표정을 여기에 어떻게 설명하랴. 혼자 살아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며 걱정하시고, 반찬이 없다 걱정하신다. 뭐 우리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하는데도.. 너무 잘해주셨는데 , 다음날 새벽에 일을 나가셔서 간다 인사도 못하고 나와서 정말 죄송했다.

첫날 묵은집

그날 밤 수첩에 쓴 메모에 이리 적혀있다.
모든게 원래 그러기로 했다는듯이 굴러간다. 걱정은 필요없다. Don't  Panic!
천천히 떠돌고 싶다. 웅크리지 않고 , 지레 걱정하지 않고. 


그렇게 긴 하루가 가고 둘째날.

느즈막히 일어나 어머니가 꺼내놓고 가신 반찬과 밥을 챙겨먹고 고구마를 싸들고 물드리네로 향했다. 짐이 없어서인지 (짐은 물드리네에 전날 두고 왔다) 자전거는 어제보다 훨씬 편했다. 밤에 지나올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을 지나친다. 어제와는 다르게 바람이 거세다. 밭들, 갈대들, 자전거를 지나치면 푸드득 날아오르는 겁많은 꿩들, 가다 길을 잘 못들어 쉬는 김에 몰래 귤도 따먹고 , 파랗고 녹색인 그라데이션이 너무 예뻐서 잠시 서서 보니 브로콜리의 밭. 이렇게 저렇게 헤매면서 도착하니 11시가 다되었다. 밝은날 집을 보니 너무 좋다. 마당에는 배추, 나무 옆에 흰둥이, 뒷편에는 연못까지.



물드리네

물드리네 마당

연목

뒤켠에 있는 연못



이 앞에서 술먹으면 참 좋겠다


미선씨는 없고 선자씨 혼자 작년 감물 들였던 천에 쪽물을 다시 들이고 있다. 안에가서 몸좀 녹이고, 일할 마음이 들면 일을 시작하라며 안에 들여보내서, 우리는 들어와 연잎차를 먹었다. 난로가에서 그러고 있는데 이내 자인씨가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가 어깨를 두드리니 자신이 전문가라 하시면 봐주시겠단다. 엎드리라더니 수건까지 가져오서셔 머리를 감싸서 뭔가 본격적으로 하신다. 전문가의 손길. 손끝이 여물다고 해야하나. 아프긴했지만 시원했다. 뭐 디스크 걸리기 쉬운 체형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몸에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몸 을 돌보는것과 삶을 돌보는 것 그리고  다른 삶을 위해 활동하는것이 그래 맞다 이렇게 이어지지라고 새삼 다시 깨달았다. 이런거 너무 좋다. 몰랐던거 아니지만 어디선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와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맞아떨어져 나가는거.



고구마 감자 구워먹은 난로.  이 집 겨울난방은 이 애 하나로 다 된다고.
위에 있는 돌은 잘때 하나씩 들고 들어가서 배에 올려 놓고 잔다. 완전 따듯. 해달이 된거 같기도하고.




나가서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한 일은. 상상치도 못했고 생전 처음하는 일이었다. 이런일을 하게 될 줄이야.. 여름에 감물 들인 천을 말릴때 날아가지 말라고 송곳을 꼽아 두는데, 그 송곳을 내년에 다시 쓰기 위해 씻어두는게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송곳도 처음본다. 녹슬고 감물이 굳어진 송곳을 닦는데 , 그래도 금새 끝날줄 알았다. 완전 단순 노동이었는데.. 음 두시까지 하고 나니가 10분의 1이나 했나? 걱정이 엄습해온다.
밭에서 딴 배추랑 여러가지 채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또 한참 난로 앞에서 수다를 떨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날도 추운데 일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5시쯤 들어가서 고구마를 먹고 아침에 미선씨가 나갔다가 외상값 대신 받아온 국수를 끓여 먹었다. 미선과 선자씨가 국수를 하도 좋아하는것을 본 한 친구가 백석의 국수라는 시를 국수먹을때 꼭 소리내어 읽어달라했다며 국수를 먹고나서는 시낭송회도 했다. 백석의 시는 역시 멋지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집에서 싸온 고구마를 또 난로에 구웠먹었는데.. 괴산 호박고구마가 여기서도 인기가 엄청 좋았다. 이왕 시작한거 끝은 봐야지 싶어 밥먹고 또 일에 들어갔다.




아 단순노동을 계속 하려니 점점 정신은 혼미해지고, 손마디 마디가 뻐근하다. 낮에는 밖에서 하다 밤부터는 작업실에서 했는데 문닫고 있으려니 세상이랑 괴리된거 같고ㅡ 무슨 새우잡이 배에 타고 있는거 같았다. 크 . 그러다 나가서 연기를 피워올리며 하늘을 보니 이야. 점점 날이 개서 하늘이 아주 맑다. 별이 총총총 . 감동적이다. 거의 밤 11시가 되어서 끌려 들어왔는데, 결국  한시간분량을 남기고  들어왔다.



이때부터 막걸리를 조금씩 먹으며 이것 저것 이야기를 했다. 귀농에 대한 이야기, 공동체의 배타성, 감시에 대한 이야기,비혼에대한이야기..  비혼이라는 말만 있고 아직 내용이 풍성하지 못하다. 비혼 공동체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아플때도 죽을때도 그곳에서 있을수 있어야 한다는 고민, 때문에 보험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등을 이야기 해보고 있다는 고민들을 들었다.

난 피곤에 못이겨 혼자 먼저 일어나 잠자리에 들었는데.
씻을까 말까 하니 "이녘 몸냥하시오" 한다.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뜻인데 몸냥이라는 말이 참 이쁘다는 이야기를 했다. 몸이라고 써놨지만 아래아 붙여서 마음이라는 의미고 몸이라고 발음되는...
몸하고 싶은대로가 마음가는대로고 마음가는대로가 몸가는대로.. 참으로 이쁘고 재미나고 편한 사람들과의 하루였다. 이런 인연들이 각각  잘 살다가 다시 잘 만나고 이어지고 하면 참 좋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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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3 15:45 2007/12/03 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