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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3
    뚝섬 서울숲에 가다(6)
    말걸기
  2. 2006/09/02
    축포 한 방 쏜다(6)
    말걸기
  3. 2006/09/01
    민주노동당 선거를 보고 기억이 새록(9)
    말걸기
  4. 2006/08/30
    사랑니를 뽑아야만 하는 이들에게(8)
    말걸기
  5. 2006/08/30
    진경을 만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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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8/25
    정답은... 야스쿠니 신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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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8/19
    [상품 퀴즈] 여기는 어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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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8/19
    이게 어떤 장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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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8/19
    낙하산(2)
    말걸기
  10. 2006/08/19
    여행 퍼레이드 끝(4)
    말걸기

뚝섬 서울숲에 가다

 

뚝섬에는 <서울숲>이 있다. 말걸기는 이번에야 알았다. 어제 사진동호회 번개출사가 여기에서 있었거든. 넓은 공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부러움을 감출 수 없는 날이었다. 근데... 왜 이리 더워?

 

서울숲에는 출입을 제한하는 생태숲이 있는데 꽃사슴 등등이 살고 있다. 근데 그곳이 과연 야생 동물들이 살 수 있는 숲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꽤나 넓은, 혹은 잘 조성된 동물원 같다. 초식동물 사파리라고나 할까... 꽃사슴이 거기서 살 이유도 없는데 사람들을 위해서 가두어 놓았다면 슬픈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사람들이 해꼬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뿔이 도도해 보이는 사슴, 오리에 관심 갖는 사슴. 물을 마시는 사슴. 그리고 먹이를 찾는 듯한 새(백로인가? 뭐지?). 사진에 담아 왔다. 철조망 사이로, 숲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320s | f/2.8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80s | f/3.5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500s | f/3.5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200s | f/3.5 | ISO 100

 

 

축포 한 방 쏜다

 

말걸기[제대로 바보가 되다] 에 관련된 글.

 

 

드디어 말걸기의 컴퓨터를 고쳤다. 시베리아-몽골 여행을 간 사이에 파란꼬리 손에서 멈춰버린 말걸기의 컴. 금요일 저녁 용산에서 들쳐업고 왔다. 이제까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다운받고 설치하고. 물론 다 된 건 아니지만 당장 사용할 건 준비해 두었다.

 

고친 컴퓨터로 여름 내내 찍었던 사진을 한 번 훑었다. 벌써 추억처럼 되어버린 시베리아와 몽골의 땅. 동경과 근교의 풍물들. 어쨌든 40GB가 넘는 사진을 손볼 일이 까마득하다. 대부분을 지워버리겠지만...

 

 

어쨌든, 컴을 고쳤으니 자축이나 함 해보자. 축포를 쏘자!

 

@ Nikon D200 / Nikor 24-50mm / ISO 100 / 50mm / F 9 / 8.50s

@ 동경 이타바시구 하나비(불꽃놀이)에서

 

축포가 너무 화려한가?

 

 

민주노동당 선거를 보고 기억이 새록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은 선출되지 못하였다. 투표율 49. 63%. 말걸기에게는 민주노동당이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산된 기억이 없다. 그럼 초유의 사태였나?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블랙코미디였던 이번 선거는 말걸기의 오래 전 희미한 기억을 일깨운다.

 

 

97년 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하진 않다. 말걸기가 다니던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총학선거나 다른 선거와 함께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재선거일 것이다. 선관위는 각 학과 학생회장 등으로 하여금 재선거에서 흔히 겪기 쉬운 투표율 올리기에 매진하였다.

 

당시는 대학의 학생회가 붕괴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의 영화란 없었다. 학생회를 이끄는 자들에게는 학생회의 명맥 유지가 대단히 중요했다. 말걸기도 학생회가 여전히 '운동권'의 둥지였으면 했다. 하지만 어쩌랴! 붕괴하는 학생회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 그것도 원래 일정이 아닌 재선거에 유권자들의 절반 이상은 냉담했다. 대단히 각성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들만의 잔치'에 애써 공들일 필요가 없으니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지. 투표 마감은 다가오는데 50%에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

 

 

대학엘 다니면서는 학생회 활동을 주욱 했었고 후배들의 활동도 도왔던 말걸기는 선거 진행에 관심이 많았다. 마지막 날 오후, 선거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던 단과대 안터(로비)에 나갔더니 과학생회장이 말걸기에게 말을 건다. 

"말걸기! 4학년이나 복학생 등등 중에 휴학생이나 뭐 그런 사람 없어? 여기 명부에서 찾아 줄래?"

 

 "얘도 휴학했고, 쟤도 휴학했는데... 근데 왜?"

 

"선거 정족수에서 빼려고.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을 것 같거든."

 

"잉? 그런 게 어딨어. 선거하기 전에 선거인명부는 확정하는 거 아냐? 지금 빼면 안되지."

투표 시간은 종료되었다. 언제나처럼 개표는 계단식 강의실에서 공개했다. 말걸기도 주루루 쫓아 들어갔다. 두 개의 선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양 선본의 운동원들과 후보들, 선관위 구성원들이 다수였다. 그리고 말걸기 같이 여기저기서 찾아온 학생회 활동가들. 선관위는 각 학과 학생회장 등의 도움을 얻어 선거인명부에서 휴학생 등을 골라내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을 유권자 총수에서 제외했단다. 근거를 설명했다. 학년초라 학생처에서 받아온 명부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단다. 그러니 뺄 수 있단다.

 

띠~용~ 이럴수가! 말걸기는 당시만 해도 제 눈에 벗어나는 건 절대 못보는 작자라서 손 번쩍 들고 발언을 했다. 그럼 안되지!  선거인 명부는 선거 전에 수정했어야지. 그때도 충분히 할 수 있었잖아. 그때 안해 놓고 투표율 땜에 지금 하면 안되지! 선거 무효!

 

거의 말걸기가 혼자 개기는 분위기였는데, 말걸기가 계속 개표 진행을 방해하자 다들 혐오와 짜증이 섞인 눈초리로 말걸기를 쏘아붙였다. 쪽수가 안되면 져야지 뭐.

 

당선자는 가려졌고 뒷풀이가 열렸다. 두 선본의 뒷풀이 중 좌파 계열 연합 후보의 뒷풀이 장소엘 쫓아 갔다. 거기에 아는 녀석들도 많고, 무엇보다 NL이 다굴한 뒷풀이엘 가면 끈적여서 못 버티니... 하여튼 뒤풀이 장소에 선관위원장도 있었다. 선관위원장은 95학번으로 당시 영문과 학생회장이었다. 현 사회당의 조직 기반이었던 '공동체 학생연대'의 조직원이었다. 술을 한참 마시더니 선거인명부 조작이 그래도 맘이 걸렸나 보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 선거인 명부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한다거나 선거가 무산되면 자기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다나 어쩐다나... 허거덕. @.@'

 

'저것이 몇이나 처먹었다고 벌써 정치적 생명 따위나 운운하고 지랄이야. 씨발, 운동권 다 썩었다 썩었어!' 나이 먹으면 이 상황에서 정치적 생명 운운해도 되나? 역시 이런 점에서 말걸기도 모자랐던 시절. 그 자리에서 선관위원장과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얼굴 익고 잘 아는 후배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제발 선거 결과를 뒤집어라. 그 중 하나가 선관위원장과 같은 조직원이었던, 나름대로 믿음이 가는 후배였다.

 

다음날 선거 결과 공고가 붙었다. ㅇㅇㅇ과 ㅇㅇㅇ이 각각 정회장,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공고. 조직 라인도 없는 말걸기는 어디 가서 쪽수 모으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이 망해가는구나 한탄만 하였다. 그런데 그 날, 어쩌면 다음 날. 믿음을 갖고 있던 '공동체 학생연대'의 그 후배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말걸기가 선거 결과에 문제제기하는 자보를 붙일 줄 알았다. 그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퍽! 퍽! 퍽! 우당당탕! @.@~

 

이런 개새끼들이 다 있나. 지네 조직원이 책임지고 있던 선거관리가 개판 되었는데 자기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직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선거결과에 문제제기를 해야지, 왜 빽도 조직도 없는 말걸기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그래! 하지만 비겁했던 건 '공동체 학생연대'만이 아니었다. 학생회를 장악한 NL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고 대장정이나 21세기 진학련도 마찬가지였다.

 

아, 줄 없는 활동가의 비애여!

아니다. 말걸기는 줄 없이 살래...

 

 

선거는 선출을 위한 절차다. 그런데 어떤 선거는 투표율 규정 때문에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선출을 위해 선거를 치렀는데 선출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10여 년 전 말걸기가 겪었던 선거는 원래 선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거였다. 그런데 운동권들이 장난쳐서 억지로 달성시켰다. 그러니 학생회가 망하지. 절차에 충실한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내용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운동권의 독선과 오만을 관철시키고자 한 짓이었다. 그러니 외면당하고 그래서 투표율은 낮아지고, 그 때문에 또 억지를 부리고. 운동권의 악순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싹이 트고 있었다.

 

8월 31일에는 민주노동당이 장난칠 기미를 보였다. 사실 두번째 투표 연장은 꽤나 편법적으로 보인다. 그래도 0.38% 미달로 억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①어처구니 없는 이영희의 컴백, ②이영희를 추천한 현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만, ③민주노총 지도부가 사람 심는 노동부문 최고위원 제도의 부당, ④점점 한심해지는 민주노동당의 작태에 대한 당원들의 심판이거나, 그에 따른 무관심의 표출이다.

 

위의 네 가지 평가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율 넘기기 위한 당, 혹은 선관위의 노력이 미진했다는 한심한 평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말걸기는 (근거는 없지만) 이덕우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선관위원들의 의중은 이를 의식하고 있었던 걸고 믿고 있다. 매끄럽지 못하여 항의를 받는 한이 있어도 돈 발라쳐 전화 돌리고 6시간 연장하는 따위의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라고 50%를 넘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박이긴 해도.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압력, 당 지도부의 협박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지도부(혹은 그 중 일부)는 선거관리의 미숙함으로 인해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된다. 그런 소리 하는 새끼는 진짜 나쁜 새끼다. 악당에 불한당에 양아치다.

 

중요한 건 선거 평가를 제대로 해서 현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만함에 경고를 주고, 그리고 노동부문 최고위원 제도의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당의 일반적인 선거 내지는 투표 제도의 문제점도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니를 뽑아야만 하는 이들에게

 

말걸기님의 [아듀! 사랑니 둘] 에 관련된 글.

 

 

'사랑하다'의 옛뜻은 '생각하다'였다. 그렇다면 '사랑니'는 아마도 '생각나게 하는 이'라는 뜻이겠지. 현대어라면 '사랑받고 싶은 이'라고 억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입안 구석에서 자꾸만 관심을 갖아달라고 칭얼대는 이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모두 4개의 이들이 바로 사랑니.

 

의학적 지식은 없으니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사랑니는 쉽게 썩는다. 혹은 사랑니 주변의 잇몸이 자주 아프다. 아무래도 다른 이들처럼 곧게 뻗어나지 않고 기울거나 아예 누워버리기 일쑤라서 그런가 보다. 말걸기의 사랑니 중 위에 난 2개는 아래로 곧게 뻗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아래의 2개는 90도로 발라당 누운 채 있었다. 이것들도 나름대로 자라는지 양쪽에서 아랫니들을 가운데로 서서히 밀어붙여, 아랫니들은 약간 울퉁불퉁 솟아 있다. 이 모양이 미워지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하루가 멀게 음식 찌꺼기가 끼고 냄새가 나고 피고름이 찔찔 나는 일이 반복되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이런 괴로움을 몇 년 씩 견녀내도록 한 건 딱 두 가지. 게으름과 두려움. 사랑니가 자꾸 사랑하도록 만드는 이들이 있다면 말걸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게으름과 두려움 때문에 여전히 치과에 가기를 미루고 있는 것 같다. 게으름이야 어쩔 수 없고 두려움은 말걸기가 줄여 줄 수 있을 것 같아 포스트를 올린다. 통증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두려움도 그만큼 줄지 않겠는가.

 

 

사랑니가 자꾸 귀찮아지는 사람들은 우선 가까운 치과엘 가길 권한다. 진짜 그 치과에서 뽑겠다고 맘 먹으라는 건 아니다. 잘 하는 치과에 가서 뽑아야 하겠지만 일단 진단을 받는 게 좋다. X-ray 사진을 찍고 사랑니 주변 여기저기를 찔러 보면 사랑니가 어떤 상태인지 대충 알 수 있다. 위아래 모두 곧고 예쁘게 나 있다면 기뻐하라. 그냥 뽑으면 그만이다. 잇몸을 잘라낼 필요 없이 뽑을 수 있으니 빼고 나서도 통증이 심하지 않을 것이다. 편한 날 예약해서 걍 뽑으시라.

 

그런데, 말걸기처럼 아래 사랑니들이 철퍼덕 자빠져 있으면 고난의 이뽑기가 될 것이다. 자신의 사랑니들이 꾸벅 절을 하고 있음에도 두려움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 용감한 사람이다. 고통을 즐길 줄 아는 부류라고 봐야지. 어쨌든 철퍼덕 누워서 시위하는 사랑니라면 사랑니 잘 뽑는 치과엘 가기 바란다. 어느 치과가 좋냐구? 말걸기는 신촌 세브란스 치과병원에서 뽑았는데 만족스럽다. 신촌 세브란스 치과병원은 거의 공장 수준이라 사랑니 뽑으러 왔다면 다 알아서 안내해 준다. 또 어디? 여기 말고는 아는 데 없으니 알아서 수소문 해보시길. 개인병원 중에서는 철퍼덕 누운 사랑니 안 뽑아주는 데도 있으니 참고하라. 왜냐고? 큰 수술이라고 안해준다나...

 

사랑니를 뽑는 순간. 즉, 아랫니 맨 안쪽의 잇몸을 절개하고 사랑니를 부수어 꺼내고 잇몸을 꼬매는 순간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국부 마취 주사 놓을 때가 약간 아픈데 그것도 괴로운 정도는 아니다. 하나도 겁낼 것 없다. 만약, 마취가 잘 되지 않는다면? 아파야지 뭐. 근데 그런 사람이 많을까? 마취 상태를 의사가 체크하니 마취가 덜 된 것 같으면 얘기해 보라. 말걸기는 두번째 뽑을 때는 마취 두 번 했다.

 

결국 사랑니를 뽑을 때는 문제가 아니다. 통증은 마취가 풀려서부터 시작해서 3주까지 지속된다. 즉, 사랑니를 뽑은 후부터 구강과 상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고통은 확연히 달라진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통증을 확연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도록 하겠다. 물론, 병원에서 안내하는 관리법은 기본이다.

 

 

① 하루 일을 쉴 수 있다면 꼭 쉬길 바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기는 힘들겠지만 시도해 보라. 만약 하루 일을 쉬기 어렵다면 가장 오래 쉴 수 있는 시간대를 찾아라. 예를 들면 주말 하루 전 퇴근 직후라든가 등등. 하루 쉴 수 있다면 예약 시간은 최대한 오전 일찍으로 잡아서 길 게 쉴 수 있도록 한다.

 

② 사랑니 뽑는 수술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아이스팩. 둘째, 죽. 집에 아이스팩이 없다면 주위에서 미리 구해 8시간 이상 냉동실에 두도록 한다. 2개는 있어야 하고 여름이라면 3개도 좀 모자란 느낌이다. 구할 수 없다면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죽은 3끼 분량은 준비해 두도록 한다. 가족 중 누군가 꼬박 죽을 쑤어줄 수 있다면 행운이지만 자기가 밥을 차려 먹어야 한다면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다.

 

③ 사랑니 뽑는 날 아이스팩을 가지고 가서 사랑니 뽑은 직후부터 찜질을 하면 좋다.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감싸서 사랑니를 뽑은 자리의 바깥쪽에 댄다. 마취가 풀리지 않아서 통증이 별로 없기는 할텐데 이때부터 열심히 찜질을 하는 게 좋다. 언제까지? 통증이 가실 때까지.

 

④ 사랑니를 뽑고 잇몸을 꼬맨 자리의 지혈을 위해 의사가 거즈를 물린다. 거즈를 물 때 천천히, 그리고 가장 편한 자세로 윗니와 아랫니들이 물리게 한다. 거즈를 계속 물고 있으면 턱이 긴장해서 힘들고 아프다. 그래서 가볍고 편하게 입을 다문 자세를 처음부터 찾는 게 좋다. 그리고 거즈는 2시간 정도는 물고 있어야 하고 입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말도 삼가고 물도 음식도 먹지 말고...

 

⑤ 병원의 안내대로 입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이건 2-3일 동안 무척 아픈 날들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1주일이 지나서도 계속되는 통증의 정도는 사실 처음부터 얼마나 깨끗한 구강을 유지하느냐에 달렸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식염수나 수돗물로 자주 입안을 씻으라고 한다. 주의할 것은 상처에 자극이 될 정도로 거칠게 가글을 한다거나 하면 안된다. 상처에 혀를 댄다거나 입을 크게 벌려 상처가 벌어지게 해서도 안 된다. 그냥 살짝 씻어낸다. 침을 퉤퉤 뱉어도 안된다. 그 순간 상처에 자극이 된다.

 

그리고 구강의 청결을 위하여 뭐든 먹고 나서, 그리고 자기 전에는 꼭 이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약이 상처에 자극을 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치약물이 상처에 닿는다고 따끔거리지도 않는다. 아마 오전 일찍 사랑니를 뽑고 2시간 이상 거즈를 물고 지혈을 했다면 점심 먹을 시간일 것이다. 거즈를 빼고 죽을 먹은 후 꼭 이를 닦아라. 칫솔이 상처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중요한 건 이만 닦지 말고 칫솔로 입안의 모든 곳(상처를 제외한)을 닦아야 한다. 아프고 퉁퉁 부은 입안 전체를 닦기에는 전동칫솔이 편한 점이 있다.

 

말걸기가 왼쪽 위아래를 뽑았을 때는 치약이 자극적일 것 같아서 하루 넘게 이는 닦지 않고 식염수로 입을 헹구기만 했는데 입냄새도 지독하고 통증도 오래갔으나, 오른쪽 위아래를 뽑은 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입안을 열심히 닦으니 입냄새도 없고 1주일이 지나서는 통증이 상당히 약해졌다.

 

⑥ 담배는 구강 청결 때문에, 술은 상처가 낫는 데 방해가 되서 그런지 담배, 술은 1주일 간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니 뽑은 날부터 술과 담배로 사는 이들도 있다. 의사들이 그런단다. 사랑니 뽑는 정도의 일로 사람이 죽거나 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면 다 낫기 마련이다. 그래도 담배와 술은 분명히 고통을 증대시킨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줄이고 싶다면 삼가는 게 좋다.

 

 

말걸기의 사랑니 뽑은 후 고통 줄이기 방법의 핵심은 두 가지. (1)냉찜질은 통증이 가실 때까지 자나 깨나 계속한다. (2)입안을 열나 열심히, 자주 닦아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두번째 뽑은 오른쪽이 붓기도 오래갈 정도로 심했지만 통증은 첫번째 뽑은 왼쪽보다 덜하다. 열흘째인 오늘을 비교해 보자면 확연히 그렇다.

 

 

아픔을 참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큰 아픔과 고통을 참고 있는 걸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더 큰 아픔과 고통을 참았는지 경쟁한다. 자기에게 닥친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관리하여 확연히 줄일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하고픈, 혹은 해야 할 일을 더 잘 누리거나 해낼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픔과 고통은 관리하지 않으면서 봐달라고 한다. 심지어는 아픔과 고통을 관리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겁쟁이라고 힐난까지 한다. "야, 안 죽어!" "남자가 무슨. 마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다. 아무래도 바보들이다.

 

 

곧은 사랑니가 아니라 잇몸을 절개해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면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사랑니 주변이 건강하다면 뽑지 않다도 되지만 아프다면 뽑아야만 한다. 뽑은 후 고통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뽑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사랑니 옆 어금니까지 손봐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사랑니가 사랑해 달라고 보챈다면 바로 치과엘 가서 뽑으시길. 고통은 확연히 줄일 수 있으니 뽑고 나면 시원해서 생활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진경을 만나다

 

엄마되기님의 [아기와 모임] 에 관련된 글.

 

화요일 칙칙한 하늘이 심상치 않았지만, 말걸기는 고장난 컴퓨터를 들고 용산에 갔었다. 어찌어찌하다 인연이 닿은 분이 용산에 매장을 열고 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단골로 거래해 볼까 싶어서. 용산 전자상가까지 행차한 김에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진경네 집에 미루네가 왔단다. 미루맘과는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루팜과는 한 때 한솥밥 먹었으니 또한 반가운 이였다.

 

 

진경이 사과를 좋아한다니 사과를 한봉다리 사 갔다. 말걸기는 누구네 방문을 할 때 빈손으로 가기가 머슥하다면 대체로 먹을 걸 사 간다. 그리고 말걸기가 먹고 싶은 걸 사간다. 그런데 오늘은 복숭아가 아닌 사과를 사 갔다. 진경한테 아부 좀 해보려고. 그러나...

 

진경이 뱃속에 있을 때 진경맘은 임신빈혈이었다.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 수 없으나 외출도 자주 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때 행인과 바람을 부추겨서 쇠고기 먹인다고 꾀나 훌륭한 중국요리집에 모시고 가 맛난 음식 많이 사줬던 일이 있었다. 그 단백질과 철분과 기타등등 영양소를 받아 먹었을 진경이... 말걸기를 보자마자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나올 때까지 얼굴 디밀면 도망가듯했다. 말걸기의 빨간 배낭하고만 놀고... 치.(이 얘기를 파란꼬리한테 했더니 여자아이가 아니라서 그런단다... 음... 좀 위로가 된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 낯설지도 않다. 오래전에 핏덩어리 조카가 말걸기와 몇 개월 함께 살았으니까. 그때야 일이 바쁘다고 가끔씩만 조카를 봤지만 사실 별로 했던 건 없고...

 

낯설지 않다는 건 어린 아이가 있을 땐 아이가 주목받기 마련이고 아이 중심으로 모든 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미루가 집을 나와 쉽게 잠들지 못해 엄마 아빠는 분주했다. 진경은 여기 저기 장난거리와 놀고 있었지만 엄마와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걸기가 할 일은, 방문한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아니다. 진경 땜에 사과를 깎다만 진경맘 대신 사과를 깎아야 하고 엄마들 아빠를 위한 케잌을 날라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게 아기네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진경맘네까지는 멀지 않다. 그래도 진경맘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망설였다. 진경이를 깨우는 건 아닌지, 말걸기가 방문한다면 또 다른 일을 생기는 건데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진경맘을 더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그러다 미루네가 와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방문했다.

 

직장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의 방문을 바라는 것 같다. 설마 매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생활의 엑센트가 될 만큼은. 진경맘 뿐만 아니라 아기, 혹은 아기들과 집에서 지내는 엄마들의 초청을 여러번 받아봤다. 그런 초청은 빈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대체로 그런 초청은 결과적으로 거절하게 되었다. 말걸기가 게으른 게 젤루 큰 이유지만 계속 뒤로 미루도록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아기를 돌보아야 할 아기의 엄마에게 폐를 끼칠까봐. 또 하나는 아기를 돌보는 가운데 대화란 쉬운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일단 방문을 하게 되면 좋다. 왜냐면 진경맘 말대로 끊기고 집중하기 어려운 대화의 연속이기는 해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까. 오늘에야 진경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아가라는 걸 확인했다. 아마도 앞으로는 진경맘과 다섯병의 블로그가 더 생생해질 것이다. 덩달아 운이 좋게도 미루까지 확인했다.

 

 

진경맘의 블로그의 글들은 무척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그런데 문득 진실 그 자체는 아닌 듯 느껴졌다. 짧은 방문은 다섯병의 블로그에 등장하는 진경의 모습, 진경과 맘의 관계가 더 진실에 가깝게 느끼게 했다. 진경맘과 다섯병의 진실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하루종일 함께 지내는 진경맘의 경험과 하루 중 일부만을 함께 지내는 다섯병의 경험이 달라 블로그의 글들도 달라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뭐, 각자의 진실이 있기 마련이기도 하지.

 

 

말걸기를 경계하는 진경을 보고 말걸기는, "애들은 말걸기를 싫어해." 이 말 듣고 미루맘은 "용기를 내쇼." 격려에 감사.

 

미루팜이 들려준 코미디같은 얘기. "내가 육아휴직 쓰겠다고 했더니 인천연합 출신 상근자가 재고해보라면서 했다는 말이 글쎄, '진보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변혁의 길이 있잖아'라고 하더라."

 

 

진경아, 말걸기를 담에 볼 때는 "고기 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거라.

 

 

정답은... 야스쿠니 신사...

 

말걸기[[상품 퀴즈] 여기는 어디?] 에 관련된 글.

 

 

■ 발표

 

○ 정답 : 야스쿠니 신사.

○ 당첨자 : 없음.
※ re님은 정답을 맞추셨으나 응모기간을 넘기셨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퀴즈를 잘 내는 것도 재주인가 봅니다. 메이지신궁이나 센소지는 정말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동경을 가보았거나 관심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모를 곳이지요. 말걸기도 동경 가서 지도 보고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8월 초중순 한국과 일본 뉴스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야스쿠니 신사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니 퀴즈로 내 보았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형편이 없었던지... 죄송 --;


 

위 사진은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문처럼 서 있는 걸 '도리(새)'라고 한대요. 야스쿠니에는 세 개의 도리가 있더군요. 들어가는 길은 엄숙함이나 웅장함, 뭐 그런 느낌은 없고 큰 나무들이 즐비한 공원 같은 느낌입니다. 첫 도리에서 참배하는 곳까지는 길도 넓고 길어서 좀 지루한 느낌도 있지요. 뜨거운 여름날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구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왠지 친숙한 곳을 방문하는 것 같더군요. TV에서 보던 야스쿠니는 왠지 깊은 종교적 색채와 무거운 분위기였는데, 참배하는 곳까지는 결코 아니더군요.

 

 

위 사진은 일반 방문객이 참배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저 앞에서 기원을 하더군요. 이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요, 안으로도 참배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정치인들이나 별도로 헌납을 한 사람들만 들어가서 참배를 한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경비가 못찍게 하더군요. TV에서 고이즈미와 함께 등장하는 음습한 분위기의 야스쿠니가 바로 저 너머인 듯합니다. 저 앞에서 안을 들여다 보면 사뭇 분위기가 다르답니다.

 

신사 건물 오른편에 작지만 왠지 익숙한 게 보이시지요? 퀴즈의 소재였답니다. 일본 사람들이야 그들의 신앙심을 드러내는 곳이 신사이니,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비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아마도 방문객이었던 한국사람이 야스쿠니에서 소원을 비는 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더군요.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야스쿠니까지 가서 전쟁박물관을 관람하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금방 나왔어야 했지요. 전쟁박물관이 압권일 듯한데...

 

 

 

황당했던 마음에 퀴즈를 냈는데, 그 퀴즈마저 황당했던 듯... ^^;

 

 

[상품 퀴즈] 여기는 어디?

 

re님의 요청(?)에 따라 상품 걸린 퀴즈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 [문제] 아래 사진은 어디에서 찍었을까요?

 

 

왼쪽 아래를 보면, "ㅇㅇ, ㅇㅇ, ㅇㅇ 모두 가족이 평안하길 빕니다. 2006 8 2. Fighting" 이라고 적혀 있군요.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요?

 

 

○ 응모방법

정답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 포스트의 덧글로 달기

- 트랙백 인정 안함

 

○ 응모기간 : 2006년 8월 22일(화) 자정까지

 

○ 당첨

- 당첨자 수 : 3인

- 정답을 제시한 자가 여럿일 경우,  말걸기가 주관적으로 판단하기에 멋진 덧글을 단 자를 선택함.

 

○ 상품 : 이 블로그에 공개된, 공개될 말걸기의 사진 중 1매 인화권.

- 사진은 당첨자 선택.(단, 인물사진인 경우 당사자의 허락이 있어야 함.)

- 8×10 이하 사이즈에서 당첨자가 선택.

- 인화권 유효기간 : 말걸기가 귀찮아지지 않을 때까지.(언제인지 확실히 모름. 기간이 평생일 수도 있음.)

- 말걸기가 인화하도록 함.

 

※ 응모 불가 대상자

- 파란꼬리, 행인.

- 이미 정답을 알고 있거나 너무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제외.

 

 

이게 어떤 장면?

 

아래 사진은 어떤 장면일까요?

 

 

정답은 '월출'입니다.

달이 산 뒤에서 뜨고 있는 광경이랍니다.

심심풀이 썰렁 퀴즈였습니다.

 

 

 

새까맣게 보이는 산은 '표범산'이랍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80km 정도 떨어진 'Bayan Gobi'라는 캠프 옆에 있는 산이지요. 바얀 고비 캠프는 몽골제국의 한 때 수도였던 '하라호린'이라는 도시에 가기 위해 머물렀던 캠프입니다. 하라호린은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을 35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지금 몽골 땅의 정중앙에 있지요.

 

표범산 근처에서, 초원과 사막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고비를 체험했지요. 이런저런 풍경은 나중에.

 

 

낙하산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고 절벽을 내려간다거나 하기 위해서 땅을 걷고 절벽을 긴다. 그러다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속도를 대폭 줄인 낙하산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참 대단해. 이런 것도 발명하고.

 

 

요즘은 즐기기 위해 낙하산을 타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재미난 발명품은 역사상 이런저런 '작전'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을 터이다. 땅에서 걷거나 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어서 '작전'이 위력을 발휘할 터이다. 그리고 낙하산은 항상 '작전'을 짠 배후의 명령에 의해 내려온다. '작전'에는 임무가 있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낙하산을 탄다.

 

그러니까 낙하산은, (놀이가 아니라면) ①보통의 수단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기 위한 방편이고, ②창공에서 그것을 뿌리는 배후의 목적을 위해 내려온다.

 

 

일반적인, 혹은 정상적인 방편이 아닌 방편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했을 때, '낙하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낙하산은 배후, 즉 '빽'이 있다. 배후의 목적은 주로 돈, 세습, 편의, 자기 목적 달성 따위다. 험한 산 앞에서 정상적인 방편으로 기어서라도 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몹시 기분 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세상이 다 그런거니까...

 

 

민주노동당의 정책부장이었던 우수사랑은 연초에 민주노동당에서 해고되었다. 해고의 진짜 이유, 그러니까 인사권자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드러난 이유는 이렇다. 우수사랑은 정책연구원이 아니니까 당 정책위원회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무총국에 가서 예전의 보직(총무실)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동복지(보육을 포함한) 분야는 여성위원회 등 사무총국 산하 기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어쨌든 사무총국으로 가라고 했다. 우수사랑 자신도 그러했고 소속된 제3정책조정위원회에서도 그러했고, 정책위 구성원들이 아동복지를 담당할 적임자인 우수사랑을 다른 부서로 옮기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아동복지 영역을 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그럼에도 인사권자들은 이 의견을 무시했고 우수사랑은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아 내쫓겼다.

 

이 일은 지방선거 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지방선거가 끝나자 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할 사람이 정책위원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지방선거 후 우수사랑은 다시 당 정책위에서 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연락을 받았단다. 인사, 참 재밌게 한다. 우수사랑은 이미 인생의 계획이 있는데 왜 돌아가겠나. "안 가!"

 

결국, 8월 16일 인사발령으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는 새로운 아동복지 담당 정책연구원이 왔다. 이 새 아동복지 담당자는 지난 3월 10일 조직실의 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일하고 있던 사람이다. 조직담당자가 정책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이라면 좀 웃긴다.

 

 

현 지도부의 계획 중 하나가 조직실을 조직1실과 조직2실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조직1실은 현재 조직실 업무라 보면 무난하고 조직2실은 현재 부문위원회(여성, 노동, 농민, 학생 등)를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오래 전부터 당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던 거라 이런 분화 자체가 현 지도부만의 '색깔'은 아니다. 어쨌든, 조직2실 설치를 전제하고 P씨를 3월 10일에 조직실의 부장으로 발령을 냈다. P씨는 조직실이 분화하면 조직2실에서 여성부문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조직실 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방선거 출마를 하게 된 여성위원회 J국장은 중앙당직을 사직할 의사를 밝혔었다. 그래서 여성위원회 입장에서는 더더욱 P씨를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J국장은 사직 의사를 철회했다. 조직2실은 설치되지 않았고 여성위원회 상근자 티오도 줄지 않았다. P씨는 한 순간에 조직실에서도 여성위원회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지도부의 관련자들이 모여서 결정을 내린 게 바로 P씨를 아동복지(보육을 포함) 담당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낸 것이었다. 정책연구원은 해당 분야의 전공과 활동 경력을 주요하게 판단하여 뽑은 사람들이다. 2004년 처음 뽑을 때에도 그러했고 중간중간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뽑을 때에도 그러했다. 처음 뽑았을 때 청탁으로 뽑힌 사람이 둘이 있긴 한데 이들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만한 이력(둘 중 하나는 알고 보니 형편 없었지만)은 갖고 있었다.

 

P씨는 당에서 여성운동을 하고 싶었을 터이고 당 지도부도 그렇게 하라고 여성부문 업무를 담당할 조직2실에 가기 전에 조직실로 발령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아동복지 담당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냈다?

 

예전에 우수사랑더러 정책위원회에서 나가라고 할 때 정책연구원이 아니니까 나가라고 했었다. 정책연구원만 정책위원회에 있어야 한다면 우수사랑을 정책연구원 시켜주든가. 이미 정책연구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처사였다. 일반 상근자와 정책연구원을 애써 구분한 지도부가, 일반 상근자인 P씨를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낸 건 일관된 태도일까?

 

일반상근자 딱지가 평생 갈 이유도 없으니 정책 분야 능력이 있으면 정책연구원, 아니 그 이상이라도 해야지. 그런데 이번 발령은 P씨의 아동복지 분야 정책 활동 경험을 심사한 결과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개별 분야 정책연구원을 뽑을 때 이런 식으로 뽑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책연구원이 대단한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당 조직이 커지고 쪽수가 많아지면 업무도 분화하기 마련이고 그 업무를 수행할만한 이력과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게 제대로 된 절차라는 것이다. 인터넷실에 프로그래머가 필요한데 프로그래밍 능력은 안보고 "너 컴퓨터 잘 하니까 인터넷실로 가서 일해!"라고 하면 그게 멀쩡한 인사냐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여성운동을 해왔고 그러고자 하는 사람한테 아동복지(사실 상 보육) 분야 정책을 맡겼다는 것이다. 여성 문제를 다루어 왔다면 아동복지 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판단한 지도부의 생각이 걱정스럽다.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다니.

 

 

8월 16일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 '낙하산'이 떨어졌다. '낙하산'에 매달린 당사자도 불쌍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는 다른 절차로 들어왔고 그 때문에 대등하지 못한 입지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그리고, '낙하산'을 떨어뜨렸으면 '작전'이 있어야 하는데 '낙하산'을 집어던지 자들의 '작전'은 과연 무엇일까? 아동복지(보육) 정책 강화? 아님, 여성위원회를 책임지는 박최고의 정책위 내 인맥 심기?

 

 

여행 퍼레이드 끝

 

에~ 김이 샜다.

 

시베리아, 몽골, 태국, 일본에 이어 중국에 가려고 했었다.

실크로드와 천산산맥을 보러 중국 여행을 계획했었으나 꽝났다.

말걸기의 4개국 순방에 배 아파하던 인간들의 통증이 완화될 듯하다.

 

어쨌든, 이러다보니 갑자기 9월 일정이 붕~ 떠버렸다.

추석연휴 전까지 무얼해야 할 지 막막해졌다.

 

 

일단,

① 청소 및 집안 구석 정리

② 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 만나기

③ 예전에 배우고 싶었던 것 배우기

④ 대가리 굳지 않게 책을 읽거나 공부하기

⑤ 집에서 뒹굴기

 

이 정도의 일거리 후보가 있다.

물론, 가장 강력한 후보는 ⑤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