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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 앞 광장을 장악한 SKT

 

아래는 [레디앙]에 올린 기사 원문이다. 토요일에 전화가 울리더니 이 기획위원이 청탁을 했다. 이 기획위원의 청탁이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다음 달 중순에 원고료도 준다기에 썼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레디앙] 편집진은 제목과 부제를 바꾸었다. 내 생각에는 잘 바꾸었다. 사실 난 글의 제목을 붙이는 걸 잘 못한다. 대충 붙여 놓으면 알아서 바꾸려니 생각해서 대충 지어놓긴 했다. 아래 링크는 [레디앙] 기사 링크.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한데 꼼꼼히 보질 않아서 제목-부제 말고 뭐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시장, 시청 광장 팔아먹은 결과를 보세요

시민자율 광장 자본에 습격…SKT 콘소시엄 마케팅 공간 전락 →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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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 앞 광장을 장악한 SKT
월드컵 마케팅은 시민 권리 무시해도 상관없나

 


지난 26일(금), 한국의 월드컵대표팀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졌다. 월드컵 개막을 2주 남기고 열린 평가전인 만큼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쏠린 경기였다. 이 날도 어김없이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한국팀을 응원하러 인파가 몰렸다. 그런데 응원을 위해 이 곳을 찾은 시민들은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목격해야만 했다. 검정색 정장을 입은 경호업체 직원들의 간섭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응원하러 온 시민들에게 자리를 정해준다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걸 통제했다. 경호업체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 23일 세네갈팀과의 평가전이 열린 날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방송사 스튜디오도 아닌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이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진 걸 언짢은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광장이란 시민들이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다. 누가 나서서 들어와라 마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해서는 안 된다. 광장이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 앞 광장이 마치 자기네 자리인 듯 나대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SKT 컨소시엄이다.

 

한국의 월드컵팀 엔트리 확정 후 열린 두 번의 평가전 때 벌어진 서울 시청 앞 응원전은 SKT 컨소시엄(KBS, SBS,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이 참여)이 주최했다. 지난 2월 27일 이 컨소시엄은 월드컵 기간 동안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하루 당 521만 원에 서울시로부터 구매했다.

 

월드컵 응원의 상업성과 함께 시민의 재산인 광장을 기업이 독점하는 현실은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SKT 등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기업들은 월드컵을 이익 추구의 계기로만 여길 뿐, 월드컵을 축제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권리나 바람은 무시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공식 후원사의 자격을 얻지 못한 SK텔레콤은 붉은악마의 거리 응원을 후원하는 것으로 만회를 노렸다. 예상과 달리 거리 응원은 폭발적이었고 SK텔레콤은 기대 이상의 이득을 챙겼다. 2006년 SKT는 거리 응원의 후원자가 아닌 주관자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득을 챙기기 위해 서울시로부터 서울 시청 앞 광장 독점 사용권을 따낸 것이다.

 

도를 넘는 SKT의 월드컵 마케팅에는 KTF와의 경쟁도 한 몫을 했다. KTF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공식 후원사였음에도 기대 이상의 거리 응원의 성공으로 마케팅에서 SKT에게 뒤졌다는 평가를 내린 듯하다. 올해 월드컵에도 공식 후원사가 된 KTF는, ‘월드컵’이라는 단어와 로고를 사용하길 바라는 붉은악마와 손잡고 공격적인 월드컵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SKT와 KTF의 경쟁은 광고, 로고송, 거리 응원 주최권, 독일 현지 응원 등 여러 면에서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양자의 갈등이 깊어지니 월드컵을 축제로 여기는 시민들은 외면 받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2002년 시민들의 응원 축제는 2006년에는 기업의 광고 프로그램으로 변질해버렸다.

 

 

SKT 등의 이득을 보장해 준 것은 서울시 당국이다. 서울시는 시청 앞 광장 응원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고, 게다가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행사까지 제공하려면 민간 컨소시엄이 거리 응원을 주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광장 독점 사용권을 입찰했다. 서울시는 SKT 컨소시엄에게 조례에 따른 광장 이용료뿐만 아니라 월드컵과는 상관없는 Hi-Seoul 축제에 30억 원을 기부 받았다. 지나친 상업주의라고 비난을 산 SKT 일각에서는 돈 쓸 데가 많은 서울시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입찰이라며 볼멘 소리를 냈다고 한다.

 

서울시는 한편으로 독점 사용권 입찰은 조례에 근거한다고 한다. <서울특별시서울광장의사용및관리에관한조례(이하 ‘광장조례’)>는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 목적으로 지난 2004년 5월에 제정되었다. 여기서 “‘사용’이라 함은 서울광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이용함으로써 불특정 다수 시민의 자유로운 광장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이다. 즉, 월드컵 기간 동안 광장 사용권을 SKT 컨소시엄에게 넘긴 지금, 시민들의 자율적인 거리 응원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역사적인 공간이다. 1987년 민주 항쟁이 벌어진 곳이면서도 2002년에는 자발적인 응원 축제가 열린 곳이다. 시민들의 강한 에너지가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펼쳐진 공간이다. 그래서 광장에는 시민들 저마다의 욕구와 바람과 행동이 쏟아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서울시는 <광장조례>를 제정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광장 사용을 허용하거나 제한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라크 파병을 기념하는 보수단체들의 행사, 행정수도이전반대 궐기대회 등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치적 성향에 부합하는 집회는 허용했으면서, 민주열사추모문화제는 불특정 일반시민을 위한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행사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조례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팀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팀의 평가전이 열린 지난 26일 평등권 침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시민의 재산인 광장을 기업이 독점하게 된 이번 사건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직접적으로는 시민들의 권리가 제한된다. 시청 앞 광장은 시유지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관리할 의무는 있지만 시당국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사용권을 양도할 권리는 없다. 시당국의 사유재산처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서울시도 돈을 벌고 SKT 같은 기업도 이득을 챙기기 위해 시민들의 광장 사용 권리는 기업의 마케팅과 바뀌었다. 2006년 월드컵 시즌 동안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시민 권리가 짓밟혀, 지난 20년 간 서울시민이 쌓아온 광장 문화를 한순간 먼 과거로 되돌려 버렸다.

 

또 하나, 이번 SKT 컨소시엄의 광장 독점 사건을 그대로 둔다면 한국의 축제 문화는 더욱 타락할 것이다. 축제는 즐기는 행사이다. 월드컵 응원 열풍은 2002년도부터 많은 논란을 빚고 있지만 어쨌든 즐기고자 하는 시민들의 축제임에는 분명하다. 즐긴다는 것은 스스로의 만족으로 위해 참여하는 것이다. 구경꾼일 뿐이라도 축제의 공간을 공유하며 참여한다. 축제의 규모가 커지면 많은 돈이 들기 마련이고 장사치들도 꼬일 수밖에 없지만 장사치들이 축제를 주관하는 순간 그 축제는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전락한다.

 

2002년 시청 앞 광장의 거리 응원과 2006년 그곳의 거리 응원의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시민들의 축제이냐 축제를 가장한 기업의 마케팅 프로그램이냐이다. 마케팅은 이윤을 예측하고 인위적으로 연출을 할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참여자의 자율성이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난 26일 시청 앞 광장에서 SKT가 물건을 차곡차곡 챙기듯 자리를 지정하며 응원 온 시민들에게 간섭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서울시의 사용권 판매는 앞으로 타자치단체의 귀감이 될 지도 모른다. 앞으로 온동네 광장과 공터마다 열릴 응원 축제는 기업들이 차린 자리에서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민들의 권리가 쉽게 무시되는 사회엔 안녕은 없다. 그리고 시민들이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월드컵 마케팅을 위해 광장을 장악한 SKT는 물러나야 할 것이고, 이들에게 자리를 내 준 서울시는 책임져야 한다.

 

경로를 수정하다

 

말걸기[불어나는 여행 경비] 에 관련된 글.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애초에는 시베리아-몽골-중국 여행으로 제안되었었다. 중국까지 가면 몸이 못 버틸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중국이 빠졌다. 이 때만 하더라도 돈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Green Asia 2006 공모에서 떨어지면서 우수리스크에 갈 이유가 사라져서 바이칼을 가기 전에 하바로프스크를 들르기로 했다. 또한 여행팀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궁금증과 욕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 경로가 만들어질 때 쯤 예산은 불어만 갔다. 그래서, 20만 원 정도 줄이는 방안으로 날짜를 줄여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 뛰고 하바로프스크로 바로 날아가기로 했다.

 

 

[여행 경로의 수정]

 

(1) 서울 - 속초 - (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우수리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텐진 - (배) - 인천

 

(2) 인천 - (비행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우수리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3)  인천 - (비행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하바로프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 다만, 현지 상황을 봐서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비행기) - 인천'으로 변경될 수 있음.

 

(4) 인천 - (비행기) - 하바로프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 다만, 현지 상황을 봐서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비행기) - 인천'으로 변경될 수 있음.


 

이제는 세세하게 뭘 보고 다닐 지 시간표를 짜봐야 한다. 굵직굵직한 이동 경로와 교통수단, 시간표는 다 확보했다. 해당 도시나 지역에서 가야 할 곳, 가는 방법, 비용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정신도 살짝 나가 있다. D200과 친해질 시간도 의외로 없고 약속도 잊는다.

 

6월 1일에는 몽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줄 사람을 만난다. 이날 얘기를 마치면 계획도 완성되고 가장 구체적인 예산도 짜여지고, 무엇보다 예약할만한 건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준비물을 챙겨야 할 시간이 된다. 내게는 가장 큰 걸림돌인 보험 문제도 알아봐야 할 테고.

 

 

왠지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 뛴 게 안심이 된다. 여행자에게 충고는 하되 협박은 금물!

 

 

축구와 월드컵

 

말걸기의 [차라리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에 관련된 글.

행인님의 [ [축구] 결심]에 관련된 글.

re님의 [월드컵에 대한 상상력]에 관련된 글.

re님의 ['안티 월드컵'을 검색해보니]에 관련된 글.

라디오레벨데님의 [난 붉은악마가 아니다!!]에 관련된 글.

레이님의 [월드컵에 대한 기억과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에 관련된 글.

 

 

엊그제(5/26)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렀다. 나도 밥 먹으면서 열심히 봤다. 이번 평가전을 보면서 축구와 월드컵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하는 일 없는 2월부터 밤에 축구 중계 방송 보는 재미로도 살았다.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유럽 리그,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많이도 구경했다. 처음엔 시간 때우기용에 가까왔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땜빵용 TV프로그램으로 적당한 게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29인치 TV 화면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쬐금한 공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졸음도 솔솔 찾아오고 꽤 괜찮은 프로가 축구 중계였다.

 

이렇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축구 중계가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나는 클럽 축구가 왜 재미있는지 몰랐었다. 그러다가 클럽 축구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나름대로 '축구의 문법'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경기장의 선수들은 왜 저 자리에서 저러고 있을까? 그들의 의도와 공의 향방은? 분명 여러 가지일 축구의 전략-전술을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축구의 문리'를 약간 틔였다.

 

클럽 축구를 보기 시작한 최근을 제외한다면 지난 4년 동안 축구는 내게 그다지 흥미를 주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국가대표 대항전, 즉 월드컵을 포함한 각종 국제 대회나 평가전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국민정서'(이건 우파들이 보통 쓰는 말이고 빨갱이들은 '국가이데올로기'나 '민족주의' 따위의 말은 더 좋아한다)와 관련이 깊은 듯하다. 내가 주변 인물 중에서는 상당한 리버럴리스트에다가 아나키스트이기는 해도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뇌세포에 쌓여온 '국가와 민족'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게다. 어쨌든 국가 대항전은 축구의 문법이나 경기의 흐름을 즐기기보다는 결과에 집중하게 하고 무척 자극적이다. 그래서 나도 국가 대항전에 관심을 가졌었고 약간의 흥분도 했었던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어느 팀을 응원할까를 고민했었다. 선전할 만한 팀을 물색했다. 그냥 잼나게 경기할 만한 팀을 찾았다. 그 당시도 각 언론사들은 대회 전에 각 대표팀에 대한 리뷰와 분석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는 팀이 폴란드팀이었다. 브라질팀 같은 팀은 응원 안해도 잘 할 테니까 오히려 관심을 갖지 않았다. 폴란드팀-한국팀 경기를 당시 이문옥 선본(파견 중) 사무실에서 운동원들 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꺼리낌 없이 폴란드를 응원했다. 옆에 있던 이들은 장난인 줄 알았다가 진짜인 줄 알고선, "어? 정말? 그게 돼?" 반응. 결과는 폴란드팀이 한국팀에게 0:2로 패했는데, 한국팀이 경기를 무척 재미있게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날로 응원팀을 한국팀으로 바꿨다. 8강전까지 잼나게 봤다. 4강전은 결코 4강이 되어서는 안되었을 독일(넘 잼없어)과의 경기라 별로였다. 그리고 터키팀과의 3-4위전은 축구경기라기보다는 '위문공연' 같아서 이전만큼 응원도 안했다.

 

한국팀-미국팀 경기는 비 오는 날 시청 근처 음식점에서 보게 되었다. 선거운동 하지 말자고 말렸거늘 일단 시청광장으로 나가라고 해서 우르르 나갔다가 분위기 아닌 거 알고 광장 스크린을 잠시 지켜 보다가 음식점에 들어가서 요기하면서 축구를 보았다. 그때 정말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집단 광기'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음식점 홀 가득 빨간티 사람들이 가득했고 방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방에 앉은 우리 일행은 Be The Reds!를 입고 있지 않았는데 그 분위기가 무서워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티셔츠는 일행 중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왕창 얻어온 옷이었다. 얻어오지 않았다면 우린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한국팀-스페인팀 경기는 또 다른 경험을 주었다. 친구가 마포 모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딱 이 경기와 겹친 것이다. 예식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축구 중계를 틀어주었다. 예식이 진행되는 잠깐 동안은 예식을 중계했다. 큰 홀에서 식사를 하면 결혼식과 빅매치 중계를 보는 것도 유별난 경험이었다. 결혼식을 마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 한 잔 하기 마련이라 한국팀-스페인팀 전이 끝나고 신촌으로 나왔다. 마포에서 택시 타고 왔는데 신촌로터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려야만 했다. 어디서 쳐박혀 축구 보던 인간들이 다 뛰쳐 나와 그 넓은 신촌로터리를 다 메워버린 것이다. 예전에 데모대에 끼어 신촌로터리를 가득 메웠던 경험이 떠올랐다. '해방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길거리에 뛰쳐나와 소리지르고 돌아다니는 건 짜릿한 경험일 것이다. '해방감'이란, 다른 데서 먼저 경험을 했었던 나같은 이들나 그런 경험이 없던 그 누구나 필요한 감정이기는 하다.

 

어쨌든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분위기는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파시즘에 가까운 '광기'와 억압된 몸짓을 풀어준 '해방감'의 이중성이라고나 할까. 이런 저런 분석도 많았지만 가장 황당한 주장은, 한국팀-미국팀 경기에서 한국팀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를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이라며 나름대로 진지하게 설파했던 그 누구의 글이었다. 반제국주의 감정에 대한 선동이라고나 할까. 국가 대항전에서 어느 한쪽을 편들겠다면, 그리고 축구 매니아로서 팀 구성원들 때문에 특정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면, 죄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스로 가장 좌파답다고 자신하는 자의 누구보다도 우파적인 주장이었다.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다. '국가'라는 딱지를 붙이고 경기를 하는 것이다. 국가를 배경으로 한 경쟁이 과연 '국민정서', '국가이데올로기' 따위와 멀어질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자신과 가깝거나 관련 있는 팀의 승리와 쾌거를 간절히 바라는 것도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고 관심을 받아야 하고 그들의 자아실현을 위한 배려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나'를 제외한 모두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 기대도 다르고 태도도 다르다. '적'은 없더라도 감정이입이 되는 대상은 있기 마련이다. 한국 사람들이 대체로 한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나름대로 자기와 가깝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축구에 열광하는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는 축구를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야구의 경우는, 기업이 도시를 배경으로 팀을 만들고, 이렇게 만든 팀들이 리그를 구성했다. 성공을 거두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구장을 메우고 각 팀과 선수들의 기록을 줄줄 외운다. 물론 각자 응원하는 팀이 있다. 축구의 경우는, K-리그는 여전히 썰렁하다. 스타 선수의 반짝으로 어쩌다 매진된 경기가 있기는 하지만 축구경기장을 왠만히 채우지도 못한다. 아마도 각 축구팀의 서포터즈로 자처한 이들이라든가, K-리그의 중계 방송을 즐긴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분명 축구의 매력에 홀딱 빠진 사람들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민들 중에는 소수인 것도 분명하다.

 

자신이 사는 도시의 축구팀(사실 기업의 축구팀이라 해야겠지)도 응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국적을 부여한 '대한민국'의 태극마크가 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축구에 대한 애정/관심 따위보다는 '국가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거나 '국가 간의 대결'을 즐기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지 않은가 싶다. 서울 사람들의 대부분은 FC서울의 경기에는 관심도 없지만 한국팀 경기는 꼬박꼬박 놓치지 않고 응원하는 서울시민들은 적지 않다. 축구에서 한국팀은 '자랑스런 나의 팀'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뭔가 자신과 끈으로 이어진 팀. 기업이 만들어 놓은 팀은 고장팀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축구협회가 구성한 팀에는 감정이입을 한다. 축구는 '국민정서'를 끄집어내는 도구로 변신한다.

 

'국민정서'를 끄집어내기에, 확 끄집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가 월드컵이 되어버린 것 같다. 독도 문제 따위도 아주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국제정치 지형이라는 변수가 많이 작동한다. 이에 비해 월드컵은 정기적이고 체계도 잘 잡힌 국제대회이니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올림픽과 달리 복잡하지도 않다. WBC나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보다 규모도 크다. 확실한 한 판 승이 짜릿하기도 하다. 사람들의 감정을 불러내는 월드컵은 모든 걸 묻어버릴 만큼의 강한 애국심을 불러낸다. 월드컵에서의 어떠한 결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영향력을 한국 사회에 미칠 FTA 따위도 애국심으로 가려진다.

 

애초에 축구에 관심이 없거나 싫은 사람, 월드컵이 싫거나 국위선양, '국가의 부름'이 싫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사라진다. 그리고 이런 배려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기업과 언론도 비난받지 않는다. 다수와는 다른 감성의 소유자들은 소외되는 월드컵이다.

 

 

이번 월드컵은 내게 가장 시큰둥한 축구경기가 될 듯하다. 소외시키는 공모자가 될 것이냐, 괜한 생각에 내심 관심은 있으면서 즐기지도 못하는 소심쟁이가 될 것이냐.

 

 

 

P.S. 그리고, 한 가지 더. 스위스와 코트디부아르의 평가전을 보았는데 수준이 다르더만. 제발 이변은 없어다오. 똑 떨어지길...

 

 

불어나는 여행 경비

 

말걸기[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 에 관련된 글.

 

 

러시아의 물가가 비쌀 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유럽의 러시아가 아니라 아시아의 러시아, 즉 시베리아의 물가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는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동네 물가는 여의도 물가 뺨친다. 사람들은 여의도 물가의 특징을 잘 모르는데, 이 동네 물가의 특징은, 기본 가격은 상당하고 '싼 것'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홍대앞이나 강남역 동네에서는 비싼 데도 많지만 싼 데 찾기도 어렵지 않다. 이것 참. 러시아 동쪽 동네 물가가 여의도 물가라니... 어딜 가든 먹고 자는 데 싼 곳은 있기 마련이다.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로브스크, 이르쿠츠크에도 싼 데는 있겠지. 근데 어디 있느냐 말이지.

 

한국에서 정보 구하기가 어려우니, 현지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여행업자/숙박업자)이 제시하는 가격에 먹고 자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사이트에 문의글도 올리고 이곳 저곳 메일도 보내고 여행 경비로 얼마를 준비해야 할 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은 몇 통의 답신 메일과 인터넷 서핑의 결과를 모아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예산을 짜 보았다. 환율 계산해 주는 사이트까지 찾아가면서.

 

ㅇㅇㅇ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 셈에 넣지 못한 경비가 있다. 정보가 부족해서 다시 알아봐야 하는 몇 군데 관광비용이다. 오마나! 얼마나 더 필요할까. 처음 여행을 가야겠다고 맘 먹을 때에 비해 100만 원이 오바하는 비용이다. 이건 하루가 멀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러시아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7월부터 열차삯이 또 오른단다.

 

나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으로 잼나는 여행을 꿈꾸다가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니 김이 좀 샌다. 주머니가 두둑해서 돈 많이 들든지 말든지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일단 가고 봤으면 좋겠다.

 

 

불어나는 여행 경비에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씩 훈수를 둔다. 누구는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100 같은 고액 달라 지폐를 보이면 칼 맞는단다. 또 누구는 세계여행 이리저리 다 가봐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사람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단다. 아주 겁을 먹게 만드는 멘트다. 내가 여행갈 때 들쳐 메고 가야 할 가방 한 보따리는 400만 원 정도한다. 카메라 가방. 달라 지폐는 커봐야 $100이지만 이 가방은 $4,000나 되는데 나 더러 칼 맞으라는 거냐. >.<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싫지만, 안정감 없는 여행이 더 싫다. 위협을 받는다거나 바가지를 뒤집어 쓴다거나 하는 건 너무 싫다. 좀 고생해도 이런 게 없는 게 좋다. 돈도 없으니 삐까뻔쩍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잘 수는 없지만 몸은 불편해도 맘은 편안했으면 좋겠다. 난 '평온을 얻기 위해' 여행을 가려는 건데 말야.

 

 

지금 돈 등등 땜에 기분이 언짢은 게 액땜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전전긍긍하다가 막상 가서는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여행.

 

 

지름신에게 당하다

 

말걸기[지름신과 겨루는 중]에 관련된 글.

어쩌면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을 듯.

 

 

시베리아-몰공 여행 준비가 매끈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힘을 내서 일찍부터 아침밥을 먹고 여행 준비를 위해 메일도 보내고 오전에 가방 싸 들고 외출을 했다. 일단 비자 발급에 필요하다는 사진을 찍고, 짝꿍이 고장 낸 Sony 디카를 고치고, 다시 사진관 가서 사진을 찾고... 점심을 먹었다. 시내 서점에 가서 여행객을 위한 러시아어와 몽골어 회화 포켓북을 한 권씩 사들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여행 가서 열라 사진 찍어야 하니까.

 

 

어제 밤새 지름신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잠도 설쳤다. 나는 왜 사진기를 사려고 할까? 사진은 왜 찍으려는 걸까? 돈 되는 사진기로 폼 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게 내 목적인가? 한참 뒤척이다가 스스로 즐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 순간 평화가 찾아왔다. 어떤 강박도 갖지 말고 사진을 찍자. 시베리아-몽골 여행 가서도 사정이 안 되서 사진 찍기가 어렵다거나 그냥 찍고 싶지 않아서 그만 두거나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냥 편하게 놀고 즐기며 셔터를 누르자.

 

내가 좋아서 사진을 찍는 거고 여행도 즐기려고 가는 거니 맘 편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가자. 무리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하여 힘도 나니 오전 오후 죙일 빨빨대고 여행 준비 따위로 돌아다녔다. 마지막 코스가 바로 지름신과의 대결 장소인 남대문 근처 수입상가의 사진가게였다.

 

필요한 장비라고 주욱 목록을 만들어 놓은 종이 쪽지를 내밀었다. 싸장님이 죽죽 가격을 적어가며 이건 얼마 저건 얼마, 소소한 소품을은 공짜. 내가 원하던 물건 한 가지만 없고 다 있었다. 물론 내가 잘 알지 못한 게 있어서 다른 걸 소개받기도 했고. 어쨌든 내 목록을 다 합산해 봤더니, 내가 인터넷 뒤져서 찾아낸 대략 최적가 합보다 작은 것 아닌가.

 

순간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갑자기 욕망이 끓기 시작했다. 지난 밤 잠을 설쳐가며 얻은 깨달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 나의 접사 렌즈여! 접사를 시작해 볼까 기대에 부풀어 찍어놓은 Nikon AF105mm Micro가 네이버 쇼핑 최저가보다 싸다니! D200도 요즘으로 치면 최저가네.

 

기냥 다 질렀다. 내가 원하는 용량의 저장장치만 없었다. 이건 용산 가면 더 싸게 사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지름신에게 당했다. 좀만 더 비싼 가게를 찾아갔으면 지난 밤 평온한 맘을 기억하며 적당히 포기할 건 포기했을 텐데.

 

 

그래도 맘이 가득한 접사 렌즈를 손에 쥐었으니 더 풍부한 표현을 시도해야지. 나의 사진 놀이의 성장을 위하여 열공!

 

 

 

P.S. 그나저나 여행비용은 어쩌나?

 

 

지름신과 겨루는 중

 

어제 견적을 내 보았다. 물론 나 혼자서 사이트 뒤져가며 냈다. 업체에게 문의한 건 아니다. 최저가와 최고가를 나름대로 정리했다. 평균가까지도.

 

 

한 뭉탱이의 퇴직금은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면서 가벼이 쓸 수도 없는 돈이다. 이 돈을 어떻게 받은 건데(과정 :   ). 더더구나 실업자니까.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사진기 사자. 돈 남으면 여행 가자. 그런데 이러면 남는 돈이 없어져 버릴 것 같다는 암울한 예상이 드니 슬슬 괴로워진다. 요즘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 말야.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거의 지른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빠꾸할 수 없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허구한 날마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풍경을 상상하고 어떻게 사진에 담을까 고민하고 있으니까. (역시 닥치지도 않았는데 사진 찍을 걱정은...) 상황이 어찌 돌아가다 그리 되었는지 시베리아-몽골 여행도 사진을 열나 찍지 않으면 여행을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당분간 나 좋은 건만 하고 살려는데, 사진 마꾸 찍는 게 좋고 긴 여행을 떠나서 생경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찍고 싶으니 사진기와 여행이 다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결국 여행 가기와 사진기 사기는 덩어리 돈이 필요한 지출들의 결합이 되어버렸다.

 

 

내가 사진기를 새로 장만하려고 했던 건 꽤 오래 전부터였다. 몇 년 째 돈이 생긴다면, 혹은 모아진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야겠다고 맘 먹고 있었다. 내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Nikon FM2라는 꽤 훌륭한 SLR 사진기가 있다. SLR 사진기는 들고 싸돌아댕길만한 크기에 화질도 좋고 렌즈를 교환해 가며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훌륭한 FM2가 나에게는 아주 적합하지 못한 점이 있다. 바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필름값과 현상-인화(혹은 스캔)비용이 든다는 거다. 이러니 마구 사진을 찍지 못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나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찾기가 어렵다. 나름대로 SLR만 23년을 찍었는데, 필름사진 찍기란 곧 돈이다 보니 원하는 만큼 찍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부자가 되기 전까지는 디지털SLR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필카의 화질을 아직은 따라잡지 못하는 DSLR이지만 내 처지에서 DSLR의 화질도 좋다. 행여 인화나 인쇄를 해야할 일도 생길지 모르니 보급형보다는 성능이 좋은 DSLR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지에 대한 까다로운 나의 기준도 만족할만한 기종. 그리고 나의 Nikon 호환 렌즈를 활용할 수 있도록 DSLR도 Nikon 모델. 결국 적당한 모델로 Nikon D200이라는 DSLR을 점찍어 두게 되었다.

 

D200과 이 사진기를 갖고 돌아댕기며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이런저런 물품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이제껏 없어서 불편했던 삼각대도 필요하고 사진기 식구가 느니 새가방도 필요하고 디지털이다 보니 메모리와 저장장치도 필요하고 등등. 이것들의 견적을 만들어 본 것이다. 그냥 200만 원쯤 했었던 D200을 위해서는 200만 원만 드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욕심까지 생겼는데 바로 접사 렌즈다. 사진을 찍다보면 순간 접사 렌즈의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접사 렌즈도 하나 마련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접사 렌즈 이 외에도 초광각이나 초망원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돈이 없다. 여행을 포기한다 해도 보자랄 판이니.

 

 

문제는 기대했던 공모에서 떨어지면서 여행 비용이 급상승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여행 비용이 얼마 들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다. 대략 200만 원에 수십만원이 얹어질 것 같을 뿐이다. 이래서 사진기 사고 남은 돈으로 여행을 가고자 했던 애초의 다짐이 뒤집혔다. 그래서 사진기 등에 필요한 돈을 계산하면서 지금 내게 있는 돈,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나갈 돈도 계산을 해 보았다. 아슬아슬하다.

 

결국 접사 렌즈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로 지름신과 겨루게 되었다. 내일쯤에는 장보러 나갈 생각이다. 현장에서 얼마나 후려치기가 잘 되느냐에 따라 접사 렌즈를 손에 쥘 지가 결정될 듯하다.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

 

며칠 전에 여행 함께 갈 사람들과 만났는데, '각'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했다. 문득 내가 쓰고 싶어졌다.

 

 

 

언제였더라... 민주노동당 정책위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다가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했다. 여럿이 있었는데 그 중 당시 제2정조위원장이었던 김변이 큰 돈 벌면 다함께 바이칼호 관광시켜준다고 했다. 가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나도 갈래'라고 소리쳤지만 그런 날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2월초에 사직을 하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조금씩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과연 난 뭘 하고 살까? 약 6년 동안 지친 건 몸뿐만이 아니라서 마음을 달래기에 바빴다. 내 안의 괴물을 알게 되니 무섭기도 하거니와 우울중과 불안증으로 하루가 괴로웠다. 앞으로 뭘 하든 당장은 나에게 좋은 건만 하고 살자 맘 먹었다.

 

소수의 사람들과만 접촉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누군가 여행을 권했다. 꽤 긴 여행. 새로운 공간에서 익숙치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면 감당하기 힘드니 적당한 깊이의 만남. 좋은 제안이라고 여겨졌다. 여행을 권한 사람이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다만, 돈이 얼마 들지 몰라 어떨지 모르겠단다. 잘 알지는 모르지만 '피스 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나처럼 연고 없는 사람이 참여하려면 1,500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한달 정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1,500만원이면 나한텐 지극히 사치스럽기도 하거니와 돈 만들 능력도 되지 않아 포기했다.

 

김이 새버린 처지일 때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다시 꺼냈다. 예전에 잠시 스치는 꿈만 꾸었던 바이칼. 상당히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는데 그 동안 바이칼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이것 저것 많이도 알아보았나 보다. 기본 루트와 기간, 대략적인 예산. 이 정도면 여행을 맘 먹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퇴직금을 받아내서 여기에도 쏟아 부어야 할테지만 난 떠나고 싶었다. 난 바이칼이 좋다기 보다는 여행이 필요했다.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의 여행에 대해 나는 짝꿍의 이해를 간곡히 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나름대로 가고 싶다는 표현을 했는데 짝꿍은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통보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한 문제다. 짝꿍은 내가 긴 여행을 가게 될 걸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난 가야겠다. 기대에 부풀다가 정작 가서는 고생스러워도,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생경과 개성을 지닌 풍광을 보고 와야겠다. 사진에다가도 담아 와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삼아야겠다. 난 너무 더럽고 절망적인 것들과 살아왔고 조롱과 비난과 상처에 익숙해져 있다. 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깊이 느끼지 못하면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도 결심하지 못할 거다. 이건 죽음의 길이다. 아직까지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니 파산과 함께 여행을 선택했다.

 

 

'각'이 제안한 컨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도 빌려주어 열심히 읽었다. 고생이 눈에 선하나 흥미롭다. '각'은 주변의 인물을 꼬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두 명을 더해 넷이 가자고 했다. 하나는 이제 유학을 결심한 듯하다. 이번 여행엔 함께 못하게 될 것 같다. 이번 일로 딱 두 번 만났음에도 아쉬웠다.

 

예산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불어났다. 지금도 불어나고 있다. 돈도 큰 문제라 고심하던 터에 환경재단의 'Green Asia 2006'이라는 공모 사업을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주제를 가지고 아시아 지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제출하면 심사해서 한 팀에 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3주 고생해서 나름대로 솔직하고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응모했는데 떨어졌다. 나름대로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팀이 떨어진 것에 적지 않은 이들이 쪽팔린 일이라며 놀려대고 있단다. 우리는 그냥 내정자들이 있었던 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더더욱 훌륭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채택되지 않았을 공모에 응한 게 어리석었다고. 이게 쪽팔린 거라고. 자존심이 상할 땐 남탓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각'의 애초의 제안과 달라진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도 몰랐던 러시아의 물가 상승이었다. 즉, 대략 200만원 씩이면 꽤나 잘 먹고 놀겠다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러시아는 여의도 물가란다. 또 하나는 여행 루트다. '각'은 중국의 베이징까지 들르길 원했지만 일정(이는 곧 돈)도 길어지고 체력에 자신없는 내가 몽골에서 끝내자고 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는 계획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될 지 모르니 중국비자는 받아두고 몽골-한국 항공권은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난 아마 못버티고 몽골에서 한국으로 날라올 것 같다.

 

며칠 전 여행자들끼리 만나서 날짜와 기본 루트를 만들어 보았다. 몽골 횡단열차의 운행 날짜를 알 수 없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 차이 정도니 문제는 아니다.

[여행 일정(안)]

 

6/25(일) 인천 → 블라디보스토크(항공편)

6/26(월) 블라디보스토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27(화) 하바로브스크 도착

6/28(수) 하바로브스크 관광

6/29(목) 하바로브스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30(금) 열차 안에서

7/1(토) 이르쿠츠크 도착

7/2(일) 이르쿠츠크 관광

7/3(월) 리스트비얀카 등 바이칼호

7/4(화) 이르쿠츠크 → 알혼섬

7/5(수) 알혼섬 일주

7/6(목) 알혼섬 → 이르쿠츠크

7/7(금) 환바이칼열차

7/8(토) 울란바타르로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몽골 횡단열차)

7/9(일) 울란바타르 도착

7/10(월) 울란바타르 관광

7/11(화) ~ 14(금) 고비사막 여행

7/15(토) 울란바타르 근교 등

7/16(일) 울란바타르 → 인천(항공편) or 북경행 열차

7/17(월) ~ 몇 일간 여행. 북경에 있다면

 

자, 이제는 비자발급과 티켓, 숙박 예매를 해야 한다. 다들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 좋은 결과란 '싸고 좋은 상품'을 취하는 것이다. 정보가 많지 않으니 돈을 무지막지하게 아끼진 못할 것 같다. 이제 러시아어와 몽골어 공부도 해야 하고 여행 물품도 마련하고 할 게 많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 큰 재미를 주었으면 한다. 그게 나의 여행 목적이니까.

 

 

'쪽팔린 게 싫다' 문화

 

행인님의 [어잌후... 뒌장...]에 관련된 글.

 

 

거창 농민회장 출신의 김상택이란 자가 민주노동당 군의원 후보로 나서더니 돈을 뿌렸단다. 화들짝 놀라버린 경남도당은 당기위를 통해 후보자격 박탈과 제명 처분을, 중앙당은 거창군위원회의 다른 후보들의 출마 자격 박탈과 해당 위원회 사고처리를 재빨리 시행했다.

 

(기겁한 이들이 꽤 많은 듯하다.  나는 돈봉투 사건에 놀라지 않았다. 나는 변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이가 없다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서서히 민주노동당을 나와 내밀하고 깊은 끈을 공유한 그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가 보다. 즉, 내면의 일부를 차지한 또 하나의 자아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상태가 좋아지는 걸로 이해한다.)

 

어쨌든 내가 이번 사건에서 깜짝 놀란 건 당이 어쩜 저렇게 잽싸게도 사건을 처리할까다. 이 놀라운 순발력! 선거시기이기는 한가보다. 그렇지만 당이 전력을 다해 예민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걸 가만하더라도 하루 만에 당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모든 걸 처리했다는 건 분명 '다른' 요소가 작용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기본적으로 '쪽팔린 게 싫다'가 정치 활동의 기준이다. 민주노동당이 출발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 정치문화는 민주노동당이 소위 '현실정치'에 길들여지면서 확대되고 안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적지 않은 지부급 인사와 중간간부들이 쪽팔린 것만은 피하고자 했던 자세가 크게 기여했다.

 

김상택이 같은 인간들은 민주노동당에 아주 많다. 적지 않은 수의 후보자들과 그들의 운동원들, 당 간부들은, "어쩜 저런 짓을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면서도 내심, 혹은 지들끼리는, "왜 재수없게 걸려서 똥물 튀기고 그래? 돈 뿌리는 것도 능력이래니까."라며 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 후보 중 누군가 돈뿌리니까 쯕팔린 것 뿐이다. 중앙당이건 경남도당이건 나뒀다간 더 쪽팔릴 것 같으니까 하루만에 일처리를 마친 것이다.

 

정치도의적 차원에서 수치심을 갖추는 건 미덕이다. 쪽팔린 게 뭔 줄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민주노동당의 정치문화는 '쪽팔리지만 않으면 된다'이니까 문제다. 즉, 유권자, 국민 눈치보기다. 이로써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당 내부의 문제, 또 하나는 당의 공개적 주장과 활동의 문제이다.

 

 

유권자, 국민에게 쪽팔린 게 싫어서 쪽팔린 건만 피하고자 한다면 결국, 유권자나 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을 문제는 해결하고 싶어하질 않는다. 당 내부 문제일 터이다.

 

농민회는 철저히 이익집단이다. 자기들의 농산물 생산 방식을 유지하면서 소득을 확대하고 싶어하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국의 농업과 농촌이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할까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입장때문에 지난 주요 선거 때 민주노동당과 전농의 합작 과정은 너무나 지저분했다. 농민회 몇몇 핵심 간부들은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농민과 관련한 게 없고 농촌 정책도 한 줄 없다고 전국의 농민회에 소문을 냈다. 그 새빨간 거짓 모략질에 대해 제대로 사과도 안했다. 게다가 환경농업 정책이 주요 공약화되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했는데, 그렇다면 무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면 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농민회가 심히 이기적이라 실질적인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소위 '운동의 윤리'라는 측면에서는 비판해도 정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은 비록 정치 논리 때문에 농민회에게 러브콜을 하더라도 이념적 일관성과 다양한 계급.계층 간 이해 조절을 위해 당의 시스템을 갖추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농민회 끌어들이면 쪽수 늘어날 정파의 이해와 한국 정치 제도 상 과대대표된 농촌에 조직을 심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민주노동당은 비굴하게 농민회와 합작을 한 것이다.

 

농민회 예를 들어서 그렇지 다양한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에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이들에게 이념적 지표나 정책적 이해, 연대의 정신을 체계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이 짓 하자면 힘도 들고 귀찮다. 그리고 이 짓 안한다고 쪽팔릴 일 없으니 그냥 안한다. 소위 유권자나 국민이라 불리는 집단은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하는 지에 관심 없다. '쪽팔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정치문화는 스스로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다듬는 데에는 힘을 쏟지 않는다.

 

 

쪽팔리는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싫은 대상이 유권자, 내지는 국민이라는 것도 문제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의 계급도 계층도 아니다. 너무나 다양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이해 당사자들이다. 다수에게 쪽팔리기 싫으면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난 폼나는 주장이나 여론 주도층의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 불평등으로 고통을 주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정책/주장을 펼치는 것도 폼나지 않으면 쪽팔리니 안하고 만다.

 

민주노동당의 많은 공직자들은 소위 지역사업의 상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울산 북구와 동구는 2002년 지방선거 대표 공약이었던 참여예산제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가 나름대로 개혁적이라는 타당 공직자가 먼저 시행하니 나중에야 그거 한다고 부산했다. 경기도 기초의원들 다수는 재산세율 인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면서도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며 조례를 발의했거나 찬성했다.

 

탈계급의 상징인 유권자와 국민이라는 개념은 사실 보수 언론의 시각을 대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유권자와 국민의 눈치를 보며 쪽팔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적인 보수파들의 눈치를 보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 강령정신에 동의하지도 않는 이들이 지역위원회에서 대장노릇하고 공직후보자가 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권자와 국민은 한 정당의 구성원이 당 강령에 동의하는지 안하는지에는 관심도 없으니까.

 

 

김상택이와 같은 불한당이 민주노동당에서 활개칠 수 있는 건 당의 정치문화가 몰계급적인 주체에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이러다가 쪽팔릴 일만 생긴다는 것이다. 쪽팔리기 싫어서, 쪽팔리지만 않으면 되니 미루어 두거나 외면했던 그 무엇때문에 쪽팔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고가 터지자 덜 쪽팔리려고 하루만에 제명 따위의 조치를 취하며 당원 교육 어쩌고 주저린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는 앞으로 지들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나 있을까 싶다. 선거 후 경남도당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경남도당의 대장은 문성현 대표다. 문성현은 선거 후에 당대표로서 더 이상 바지 사장 노릇 하지 않기 위해 뭔가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셈셈 바꾸지나 않을까.

 

 

아듀! 사랑니 둘

 

3주 전에 예약해 두었던 치과엘 갔다.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지니고.

 

 

말걸기가 어디든 9시까지 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일. 오후 9시도 아니고 오전 9시에 말야. 일찍 일어나서 나름대로 부지런 떨면서 멀지도 않은 세브란스 치과병원 구강외과에 도착한 건 9시 10분. 지각. 제 시간에 갈 리가 없지. 환자도 별로 없고 조용.

 

 

9시 15분 경. "말걸기씨 이리 오세요."

 

9시 20분 경. 매너 좋아 보이는 청년의 등장. "마취하겠습니다. 따끔합니다." 진짜 따끔하고 아픔. 주사바늘로 여기저기 쿡쿡 찌르는데 깜짝 놀라기도 함. 진땀도 등장. 마취될 때까지 기다린다며 매너 청년 퇴장.

 

금새 친절한 간호사 등장. "이거 읽어 보세요." 이 뺀 후에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주의 사항이 적힌 작은 종이. 음... 내가 궁금했던거야... 수술 도구를 주욱 늘어 놓고 나가 버림. 수술 도구에 겁이 덜컥. 나 같이 겁 많은 사람을 혼자 수술 도구 옆에 오래 앉혀 놓는 건 학대인 듯.

 

9시 30분이 좀 지나서 선수 체인지. 한 성격 하게 생긴 아저씨 등장. 의자를 뒤로 젖히더니, "아, 벌리세요."

 

꾹. 꾹. 꾹. 아마도 아래 쪽 잇몸 절개 중인 듯. 잇. 잇. 잇. 언제나 끝날까. 아프지는 않을까. 삐질삐질. 양손은 의자를 꽉 붙잡고.

 

위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사랑니 뽀개는 중인 듯.

 

읏. 읏. 읏. 부서진 이조각을 걷어내는 듯.

 

슥삭슥삭. 아저씨 손이 내 입 안으로 들락날락 하는 거 보니 꼬매는 거겠지. 이때쯤 안심. 다 끝나가는구나.

 

이번엔 윗니 쪽에서 뭐가 흔들리는 느낌. 쑤욱. 혀 위에 뭐가 툭 떨어짐. 뽑은 이를 놓친듯.

 

"입 꽉 다무세요."

 

10분 정도에 다 끝났다. 마취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내 왼쪽 위아래 사랑니를 전부 뽑아버린 것이다. 그 아저씨 완죤 선수.

 

"거즈는 2시간 동안 꽉 물고 계세요." 잉? 거즈? 입 다물라는 게 거즈 땜에 그런거구나. 감각이 없으니 거즈를 물었는지 안물었는지 알게 뭐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1주일 동안은 절대 술과 담배는 안됩니다. 이건만은 꼭 지키세요." 술 생각 요만큼도 안난다.

 

친절한 간호사에게 다음 진료 예약. 1주일 후에 실밥 빼러 간다.

 

 

마취가 풀리기 전에 죽과 식염수를 사들고 집에 가서 얼음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병원에서 퇴장. 이미 그때는 윗쪽은 마취가 풀리기 시작. 살짝 통증이... 안 돼! 집에 가서 얼음 찜질하기 전까지는 마취가 풀리면 안 돼.

 

집에 가서 언제 어떻게든 쓰러져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선 냉동실을 뒤졌다. 얼음 만드는 네모네모가 어디에 있는거야? 그때, 아이스 박스에 넣는 냉매 발견. 앗! 이거다. 얇은 수건에 감싸서 마취가 풀리기 전부터 얼굴에 대고 하루 종일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마취 효과가 있는지 괴로울 정도의 통증은 아직 없다. 지금은 얼굴을 삐딱하게 기울여서 얼굴과 어깨 사이에 냉매를 끼우고선 타이핑을 하고 있다.

 

밥 먹는 게 불편. 그래도 사랑니 뽑은 위아래 잇몸이 닿질 않으니 씹기는 한다. 하루 종일 입에서 피 냄새 맡으니 그것도 좀 싫다.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운 것도 불편. 이도 닦아야 하는데 치약이 따가울까봐 겁내고 있다. 뭐 이러다가 점점 통증도 가라앉고 아물겠지.

 

 

아픈 걸 무지 싫어해서 사랑니 빼러 가기를 주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기대'를 갖고 용감하게 치과엘 갔다. 왼쪽 아래 사랑니 근처가 아프기도 하고 항상 그 존재가 신경쓰였었다. 묵직한 게 나를 은근히 괴롭혔던 것이다. 털어내면 시원할 것 같았다. 그 시원함을 상상하니 슬쩍 설레임이 들더라. 이제 잘 아물도록 내 몸 잘 살펴야지. 노하우 개발로 오른쪽 사랑니들 뽑을 때는 좀 더 노련하게 대처하는 것도 잊지 말구.

 

 

호칭과 지칭, 그리고 존칭과 존댓말

 

re님의 [호칭]에 관련된 글.
리우스님의 [호칭에 얽힌 얘기]에 관련된 글.

 

 

1.

 

사람들은 가끔씩 지칭을 호칭과 구별하지 못한다. 지칭과 호칭의 형태가 동일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헷갈릴 법도 하지만. 보통 권위 있는 인사를 지칭할 때, 'ㅇㅇㅇ대표님', 'ㅇㅇㅇ의원님', 'ㅇㅇㅇ위원장님' 따위를 '~께서'와 함께 존칭으로 사용한다. 말걸기 같은 싸가지가 바가지인 새끼가 'ㅇㅇㅇ대표', 'ㅇㅇㅇ의원', 'ㅇㅇㅇ위원장'으로 '님'자 떼고 '~이/가'와 사용하면, 어떤 덜떨어진 것들은 진짜루 "싸가지 없는 새끼" 취급한다.

 

내가 아무리 되먹지 못한 놈이어도 권영감 앞에서 "어이 권영감, 잘 지내나?"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게 있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기분 상하게 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권의원님, 안녕하시지요?"라고 한다.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과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지칭은 다르다. 상대방을 부르는 건, 나와 상대의 관계에 따라,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할 지 그 태도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제3의 인물을 언급할 때는 그냥 그 사람의 이름, 이름에 직위를 붙여서 말하면 된다. 다만, 상당히 저주하고 싶은 대상에게만 '~새끼'라는 말이 붙듯이 존경과 권위를 담아 표현하고자 한다면 '~님'자를 붙이기도 한다. 이러고 싶다면 맘대로 해도 되는데, 남에게까지 존경과 권위를 담아 표현하라고 한다면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지칭에서 지나친 존칭은 권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칭에서의 존칭은 주의해야 한다. 할머니 앞에서 '아버지께서' 따위를 사용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즉, 윗사람에게 아랫사람에 대한 존경과 권위를 표현하는 게 웃기다는 거다. 이건 꼭 가족 관계에 한정할 건 아니다. 요즘 세상이라면 사회적 관계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 대변인실에서 'ㅇㅇㅇ대표님께서 ㅇㅇㅇ라고 말씀하셨다' 따위의 브리핑은 오만과 불손의 표현이다. 소위 유권자들한테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존경과 권위를 표현해달라는 듯 전달된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제발 그런 표현 쓰지 말라 해도 말을 안 듣는다. 이런 게 진짜 싸가지 없는거다.

 

하여튼 운동권이 더 권위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ㅇㅇㅇ대표님께서', 'ㅇㅇㅇ의원님께서', 'ㅇㅇㅇ위원장님께서'... 으, 지겹다.

 

 

2.

 

나는 말이 짧다. 나보다 왠만히 나이 먹지 않고서는 나한테서 온전한 존댓말 듣기 어렵다. 나는 유독 나보다 나이 많은 인간들한테 말이 짧다. 존댓말은 상대방과 나 사이의 위계이기도 한데,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 것이 나를 아랫것 취급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네가 짧으면 나도 짧다. 하지만 반대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 특히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일수록 존댓말을 쓴다. 그 사람 입장에서 나에게 반말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말을 놓을 만한 관계라고 생각할 때 말을 놓는다. 사적인 관계이거나 다분히 공식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말을 놓아버리면 나도 반말로 간다. 반말은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위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게 어려운 문제인데, 친근감으로 위장한 위계 강요가 있다. 상대방이 자기한테 말 놓기 힘들 걸 알면서 자기는 친근감의 표현이라며 말을 놓은 경우가 있다. 할배들한테는 봐주지만 대충 봐서 아저씨면 같이 말을 놓아버리는 습성도 필요하다. 자주 이러면 '싸가지 없는 놈', '원래 그런 놈'으로 여겨져서 오히려 갈등도 피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지나치거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존댓말 쓰는 경우는 네 가지 정도이다. ①존댓말을 안 쓸 수 없는 어른, ②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에게 존댓말 쓰는 사람, ③공식적인 관계 중심으로 만나서 말 놓기 좀 애매한 사람, ④존나 싸가지 없는 새끼. 특히 ④번의 경우는 '~습니다', '~습니까' 따위로 아주 공손한 표현을 사용한다. '너 같은 새끼랑은 사적인 관계는 없어'라고나 할까.

 

사람들이 반말을 쓰기 어려워 한다.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어 한다. 사회적 관계가 평등해질수록 존대의 표현은 적어진다. 20세기 초중반만 하더라도 한국어에서 존대는 4등급이었다. 지금은 '~요'의 확장으로 거의 2등급으로 바뀌었다. '습니다' 따위는 존대도 있지만 공식적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꽤나 바뀌었다. 여기서 쭉쭉 나가서 사람들 사이가 평등해지면 다 반말만 쓰게 될거다. 반대로 반말 많이 쓰면 관계도 평등해지는 면이 있다. 일단 개기기 쉬워지니까.

 

 

3.

 

존댓말-반말을 어떻게 쓸까보다 어려운 게 호칭이다. 나는 '오빠'라는 호칭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럴 관계가 없으니까. '형'이나 '누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배웠다. 어려서부터 형이랑 누나랑 살았으니까.

 

'언니'라는 표현은 호칭과 지칭으로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당 정책위에 '목언니'가 있는데 누군였는지 먼저 '목언니'라고 부르더니 다들 '목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손아래 누이가 손위 누이를 부르는 '언니'와는 사뭇 다른 의미이다.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 아닌, 불리는 사람의 지위를 담는 말로 보인다. 여기서 '언니'라 함은 당 정책위 사무실에서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여성을 칭(호칭 및 지칭)하는 말이다. 목언니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목언니'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는 하대보다는 존중의 느낌이 강하다. '목언니' 말고 '강언니'도 있다.

 

홍미로운 건 이런 호칭(및 지칭)이 남자를 부를 때는 없다는 점이다. 아무개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아무개형'이란 호칭이나 지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형'은 대체로 관계만을 담는다. 그래서 '형'이란 호칭을 쓰는 어떤 경우는 문제 있는 관계일 수 있다. 남자가 남자를 '형'이라고 부를 때, 진짜 형이니까 그러기도 하고 정말 사적으로 친해서 그러기도 한다. 그러나 공적인 관계도 갖는 듯한 사람들 사이에서 '형'이란 표현은, 남자들끼리 '형-아우'라는 '마초동맹'이 형성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이가."

 

얼그러진 인간 관계 때문에 애초 가족 관계에서 파생한 호칭('언니'는 애초 가족 관계에서 나온 건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렇게 쓰인다)은 그 맥락과 상황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언니'가 비하의 의미로, '오빠'가 여성을 포박하는 의미로, '형'이 마초동맹의 의미로, '누나'가 야릇한 불륜의 의미로 쓰인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관계에 빗댄 '언니, 오빠, 형, 누나'라는 호칭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려운 것이다. 이 어려움도 모르고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은 싸가지 없이 막 불러댄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을 피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님', '~씨' 따위의 표현이다. 무성적이고 나이 관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호칭이 특정한 상황에서만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님'은 PC통신 시절부터 많이 쓰이기 시작해서 지금은 인터넷에서나 기업이 손님을 부를 때 널리 사용한다. 블로거들도 아마 '~님'을 선호할 듯하다. '~씨'는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널리 퍼진 듯한다. 그런데 문제는 직위가 낮아서 직위명이 호칭으로서 뽀대나지 않는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하게 되어 하대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호칭이라는 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으면 좋으니 사람들은 직위를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공적인 관계에서는 무난하다. 하지만 직위를 호칭으로 사용하는 건 권위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특히, '직위+님'이 호칭으로 쓰일 때 그렇다. 그냥 직위만 호칭으로 부를 때는 권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직위만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에도 듣고 있는 제3자의 입장에 따라 불쾌할 수도 있다. '자리'라는 것 자체가 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말을 놓을 수 있는 관계라면 'ㅇㅇ아', '야'로, 존댓말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면 'ㅇㅇ씨'로 불리는 게 좋다. 'ㅇㅇ님'은 너무 존대하는 것 같아 부담된다. 직위를 호칭으로 불릴 때도 가끔은 어색했다.

 

참, 남을 부르고 내가 불리는 것도 힘들다. 뭐가 우리들 사이를 이렇게 힘들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