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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15
    [터키/이스탄불] 아야소피아(2)
    말걸기
  2. 2006/05/12
    빨래 삶는 방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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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네이터 T1000의 고통을 체험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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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5/09
    <월간 레디앙> 기고 -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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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5/05
    대추리... 보면서 든 생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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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5/05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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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5/03
    &quot;직업이 뭐예요?&quot;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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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5/03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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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5/03
    &quot;여선생이 너무 많아&quot;
    말걸기

차라리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은 한국의 기업(방송사도 포함)에게 월드컵 특수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준 모양이다. 돈벌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와서는 거대 통신사끼리 민망한 응원가 경쟁을 벌이게 한다. 온갖 사은품 잔치로 월드컵 판매 전략은 끝이 없다. 기업이 돈 벌겠다는데 짜증부릴 게 뭐냐고 한다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무엇보다도 낯뜨겁고 민망하고 짜증나게 하는 게 바로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이다.

 

방송사는 이미 언론 보도의 사회적 기능 따위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4주나 남은 월드컵 관련 보도를 내보내기 위해 이 사회의 '갈등'은 씹는다(<레디앙>'9시 뉴스가 스포츠 뉴스로 바뀌었나'). 사회를 구성하는 제각각의 주체들이 갑론을박, 티격태격 하는 갈등이 있어야 사회는 굴러간다. 사실 갈등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현상이다. 언론 보도는 이에 충실해야 '공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갈등의 보도를, 그 크기와 중요성에 비추어 누가 왜 무엇을 했는지를 심층적으로 제공해야 언론은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2006년 한국 언론은 핑계 거리가 생겨 아주 노골적으로 '공익성'을 부정하고 있다. 씹쌔들. 공익방송이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내뱉는 MBC와 KBS가 SBS보다 재수없다.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은 나름대로 매력적인 팀이다.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는 듯하고 본선에서 매번 잼나는 경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즉, 열렬한 응원을 받을 만한 팀이고 16강, 8강, 쭉쭉 올라가는 것도 무척 익사이팅한 일이 될 것이다. 짜증 만땅 2006년도에 그나마 즐거움을 제공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축구팬에 한해서.

 

하지만 난 요즘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16강에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G조 리그에서도 시큰둥하게 경기를 해서 일말의 기대도 받지 못한 채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소간 16강 실패의 원인을 찾아낸답시고 각 언론사들이 개지랄 떨겠지만 얼마나 가겠는가. 그냥 축구가 좋아서 월드컵 좋아하는 사람들만 늦은 밤 다른 나라 경기에 몰두하는 조용한(?) 월드컵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론이 주목해야 할 건 월드컵 16강이 아니다. 6월이면 지방선거 직후이다. 줄줄이 부정선거로 걸려들어 시끄러울 때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권력 재편의 본격적 서막이 오를 시기이다. 6월엔 임시국회도 열린다.  FTA나 평택이 갈등도 깊어질 것이다.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의 태도는 별개일 수 있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이 그럴까? 월드컵을 방패 삼아 더더욱 자본과 권력이 숨기고자 하는 문제를 열심히 숨길 것이다. 월드컵이 없다 하더라도 일부러 숨기는 게 있기는 하지만 '뉴스 거리'를 위해 가끔은 소개하지 않던가.

 

 

공중파 방송사들이 공익 보도를 저버리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KBS는 그나마 수신료도 받고 나름대로 '한국방송'이라는 자존심도 있으니 좀 덜 밝히긴 한다. 그러나 KBS가 공익방송에 투여한다해도 부족할 수신료를 거의 독점하고 있으니, MBC는 KBS와 SBS 사이에서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가장 공익적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공중파 방송인 EBS는 수능 교재 팔아서 돈 안되는 프로그램 만들고 있으니, 한국의 공중파 방송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디지털 방송을 미국식으로 합의해준 방송계는 그 때문에 지상파 DMB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위성 DMB와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위성 DMB의 위험성은 가장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할 통신 영역에 가장 상업적인 통신사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썩을 만큼 많은 통시사와 DMB로 경쟁해야 할 공중파 방송사들의 운명은 무엇이 될까? 이 바보 새끼들은 이런 경쟁이 한국의 공익 언론의 미래를 갉아먹을 걸 알면서도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공중파 방송사들에게 돈 될 일만한 것들은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다. 돈이 더 궁해서 피골이 상접할 정도가 되어야 그 쯤 가서 '공익성'을 내걸고 언론 개혁을 얘기할 것 같다. '돈 버는 일 포길할테니 공익 방송은 보장해 달라'며.

 

 

그래서 그 1탄이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졸전이었으면 좋겠다. 실질적 효과도 없는 허망한 기대일 뿐이라도 좋다.

 

 

[터키/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아이비님의 [이스탄불/아야소피야/060318] 에 관련된 글.
아이비님의 여행기를 가끔 읽는데, 내가 가본 곳이라 왠지 반가워서 글과 사진을 올린다. 지난 얘기기는 하지만.

 

 

아야소피아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소재한 사원이다. 지금은 '박물관'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말걸기와 짝꿍은 신혼여행으로 터키에 갔었고, 때는 2003년 3월 초중순이었다.

 

@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2003. 3.)

 

아야소피아는 아이비님이 소개한 대로 6세기(537년)에 지어졌다. 이 건축물은 1,500여년 동안 무수한 지진을 견뎌냈다고 한다. 요즘 말로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었단다. 사람들이 아야소피아를 신비하게 여기는 이유는 건축을 시작한 후 5년 10개월 만에 지어졌음에도 이렇게 거대하고 튼튼한 건출물이기 때문이다.

 

아야소피아 맞은 편에는 아야소피아 건축 약 1,100년 후 지어진 블루모스크(술탄아흐메트 사원)가 있다. 1609~1616년 사이에 지어진 이 사원은 크리스트교도에 대한 무슬림의 자존심을 걸고 더 크게 지으려고 했었단다. 그러나 이런 양식의 건축물들의 자존심인 꼭대기 돔의 크기는 아야소피아가 더 크단다.

 

아야소피아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었고, 이슬람의 점령지가 된 이후에는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무슬림들은 아야소피아의 벽화를 회로 칠해서 덮어서 그들의 문양을 그렸단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한참 회벽을 걷어내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 공사를 위해 설치한 듯.

 

21세기 초엽에 아야소피아는 흥미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슬람의 세월을 걷어내어 나타나는 비잔틴의 벽화가 이슬람의 유물과 공존하고 있었다.

 

@ 아야소피아 내부 벽화. 성모상

 

다음 사진은 엄지 손가락 넣고 나머지 네손가락을 떨어뜨리지 않고 한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구멍이 난 금속판이다. 성모 마리아의 손모양이란다. 소원을 빌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손이 지나가는 자리만 반들반들.

 

당시에는 아야소피아 내부가 상당히 공사 때문인지 조명도 없고 어두워서 이것저것 구경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다음에 가면 비잔틴 시대의 벽화도 구경할 수 있겠지. 어두운 곳에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폼만 잡고 왔다.

 

@ 폼 잡는 짝꿍.

 

 

빨래 삶는 방법

 

말걸기[푸른빛 속옷] 에 관련된 글.

 

 

진경맘을 위한(?) 빨래 삶기

 

*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말걸기도 배우게.

* 말걸기는 기저귀나 애기옷을 삶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1. 빨래감을 분류한다.

 

(1) 삶을거냐 아니냐

- 면으로 된 속옷, 티, 수건, 기저귀 등을 골라낸다.

- 행주는 면이 아닌 것도 있는데 삶아도 된다.

- 속옷(주로 여성용) 중에 100% 면이 아닌 게 있는데 말걸기는 삶아버린다.

 

(2) 삶을 빨래감을 색깔별로 분류한다

- 색이 거의 없는 것, 붉은 것, 노란 것, 푸른 것

- 색이 너무 진하면 같은 색 계열의 빨래감도 흉하게 물드니 이런 건 아예 따로 삶아야 한다. 이런 빨래감(주로 수건)은 여러 번 삶으면 색이 약간 빠지면서 물이 잘 배어나지 않게 된다.

 

 

2. 한번에 삶을 빨래감을 모은다.

 

(1) 삶는 통(나는 들통을 사용한다)에 마른 빨래감을 가득 채운다

- 너무 꾹꾹 누르지도 말고 설렁설렁 채우지도 말고. 딱 요만큼이 적당하다.

- 마른 빨래감이 물에 젖으면 부피가 확 줄어든다.

 

 

3. 빨래감를 치댄다.

 

(1) 제대로 삶으려면 색소없는 빨래비누로 치댄다.

- 빨래비누를 묻힌 다음에 빨래판에서 치대어 거품을 낸다.

- 지지 등 이물질이 많이 묻었다면 한번 헹구고 다시 치댄다.

- 허리 아프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2) 그냥 맹물에 치댈 수도 있다.

- 하나씩 빨래판에 치댄다.

- 이것도 귀찮다면 빨래감들이 마치 하나라고 생각하고 뭉탱이로 치댈 수도 있다. 그래도 이물질이 많이 묻는 게 있다면 그것만 따로 치대야 한다. 다른 빨래감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 대부분 따뜻한 물로 치대나, 피가 묻었다면 찬 물로 치대야 한다.

 

 

4. 삶는 통에 빨래감을 넣는다.

 

(1) 비누기, 물기를 빼지 않고 넣는다.

 

(2) 빨래 양쪽끝을 잡고 한 바퀴 살짝 돌려서 넣는다.

- 빨래 짜듯이 돌리면 안된다. 그냥 모양만 꽈배기로 만든다.

- 꼬지 않고 넣으면 삶을 때 풍선처럼 부푸는 빨래감이 생긴다. 삶을 때 물이 잘 넘친다.

 

(3) 빨래감을 도너츠 탑을 쌓듯이 바닥부터 차곡차곡 넣는다.

- 빨래감들이 들통안벽 따라 붙어, 가운데는 구멍이 뻥 뚫린 모양이다.

- 빨래감의 높이는 들통의 높이에 비해 5cm 정도 낮다. 이보다 빨래감의 높이가 높으면 물이 넘친다.

 

 

5. 세제를 넣는다.

 

(1) 빨래비누 조각을 넣는다.

- 비누 조각을 그냥 넣으면 빨래감이나 삶는 통에 붙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면 양말에 넣으면 좋다.

- 예전엔 빨래비누를 많이 써서 찌꺼기가 많았는데 이런 걸 양말에 모아놓으면 좋다.

- 표백 효과를 위해 옥시크린을 조금 넣을 수도 있다.

 

(2) 귀찮다면 옥시크린만 넣어도 된다.

- 물의 양에 비례하여 넣는다. 옥시크린에 설명이 붙어 있다.

- 들통에 삶는다면 옥시크린 용기 뚜껑의 2/3에서 3/4정도면 된다.

 

 

6. 물을 채운다.

 

(1) 빨래감 높이의 2/3정도, 틍통 높이의 1/2정도 넣는다.

- 빨래감이 물에 다 잠길 필요는 없다.

- 물이 너무 많으면 삶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물도 넘친다.

 

 

7. 삶기

 

(1) 센불에서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10여분 삶는다.

 

(2) 작은 불에서 10여분 삶는다.

 

- 말걸기는 대체로 각각 10분을 초과하여 삶는다. 그래도 15분은 넘기지 않는다. 너무 오래 삶으면 물이 다 증발해 버려서 태우는 수가 있다.

- 빨래감이나 물이 좀 많으면 물이 넘치는데 넘치는 모양을 살펴보면, 빨래감을 들통안벽에 붙여 쌓았기 때문에 들통안벽과 빨래 사이에 끓는 물이 솟아서 넘친다.

- 이럴 때는 나무 주걱(말걸기는 빨래 삶기 전용 나무 주걱이 있다. 재질이 좋지 않아서 음식 만들기엔 별로인 주걱)같은 것으로 빨래감을 살짝 가운데 쪽으로 모아준다.


 

8. 헹구기

 

(1) 세탁기로 헹구기와 탈수를 한다.

- 세탁기에서 헹굴 때는 어떤 세제도 넣지 않는다. 또한 샤프란같은 섬유유연제도 넣지 않는다.

- 말걸기는 세탁기에서 어떻게 헹구는 게 가장 적절한지 실험해 보지 않았다.

- 귀찮아서 보통의 빨래 빨듯이 기본값으로 맞춰져 있는 빨래 버튼 눌러버리고 만다.

 

 

 

* 기저귀나 애기옷의 경우에는 어떤 세제도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삶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새하얗게 삶아지지는 않지만 민감한 아기 피부에는 약간의 세제도 좋지 않다는 얘기다.

 

* 빨래비누로 치댄 후 빨래비누 조각만 넣어서 삶는 게 젤루 좋은 것 같다. 말걸기는 힘들고 귀찮아서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하지는 않지만.

 

 

터미네이터 T1000의 고통을 체험하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

 

 

<터미네이터 2편>에서 업그레이드된 터미네이터가 등장한다. T1000. 이 금속 덩어리는 몸을 늘리고 펴고 제 맘대로다. 사람, 사물, 주변에 반응을 어찌나 잘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 뛰어난 반응은 아마도 훌륭한 신경계가 있으니 가능할 거다.

 

T1000이 고통스럽게 용광로에서 녹아버리기 전, 운명을 달리할 듯한 위기를 맞았더랬다. 액화질소 탱크로리의 파열로 온몸이 얼어버린 것이다. 액화질소의 기화로 몸의 열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 피부(껍데기?)에서부터 전해오는 차가운 기운이 신경계에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었을까? 상상해 보라! 물기 없는 마른 손으로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얼음조각을 쥐어보라. 살이 떨어져 나가는 그 아픔.

 

하지만 몸뚱이가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아픔만 있는 게 아니다. T1000은 용광로의 열로 얼어버린 조각조각이 다시 녹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아픔이 없을까? 얼었던 몸이 녹는 다는 것은 차디찬 냉기가 조금씩 빠져나간다는 것. 신경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면 살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다시 겪어야 한다. 얼기보다 녹는 게 오래 걸리니 그만큼 고통의 시간도 길다.

 

 

여차여차 우여곡절 끝에 세브란스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가 주 목적이기는 했으나 오른손의 세 손가락에 솟은 사마귀 치료도 받았다. 의사는 사마귀 치료 방법 중 그나마 재발율이 낮은 냉각치료를 처방했다. 냉각치료란 사마귀를 얼려 죽이는 것이다.

 

치료실에서 젊은 의사가 약간 큰 솜봉에 액화질소를 묻히더니,

그 솜봉을 내 손에 난 첫번째 사마귀에 지진다.

사마귀가 순식간 얼어버린다. 아~악!

두번째 사마귀에도 지진다. 으~윽!

세번째 사마귀도 마저 지진다. 흐윽!

"이제 한 번 했습니다. 이렇게 두 번을 더 하면 됩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버린 사마귀와 신경들이 녹기 시작한다.

냉기가 빠져나가면서 고통은 점점 심해진다.

이 통증에 익숙해지려는 순간 다시 아~악! 으~윽! 흐윽!

내 몸의 일부는 얼어버리고 있는데 다른 모든 곳에서는 땀이 솟는다.

또 다시 아~악! 으~윽! 흐윽!

 

 

병원에서 나와서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한두 시간 후 쯤에 약효가 나타났다. 참을 수 있는 통증으로 바뀌었다. 온몸이 순식간 얼었다가 서서히 녹는다면 타이레놀이 몇 알이나 필요할까? T1000은 터미네이터답다.

 

 

푸른빛 속옷

 

지난 4일 이후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불편하다. 진보네 블로그에 오면 답답하고 갑갑하고... 진정할 수 없는 작은 떨림 내지는 긴장이 계속된다. 이러다 블로그에서 도망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다 생까고 별 일 없는 듯 시시껄렁한 일상이나 얘기해 보련다.

 

 

 

푸른빛 속옷? 나와 짝꿍의 속옷을 다 합쳐봐도 푸른빛이 도는 속옷은 없다. 이거 내 취향까지 드러내자니 민망하기는 한데, 내 속옷은 다 하얗다. 나의 이런 취향은 그냥 어려서부터 하얀 속옷 입고 살다보니 그리 된 것 같다. 뭐 별로 속옷에 관심도 없고.

 

나의 하얀 속옷은 하얀 면옷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 열라 삶아도 끄덕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면은 적절히 삶아 주면 수명도 더 길어진다. 뽀송뽀송한 느낌은 상쾌하다. 면의 좋은 질감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삶기! 그래서 나는 속옷과 수건은 항상 삶아 빤다.

 

내가 너무 게을러서 짝꿍이 '네가 삶을 때까지 못 기다리겠다'며 쌓여 있는 속옷과 수건을 통째로 세탁기에 돌려버린 적은 몇 번 있었으나, 그래도 꾸준히 속옷과 수건은 부지런히 삶아왔다. 삶기 경력이 늘다 보니 몇 가지 속성 삶기 등 얍삽한 수도 늘었지만 피해야 하는 빨래 삶기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색깔 짙은 수건은 따로 삶아야 한다는 것.

 

나는 짙은 빨강색과 파란색 수건을 싫어한다. 이건 삶으면 색소를 왕창 내뱉어 다른 빨래를 물들인다. 곱게 물들이면 모를까 얼룩이져 기분이 상한다. 물론 사용하기에 불편은 없지만. 그래서 색깔 있는 수건들은 비슷한 색깔끼리만 삶고 아주 짙은 건 아예 따로 삶는다. 가끔 아차해서 내 속옷이나 하얀 수건 중 분홍빛이 도는 것도 있긴 하다.

 

조금 전에 빨래를 삶았는데 이번엔 속옷 삶기. 부엌에서 사용하는 행주와 작은 수건도 함께 삶았다. 근데 삶다보니 푸른빛이 돌기 시작했다. 뭘 잘못 넣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하얀빨래가 대부분이었고 색깔이 있긴 하지만 여러 번 삶았어도 색이 묻어나지 않았던 옅은 빛깔의 행주 뿐이었다.

 

세탁기로 헹구고 탈수한 다음에 빨래를 널어보니 범인이 잡혔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의 수건이었다. 이 수건은 옅은 연두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배어나지 않을 소재로 보였다. 그러나 같이 삶은 게 화근이었다.

 

왼쪽 사진에도 보이듯이 가늘지만 짙은 녹색의 선, 불과 5mm밖에 되지 않는 선에서 푸른빛 물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 수건은 처음 사용한 건데 이럴 줄 몰랐다. 들통 안에서 함께 부글대던 다른 하얀 속옷 모두를 푸른빛이 돌게 만들어 놓고 뻔뻔하게 널려 있는 모양새도 얄밉다.

 

어찌되었든 내가 사고를 쳤으니, 살짝 푸른빛 도는 내속옷은 입고 다녀야지 어쩌겠나. 하지만 짝꿍 속옷 망친 건 어쩌나. 짝꿍이 어디가서 속옷 자랑할 일은 없겠지만 옷이라는 게 안에 입나 밖에 입나 자기 만족인데 그리 이쁘지도 않은 푸른빛 속옷이 만족스러울까 싶다. 착한 짝꿍은 괜찮다고 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좀 미안하다.

 

 

아직도 빨래 삶기 내공이 모자란가 보다. 살림의 수련은 끝이 없나.

 

 

<월간 레디앙> 기고 - 쓴소리

 

인터넷 신문 <레디앙>은 주주와 후원회원에게 <월간 레디앙>을 제공한단다. 창간 한 달이 넘어 첫 호를 발행할 모양이다. 나에게 '쓴소리'를 부탁했다. 쓰고 나서 다시 보니... 참 '쓴소리'답다. 에휴~. 난 왜 쓰는 글이 다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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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의 기사 하나하나는 다른 인터넷 신문의 기사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기사의 질은 언론사의 생명이기는 하지만 후발 주자로서 이것에만 승부를 걸 수는 없다. <레디앙>은 ‘열정과 진보 그리고 유혹의 미디어’라는 타이틀로 출발하였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인상적인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창간한지 한 달 남짓인 신문에 이걸 요구하는 게 무리라면, 자기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모양새가 맥이 없다고 하겠다. 결국 기획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색이 명쾌하지 않으니 좋은 기사들로 채워졌다 하더라도 산란(散亂)하는 듯하다. 혹은 빈곳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다른 말로 신뢰감일 수 있다.


나는 진보언론사의 기획은 의제를 발굴․형성하기 위한 모색이라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전하는 소식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나쁠 게 없지만 자칫 ‘정치계’ 소식의 ‘진보버전’으로 고착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결과적으로는 진보정당의 주장과 활동을 전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주장과 활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사전에 면밀히 보도하지 않는다면 ‘사건소식지’, 그것도 진보정당의 소식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평택 대추리의 투쟁 보도는 군 투입 이후 민주노동당의 반응에 집중되어 있다. 진보언론이라면 이같은 한국사회의 처절할 단면에 대해서는, 문제의 발생과 전개, 이해당사자들의 행동 분석을 그 갈등의 시간만큼 기사들로 쌓아놓을 수 있어야 한다. 보수언론이 외면하는 또는 왜곡하는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사후 보도에 앞서 사전 기획이 빛나는 <레디앙>을 바란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이 자신의 역사를 읽게 될 때 <레디앙>의 유혹은 강렬해질 것이다.


<월간 레디앙>의 원고인 이 글은 원고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 청탁을 받은 글이다. 이런 일을 당하니. 괜한 비약일지는 모르겠으나, 기획만큼이나 운영의 불안함이 느껴진다. 푼돈 주주인 주제라 약간은 민망한 마음으로 ‘쓴소리’를 끄적댄다.

 

대추리... 보면서 든 생각

 

트랙팩님의 [대추리에 평화를 ! 릴레이 선언] 에 관련된 글.

대추리... 보면서 든 생각.

 

1. 이 나라의 우파는 자존심도 없다.

 

2. 이 나라의 우파는 애국심도 없다.

 

3. 놈현과 윤광웅은 군대가 뭔지 모른다.

 

4. 윤광웅 살려줬던 민주노동당은 각성부터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밤새 욕이나 할거다.

개새끼들!

 

 

광화문에서

 

5월 4일(목) 오후 7시. 대추리 침탈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가 있었음.

광화문에서.

 

짝꿍하고 저녁 먹느라고 좀 늦게 도착했는데,

정확한 장소를 몰라 교보생명 근처에서 찾음.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길래 따라 갔더니 동아일보 앞.

비염 땜에 치료 받고 있는 말걸기는 최대한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외곽에서 뺀질뺀질.

 

궁금했던 거.

왜 여기서 이러고 집회하고 있지?

 

바로 근처에서는 'Hi 서울 축제' 일환인지 청계천 연등제가 있었고,

저녁부터 사람들은 청계천 근처에 바글바글.

다음날이 휴일이긴 한가 보군.

'Hi 서울 축제' 전야제는 세종로 여기저기 커다란 스크린에서 방송.

효리의 춤도 보이더군.

(효리의 춤은 '퇴폐'보다는 '일상' 혹은 '일상의 적막'으로 느껴졌음.)

 

내 느낌은,

거대한 빌딩 숲 여기저기서 돌아가는 도심 한가운데 시위대가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도심의 일상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수백 명이 모여도 고독, 고립으로 여겨질 뿐 반항이나 거부, 개떼같은 개김과 같은 느낌은 못 받았음.

다만, 교통 체증으로 인한 짜증만이 감성의 영역인 듯.

 

2시간이 넘는 집회 시간,

즉 경찰차가 둘둘 둘러싸고도 남는 시간.

이 시간이 지나서야 진출을 도모.

허리가 잘려 KT와 교보생명 사잇길까지 진출.

이 때는 교통 체증도 없는 깊은 밤 술레잡기 같은 느낌.

솔직히 이때만 잠깐의 긴장과 재미를 느낌.

 

대추리 침탈에 대한 보복, 혹은 그로 인한 격렬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그래도 좋고),

어떤 방식이든 '난리'를 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기냥 2~3백 명 뿐이라도 저녁시간 차들로 엉킨 세종로 일대를 마비시키든가.

30분 안에 다 잡혀가더도.

그럼 나중에 온 1~2백 명이 또 '난리'치면 되잖아.

 

지나가는 시민한테 '니들은 자존심도 없냐'는 말 한 마디 값은 했어야 하지 않나 싶은거지.

이 정도는 되어야 대추리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 받은 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아니었는지.

 

하는 것도 없이 블로그와 인터넷과 TV를 보고선 나름대로 부글부글 대다가

간만에 출두한 집회였음.

 

 

&quot;직업이 뭐예요?&quot; - (2)

 

말걸기["직업이 뭐예요?" - (1)]에 이어 본격적인 얘기를 풀어야겠다.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직업을 물을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들의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사실 다양한 변종이 있다.

"직업이 뭐예요?"

"무슨 일 하세요?"

"무슨 회사 다니세요?"

"그렇게 하고 다녀도 회사에서 뭐라 안해요?"

"평범한 일을 하시지는 않은가 봐요?"

"머리 모양이 참 독특하시네요?"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이 서로 다른 내용의 질문들을 나에게 물었을 때는 사실 거의 같은 의미이다.

 '네 머리 참 희한하게 생겼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일명 '꽁지머리'라 불리는 이 머리칼들은 워낙 거칠고 푸석푸석해서 우수사랑은 '옥수수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 노란 머리칼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난 항상 머리가 짧은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짧게 자르고 다녔다는 건 아니다. 귀차니즘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미용실에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귀와 목을 덮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러다가 길어진 머리를 견디다 못해 미용실에 가서는 짧게 깎아 버린다.

 

어느날 문득 머리를 길러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목과 눈 주변을 찌르는 머리칼을 견디지 못할 듯했다. 그러다 문득 특정한 곳만 기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래저래 머리 모양을 구상해 보았다. 결국 뒷머리 왼쪽만 기른 다음 빨갛게 물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좌익빨갱이'니까.

 

요즘 같으면 소위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수소문해서 나의 구상을 설명한 다음 제대로 된 머리 모양을 만들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걸 못해서 그냥 가던 미용실에서 목을 덮고 있던 내 뒷머리 일부를 손으로 움켜쥐고선 "이거 빼고 싹 밀어주세요" 했다. 난 아주 왼쪽으로 머리가 남길 바랬으나 어정쩡한 곳에 남아버렸다.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패스. 다시 목을 덮을 때까지 머리를 기른 후 처음부터 시작할라니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이대로 기르자.

 

상상을 해 보라. 한 4~5cm밖에 되지 않는 머리가 왼쪽 뒷머리에 요만큼만 붙어있으면 얼마나 흉할까를. 집에서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잘라라. 이게 뭐냐." 이 한 마디 돌아가가가 몇 달이었다. 내가 돌 지경이었으나 개겼다.

 

이 머리칼은 빨갛게 물들이지 않고 제 머리색대로 기르고 있었다. 2002년이 되니까 꽤 길어졌는데 그 때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애초 계획대로 빨강색으로 염색을 했었는데, 이를 위해서 검은색을 한참 빼고 나서 빨강색을 들였다. 이날이 언제였냐면 월드컵 한-이태리 16강전이 있던 날이다. 축구 중계가 시작하기 전에 물을 들이기 위해 집 근처 미용실에 갔는데, 아무래도 이 아저씨 축구 중계 보려고 맘이 급했는지 뚝딱뚝딱 물을 들이는 게 아닌가. 원래 빨리 물이 들도록 제작한 약품이란다. 믿었지. 이틀동안 머리도 안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머리를 감을 때 물 싹악 빠졌다. 젠장. 다신 그 집 안가.

 

빨강물을 제대로 들인 건 2003년도다. 3월에 결혼식을 했었는데 내가 신경쓰고 준비한 것 중에 하나가, 딱 그 부분만 빨갛게 물들여 쫙쫙 편 머리 모양이다. 돈 좀 쎈 미용실에 가서 물 안빠지게 당부하고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도 비싼 걸로 했다. 내 결혼식 사진 보면 가관이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내 머리 모양 보고 신기해 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지 아저씨 아줌마들에겐 얼마나 재미 있었을까.

 

난 머리숱도 별로 없고 잘 빠져서 한참 지나면 물을 들였던 머리칼은 다 빠지고 검을 머리만 남는다. 그럴 땐 가끔 물을 들이곤 했는데, 빨강물은 몇 번 들이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푸석푸석해서 좋지 않단다. 그래서 검은물만 빼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옥수수 수염'이 된 것이다.

 

 

내가 뒷머리의 한 부분만 기르고 다닌 게 5년 반쯤은 된 것 같다. 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길렀으니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장난스레 뭐든 해보고 살았던 것 같다.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접 해보는 실험정신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는 그 실험정신 말이다.

 

어쨌든 난 이 실험에서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여태껏 보지 못한 어색한 행동을 하는 걸 싫어한다. 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구박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엄니는 6년 가까이 머리 자르라는 말씀을 하셨다. 짝꿍도 내 머리 모양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당에서 일할 때 처음에는 부총장까지 나서서 머리 자르라고 했다. 반면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 희한한 짓을 하면 재밌어 한다. 물론, 자기에게 피해가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희한해서 꺼리는 나의 머리 모양을 계속 보면 익숙해진다. 그냥 그렇구나 해버린다. 짝꿍도 언제부턴가는 익숙해졌는지 하는 얘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이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 머리칼 건강에 신경쓴다. 또는 내 머리를 뒤로 젖히고선 긴 머리칼로 내 등을 쓰다듬을 때가 있는데 이런 행동은 귀엽단다. 그리고 가끔 내 머리를 정성스레 따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익숙한 걸 좋아한다. 그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건 보기도 듣기도 싫어하고 해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게 나쁜거라고 생각한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게 보수성이다. 눈앞의 작은 변화도 싫어하는 것이다. 변화가 다 진보고 옳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가 될 이유도 없는 걸 익숙치 않다고 꺼리고 배제하는 태도는 그야 말로 폭력이다. 난 5년 반 동안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했다. 자기들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난 수없이 조롱과 비웃음과 '머리 잘라'라는 강요와 무거운 시선을 느끼고 살았다.

 

"직업이 뭐예요?"는 나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희한한 놈으로 여기는 시선이기도 한다. 또는 자기가 갖을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나에게 부러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난 불쾌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찌하고 다니건 그대와 상관없는 나에게 왜 쓸데없는 간섭을 한단 말인가.

 

내 머리 모양에 대한 반응으로 알게 된 건, 운동권이나 아니나 똑같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느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매한가지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성격 따라 다른 거지 이념에 따라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국 난 실험으로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1.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것을 싫어한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면 부끄러워한다.

2.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싫어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3. 익숙치 않은 것에 대한 경기는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운동권도 똑같다.

난 여기에서 더 나아가, 즉 비약이 될지 모르는 결론을 추론하고 있다. 이제는 진보운동한다는 것들 다수도 변화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 자기들 익숙한 대로 운동한다는 것. 그게 현재 속성이라는 것.

 

 

이제 내 머리 모양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6년이 다 되어가니 주변 사람들 반응도 별거 없다. 실험은 끝났다.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결론까지 얻었으니 고만 됐다. 모가지에 기승을 부리는 아토피 피부염도 치료할 때 되었고 하니 겸사겸사 꽁지머리를 잘라버릴 거다. 귀차니즘의 작동으로 인하여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조만간 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질 거다. 좀 아쉽긴 하다. 안녕.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

 

새벽길님의 [맘에 안드는 노동절 집회]

해미님의 [짜증을 넘어, 허탈한 노동절]

달군님의 [엄마는 모르실꺼야?]

스머프님의 [메이데이 에필로그..]

강철새잎님의 [투쟁하지 않는 노동절]

행인님의 [[마라톤] 메이데이 마라톤 참가]


등등 노동절 후기와 관련된 글일 것으로 믿음.

 

 

병원에 간다는 이유로 노동절 집회 및 행사 다 빼먹은 주제에 이런 글까지 쓰면 뻔뻔한 축으로 몰릴 수 있겠으나, 이제 뻔뻔하게 살 때도 되었으니 그냥 쓸란다.

 

2006년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노동절 행사는 말 그대로 '왕짜증'이었나보다. 요즘 스트레스에 민감한 내가 어느 곳에도 가지 않은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블로그에서만 익숙한 블로거들을 만나지 못한 것, 그리고 찌라시 못 뿌린 건 안타깝고도 미안하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심한 노동절 행사를 지적하고 있다. '아빠 힘내세요' '엄마는 모르실꺼야'에서는 확 깬다. 더더구나 그 망할 뽀스떠와 함께 의도된 컨셉이었다는 것에 뒤로 넘어간다. 그 한심함은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지역의 노동절 집회와도 비교된다. 메인 구호가 선거구호로만 채워지는 것도 어색하긴 하다. 보수정당 심판은 좋은 얘기지만 '투표소 가서 민주노동당 찍어라'하고 동일한 의미로 씌여지니 어색하고 민망한거다.

 

나는 이 모든 후기들의 의미를 이해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노총이 마라톤 대회를 연 건 좋은 본보기라 생각한다. 오만 잡것들 TV 나오게 판 벌려 준 게 한심하고, 명박이한테 감사나 하는 짓거리가 짜증날 뿐이다. 투쟁의 긴박함 없는 시청 잔디밭의 시민축제같은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나는 노동절 집회 뿐만 아니라 이 바닥 집회가 사실 다 짜증난다. 그건 그 집회에서 얘기하는 혹은 외치는 말과 구호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주저리는 새끼들만 주저리는 게 싫다. 그 씨방새들이 지껄인다고 투쟁의지가 높아지나? 힘이 커지나? 행사 주관자가 A부터 Z까지 다 결정하고 동원령 때리는 집회가 싫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집회 잘 안간다. 눈치 보여서 가거나 누구 만나서 노닥거리러 갈 뿐이다. 이제는 눈치 안보니 놀고 싶어지면 집회 나갈거다.

 

일년 내내 싸움없는 데 없고 갈등없는 데 없다. 투쟁은 일년 내내 해야 하니 하루쯤 놀면서 쉬자는 의미로 노동절 행사나 집회를 치렀으면 좋겠다. 개떼같이 모여서 재밌으려면 행사 주관자들이 A부터 Z까지 결정하는 행사는 꽝이다. 주관자는 판만 깔고 나서 찾아온 사람들이 알아서 놀게끔 빠져주는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거시기 연사들 주저리는 말보다는 집회장 여기저기에 나름대로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이래저래 듣는 게 더 유익하다고 믿는다.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을 KTX 승무원이 행여 마이크 잡고 얘기한들 직접 대면하고 얘기해 보는 것보다 좋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방향으로 모두 앉혀놓고 무대 위에서 발언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 그러는 모양인데, 난 천만의 말씀 만만의 팥떡이라 생각한다. 왠만한 선동가가 아니면 무대 위에서 발언해 봐야 감정이입도 안되고 주목도 잘 안된다. 하지만 얼굴 맞대고 대화하면 상대가 말을 썩 조리있게 하지 못해도 집중하게 되고 그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실려오는 의미를 알아챈다. 이런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당일에는 한정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파급력은 더 좋다고 믿고 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행사장 여기저기에서 돌리는 거다.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고, 연설하고 싶으면 연설하고, 호소할 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호소하고, 책 팔고 싶으면 책 팔고, 전시하고 싶으면 전시하고. 물론, 돌아댕기고 싶으면 열나 돌아댕기고. 뭐, 좀 모두 모였으니 잼나는 거 해보자 싶으면 행진하며 웃고 떠들고. 개성 있는 플랭카드 따위 들고 와서 자랑도 해보고. 행진이 밋밋한 사람들을 위해 달리기도 하고. 까이꺼 노무현 싫으면 괜히 청와대 쪽으로도 기웃거려 보고. 안되면 말고. 좋잖아.

 

A부터 Z까지 주관자가 다 정하는 집회는 기본적으로 선택을 위해서 묻혀버리는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가 권력이기 때문에 지들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한다. 적절히 정치세력간 안배를 고려하기도 하겠지만 생까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데서 힘을 얻으라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노동절 집회와 같은 행사에서는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으쌰 하면서 새로운 투쟁방향을 '총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게 일반적 운동권 정서인 듯해서 하는 말이다. 난 이게 운동권들이 갖고 있는 환상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투쟁방향이나 계획 따위는 집회 안 해도 이미 다 나와 있다. 사이트에 다 있다. 메일로도 온다. 모르겠으면 전화하면 다 안다. 그걸 노동절 집회와 같이 넓다란 곳에서 빽빽히 모인 사람들에게 마이크 잡고 떠든 들 뭐 달라지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끄덕끄덕 하나?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 평소에 못해본 거 해보고 못해본 말 해보고. 주관자가 할 말 다 정해놓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훈시하듯 지껄이고 노래하고 춤 추는 건 아주 오래 전에 '해방감'을 주었었다. 결코 지금은 아니다. 왜 예전엔 군화발 앞에서 집회를 했었나? 그 순간은 '해방감'을 주었으니까. 그래서 조직선 없어도 대중 집회에 사람들이 모이고 구경했던거다.

 

갑갑한 현실, 그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현실에서 하루쯤 해방감을 즐기는 날로 노동절을 삼아보자. 그걸 함께 즐기자고 하자. 하나 둘씩 모여서 더 커지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