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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변천사

아르바이트로 저금한 돈을 몽땅  털어서 trv900을 샀던 98년 이후,

수많은 카메라들을 거쳐왔는데 어제 부로 모든 카메라들을 다 정리했다.

금단현상처럼 카메라 없는 상황이 무척 불안하다.

처음 손에 익었던 카메라는 VX1000. 링으로 초점을 맞췄었는데 참 잘 썼는데..

왜 지금은 링초점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지.

TRV900의 PUSH AUTO가 너무 몸에 익어버린 것이다.

모두들 PD150을 쓸때 내내 TRV900을 쓰다가 단종된 PD100을 사려니까

촬영전문 및 환경문제 전문감독 K형이 A1을 추천해주었었는데..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인상이 참 오래갔네.

 

미영감독의 메인 PD150- 서브 PC330 시스템을 나름 부러워하다

PC300을 마련하긴 했으나 TRV900은 내수용이 영어인 반면,

PC330의 내수용인 PC300은 완전 일본어.

포커스와 역광보정 버튼만 선택하면서 완전자동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페이스며 기능버튼, 배터리가 A1과 동일하다는 점을 애써 떠올리며

좋게좋게 생각하려고 '이건 운명이야'라는 최면을 걸어봤지만 결국 포기하고 PC330을 샀다.

그리고 최근 정떨어지는 일을 겪으면서 A1은 정리.

그 와중에 HV30과 GS250을 잠깐 써봤는데 역시나 이런 저런 단점들에 실망.

 

그런데 이제 와서 내 손을 거쳤다 떠나버린 카메라들이 새삼 그리운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병인 것같다)

가장 아쉬운 건 HV30.

지금 만약 내 손에 있다면 열심히 열심히 연습해서

그 카메라에 내 몸을 맞출텐데.

문제는 정성이고 연습인 것을.

 

브레송은 평생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으면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촬영연습을 했다 한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몸에 맞는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에 나를 맞추며 내 몸의 일부처럼 쓰일 수 있도록 연습하는 일이었다.

이 평범하지만 간단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나는 참 많은 댓가를 치른 것같다.

 


촬영본으로만 따지면 10년, 기획단계에서부터 따지면 4년.

그 작업의 편집을 위해 촬영본들을 보면서

어차피 HDV가 아닌 DV작업이었다면 구태여 A1을 쓸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왜 멍청하게 A1을 썼을까 하는 후회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다시 TRV900을 구했다.

거의 새것에 가까운 깔끔한 카메라를 손에 들고 나는 알았다.

이건 그저 과거에의 집착일 뿐이라는 것을.

정상이라고 하기 힘든 그 시간들의 끝을 나는 그 때 맞았다.

 

불평을 하면서도 A1에 익숙해져있었고 TRV900은, 기억에 비해 너무 컸다.

초점맞추는 건 여전히 좋았지만

내가 TRV900을 처분했던 이유:오디오 문제 는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적인 공간의 내밀함을 담기 위해 작은 카메라를 선호해왔지만

사실 이제 안 사실은 아무리 작더라도 카메라는 카메라다.

내밀한 공기 유지의 비밀은 카메라의 크기에 달려있지 않은 것이다.

아마 이 금단현상은 오래 갈 것같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이 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그리고 정말 신중하게 나한테 맞는 카메라를 골라야겠다.

 

메인카메라 없이 아이들용 카메라만 있는 첫날은 좀 이상하다.

항상 내 옆에는 카메라가 있었는데....

촬영을 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들고다니던 카메라.

내 카메라들.

부디 좋은 이들의 곁에서 좋은 영화 만들면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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