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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

1.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기.

조금만 방심하면 생각이 저기 저 마음 밑바닥 어딘가 또는 과거의 어딘가로 가있다.

생각이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미친 듯이 읽다.

읽다 보니 예전에 읽은 책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늘 트릭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중시해서 읽었던 탓에

추리소설인데도 두 번째 읽기가 문제가 안 되었다.

내가 언제 이 책들을 읽었었나 잠시 생각해보니

그때 e북으로 읽었던 것같고 한국이 아니었던 것같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던 것같다.

근데 약간 한심한 건 씨엠립과 방콕의 기억이 자꾸 섞인다는 것.

일행이 있었는데도 혼자서 세월에 닳아가는 존재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이

겹치고 또 겹친다. 

여행의 이유는 어떤 감정상태를 만나기 위해서인듯.

그것만이 남아있으니까.

 

2. 맺히지 않도록 잘 정리하기

관계 문제이다. 

그것이 미움이든 그리움이든 꼬인 데 없이 맺힌 데 없이

잘 풀어서 흘러가게 해야 함.

요 며칠 작물에 물을 주는데

호스가 꼬이면 거짓말처럼 물이 딱 멈춘다.

그렇게 계속 멈춰있다가 터지려나?

감정의 호스를 꼬인 데 없이 잘 풀어서

한방울도 남지 않도록 잘 흘려보낼 것.

꼭지는 벌써 잠갔다.

 

3. 체크리스트 작성.

할 일을 적고 매일 밤 o,x로 체크.

일단 해야할 일은 촬영본들 디지털라이징.

두렵다. 손상되어있을까봐.

 

4. 평상심

몇 주 전에 환각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사람은

환각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으로부터 깨어난 후의 그 추락하는 기분이 싫어서라고.

갑자기 찾아온 최근의 상영 후 내가 그랬다.

나한테는 상영이 마약같은 황홀경을 선물하는 듯.

6월에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상영이 끝난 후 며칠은 바닥없이 가라앉는다.

그리고나서 돌아본  일상엔 먼지가 쌓여가는 컴과  작업노트.

 

오랜만에 작업노트를 꺼냈다.

마지막 기록이 2014년 1월  16일이다.

1년 반만에 작업노트에 할 일을 적었다.

학생들에게 늘 말해놓고서 나는 못 지킨 약속.

매일 작업일지를 쓰기.

작업일지를 써아겠다.

 

5. 오늘의 작업일지

몇 달 전 사무실 회의에서 동료들은 조심스럽게 밀양과 세월호에 몰두하는 것이

작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물었다.

한참을 횡성수설 하고난 후에 회의가 끝나서 밥을 먹는데

세월호로 나를 이끈 동료가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말이 안 돼. 원래 하던 작업하고 지금 활동하고 연결이 되는 게 있어?

작업으로 연결이 가능해?"

 

아니오. 가능하지 않습니다.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밀양은 작년에 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세월호는.... 거기 어떤 요소에 내 이야기를 얹기에는 제가 용기부족입니다.

 

회의 때 동료가 말했다. 

현안하고 연결해야 한다면 너한테는 보육교사가 있잖아.

 

계속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독립다큐작업은 늘 협업이다.

그리고 나의 협업 파트너는 보육교사, 보육노동자들이다.

밀양과 세월호에는 여전히 작업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파트너는 지금 외롭게 동그마니 남겨진 채로

비난당하고 있다.

정말로 의리를 지켜야할 상대는 바로

내 파트너였던 거다.

 

힘겨운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부심은 없는,

"혹시라도 10년 후에 감독 특별전에 얼굴이 나올지도 몰라서 싫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던 나의 파트너들.

존경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당신들이

바로 

나의 파트너였던  거다.

그것이 나의 자리이고

나는 그리로 가야하는 거지.

그래서 내 작업으로 돌아가는 게 그렇게  망설여졌던  건가.

작업자의 마음 안에서조차 1등이 아닌 당신들.

굳게 결심하고 내가

만나야할 것같다.

 

오늘의 다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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