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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레드툼>

<레드툼>을 보는데 

보는데....

정말 못 보겠다.

단조로운 화면들인데

주름진 얼굴로 회상하는 그 말들이.

누군가의 자식이거나 부모거나..... 

한 우주의 소멸.

대학 때 열심히 읽었던 현대사 책들을

어느 순간 멀리 했던 건

분하거나 안타까워서였는데

다시 영화를 보려니

그 분함과 안타까움과

슬픔과 억울함이

너무 찐해서

결국 다 못보고

나는 그냥 잘란다.

외면한 채.

 

그리고 다음날 완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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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역사, 잔인한 국가

구자환 감독의 <레드 툼>

 

이번 호에 소개할 영화는 <레드 툼>입니다. <레드 툼>은 구자환 감독이 자비로 만들고 관객들의 성금으로 어렵게 개봉한 영화입니다. 상영관도 잡기 힘들고 홍보도 거의 안되어서 구자환 감독은 <레드 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SNS에 관객들의 참여를 호소하며 구체적인 실천지침까지 정리해주셨습니다. 포털에서 <레드 툼>을 검색해서 기대지수와 예고편 조회수 높이기, SNS에서 공유하고 RT로 알리기, 예매하기. <연평해전>과 <터미네이터>가 거의 모든 극장의 상영시간표를 도배하고 있는데 배급사나 홍보사 없이 혼자서 영화를 개봉한 구자환 감독이 기댈 곳은 관객들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간절한 호소에 힘입어 저도 <레드 툼>을 보았습니다. <레드 툼>은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여러 인권영화제들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마음만 먹었다면 찾아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레드 툼>을 피해왔습니다.

작은책 독자들 중에 저와 비슷한 분들이 있을 것같아요. 순진하게 교과서만 믿고 살아오다가 우연히 한국 현대사 책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1945년 해방으로 열린 자유로운 정치공간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합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했지요. 하지만 강대국들이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특정 정치세력 만을 지원함으로써 해방 조선의 다양한 가능성은 철저하게 짓밟히고 맙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나서 처음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에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은 것같아 가슴이 몹시도 뛰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역사책을 읽거나 근현대사가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울화가 치밉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믿음은 현실 세계에서 번번이 좌절되는데 그 좌절의 시작이 그 시대에 있는 것같아서요. 그리고 그렇게 어긋난 세상이 순순히 바로잡힐 것같지는 않고 화만 계속 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외면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바로 제가 <레드 툼>을 피한 이유입니다.

<레드 툼>의 원래 제목은 ‘빨갱이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주위의 비판 때문에 영어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경남 마산, 진주, 창원, 거제, 통영, 밀양, 창녕……. 구자환 감독이 카메라에 담은 영화 속 장소들은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집단 매장지입니다. 그 매장지에 ‘빨갱이 무덤’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연 적절할까요? 그 답은 국민보도연맹이라는 조직의 성격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요.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정권이 좌익세력의 색출과 회유를 목적으로 만든 사상교화단체였습니다. 하지만 지역별 할당제가 실시되면서 사상과 관련없는 무고한 민간인까지 가입시켰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와 경찰은 이들을 학살합니다. 최대 45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수 있다는 잠정적 판단 만으로 집단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논에서 일하다가 끌려간 사람도 있고 극장에서 강연회가 있다고 해서 갔다가 끌려간 사람도 있습니다. 오빠 대신 끌려간 여성도 있습니다. 희생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고 유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가족을 잃었습니다.

구자환 감독은 이 모든 사실들을 건조한 증언을 통해 알려줍니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이들은 학살 현장을 목격했거나 시신을 묻는 부역에 참여한 매장 지역의 주민들입니다. 그 분들의 증언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은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여기서는 안되고 저 산 위에 가서 풀어주겠다”라는 거짓말을 곧이 믿는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학살 현장에서 도망 나왔다가 다시 끌려간 어떤 희생자는 자신을 아버지가 이발소를 하는 진주 사는 유가라고 소개한 후 “머리엔 총을 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죽어갑니다. 주민들의 목격담에 의해 재현된 마지막 순간은 그 장면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추모제 장면 이후부터는 유가족들이 등장합니다. 오빠가 잡혀간 후 어머니가 산발인 채로 교도소를 찾아다녔다던 여동생의 회상, 젖먹이 아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시동생만 면회를 가게 했던,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던 아내의 회한,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랐지만 연좌제 때문에 일찌감치 농부가 된 아들의 포기. 추모제 휘장에 빼곡히 적혀있던 이름들 하나하나는 그렇게 소중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매장지에서 나온 허리띠 버클, 반지, 그 당시 유행했다던 동그란 안경 등은 그들 중의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에의 꿈을 가졌던 지식인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붉은 피, 뛰는 심장, 벅찬 희망을 가졌던 한 사람이, 아니 거대한 우주가, 한 순간에 소멸되어 버리고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는 폐광에 갇혔거나 땅 속에 묻혔거나 깊은 바다 속에 잠겨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발굴현장을 찾아다니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차곡차곡 모아서 영화를 만든 구자환 감독은 "이들의 유해가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 역시 후손에게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물려주는 것이 된다"고 경고합니다.

구자환 감독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분들의 몸과 사연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증언이 더해갈수록 정답게만 보였던 시골 풍경들에, 그 밭에, 울창한 나무숲에, 바닷물에, 갈대에, 어떤 형체가 어른거립니다. 내가 몰랐던 타인의 고통이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어긋난 역사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라는 큰 물음 앞에서는 여전히 무기력합니다. 하지만 땀 흘리며 노동했던 순박한 농부였거나 새로운 세상을 열망한 지식인이었던 그 분들의 죽음을 이대로 묻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들의 죽음을 설명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해방 이후 우리가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자환감독이 알려준 대로 열심히 영화를 보고 알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레드 툼>은 현재 극장 상영과 공동체 상영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꼭 찾아보셨으면 합니다.(문의: 구자환 감독 010-713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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