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처음 글

갑작스럽고 일방적이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용기를 내서 힘껏 요청했는데
돌아온 건 말없는 침묵.
 
당신에게 깊이 매혹되었지만
감정은 휘발될 것이고
꼭 그리될 것이고
그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잘 기다리면
속깊은 친구로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아무도 힘겹게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같이 늙어갈 수 있는
동네 친구 한 명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라고 부탁했던 건
그런 관계를 바랬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닮았다고, 이해받는다고, 통한다고,
성큼 다가서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숨을 고르고 말을 고르고 마음을 고르면서
평생 나눌 수 있는 교류를
매일 조금씩 나누려 했다.
 
너무 가까워지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교류의 총량은 정해져있으므로.
지금보다 가까워져서 
너무 밀접하거나
너무 소중하거나 
그렇게 배타적인 관계가 되어버리면
그 관계는 이 생애 안에서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끝을 바라지 않았다.
끝을 바라지 않아서 조심했다.
 
끝날 수 없는 관계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낳고 함께 키워온 관계.
함께 삶을 만들어오고 우리들을 돌봐온 파트너를
존중하며 소중히 하며 살아야한다, 우리는.
 
그러면서도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서
달콤한 사탕을 아껴서 빨아먹듯
시간의 솜털을 세는 기분으로 
당신과의 일분 일초를 생생하게 느끼며
매일 샘물같은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 끝이다.
이 끝이 아프다.
일방적인 이 끝이.
부드러운 말들 사이에
언뜻언뜻 신랄한 태도가 비쳐서 
그 부드러움과 신랄함 사이의 불균형에
의아한 적도 있었지만
당신이란 사람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던 거다.
이런 끝이라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