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무명 엄마

개구리를 죽였다.

두꺼비였을 수도 있다.
길을 건너는 개구리를 발견했고
개구리가 뛰기 전에 얼른 통과하자고
속도를 높였으나 안타까운 타이밍으로
개구리는 내 차에 부딪쳐 죽었다.
사이드미러로 개구리가 중앙선 위에서 
느리게 드러눕는 게 보였다.
생의 마지막 행동이었을 거다.
나는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다 울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네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처음은 아니었을 거다"라고 했다.
한의사샘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생태계 질서유지의 한 과정이라고 했다.
두 사람 다 위로를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나의 뇌는 내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불가능한 가정만을 무한반복할 뿐이었다.
 
하루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
중앙선 위에 하얗게 배를 드러내고 누웠던
낮의 마지막 이미지를 복기하며
개구리를 찾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반대편 차선 길 가운데에
손바닥만한 형체가
웅크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기고양이였다.
차를 멈추자 얼른 도망갔다.
조금 더 가자 아기고양이가 또
그렇게 길 가운데에 웅크리고 있었다.
차를 멈추자 또 아기는 얼른 도망갔고
밖으로 나가
아기야 이리 와
손을 내밀자
길가 풀잎 속에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있던
아기고양이는 더 먼 곳으로 숨었다.
몸을 돌려 차에 타려는데
내가 가려는 길 저 앞에 
죽은 고양이가 있었다.
엄마 고양이인 듯했다.
아기들이 엄마 주변에 그렇게 있었던 거다.
 
적당한 도구가 없어서
낮에 먹은 한약의 빈 봉지를 막대 삼아
엄마 고양이의 시신을 길 가로 밀었다.
부서진 얼굴, 터진 몸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 몸이 떨렸다.
 
목요일은 아침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한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마고양이의 시신이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나 또한 지구 생명체 중의 하나로서 
다른 생명체의 시신이 그렇게 존중없이 썩어가는 걸
방치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같았다.
집에 가서 삽과 피자상자를 챙겨서 
다시 엄마고양이에게 갔다.
벌써 벌레가 생겨있었고
악취가 났다.
부서진 얼굴을 쳐다보는 게 괴로웠다.
피자상자에 엄마고양이를 담아 조수석에 놓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자가 자꾸 벌령거려서
엄마고양이의 얼굴이 보였다.
무서웠다.
 
미요의 무덤 옆을 삽으로 깊게 파고
그곳에 엄마고양이의 몸을 눕히고
흙으로 덮었다.
진물이 흐르고 썩어가는 몸에
촉촉한 흙이 덮이는 순간
<캐러비안의 해적>이 생각났다.
머리에 흙이 뿌려지자
편안하게 떠날 수 있었던 해적들의 이야기가.
 
무명의 엄마에게.
엄마 옆에서 맴돌던 그 아기고양이들에게 
당신이 어디있는지 알려주세요. 
당신을 찾아 오게 된다면
제가 그 아이들을 돌볼께요.
너무 빨라서 잡을 수도 없었어요.
지금 굶고 있을지도 모를 그 아이들에게
"아기들아, 엄마는 이 곳에 있다"라고
꼭 알려주세요.
평화를 빕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