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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로움이 나를 불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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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죽도록 고생 하다가 어떤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갑니다. 열아홉 살 청년과 열 네 살 소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처음 청년이 왔을 땐 자신을 내보이기가 부끄러워 여기 저기 숨던 소녀는 나중에는 청년을 일꾼으로만 알고 “아제 아제” 부릅니다. 주인집 아기씨와 일꾼으로 몇 년을 보내다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고 76년을 함께 삽니다. 이번 달에 준비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그 두 사람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몇 년을 담은 영화입니다.

 

몇 년만 더 살면 백 살이라고 웃는 조병만 할아버지와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강계열 할머니의 일상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마당을 같이 쓸다가 낙엽던지기 놀이를 하고 눈이 예쁘게 내리면 눈싸움을 합니다. 눈사람 더 예쁘기 만들기 시합을 한 후 손이 시립다 하면 남편이 그 손을 붙들고 호호 더운 김을 불어줍니다. 무던한 일상처럼 무던해진 사이로 남편과 살아가는 저한테는 참 비현실적인 장면이더라구요. TV를 보던 할머니가 “아 곶감 먹고 싶다”라고 혼잣말을 하면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없다는, 그리고 어느 순간 곶감을 들고 나타났다던 딸의 증언을 듣다보면 그 비현실성은 더해갑니다. 입덧할 때 제가 친정집 반찬이 먹고 싶다고 하니 남편은 “그런 생각 잊고 빨리 자야 한다”고 충고했었거든요.

 

개울물에 깨끗이 씻은 봄나물로 밥상을 차리고 그렇게 만든 반찬을 밥숟가락에 얹어주는 아내. 어두운 밤 마당에서 화장실에 간 아내가 무서울까봐 노래를 불러주는 남편.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76년을 살아온 부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물론 궁금하기는 합니다. 남편과 14년을 살며 사랑도 낡아가는 거라고 느끼는 저로서는 여전히 설렌 눈빛을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모습이 솔직히 낯설었거든요. 좋은 일 뿐 아니라 불행한 일도 함께 겪었을 텐데 그들은 늘 서로가 사랑스럽기만 했을까? 최근 1년 동안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로서는 그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미웠던 적은 없으세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자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할아버지가 쓰다듬습니다. 그 장면 뒤로 할머니의 말이 흐릅니다. 할머니가 어린 신부였을 때 할아버지는 잠자리에서 늘 그렇게 할머니의 손을, 얼굴을 만졌다고 합니다. 어린 신부가 무서워할까봐 하지만 내 옆에 온 이 고운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다정한 손길로 귀를, 뺨을 만지면서 애틋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겠지요. 그리고 어느 날, 어린 신부가 남편에게 스스로 안겼을 때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는 건 그렇게 할아버지의 평생 습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그 말들이 할아버지의 삶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귀가 어두워 말수가 줄었다는 할아버지가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며 담담하게 그 시절을 들려줍니다.

 

“고생도 참 많이 했지. 울며 남한테 설움 받으며”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어린 할아버지가 살기 위해 겪어왔을 시간이 그려졌습니다. <마더>에서 자기 아들의 죄를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운 김혜자가 묻잖아요? “너는 엄마 없니?”라구요. 악동들이 고아를 만만하게 보는 이유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편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잖아요. 할아버지는 그 한 사람이 없는 채로 어렵게 어른이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상에 내 편이 되어줄 단 한 사람을 드디어 곁에 두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아이들을 몇 낳으니, 그 아이들을 데리고 살림을 하고 그 다음부턴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지.”

 

할아버지가 주름진 얼굴로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지”라고 말하는 그 순간, 혈혈단신 할아버지가 느꼈을 외로움과 고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 외로움의 강도만큼이나 자신의 삶에 들어와준 할머니가 고맙고 소중했겠지요.

 

그렇다면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어땠을까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 할머니가, 너무너무 서럽게 울던 할머니가 울면서 하셨던 한마디가 저 비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제 궁금증을 풀어주었습니다.

 

“할아버지 불쌍해 죽겠네. 할아버지 생각을 누가 하나. 나밖에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몇 년 전에 생각했습니다. 사랑의 마지막 단계는 연민인 것같다고. 좋아하고 설레이는 감정이 사랑의 첫 단계라고 한다면,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사랑의 중간 단계라고 한다면, 미움과 불신과 실망과 무관심의 모든 단계를 거친 후에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감정의 이름은 연민인 것 같다고, 저는 몇 년 전에 큰 결심을 하듯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같아요. 그래서 평생 그렇게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살아오셨나봐요. 아궁이 앞에 앉아 언 손을 녹이다가 따뜻해진 손을 할아버지의 이마에 짚어주던 것도, “나 다리가 아파요”라고 말해 할아버지가 호 하고 할머니의 무릎을 불어주게 하던 것도, 당신의 외로움이 나를 불러서 내가 당신 곁에 있는 것이라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보살피고 그리고 당신의 보살핌을 받는 내가 늘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기 위해서 였나봐요. 그래서 그 강을 건너가버린 할아버지가, 내가 그 강을 건너기 전까지 혼자 있을 것이 너무 불쌍해서 할머니는 그렇게 무덤 가를 떠나지 못하고 우시나봐요.

 

저는 이 영화가 참 좋았습니다. 사랑의 비밀을 할머니와 공유한 듯해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가지 더 좋았던 건 제가 늘 무서워하던 죽음에 대해서 조금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고 절망이 아니며 단지 그 강을 건너는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강을 건넌 후에 입으시라고 미리 평상복을 태우는 할머니의 말과 행동이 죽음에 대한 제 두려움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11월 27일에 개봉해서 현재 극장 상영 중입니다. 날이 많이 춥습니다. 삶과 사랑과 죽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만나보세요.

                                                 작은책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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