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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날들

1.

2주일만에 작업실에.

9월에 멈춰있는 심기일전용 다이어리를 교체.

열심히 작업한 후 작업실을 떠나기 전 그 날의 날짜에 X자를 그린다.

지나온 날들과 남아있는 날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게는......그리 많지 않은 날들이 남아있다.

올해 안 완성이 불가능한 것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지만

길게 보지 않는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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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술인파견 촬영이 끝났다.

별 일이 다 일어남.

오후 4시쯤에 나는 강화읍에서 정글도와 장갑을 사서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울창한 수풀을 헤치며 길을 만들고 있었음.

파견예술인 일을 시작했을 때

재단은 우리들에게 돈대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데에 필요한 영상물을 부탁했다.

우리들은 아트필름을 만들기로 했고.

그리고 처음엔 3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트필름에 동의했고

촬영감독을 쓰기로 했다.

재단에서 갑자기 예산이 취소되었다고 했고

나는 "촬영감독 인건비가 없다면 아트필름에 동의하지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힘.

 

영화감독에도 두 종류가 있다.

이미지를 테이킹(taking)하는 감독과 이미지를 메이킹(making)하는 감독.

나는 현실의 이미지를 테이킹하는 다큐멘터리감독이다.

나는 흰것은 희게, 검은 것은 검게, 노출이 과하지 않게 찍을 수는 있지만

빛의 마술을 부리거나 스테디켐, 짐볼, 오스모같은 장비를 쓸 줄 모른다.

그런 건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감독들이 직접, 혹은 촬영감독을 써서 하는 거다.

아트필름은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필름이다.

만약 예산이 없었다면, 촬영감독을 고용한다는 전제가 없었다면

나는 내 특기인 이미지테이킹, 다큐멘트적인 홍보영상을 고집했을 것이다.

 

우리 팀에는 음악, 무용, 영상2인이 있는데

나는 다른 영상1인에게 우리 둘이 돈을 모아서 촬영감독을 구하자고 했고

그는 싫다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럼 나는 내가 돈을 써서 촬영감독을 구하겠고

각자 따로 하자고 함.

(다른 영상 1인은 절대로 따로 안하겠다고 해서 의아.

 왜? 자기가 연습해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그 퀄리티로 영상을 만들어.

 나는 돈을 쓰더라도 고퀄의 영상을 만들거니까.

 결국 퍼실이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서 

 각자 연출해서 두 개의영상을 만들게 된거다)

 

그런데 강화군수가 돈대의 유네스코 등재에 적극 반대하고

공식적으로 반대한다는 공문을 보냄으로써 모든 게 중단.

유네스코 등재사업이 중단되었으니

우리가 만드는 아트필름에의 관심도 급격히 떨어짐.

 

무용선생님께 말했다.

결국 우리만 남았다.

우리의 결정이 우리 영상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어쨌든 이름을 걸고 부끄럽지 않은 영상을 만듭시다! 라고 설득. 찬성하심.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키는 건평돈대를 이미 여름에 촬영감독과 다녀왔다.

우리는 그 때에도 정글도를 써가며 없는 길을 만들어서 건평돈대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무용하는 분이 같이 가니 

그 분의 몸을 아끼게 하느라 좀 편안한 길로 안내를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재단분이 길잡이로 나섰는데

길이 여름에 우리가 만들며 갔던 길만큼 험했다.

재단선생님은 계속 가기를 원했으나 내가 중단시킴.

해는 얼마 남지 않았고 빛이 남았을 때 세 개의 돈대를 더 찍어야 했다.

촬영팀을 다른 돈대로 보내며 말했다.

내가 길을 만들어놓을테니까 빨리 다른 데 가서 찍고 와! 

나는 강화읍 철물점을 헤매며 정글도와 목장갑과 토시를 샀고

여름의 기억을 되살려 폐허가 된 농막과 돌무더기 사이를 헤치며

댄서가 몸을 다치지 않을 만큼의 폭의 길을 만들었다.

귀신도 무서웠고 산짐승도 무서웠고 사람은 더더욱 무서웠는데

그 무서움을 뚫고 정글도를 휘두르며 길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후

댄서를 배웅하며 말했다.

"예술가의 자존심이 오늘 우리들을 움직였다"라고.

기자재와 차량렌트, 촬영감독 및 두 명의 보조인력 인건비, 식비까지 다 치르고나니

파견예술인 지원사업으로 받은 인건비 두달치가 다 나갔다.

돈 쓴 건 후회가 안되는데

파견지를 이곳으로 선택한 게 후회된다.

그  때 다른 파견예정지에서 그토록 간절히 나를 원했는데.....

하루밤 고민하고

그래도 강화에서 뭔가를 도모하며

강화에 끈을 만들어보자고 했던 그 결심을

이제와서 후회하면 안되겠지만 후회된다.

 

아트필름은?

오늘 촬영본을 보니 별로다.

걸작은 안나오겠다.

그저 부끄럽지 않을 정도.

파견예술인사업은 놀고먹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예술인들도 있다는데 그 정도는 아닌듯!

사진은 나의 히로인, 석각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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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번 달이면 파견예술인 활동이 끝난다.

작업실을 비워야한다.

임대를 하려고 시설관리과에 문의를 해보니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방은 임대가 안된다고 한다.

임대가 되는 방들은 창문이 없다고 한다.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지고 1년 임대료를 한번에 내야하며

계량기를 따로 달아야 한다고.

국가기관이라 원칙이 그렇다 한다.

 

푸른수염네 집이라고 이름을 붙일 만큼

방은 많은데....

전형적인 학자의 풍모를 지니신 팀장님이

"방은 많은데 쓸 만한 방이 없죠...."라며 미안해하신다.

다시 컨테이너로 돌아갈 것인가.

창없는 방에서 하얀 피부의 작업자로 살아갈 것인가.

 

4.

부산에서 강의 의뢰 전화를 했다.

용건이 끝난 후 

"예전에 많이 뵈었는데

이제 영화작업 중단하고 다 정리한 후 시골로 내려가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다시 강의를 부탁할 수 있어서 기뻤다"

라고 말씀하심.

부산엔 그렇게 소문이 났다고 함.

소문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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