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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현실이 꿈에 스미고 꿈이 현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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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5
    투명한 소외
    하루

가라앉은 채로

 

1.

시사회 초대 전화를 받았다. 극장에 갔더니 접수대에서 이름이 써있는 10장의 영화표를 하나하나 살피더니 내 이름이 없다고 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표를 사서 들어갔다(시사회인데 어떻게 표를 사서 들어가지?꿈이니까!) 영화가 끝나고 이피디님을 우연히 만나 차를 마시는데 해당 영화의 감독도 동석하게 되었다. 정확히 누군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하감독 정도의 급. 그러니까 흥행감독은 아니지만 나름 대중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은 내 또래의 충무로 상업영화감독. 해당감독과는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몇 번 심사를 같이 해서 사회적 친분은 존재하는 상황. 평소 그를 예의바르게 대했던 나는 옆에 나랑 친한 이피디님이 있어서인지 마음이 풀어져서 솔직하게 불쾌함을 표현함

 

“내가 언제 시사회에 초대해달라고 그랬냐. 나중에 개봉하면 극장 가서 보려고 했었다. 근데 초대는 해놓고 표는 준비하지 않은 이런 무례는 뭐냐. 내가 정말 기분이 안좋았던 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써있는 극장표 때문이다. 누군가들을 위해서는 표가 준비되어 있는데 나의 이름은 없다니.”

 

감독은 연락을 담당한 조연출이 VIP시사회와 일반시사회 일정을 착각해서 그렇다고 사과했다. 사과를 들으면서 ‘아 참을 걸. 이 바닥에도 성격 까칠하다는 소문이 나겠네’ 하는 생각. 만약 감독과 둘만의 자리였으면 마음은 꼬였어도 너그러운 척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사적으로 친한 이피디님과 같이 있느라 모드 조절을 잘못했다는 자책.

 

2.

모스크바에 사는 조카와 시베리아횡단 열차를 탔는데 가보니 우리 좌석에 두 명의 러시아여성 이 앉아 있었다. 조카가 비키라고 하는데 모른 척 앉아있었다. 나는 승무원을 불러서 조카와 번갈아가며 설명을 해서 그 상황을 해결해서 결국 두 사람은 떠났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언제 왔는지 나의 막내아이가 옆에 서있었고 그래서 승무원은 추가요금 26,000원을 내라고 했다. 애들을 앉히고 열차 안을 돌아다녔다. 다음 칸에서 만취한 할아버지를 손녀로 보이는 동행이 어렵게 침대에 눕히는데 알콜 냄새가 진하게 났고 옷을 입은 채로 소변을 보았는지 바지가 젖어 있었다. 그 상황을 구경하던 나는 ‘침대가 젖겠다’라고 생각하며 이 상황을 승무원에게 알려서 침대가 더 젖기 전에 뭔가 조처를 취해야하지않나, 하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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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설가와의 대화:

“10이라는 숫자를 한 번 생각해보자. 최근에 1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일이 있었나?”

현재 ‘416프로젝트-망각과 기억:열 명의 독립영화 감독이 만드는 여덟 개의 세월호 이야기’에 대한 기획서를 쓰고 있다. 나는 원래 기획서만 쓰기로 했다가 그래서 기획서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민간잠수사에 대한 작업을 요청받았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을 상태가 아니라서 촬영과 편집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연출만 하거나, 전체 공정을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다른 감독을 알아보기로 한 상태이다.

 

“교통수단은 이동, 그래서 어떤 목표를 둔 상태에서의 변화. 자동차라면 사적인 변화인데 꿈 속에 등장하는 것은 기차이니 좀더 공적인, 큰 규모의 사업을 의미한다. 낯선 나라의 동행자가 전문가였으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강력한 조력자를 의미했을텐데, 조카는 강력하진 않지만 유용한 조력자를 의미. 막내아이는 돌봐야할 존재, 혹은 근심이나 어려움을 뜻한다”

그렇지. 416프로젝트에서 연출을 맡기에는 해결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회의시간에 강력하게 거부를 못한 것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특히 민간잠수사 프로젝트는 사고 전에 내가 그분들 인터뷰를 진행했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던 어떤 사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당신에게는 안락한 자리가 있는데 왜 다른 칸에 가서 번잡하고 불편한 처지를 자초하는가. 그냥 당신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가라. 그래도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이 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의 하루.

그날 나는 서울에서 두 개의 회의를 마치고 인천YWCA로 가야했다.

을지로에 11시까지 가야 해서 검암역 노선이 아닌 풍경마을 노선을 선택함.

서울 일정이 4시 10분쯤에 끝났고 합정에서 M버스를 타고 풍경마을에 4시 40분 도착.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하니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혼자 인천에 가야 했는데

버스옙에서는 합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가는 방법을 알려주길래

검암역까지 운전해서 가고, 그 후 전철을 타기로.

소요 시간은 검암역까지 차로 30분, 다시 전철로 52분.

그런데 가는 중에 검암역에 차 세울 데가 없을 것같아

목적지를 인천YWCA로 바꿔 넣어보니 50분밖에 안 걸려서

목적지까지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2시간 10분을 차 안에 앉아있어야 했다.

 

찾아가는 동안 어둑해지고 운전공포증 살아남.

사고 순간의 느낌이 생생히 살아나며 머리끝이 쭈뼛쭈뼛 섰다.

운전과 관련해서 심리적 후유증은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아니었다.

그러니까 1. 어두움 2. 모르는 길.

이 두가지 조건이 결합되면 사고 순간의 느낌이 살아남.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받혀서

시간의 솜털을 세는 기분으로

여기저기에 부딪치는 차 안에 앉아있었던 그 날 그 때.

다시 그 상황이 반복될 것같은 두근거림. 불안증. 진땀.

 

7시 직전에 약속장소 도착.

약속장소로 찾아가는 길은 좁고, 복잡했고, 차들은 너무 많았다.

그런 선택을 한 한심한 나에 대한 후회,

에서 갑자기 삶 전반에 대한 나의 태도로까지 후회가 비약.

나는 왜 이 길에서 이러고 있나.

풍경마을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K쌤과 HW의 북콘서트에 한 번은 가야했고

서울보다는 인천이 덜 멀어서 가기로 했건 거다.

낮의 회의도 그랬다.

운동은 퇴조할수록 미디어팀의 활동은 더 절실해지고 있지만

감독들은 한명씩 한명씩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애초에 기획안만 쓰기로 한 상태에서

2주일 전 기획안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KH의 탈퇴소식을 들었다.

그 밤에 JP와 통화를 했다.

 

돈도 없고 영광도 없는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그 자리.

“형, 이렇게 한 명씩 한 명씩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거겠지.

세월호는 잊혀질 것이고 소수의 사람만 남아 고군분투해야겠지.”

JP선배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떠나지 않겠다.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거다”

그래서 회의에라도 참석하기로 했다.

매주 목요일엔 라디오방송 때문에 서울에 가야 하니

방송 끝나면 회의에만 참석할께.

그래서 그날 참석한 회의가 두 번째.

 

그런데 참 그렇더라.

활발하게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떤 아이디어를 내서 논의가 진행이 되고 나면

결국 그 아이디어를 실행할 사람을 정해야하는데

모두들 과중한 업무를 겨우겨우 수행하고 있으니

나름 잘해보자고 아이디어를 낸 행위가

말만 하는, 입만 산, 태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느꼈다는 거.

 

회의가 끝나고 작업자 중 한 명이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내가 움직이는 게 힘들면 강화로 찾아가겠다고,

절박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정말 안타깝고 슬펐다.

어떻게든 돕고 싶지만 

돕기 위해서

내가 바쳐야할 시간과 노력을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결국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후의 관계는 달라진다,

는 걸 나는 안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서면 그 속도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선 후에 그 속도를 감내하지 못한다면

전체 공정에 차질이 올 것이고

결국 모든 걸 망치게 된다.

그게 일의 속성이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는다.

결국 그 작업자가 내미는 책과 자료를 받아들었고

전화하겠다는 말에, 네 한 번 볼께요, 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꽉 막힌 인천시내의 어느 길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앞차에 온 신경을 집중한 상태에서

나는 내 안의 뭔가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던 것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발걸음이

무거운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기만 했던 11월 15일의 상태처럼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야하는 발이

허공에 뜬 것처럼, 아니 마비가 된 것처럼,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몸,

한 때는 미안하다고 빌고만 싶었던 이 몸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스러웠고

차라리 너를 버리고 싶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험해졌다.

 

‘고통에 포박당한 삶’에 대해서 5년간의 경험을 들려주던 B가

어느 날 그랬다.

“사고 때문에 죽는 사람 중에는

몸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신체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유발하는 심리적 고통 때문에

그 마음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대“

 

나의 별명은 ‘행운의 하루’

실의에 빠진 사람을 격려하고

꽉 막힌 상태에 있는 작업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아이디어가 없을 때에는 참고할만한 영화를 추천한다.

객관적인 상황은 변하는 게 없을지라도

뭔가 시도해볼만한 마음의 힘을 함께 퍼올린다.

 

낮의 두 번째 회의는 J의 다섯 번째 편집구성안에 대한 것.

단지 잘 들어주고, 그 과정에서 팁 몇 개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작업자들은 1주일, 혹은 2주일동안 견딜 힘을 얻는다.

내가 그렇게 지내왔기에

그가 어떻게 지낼지를 아는 것.

인천에 가는 차 안에 있기 전까지

나는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별 거 아닌 스트레스,

사고 전이라면 늘 있어왔던 스트레스가

애써 모은 의욕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것을 느끼며

워밍업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조금만 맡기로 했던 선택을

후회했다.

더 깊이 빠져들기 전에

지금 중단해야한다.

인천의 낯선 거리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강력한 경고를 했다.

 

북콘서트가 끝난 후 집으로 가는 길.

네비는 늘 김포로 돌아가는 먼 길을 알려준다.

네비에 안나오는 아는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낯선 길을 한참 헤매다 결국 피하고 싶었던 김포 길이 나타남.

김포의 모든 길을 돌고 도는 듯한 그 노선을

한편으로는 안도, 한편으로는 젠장, 하는 마음으로 경유한 후

집에 도착.

 

하늘엔 쏟아질듯한 별.

날 반겨주는 비인간 가족들:도순,별,보미,진,연,양.

그리고 인간 가족들.

그냥 여기 깊숙하게 가라앉아있자.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나만 생각하자.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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