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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현실이 꿈에 스미고 꿈이 현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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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6
    우리 앞의 생
    하루

세조각(2)

하루님의 [세 조각] 에 관련된 글.

 

꿈 해설가와의 대화:

꿈 해설가와의 대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나 장소에 대한 정보가 나에게는 있지만 그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 해설가는 꿈 속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간인지 모른 채로 일반적인 상징체계를 말해준다. 예를 들어 집은 마음 상태, 이동수단은 과정, 뭐 그런거다. 사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늘 기억하기가 힘들다. 그냥 그때그때 꿈에 대한 해석을 들으면서 수긍하고 기록하고 그리고 잊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지만 그렇다고 100프로 수긍하는 편은 아니다. 그와 나는 늘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는 꿈을 모른다. 그저 해몽 차원이 아니라 꿈이 촉발한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나의 현재를 들여다보곤 할 뿐이다.

 

1. 레드 커뮤니케이션

한참동안 말이 없던 꿈 해설가는 '레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레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용어는 따로 없다. 그런데 꿈 속 세상에는 그런 용어가 있고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다. 레드 커뮤니케이션이란 상대방을 반체제인물로 몰아가는 대화법을 말한다. 대화의 시작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그 로직을 따라가다보면 그 끝에는 '너는 반체제인물이다'라는 결론이 나는 대화.

 

내 설명을 듣고 난 꿈 해설가는 "꿈이 참 디테일하네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꿈해설가는 내게 의미를 알겠냐고 물었다.  어떤 상황인지 200% 이해할 수 있다. 

 

현실의 나는 지난 몇 년동안 미디어교육에 관한 프로포절을 써서 공모에 뽑힌 후 기금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해왔다. 공부가 필요한 것같아 대학원을 다닌 3년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대학원 졸업 후 현장에 돌아와보니 기금이 줄어있었다. 대신 아르떼, 시청자미디어센터 등 공적 기관들에서 자체 강사풀을 마련해서 자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주변의 동료들에게 기획서 쓰는 건 그만하고 시청자미디어센터 교사풀에 등록하자고 말하고 다녔다. 이제 공적 기금은 다 공적 기관으로만 몰리니까 우리가 공적 기관의 교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하반기에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교육사 재교육과정이 개설되었고 첫번째로 멘토링 교사의 제안을 받은 나는 O를 추천해서 J와 셋이서 멘토링을 진행해왔다. 교육은 형편없었다. 준 공무원인 센터 직원들은 실적이 중요했고, 미디어교육사들은 수료가 중요했다. 교육현장에서 중요한 원칙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채 서로서로 필요한 것들만 챙기는 판이 되어갈 위험이 있었다. 중간에 O는 그만두고 싶어 했다. 나는 O에게 그러지 말자고 했다. 하나씩하나씩 바꿔나가자....이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교사들을 제대로 양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만이 정말로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사실 나도 실망스러웠고 나도 그만 두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노력을 하고 싶었다. 제복들과 O사이에서 했던 고민을 나는 여러 번 해왔다. O는 정확했지만 원칙적이라 까칠하게 느껴질 수 있었기에 나는 O의 입장을 좀더 부드럽게 좀더 유연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틈틈히 센터 직원들에게 감정노동을 했다. 대리님도 힘드시죠, 이러이러한 게 필요할 것같은데. 뭐 이런 식. 어제 최종 보고서를 보냈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꿈을 꾼 듯.    

 

3. 버스

꿈해설가는 말한다. 당신은 그동안 정체되어있다는 생각에 힘들었겠지만 자기 속도로 제대로 갈 것이라고 믿으면 좋을 것같다. 그렇게 해석하면 힘이 나지 않겠나? 

네.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는 그렇게 끝. 

 

데자뷰현상에 대한 설명 중에 마음에 들었던 말은 뇌가 속고 있다는 거다. 어떤 장면 어떤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사실은 같은 상황, 같은 느낌이 아닌데 뇌가 착오로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상황에서 '아,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라는 느낌은 사실 느낌일 뿐이고 실체는 아니라는 거다. 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실 돌이켜보면 그 장소는 같은 장소가 아닌데 같은 느낌을 받는 거라는 걸 몇 번 알았다. 버스 이야기는 꿈해설가의 말처럼 이해하면 좋을 것같다. 

 

하지만 나는 꿈에서 깨어 두번째 꿈이 단지 최근의 상황만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20대에 친구들이 모두가 제대로 된 버스를 타고 떠난 후에 나 홀로 남아있던 시간이 있었다. 산에 올라가서 도시의 야경을 볼 때 조차도 세상에는 저렇게 많은 집들이 있고 모두들 깃들 방이 있는데 내게만 방이 없다고 느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불꺼진 버스정류장에 홀로 서있는 마음으로 20대를 지나왔다. 결국 버스가 왔다. 나는 나만의 경로로 버스를 타고 나의 방으로 가고있다. 다행이다.   

 

그리고 그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던 그 정류장은 동작도서관 앞 정류장과 느낌이 비슷하다. M선배와 헤어지고 긴 시간이 지난 후, 버스를 갈아타느라 그곳에 서서 리아의 '화살기도'를 듣던 순간이 있었다. M선배의 방이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 그 때 그렇게나 외롭고 춥고 막막하고 슬펐다. 그 느낌이 꿈 속에서 확 살아와 울컥했다.

 

2. 병원

꿈 해설가는 말한다. 당신은 치료중이고 치료과정에서 어떤 의문이나 회의를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끝내도 된다. 반짝거리는 대형병원, 적절한 처치는 당신이 적절한 곳, 믿을만한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술이 끝났다는 것 또한 치료의 한 고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같다. 

나:선생님에 대해 회의해 본 적 없다. 나는 이 꿈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지 않는다. 꿈 속 선생님을 현실의 선생님과 동일인이라 본다면 나로서는 이렇게 이해된다. 선생님은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의지했던 사람이다. 아주 예전에 천주교신부님으로부터 피정인도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신부님의 인도에 따라 신비체험을 했었다. 그 때 신부님한테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다들 그러지 않나? 공부를 할 때엔 명쾌한 언변으로 지성을 빛내는 교수님께 매료되고, 골프를 배울 땐 골프강사에게 매료되고. 중년여성들의 수영강습에 젊은 남자강사를 투입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를 활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길에 들어서서 중요한 목표가 생겼을 때, 그 분야의 전문가, 마이스터에게 존경과 동경의 마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권위적인 의료시스템 때문에 지쳐있는 상태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설명해주는 사람이었고 나의 의문과 불안을 해소해주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우리 병원', '우리 선생님'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지적해줘서 알았다. 사고 이후 몸도 아팠지만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 때 신체의 치료 뿐 아니라 하루의 일과를 보내는 방식,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님이 내 삶에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사실 가족 외에 지속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선생님 뿐이었다. 그는 나의 외부에 있으면서 나의 내부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일을 시작하고 외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지금 내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나는 한의원에 다니고 있는데 개별치료실에서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어서 양방병원에서의 건조한 대화와는 다른 성격의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 과정에서 위로받고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크게 받아왔다. 그동안 내부와 외부가 없이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던 건 심신이 지쳐있었던 나의 주관적 상태와 생전 처음 다녀본 한의원 문화의 영향이 컸던 것같다. 하지만 이제 몸이 추스려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한방'병원'을 다니고 있는 중이고 선생님은 의사, 나는 환자이다. 꿈은 그것을 확인해준 것같다. 물론 앞으로도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돌봄을 받을 것이다. 큰 수술을 받은 후 처럼 중요한 단계를 지나온 건 맞다. 하지만 꿈 속의 내가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수술을 끝낸 나-바쁜 선생님'은 '나-선생님'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나-현재의 나'로 보는 게 적절할 것같다. 내가 시간을 지내면서 얻은 결론에 대해 과거의 나는 "너무 사무적이지 않나?"로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현재의 나=꿈 밖의 나'는 꿈 속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너는 지금 병원에 있는 거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거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 헷갈리기 시작하면 삶이 고단해져. 쿨하게 나이스하게 현재의 시간을 건너가길 바래.

 

꿈해설가의 정리의 말: 꿈에서 깼을 때의 당신의 생각, 당신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꿈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고 싶으면 제레미 테일러의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를 한 번 구해서 읽어보기를.

나:지금 이대로가 좋다. 내가 꿈을 기록하는 이유는 영화에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가끔 꿈에서 득템을 할 때가 있어서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도면 된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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