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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현실이 꿈에 스미고 꿈이 현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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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7
    세 조각
    하루

레이어2

하루님의 [2005년 10월 10일] 에 관련된 글.

 

한별이가 바지 고무줄을 끼워달라고 했다.

옷핀에 고무줄을 묶고 

바지에 구멍을 낸 후에 

한 치 한 치 밀어가며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

고무줄의 시작점과 닿지 않는다.

들어간 구멍하고 나오는 구멍이

서로 레이어가 달라...

 

오래 전에 <전설의 고향>을 봤다.

신인배우들이 어설픈 연기를 했던

이상한 줄거리의 재미없는 에피소드였는데

마지막 장면만 기억난다.

먼저 죽은 아내를 만나기 위해

남편은 자결을 한다.

죽은 남편의 시신에서

영혼인 남편이 쓱~ 일어나서

옆에 있는 아내를 부르는데

아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영혼의 세계가 단일한 층위로 이뤄지지 않은 거다.

재미없는 줄거리의 끄트머리 그 장면에서

나는 영원히 외로울 두 사람의 영혼을 생각하며

잠시 슬펐다.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하지만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있다.

대학원동기이자 인생의 선배 S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많이 슬퍼할만큼 친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게 많다.

좀더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사람 사이는 깨지기 쉬운 뭔가로 이뤄져있다는 말은 

그 언니와의 관계에서 여실히 적용되었다.

언니를 아주 좋아했고 언니도 나를 아주 예뻐했었는데

그냥 깨졌다. 가끔 전화통화를 하곤 하지만,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대화를 하지만

깨져버린 관계였다. 그런데 떠나고 나니 아쉽다.

그냥 그 언니와의 관계가 깨지게 만들었던 2011년의 상황,

그런 것들이 생각나서 슬프거나 원망스럽거나 혼란스럽거나 했다. 

 

한의원 선생님이 "사람이 기력을 다 쓰면 죽는다"라고 하셨는데(체력이었던가....헷갈림)

그 언니도 그렇고, 저번 주에 집에 왔던 미디어팀 동료들도 그렇다.

너무 열심히들 살아왔고 산다.

새벽 4시까지 깨어있다가 먼저 잤는데 그들은 6시에 잤다고.

나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잔소리 대신 생활의  지침같은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을 잘 정리해서 책을 써보면 어떨까 했는데

글쎄,  그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같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세계로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다보면

나도 그렇게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섭다.

끔찍히 사랑하는 존재들을 두고 어떻게 떠날 수가 있을까.

어쩌면 다른 레이어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볼지도 몰라.

아버지의 장례식을 지내고 며칠이 지난 어느 밤,

나는 홀로 깨어서 더이상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런 상황을 맞고 싶지 않았다.

밤마다, 아니 새벽마다 홀로 깨어서

옆에서 자고있는 언니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곤 했다.

열 살이었는데. 그저 열 살 이었을 뿐인데

나는 영영 이별이라는 것을 다시금 맞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다행히 그 후로 가족들의 죽음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사무실 언니는 죽음이란 그저 기의 소멸일 뿐이라고 사후세계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었는데

사후세계가 있든 없든 나는 그저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근데 혼자 죽잖아....

나는 이 생에 남아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혼자 떠나는 것 또한 참기가 힘들다.

죽음에 대한 이 과도한  두려움은 나만의 것인가.

일단 죽음에 대한 생각은 밀어내고 지금 여기만 생각하자.

 

레이어가 달라 만나지 못한 한별의 바지 고무줄은

칼로 한 막을 잘라서

서로 만나게 했다.

끝.

 

노력해야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한다.

 

오랜만에 <연애시대>

https://youtu.be/uMBSllbX_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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