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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록

꿈 속에서 나는 열심히 피구를 하고 있었다.

심판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도 하고

상대팀 선수들을 퍽퍽 공으로 맞춰가며 정말 신나게 피구를 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 생각했다.

'그래, 난 그런 사람이다'

 

 



그즈음 나는 나의 단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빨리 선 안에 사람을 들이고

너무 늦게 그 사람을 살핀다.

그렇게 사람을 살피다보면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은 그 '다름' 때문에 힘들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고민한다.

그 고민은 과한 친절이나 지나친 공손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드물게는 관계 자체를 산산조각내며 폭발한다.

 

하늘이 친구 중에서 떠도는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일을 해서 학교가 끝나자마자 세 군데의 공부방과 학원을 전전하다가

녹초가 되어서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 엄마가 9시 정도에 퇴근을 해서 그 때서야 숙제를 봐준다고 하니..

그 얘기를 듣고 안쓰러워서 동네 공부방을 소개시켜주었다가

어찌어찌하여 하늘의 공부방에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 때부터 그애가 내 책임이 되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하늘을 데려가야 하니 데려가는 김에 같이 가면 되었으니.

그런데...남의 아이 보기는 정말 힘들다.

훈육방식의 차이가 있으니 아마 내 아이 또한 남에게는 힘들 것이다.

앵두를 업고 두 아이의 가방을 들고 찻길을 걷다보면 안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런데 그 애는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는다.그냥 못 들은 척한다.

씩씩이 골목길 산책에 단련된 하늘이는 차를 얼른 피하지만

차로만 다녀버릇한 그 아이는 안전불감증이다.

말 안듣는 그애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내 애가 아니니 과하게 친절하다.

 

어느 더운 날, 차가 씽씽 다니는 길을 앵두 업고 두아이 가방 들고

공부방까지 올라가는데 또 그 애가 말을 안들어서 과한 친절을 베풀고 있는데

하늘이가 울었다."엄마는 왜 맨날 걔만 예뻐해?"

당황해서 하늘을 달래며 어렵게 공부방에 도착했더니

그집 엄마가 문 뒤에 숨었다가 "까꿍~"하는 놀이를 하고

그애는 활짝 웃으면서 그 엄마에게 안겼다.

그 순간, 뭐랄까 순도 100%의 증오가 활활 타올랐다.

(솔직히 그 사실 자체보다는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하고 묻는 그 순진함.

그 엄마는 차로 다니기 때문에 학교운동장에서 마을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그 짧은 길이 아이들 걸음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잘 모른다)

 

그 날은 휴강이라 쉬는 날이었다고 한다.(대학선생님이시다)

그러면 자기 애는 자기가 좀 돌보면 안되나?

손을 내민 순간, 그집 애가 온전히 나의 책임이 되어버렸다.

쉬는 날에도 자기 애가 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엄마는 까꿍놀이로 자기 애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겠지.

그런 식의 떠넘김을 나만 당한 건 아니었다.

공부방 선생님도 힘들다고 하셨다.

"저는 그저 일하는 엄마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고 싶을 뿐이예요"

하지만 가끔은 밤 9시까지 그 애를 돌봐야하기도 하고

"저 이쪽으로 이사해도 되요?"하고 묻기도 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이렇게 끙끙대기만 하는 건지?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지...

그런 스트레스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저 피구 꿈을 꾸었다.

'그래,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냉정하도록 치열하기도 했던 그런 사람이었지'

 

그 본모습은 의외의 상황에서 드러났다. '200원 사건'

지난 수요일, 전화를 통해서 '200원 사건'의 전말을 들은 나는

그동안 불편해서 전화나 면담을 피해왔던 담임에게

어떠한 망설임없이 전화해서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사람들의 번호를 얻었다.

ㅈㄱ엄마를 찾아간다고 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는 싸움이 될까봐

2번 여자애의 엄마에게 미리 동조를 구했다.

(학기 초만 해도 같이 찾아가자고 먼저 제안했던 이 엄마의 태도, 당황스러웠다.

"저희 애는 짝도 아닌데 저희가 왜 나서요? 그냥 두 분이서 다녀오세요"

주력으로 우리가 나서니 자기는 뒤로 물러서도 되겠다는 판단이었던가?

웃음밖에 안나왔다. 세상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라고나 할까)

 

다시 집에 돌아와 결의를 다지고 남편이 ㅈㄱ의 집에 전화를 했다.

양자대면을 시키자던 ㅈㄱ엄마는

"제가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서로 고민하자는 겁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서는 ㅈㄱ아빠와 남편을 연결시켜주었다.

남자들은 평화롭게 이야기를 끝냈으나,다음날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날 밤, ㅈㄱ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긴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담임을 만났다.

담임을 만나는 그 자리에 ㅈㄱ엄마가 먼저 와있었다.

바빠서 6월 초쯤에나 담임을 만나서 사실확인을 해봐야겠다던 그 엄마는

전날의 전화통화 때문인지 즉시 담임을 찾아온 것같았다.

(항상 이렇다. 피해자들은 열 일을 제치고 나서지만

가해자들은 어쩔 수없을 때에만 나서게 된다)

 

자, 내가 했던 행동들은 뻐꾸기님 말처럼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고 평가한다.

나는 복도에서 '어떠한 주저없이' 길고 긴 대화와 주장을 펼쳤다.

"나는 3개월동안 선생님을 믿었고 ㅈㄱ을 믿었고 ㅈㄱ엄마를 믿었다.

하지만 어젯밤의 대화 이후 ㅈㄱ엄마의 공감은 포기했다.

그래서 객관적인 행위와 절차만을 요구하겠다.

나는 ㅈㄱ부모와 ㅈㄱ이 우리 부부와 하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를 요청한다.

현재 ㅈㄱ엄마는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같으니 조사단을 꾸릴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께서 서로 싸웠다고 표현하시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이것이 어떻게 싸움인가?

하늘이 "맞으면 아프잖아"라면서 아픈 게 무서워서 돈 200원 이야기를 했다.

하늘은 벌써 맞는 게 어떤 거라는 걸 알았고

ㅈㄱ은 때리는 게 어떤 거라는 걸 알았다.

키가 작아서 칠판이 안보인다 하더라도 폭력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다."

 

결국 그날 하늘은 자리를 바꿨다.

정년이 얼마 안남은 듯한 하늘의 담임선생님은

그전날 남편에게 자신은 몇십년동안 한번도 자리를 바꾼 적이 없다라고 하셨단다.

어쨌든 하늘은 담임선생님의 원칙을 바꾸게한 첫번째 학생이 되었다.

ㅈㄱ은 하늘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했고

ㅈㄱ엄마 또한 전화로 사과를 했다.

그 집 엄마의 사과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이해한다.

짧은 사과보다 더 길었던 이야기는

ㅈㄱ이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학기초에 얘기를 하지 그랬냐는 것.

뭐 어쨌든 그렇게 좋게좋게 이야기를 끝냈다.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늘의 새짝꿍은 친절하고 거리를 두고 나니 ㅈㄱ과도 친하게 지낸다.

여세를 몰아 공부방 엄마에게도 부드럽고 명확하게 부탁을 했다.

월,수,금은 우리가 책임지겠지만 ㅅㅇ엄마가 쉬는 날인 화, 목은

그 쪽에서 책임을 져달라고.

사람에 대해서 믿음을 잃지 않는 건 좋은 태도지만

말하지 않고 저절로 되기를 바라는 건 너무 허황되다.

이때껏 내가 살아왔던 게 바로 그런 태도라는 것.

내가 이만큼 하면 저 쪽에서도 그만큼 하겠지.

하지만 말하기전에는 모른다.

말하지 않고 불평하는 건 이제 그만 해야겠다.

첫아이 학교 보내고 3개월을 거치고

이제서야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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