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최근 일본의 파견법 개정

최근 일본의 파견법 개정

 

 

  지난 3월 28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노동자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4월 6일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6개월 후인 10월부터는 개정 파견법이 시행된다. 개정 파견법은 법률명에 ‘파견노동자의 보호’를 명시하고 ‘파견노동자의 보호와 고용안정’을 목적규정에 명기하도록 하고 있어, 최근의 파견규제 강화 흐름을 반영하는 듯 보이나,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정 파견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파견사업 규제에 관한 내용이 부분적으로 포함되었다. 일용파견 금지 조항에서 ‘일용파견’을 ‘2개월 이내의 파견’으로 정의하고 있던 것을 ‘30일 이내’로 수정하였다. 기업그룹 산하에 파견업체를 두고 그룹기업들에 노동자파견을 하는 ‘그룹기업 내 파견’ 규모를 전체 파견규모의 80% 수준으로 규제, 이직한 노동자를 이직후 1년 이내 파견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소개예정파견의 경우 직접고용 전환 이후의 노동조건을 명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간 파견법 개정의 핵심으로 논의되어 왔던 등록형파견(26개 업무 제외)의 원칙금지가 제외되었고, 제조업 파견금지(1년 초과 상시고용 업무 예외) 또한 제외되었다.
 

  둘째, 파견노동자의 무기계약화 및 처우개선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사용사업주에게 일정기간 고용한 파견노동자의 무기계약화 전환 추진조치 노력을 의무화하였고, 동종업무에 종사하는 파견노동자와 균등처우를 고려하도록 하였다. 파견요금과 파견노동자의 임금 간의 차액 정보공개 또한 의무화하였다.
 

  셋째, 불법파견에 관한 조치가 보완되었다. 불법파견의 경우 사용사업주가 위법파견임을 알고도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에 대해 근로계약을 신청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였다. 또한 업체폐업에 따른 노동자 불이익 방지를 위해 노동자파견사업 허가 등 자격조건을 정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불법파견 조치 관련 조항의 시행일은 법률시행일 3년 후로 미루어졌다.

 

파견법 제정 이후의 규제완화 흐름

 

  일본에서 ‘노동자 공급사업’은 1947년 제정된 직업안정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으나, 1960년대 미국의 파견사업체인 맨파워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실질적으로 최초 도입되었다. 이후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노동자 파견사업이 확대됨에 따라 이를 양성화한 것이 1985년에 제정된 노동자파견법(노동자파견사업의 적정한 운영 및 파견노동자의 취로조건 정비 등에 관한 법률)이다. 제정 파견법은 ‘전문적 지식 등을 필요로 하는 13개 업무’에 한해 적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1986년 시행 직후 3개 업무가 추가되어 총16개 업무에 적용되었다.
 

  이후 1996년 개정을 통해 파견허용 대상업무 10개가 추가되었고, 1999년에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변경되어 항만운송, 건설, 경비, 의료관련 업무를 제외한 26개 업무에는 파견기간 제한을 철폐하고, 기타 파견 업무에는 1년의 기간제한을 두었다. 2003년 파견법 개정에서는 기타 파견 업무의 기간제한을 3년으로 연장함과 더불어 2004년부터 제조업 부문에의 파견을 허용하며 1년의 기간제한을 두고, 2007년부터는 3년으로 연장(휴지기 3개월)하도록 하였다.
 

  직접고용 전환과 관련해서는 파견기간 종료시 사용사업주가 해당 업무에 신규채용을 할 경우 파견노동자에게 고용계약을 신청하도록 의무를 규정하였으나, 의무 불이행 기업에 대해서는 명단 공개 수준의 미약한 규제를 부과하여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였다.

 

최근의 파견 재규제 논의의 흐름

 

  노동운동과 시민사회가 파견법 개정 논의를 본격화하고 운동을 벌인 것은 2007년경부터였다. 여기에 더해 주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제조업 파견 일자리에 취업하였다가 2008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대량 해고된 비정규노동자들이 도쿄의 한 공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형성된 ‘해넘이 파견촌’이었다. 이처럼 2000년대 중반 이후 파견노동 확대에 따른 폐해가 심화되자 당시 여당이던 자민당-공명당 연립정부가 2008년 11월에 파견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2009년 6월에는 야당인 민주당, 사민당, 국민신당이 공동으로 파견법 개정을 제출하였다.
 

  이상의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파견법 개정 논의 중 첫째, 일고파견과 관련하여 정부안은 정령으로 정한 26개 업무 이외에 일고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할 것을 제시하였고, 3당 공동안은 2개월 미만의 유기계약노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것을 제시하였다. 둘째, 제조업 파견과 관련해서는 정부안은 특별한 조문을 두지 않았으나, 3당 공동안은 이른바 전문적 업무 등을 제외한 제조업 파견 금지를 제시하였다. 셋째, 그룹기업 파견과 관련하여 정부안은 그룹 내에서의 파견비율을 각 사업연도 총노동시간의 80% 이하로 하도록 의무를 규정하였고, 이직한 노동자를 원래 있던 기업으로 파견하는 것을 이직후 1년간 금지할 것을 제시한 데 비해, 3당 공동안은 동일 법인집단에 속하는 법인을 하나의 파견처로 간주하는 동시에 각 사업연도 업무량 중 파견노동자 업무량을 80% 이하로 하는 의무규정을 두었다.
 

  이에 대해 파견사업체와 사용사업주를 비롯한 사용자측은 등록형 파견 금지, 제조업 파견 금지 등에 반대를 표명하였다. 이들은 제조업 파견에 대해서는 이를 금지하게 되면 경기변동에 대한 대응이 어려워져 기업 경쟁력이 침식되고 고용의욕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일고파견을 금지하는 개정방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일고파견노동자 중 주부와 학생이 약16%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의 일자리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청소년, 기혼여성 등 사회적 약자층을 고용의 완충지대로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용자측의 주장이 일본 내의 파견규제 강화 논의를 크게 약화시키지는 못하였다.

 

민주당 정권하 파견 재규제의 좌절

 

  2009년 7월에도 중의원이 해산됨에 따라 파견법 개정 정부안과 야당안이 다시 제출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 8월, 파견 재규제를 추진하던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문제는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이후에도 유사한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문제 등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며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간 나오토 총리가 잇따라 사임하는 과정에서 파견법 개정은 처리되지 못하였다.
 

  이후 파견노동 규제 강화를 기본 방향으로 하여 준비기간을 거친 뒤 2010년 3월 파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물론 법안 의결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법안의 내용은 등록형 및 일고파견의 원칙적 금지, 제조업 파견의 원칙적 금지, 그룹기업 내 파견 규제 등 이전의 3당 공동안의 핵심을 유지한 데에 보완이 가해진 것이었다. 한편, 파견법 개정안은 2차에 걸친 시행을 제시하고 있는데, 먼저 공포일로부터 6개월 후 1차 시행을 통해서는 일고파견의 원칙적 금지, 그룹기업 파견 규제, 노동계약 신청 간주 등을, 공포일로부터 3년 후 2차 시행을 통해서는 등록형 파견 및 제조업 파견의 원칙적 금지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이번 파견법 개정의 직접적인 계기는 2011년 8월말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취임이었다. 노다 총리가 취임하면서 재규제 방향으로의 파견법 개정의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 결국 2011년 12월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의 3당이 대폭 후퇴된 내용으로 파견법 개정을 추진하고자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8일 중의원 본회의 통과, 3월 28일 참의원 본회의 통과를 통해 파견법 개정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간 개정 논의의 핵심이었던 등록형 파견 및 제조업 파견의 원칙적 금지가 삭제되는 등 대폭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지난해 말 3당 합의 이후 매우 짧은 심의기간을 거치는 등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법안 통과가 이루어진 점에 대해서도 노동계 및 시민사회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파견법 개정의 후퇴뿐만이 아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고용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기계약 노동법마저 개악안이 심의중에 있다. 유기계약법 개정안은 “유기고용 5년 이상의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으로 전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6개월 이상의 공백 기간을 둘 경우 총 유기계약 기간에 이전 기간이 합산되지 않도록 하였다. 나아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경우에도 노동조건은 계약직일 때와 동일하도록 하고 있어 고용 불안정의 심화와 노동조건 악화의 우려를 낳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