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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0/06
    풍경화를 그렸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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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9/02
    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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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8/20
    야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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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8/10
    열흘 연수 마침(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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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5/18
    어느 대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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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5/04
    2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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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2/22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이지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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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2/19
    영화 보고싶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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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2/07
    &quot;엄마들은 다 딸내미 시집 안 보내려고 하지 않아요?&quo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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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1/24
    오랜만에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엘리자베스타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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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를 그렸어.

어제, 금요일 날씨가 참 좋았지.

햇볕이 반짝반짝 공중에서 빛을 내며 떠돌고, 나뭇잎들이 산들바람에 박수를 치 듯 몸을 흔들며 그 빛을 흉내내는데, 그 위로 하늘은 정말 높아져있더라.

나는 아이들이랑 물감과 종이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왔어.

자,  오늘은 가을을 그리는 거야.

 

나는 옅은 파랑으로, 8절로 자른 머메이드지 전체를 칠했어.

저 하늘이랑 닮았나, 위를 올려보면 눈이 부셔, 노랑빛이 더 많은 것 같아.

다시 노랑을 붓에 묻히고 군데 군데 노랑을 입혔지.

고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뭇잎이 반짝이는 건 어떻게 그려야할까.

장승이 받는 저 햇볕을 따뜻하게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식당지붕을 덮은 저 퍼런 비닐을 후줄근하지만 친근하게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뒤로 먼산이 가을하늘을 보고 벙긋벙긋 웃고있는 것 같은 것을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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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여행기를 읽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인데, 그 하고 싶은 것을 나는 못 하고 있고, 그 하고 싶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하여서 남긴 글을 어떻게 질투가 나서 읽어,라고 생각했었다.(우리 남편이 보면, 넌 그래서 안돼,라고 하기 딱 좋을 소리다.)

 

 

친구가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빌려준 것은 벌써 2년 전이다.

그녀가 라디오 방송국 작가로 있을 때, 그 방송프로에 홍은택을 초대해서 그남이 쓴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단단하게 쌔카만 남자였다고 한다. 이 책은 홍은택씨가 작가님에게 직접 주었던 책이었을까. 그렇다면 싸인이 없는데? 암튼 내 친구는 나에게 재미있었다며 홍은택씨에게도 호감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이 책을 빌려주었었다.

그녀는 지금 테레비방송국을 위해서 일한다. 라디오방송이 그녀에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느끼는데, 그녀는 한사코 테레비쪽이 더 좋다고 한다. 그게 더 자기가 만든 방송이란 느낌이 든다나 뭐라나. 그여자는 가끔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무언가가 자기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거야 보통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내친구 그녀가 라디오방송국에 앉아있는 것이 테레비방송국에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마 나의 방송국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 때문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간단한걸.)

 

2년의 기간 동안 내 친구가 책을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집 책꽂이에 이 책은 고대로 꽂혀있었으나,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잊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여행기를 읽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홍은택씨가 이 글을 한겨레에 연재하였을 때 보았었었다. 그것도 매주 빼놓지 않고. 그때 이 글이 연재되었던 지면이 18도라는 섹션이었는데, 아마 이 글이 그 섹션 중 가장 휙휙 빨리 읽혔기 때문인지도..

 

이런 경우도 있었긴 하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 일인가.

올모가 빠리에 가서 한달을 있으면서 그녀의 블로그에 온라인 여행기를 남겼다. 나는, 이 시간 즈음이면 올라오더라,며 실시간으로 접속하여 읽어대었다.(그녀는 현재 태국에 가있다. 또 한 달 있다 온다. 이번엔 노트북접속이 어려워 피씨방에서 여행기를 올리고 있는데, 암튼 다시 재미있게 보고있다.)

 

여행기는 사실은 재미있는 것인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인데, 그 하고 싶은 것을 나는 못 하고 있고, 그 하고 싶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하여서 남긴 글이라도 읽으며 대리만족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여행기 읽는 일은 결국 쓸쓸하고 우울해....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이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을 몇년째 읽고있다. 한 챕터 읽고 몇달간 두었다가 또 한 챕터 읽고.. 이번 방학에 다 읽을라고 했는데.. 그리고, 슈타이너 박사가 쓰신 <일반인간학>을 읽고있고,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띄엄띄엄 읽고 있다. 그리고 또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을 아직도 읽고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을 다 보기 싫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빼어들었더니, 겉표지엔 울창한 나무가 줄줄이 서있는 길을 홍은택씨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그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온통 노랗고 초록이고 연두이다.

 

여행기 읽기는 쓸쓸하고 우울한 것인가?

학교에 묶여있고, 돈에 묶여있고, 울 딸래미에게 심정적으로 묶여있고 싶은 나에게 여행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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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구경기 보는 것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얘기는 전에 한 번 한 적 있다.

 

투수가 공 던지기 전에 이리저리 쳐다보고 허리 굽혔다 폈다 할 때, 나는, 공 던지기 전까지만 딴 생각해야지, 하고 딴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새 타자는 공 쳤고 그러다 아웃됐고 다른 타자 들어서고 투수는 또 공 던지기 전에 이리저리 쳐다보고 허리 굽혔다 폈다 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한 때 야구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야구 같이 생긴 찜뽕.

야구랑 룰은 똑같은데(똑같나?), 고무공을 투수 없이 타자가 한 손으로 던지고, 야구배트 없이 나머지 한 손으로 주먹쥐어 치고 달리는 것이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 무렵, 이거 골목골목마다 죄다 하고들 살았다. 해가 점점 넘어가고 점점 어두워지는데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까지 합세하는 그 시점이 항상 제일 재미있을 때였다.

 

그리고 프로야구 원년. 오비베어즈, 엠비씨청룡, 해태타이거즈,롯데자이언트,삼미슈퍼스타즈,삼성라이온즈.

박철순 말고도 아는 야구선수 이름이 꽤 있었다. 너구리 장명보(이사람은 더 이후인가?), 이만수, 백인천.........

양다리를 쭉 찢으며 공을 잡는 수비 폼으로 전격 유명한 신경식을 나도 알고 있었을 정도다.(흠, 이만하면..)

그리고 그때엔, 사람들이, 나는 오비베어즈야, 나는 청룡이야, 나는 해태타이거즈야, 나는 어디야,하며 각각 좋아하는 팀을 가지고 응원하는 게 재미있었다. 애도 아니고 어른들이 그러는 것이. 내가 보기엔 오비베어즈가 젤로 멋있는데다 젤로 잘 해서 사람들이 죄다 오비베어즈만 좋아할 거 같은데, 다들 골고루 (심지어 롯데자이언트까지. 그 시절 나는 롯데자이언트가 제일 못나보였다. 삼미슈퍼스타즈가 매일 꼴찌했지만, 내눈에는 롯데자이언트가..  롯데자이언트도 못 했었나? 선수들이 못 생겼었었나.. 기억이 안나네. ) 안배해서 이팀저팀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나중에 그게 자기 고향 따라 가는 것이라는 걸 알았는데, 롯데 자이언트쪽이 고향인 사람들은 참 안됐다, 그렇지만 착하다, 그런데 어느 한 팀에만 몰리지 않게 고향따라 팀을 정할 수 있다니 참 좋다,고 순진하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 말했듯, 야구경기를 보지 못 한다.

나와 야구는 여기서 오로라가 보이는 남극만큼 멀어졌다.

대학때 남자친구랑 야구장을 간 적 있었는데, 무슨 경기를 보러갔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싸가지고 갔던 피자 한 판과 맥주 서너캔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학교 우리반 남자아이들 몇이 지난 학기에 야구에 꽂혔다.

거의 매일 축구를 하고 사는데, (그들중 몇은 정말 잘 한다.) 어느날 형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해봤는데 재밌었는지 체육시간에 야구하자고 맨날 조르고 그래서 어쩌다 한 번 하면 무지 열심히 흥분하며 하였다.

나는 그때 심판을 보았었는데(이래도 기본 룰은 다 알고 있음), 나도 껴서 배트도 휘두르고 진루도 해봤으면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어느덧 일주일>에 보면 초등학생때 야구글러브를 선물받고 기뻐어쩔줄 몰랐던 심정을 가슴에 아직도 품고사는 서른 살 남자가 나오는데, 딱 남편얘기이다. 고교야구도 야구장까지 가서 보러다니고, 뭐 어쨌대나 저쨌대나..

그런 사람이어서 그남자랑 결혼하고 이런 일도 했는데,  글러브를 사서 캐치볼(공주고받기) 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내 동생 글러브를 내 손에 몇 번 껴본 일은 있지만, 글러브를 끼고 공을 받아본 일은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야심차게 동대문운동장 근처 체육사를 방문하여 고심고심하며 가격 대비 품질을 논의하고 그 중 우리에게 적절한 가격 보다는, 앞으로 오래도록 할 것을 고려하여 좀더 우수한 품질의 글러브를 사자 결정하고 집에 가져와 길들이기 위하여 고이고이 눌러두었다가 돌아오는 휴일에 품에 넣고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첫 캐치볼 플레이를 하였다. 남편은 성심성의껏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첫 플레이를 마치고 뒷풀이로 맥주를 마셨다. 많이 마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싸웠다. 나는 화가 났다. 그래서 글러브 두 개가 들어있던 내 가방을 확 내팽겨쳐버리고 씩씩 걸어 집에 왔다. 그리고 정신이 번뜩 들어, 내 가방,하고는 쏜살같이 튀어나가 다시 골목을 거꾸로 걸어가며 샅샅이 찾아봤지만 이미 글러브 두 개 들어있는 가방은 흔적도 남기지 않았었다. 그것으로 우리의 캣치볼은 끝났다.

 

그런데 나는 오늘 글러브로 공도 잡고, 배트를 휘둘러 공도 치고, 비록 진루는 못했지만, 1루로 뛰고, 1루를 밟는데 더 뛰어 더 뛰어, 외치는 소리에 2루로 뛰어가다 아웃도 당해봤다.

역사적인 날이다. 8월19일, 기억해둬야지.

 

규민이 어린이집 아빠들이 얼마전 술먹다가 부산 얘기가 나왔단다. 그러다가 한 아빠가 부산은 회 아니면 야구야. 그거 둘 밖에 없어,하는 바람에 야구 얘기로 샜는데, 야구 얘기가 시작하자마자 왕년에 야구했던 얘기가 봇물처럼 나오더랜다. 누구는 왕년에 날리는 포수였고, 누구는 뭐였고, 어쨌고, 뭐했고...

그래서 야구를 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모였다.

글러브를 손에 들고 오는 것은 보통이고, 야구방망이도 들고 나왔고, 심지어는 야구복까지 입고 나온 아빠도 있었다.

그래서 광복절날 그들은 야구를 했는데, 입을 귀에 걸고 했다.

그러다가 천둥이 쾅 치고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졌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라는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비는 폭우로 바뀌고 비를 쫄딱 맞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흩어졌다.

아, 골목에서 야구, 아니 찜뽕하던 어렸을 때 같아.

비오면 와,하고, 비 쫄딱 맞고 집으로 뛰어가던 거.

비 맞는 것도 재미있었지, 그 때는, 왜...

 

그리고 오늘 야구 2차 모임에 나도 글러브 들고 나갔다(이번에도 야심차게 동대문운동장 근처 체육사에 가서 산 것이다. 제일로 싼 것을 샀다.)

남편이랑 캐치볼 연습하고 타격연습하고 경기에 투입, 으하하.

지금 왼쪽 손목 너무 아프다.

글로브 끼고 공 잡는다고 너무 신경써서 그런가보다.

 

p.s. 태깅 너무 재밌어. 옛날글까지 뒤져서 태그붙인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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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연수 마침

방학마다 연수를 다닌지 이번이 4회차! 나도 중견인이다.

어디가서 중견이 되어보았나. 이만큼 버티게된 것은 나이일까.

 

이번 연수는 너무 가기 싫었었다.

발도로프니 뭐니 나랑 상관없이 고매하고 잘난 고상동네이야기고, 나는 내 발바닥 어디에 옮기고 내 손바닥 어떻게 닫고 열어야하는지 새삼 갈피를 못 잡겠어 성질이 나있었다.

 

그런데 발도로프는 역시 나 보다 한 수 위다. (한 수 위인거 알았지만, 이번에 다시 완전 납작 엎드림)

돌아오는 날 남편이 물었다.

"또 영접하셨나?"

"그치, 다시 발도르프 영접하고 왔지."

 

이번에 연수 주제는 '7행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신나락 까먹는 소리가 줄줄줄줄이었다.

별이 어떻게 나의 발바닥과 손바닥 문제까지 몸을 낮출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발바닥과 손바닥을 끌어올려 저기 저 별까지 고이고이 높여높여 올리셨나니, 천상이 나의 발치이고, 천체가 나의 손이로다. 할렐루야,어허둥둥.

 

강의 중 꽂혔던 문장; 인간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천체의 하모니에 맞춰 조율해가는 것이 인간의 진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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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화

A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의 그 주인공 누구였더라, 그 주인공도 그렇고 그 주인공을 좇는 사람도 그렇고 다 미치광이 같아. 미치광이.

B 미치광이지.

A 그런데, 그 미치광이가 맞는 것 같아.

B 맞다니?

A 이번에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원년의 풋볼>을 다시 읽어보니, 재미가 없더라구.

B 왜? 너무 관념적이라..

A 아니, 그 형이 말이야.... 광기의 동생을 바라보며 동생에 대비하여 도덕을 말하는 형.

B 비겁해보였다고?

A 상대적인 인도주의.......라고 해야하나, 역시 비겁이라고 말을 해야할까....

   오에 겐자부로가 그런거야, 전후의 도덕을 이야기하는. 책임의식을 갖고,  평화를 주장하는..

B 음.... 그래.... 동생은 자기가 추구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사람이지. 광기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A ..... 당신도 그래, 부정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힘을 얻는 것 같아. 그런 부정의 부정에서 나온 긍정은 얄팍하고 힘이 약할 수 밖에 없어.  긍정 자체의 힘이 강한거야.

B 오, 그래그래, 맞아.  사람 자체에 대한 애정, 인생 자체에 대한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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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지난 2월 학교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은 나에게 새삼 진리와 진실을 운운하게 하였다.

진리, 진실, 그리고 인간, 약한 인간, 나약한 인간.

 

그것을 계기로 나는 옛날옛적에 만빵관심만 보였다가 말았던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을 책장에서 빼어 들었다. 그리고 넘겼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있었다.  맥베스가 거기에 등장하게 된 것은 일본의 신좌익운동 때문인데, 내가 겪은 학교의 2월 사건은, 말하자면 신좌익운동의 유치한 판일지도 모른다(일본의 신좌익운동이 뭔지 잘 모르지만...)는 착각으로 나는, <윤리21>은 관두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빼어 들었다.

 

그리고 몇 개월... 신좌익운동의 유치판일지도 모르는 일로 나는 지쳤고,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나는 화가 나는 것이 싫었다. 화를 내는 사람도 싫었고.

나는 내 안에 누가 화를 내는지 느꼈다. 나이 서른후반이니, 그게 그렇다, 이제 여기저기 들은 풍월도 있고, 이십대처럼 끓는 피에 가만 있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가만가만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맞춰보면 내 안에 내가 보이는 것이다.

나는 화 내는 나를 지혜롭게 거두고 달래고 싶었다.

그래서 덜컥 심리분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옆에서의 조언도 큰 역할을 했다.)

 

심리분석을 받기로 하고나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50분에 십만원. 끼약... 심리학과 갈걸, 심리학 공부 할걸, 대학원 가보겠다고 할 떄 갈걸,하는 후회를 처음 했음)

서점엘 가보니 심리분석이라는 이름만으로 책이 산더미.

 

그 무렵에 나는 김소진 10주기를 맞아,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주문했었다.

 

심리분석 책들 앞에서 길을 잃었다.

<맥베스>를 읽고있자니, 계속 화가 났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고있자니, 순수하지 못 한 내 마음이 김소진을 읽어내지 못 했다.

 

나는 다시 심리분석 책들 앞에서 서성이게 되었다.

무엇을 읽어야할지 몰랐다.

남편은 집에 있는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부터 읽으라고 했다.

"그건 너무 나열식이라 재미가 없어."

그러고 나는 도서관에서 <내 안에 있는 여신>을 빌렸다.

몇 해 전에 친구로부터 재미있게 봤었다는 책이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을 빼어 들었다.

 

............................ (정신분석을 받고 싶다는) 질문을 공적, 사적인 자리에서 자주 받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질문자의 내면에서 우선 짚어낼 수 있는 마음은 과도한 의존성입니다. 의사를 만나기만 하면 그가 요술쟁이처럼 자신의 모든 문제를 꺠끗이 해결해줄거라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맞다, 집에 있는 책부터 보자.

 

그리고 < 내 안에 있는 여신>을 보고, 그리고, 누군가 빌려준다는 성격에 관한 책을 보고, 그리고, 얼마전에 서점에서 점찍어두었던 책을 하나 보고... 그러면.... 그러면,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 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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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소개와 같은 것.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를 듣는 것처럼 계속하여 상대를 듣는 것.

누군가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더 잘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자기소개 그 어딘가에서 그 사람은 빛나고 있다. 듣는 이는 그 사람이 더 깊숙이 들어갈 것을 기다린다.

 

 

 

---- 오늘 듣게된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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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싶다

명절은 난감하다.

가족에 집중하라고 버젓이 법정공휴일을 삼일이나 연속으로 잡아먹고 있는.

(이것때문에 다른 공휴일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식목일도 없어지고, 한글날도 없어졌다.(다시 내놔라, 이놈들.))

한 번 와그장창 깨어진 적이 있었던 가족은, 어째 세월이 지나도 그 깨어진 자국이 날로날로 선명해져 이런 명절이면, 난감하다.

 

나는, 여전히 엄마아빠 앞에서는, '그러게 누가 결혼하고 싶었댔냐고'류의 주장이지만, 명절만큼은, 내가 결혼을 했고 애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나의 결혼과 나의 아이가 수행해준 엄연한 가족 재생산의 역할 덕분에.

 

올 설에 아빠는 유난히 많은 세뱃돈을 주셨다.

태어나서 아빠로부터 이렇게 많은 세뱃돈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나 역시 아빠에게 그토록 인정받고 싶었던 딸이었는데, 이제서야 인정을 받는가보다.

결혼을 해주었고, 손녀를 낳아주었다. 더구나 내가 어디에 시집을 갔는가. 신정을 설로 쇠는 집안에 시집을 가서 설엔 손녀를 데리고 친정엘 올 수 있는 딸이란 말이다.

 

 

인간은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택하면서 진화하였을까.

진화가 과연 앞으로 나아간 것인가, 종종 의심하지만, 나는 늘 나의 '역할' 이 내 몸에 맞지 않다고 느낀다.

역할을 몸에 맞는다, 맞지 않는다,라고 느낄 수 있는 의식, 진화라면 아마 그것이 진화이겠지.

 

몹시 영화가 보고싶었다.

책을 보고 싶었고,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떠올리며, 나는 이제 내가 원했던 삶을 살지 못하겠구나,라는 예감이 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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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엄마들은 다 딸내미 시집 안 보내려고 하지 않아요?&quot;

 

결혼이란 절대 해악이라고 믿었던 시기를 극복하고(세월이 약이다), 나도 역시 나이 먹으니 내 서방과 내 자식이 (정신적, 정서적) 비빌 언덕인가?라며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뭐니뭐니해도 내 딸이 보물이다.

다시 없을 것 같은 존재를 만나고, 나는 인생과 인간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배우며 다시 태어나............암튼 씽글의 친구들에게, '절대적으로'  비혼을 주장하기가 약간은 혼동스러운 상태.

 

주로, '결혼은 아니더래도, 아이는...(혹은 딸아이는)'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서 서른후반의 나이를 먹고도 그것을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비겁하다.  더구나 내가 비혼모도 아닌데.

 

나의 결혼관의 정체는 무어냐.

나는 가끔 규민에게 결혼을 허락할 것인지(예전에는 죽었다깨어도, 혈서를 쓰는 한이 있어도, '제발 그냥 같이 살아라, 결혼은 절대 안된다' 주장이었다.), 혹은 권할 것인지(서른아홉의 씽글인 규민 앞에서 나는 그녀의 결혼 가능성에 초연할까?) 고민한다.

얼마전 만났던, 그 엄마의 나이는 잘 모르겠고, 큰 딸 아이가 열한살이 된 (작은 딸아이는 네살) 여자가, 얼굴에 고민 한 가닥의 흔적도 비추지 않고, "엄마들은 다 딸내미 시집 안 보내려고 하지 않아요?"라고 해서, 꽤 안심(?)이 되기도 했었다. 결혼은 권할 것이(사랑하는 딸에게 권할 것이 절대) 못 되는 것 맞구나........

 

 

 

나의 남편과 나는 2007년, 결혼 9년차를 맞이하여, 앞서 밝혔듯이 둘의 관계를 위한 프로젝트를 발촉하였다. 둘다 그냥저냥은 참을 수 없는 예민하고 지랄맞은 성격이라(그냥저냥 넘어가는 성격이라면 이미 우리둘은 잘 산다; 함께 집안일도 잘 하고, 함께 나들이도 잘 하고, 집안 대소사는 반드시 둘이 상의하고 결정하고 등등등....), 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을 총력을 다해 극복해서 평화롭게 잘 살자며 결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놀랄만한 제안를 했었다.

 

내가 친구로 부터 들은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 이란 책의 내용을 잠깐 남편에게 수다떤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이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자신도 큰 공감을 하며 책을 빌려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같이(동시에) 이 책을 보고, 함께 얘기하자고. 자신에 대해, 서로에 대해.(이 제안 뒤에 남편은 잠깐의 독후감을 얘기했는데,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에게 감동했는데, 내가 잠깐, 스치듯이 얘기한, 내 친구와의 수다 사이에 등장했던 얘기를 그가 도서관에서 찾아볼 만큼 진지하게 들었었다는 것에 무엇보다도. 그리고 자신과 솔직한 마주보기를 한 그 용기.)

 

오오... (그렇다, 우리 사이는 그냥저냥은 아주 좋다.)

 

 

나는 약속대로 그 책을 들춰본다.

(남편은 도서관 책을 반납하고 교보에서 직접 책을 샀다.)

 

 

 

 

나는 지금껏 남자들이, 그들의 엄마에게 고이고이 대접받고 숭배받으며 자라서 성인이 되어도 엄마 앞의 유아로부터 성장하지 못 하여, 그들 앞에 있는 여성이라면 다 엄마노릇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짐작을 하였다.

마누라가 바로 엄마의 연장인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그들 중 어떤 개인은, 어느 개인이 그러하듯, 자신의 부모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지 못하여, 유아기 때 받아야할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여, 유아기 욕구의 충분한 충족을 하지 못한 어느 개인이 그러하듯, 성인이 되어도 그것을, 왜곡된 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럼 남자는 사랑을 받아도 어린애, 못 받아도 어린애????

 

 

남자는, 부모 중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역할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내가 부모 중 엄마가 보여주었던 역할을 점점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  또 뻔하다.

우리 세대 아버지 중 얼마나 가족 중의 아버지, 부부 중의 남편이란 역할을 잘 해냈겠는가.

더구나 왜곡된 관계가 이데올로기로 강요되던 시대였다.

 

남자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부부(나 뿐 아니라 인류전체) 관계가 나쁜 것은 온당하다.

(뭐, 새삼... 예전부터 짐작한 것.)

 

남자들의 과거를 생각하니 지금의 부부관계가 나쁜 것이 온당한 것 처럼, 지금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둘러보니 미래의 부부관계도 온당 나쁠 것이다. 100% 확실하다.

 

여전히 남자들의 퇴근은 자정을 넘나들고(아버지와 남편은 여전히 부재중), 부부관계는 가부장적 어린애 식이다(부부관계 좋아보이는 사람의 비결은, (백에 아흔아홉) 큰 아들 치고 다 받아주라는....).(큰 아들 치라니, 남자들이여, 너무 모욕적이지 않은가.. )

 

 

나는 다시.... 규민에게 도저히 결혼을 권하지는 못 하겠다. 허락할 수도 없겠다. (엄마의 허락과 관계없이 결혼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래, 해라, 하고나서 나더러 왜 허락했냐고 항의하지 말고.)

 

그래서, 규민이가 서른이 되기 전(설마 스물은 아니겠지) 나의 숙제;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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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엘리자베스타운>

어찌어찌하여 나는 또 감기로 절절 누워있음.

학기 중도 아닌데, 방학 한가운데, 이 무슨 챙피스런 일. 나의 체력은 정말 바닥?

오늘 할 일은 죄다 취소하고 하루종일 뒹굴겠음, 결심.

그동안 컴퓨터를 붙잡고 일을 많이 해서인지(방학에는 행정잡무에 시달림) 왼쪽눈이 시리고 아파 오늘 하루 전자파에서 좀 벗어나보자,중얼중얼하면서 비디오가게에 갔다?

그런데, 나, 정말 늙었나보다.

영화 본지 삼천만년만이라, 죄다 안 본 영화들 투성이인데, 그 많은 새로운 영화들 말고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이 다시 보고싶어지는 것이다. 자꾸 그 쪽에 손이 가려는 것을 자제하며 고른 영화는 (한 편도 아니고 두 편)......

 

 

 

<엘리자베스 타운 Elizabeth town>

백인남녀가 나오는 것은 이제 정말 손이 안 가는구나, 하는 순간, 눈에 띄었음.

 

 

 

그러나 눈에 띄었다고 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카메론 크로우 어쩌구 하는 이름이 뒷통수에 걸리면서.. 이 사람이 누구더라, 누구더라,  누구더라, 누구더라.... 느끼한 그 남자는 러셀 크로우인데... 비디오 껍데기를 구석구석 살펴보니,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감독이었었다고.그렇다, <올모스트 훼이모스> 이것은 내가 좋아했던 영화, 이 영화에서 페니 레인을 보고 케이트 허드슨을 좋아하게되었지. 록 밴드 '스틸워터' 콘서트를 좇아다니며 '롤링스톤즈'잡지에 기사를 쓰게된 고등학생 이야기. 70년대 음악이 좍 나오고. 재미있었다, 그 영화.

 

그래서 이 영화까지 빌리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케이트 허드슨은 아니지만, 비슷한 커스틴 던스트다. 원래 <올모스트 훼이모스>에서도 커스틴 던스트가 페니 레인 역을 하기로 했었는데, 얘가 싫다는 바람에 케이트 허드슨에게로 돌아갔던 거였단다. 덕분에 케이트 허드슨만 땡잡았지.

 

카메론 크로우가 어디가나, 이 영화도 초반부부터 옛날 음악 좍 깔리며  시작.

그런데 너무 미국스럽다. 그 수다하며, 표정하며, 설정하며... 이런 게 눈에 걸려서 영화를 잘 못 보겠다. 커스틴 던스트와 남자주인공 올란도 블룸(얘 이름은 어쨰 올란도 일까, 나는 자꾸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가 생각나 머리 속에 딴생각이 떠오름)은 비행기에서 만나 헤어지고는, 전화데이트를 하는데, 전화기를 붙잡고 정말 밤을 샌다. 저런 미친 짓. 나는 스물초반에도 저런 짓은 안 했다. 밤에 잠 안 자고 할 짓이 없어서 전화기를 붙잡고 밤을 새냐. (아, 싸우느라고 전화기 붙잡고 새벽까지 있었던 적은 있었나보다.)

 

올란도 블룸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바람에 장례식을 치루게 되는데, 엄마 역으로 수잔 새런든이 나온다.  장례식장에서 남편을 기리는 한 말씀 하는데..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데서 눈물이....

....이러이러해서 당신 없는 세상은 너무 달라요, 당신이 없으니까 나는 벼라별 경험을 하게 되죠... 당신, 좋은 남편이었어요, 보고싶어요. 곧 만나요, 안녕....  뭐, 이런 대사... '아, 남편 죽은 다음에 저런 대사를 하면서 남편을 그리워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이런 류의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던 것 같다... 으...

 

그리고 장례식장에는 레너드 스키너드의 '후리 버드'가 나온다. '후리 버드'는 <올모스트 훼이모스>안에서도 참으로 사랑스러운 장면에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도 꽤나 독특하게 의미심장한 장면에 나온다. 카메론 크로우가 디게 좋아하나보다.

 

 

 

 커스틴 던스트와 올랜도 블룸은 키스를 자제해 가며, 우리가 이런 것을 자제할 수 있다니 정말 훌륭하지 않냐, 우린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라며 저렇게 따로따로 앉아 일출만 볼 때는 언제고, 곧 사랑해,하고 엉겨붙는다. 영화에서 선남선녀가 나오면 다 커플이 되는 양식을 깨보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까리하다가 결국 뻔하게 흐른다.  앞에 전화씬에서 벌써 이 뻔한 커플링은 예고된 편. 그래도 이제는 영화에서 선남선녀가 무조건적으로 맺어진다는 피하려고 하는 분위기인가보다. 잘 된 일이다. 하지만 헐리웃에서는 어쩔 수 없이 뻔할 뻔자 일 것이다.

 

그리고 본 영화는 <메종 드 히미코>

이거 <조제, 물고기...>감독이 만든 거라고 해서 일찌감치 보고싶었던 거라, 당장 비디오껍데기를 빼들었으나, 표지에 너무 잘생긴 남자배우가 주인공으로 떡 나와서 망설였다. 저런 식의 잘 생긴 얼굴은 영화 보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다.

 

 

<조제, 물고기..>에서도 그러더니, 감독이 예쁜 남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 아냐?!

오다기리 죠라고 하는데,

 

 

헉, 숨 막혀. 이러니 어떻게 영화를 잘 볼 수가 있나. (허리하고 엉덩이 선은 또 어떻고..)

특히 마지막 장면의, '뽀뽀해도 돼?'하는 데부터, 뒤로 돌려 두 번 더 봤음. 오다기리 죠 보려고.

'뽀뽀해도 돼?'부분이랑, 여자주인공을 이끌어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이랑 표정 예술임.

머리 속에 확 박아놓고 싶어. 그 표정.

 

 

그나저나, 남자 얘기가 아니라, 영화 얘기를 하자면, 아... 저런 집,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내내...  은퇴한 (남성)게이들의 공동체, 메종 드 히미코. 워낙에 이곳이 아름다워서 별다른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런 공동체라면, 나도 남성게이가 되어 들어가면 안될까....

 

영화를 보다보니, 잘생긴 남자가 저 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

저 남자는 그러니까, 여자주인공의 아버지의 애인 역인데, 아버지는 오래전에 게이선언을 하고 아내와 자식을 떠났었다. 그러니 여자주인공은 아버지를 생리적으로 미워할 밖에.. 아버지 애인이란 작자는 도저히 눈에 들어올 수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 둘이 잠깐 눈이 맞으려면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여야 했을 것이란 생각. 저 잘생긴 얼굴에 자꾸자꾸 눈이 가고, 자꾸자꾸 마음이 끌리도록.

영화에 선남선녀가 나오면 둘은 결국 커플이 되는 법칙. 이것이 게이영화에서는 예외가 되나했더니, 여전히다. 역시 이성애는 막강이데올로기?? 둘이 살짝 눈이 맞을 기미가 보이기 훨씬 전부터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남자랑 저 여자랑 키스 한 번 하지않고 영화가 끝나는 것은 뭔가 아깝다?라는 느낌을 나도 모르게 갖고있었다. 게이영화를 보면서, 게이인 남자를 보면서 그 남자가 잘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와 자꾸 로맨스를 엮어주려는 심정은 이성애자인 나를 위한 심리적 작동이겠지? 저런 남자가 아무리 게이라지만, 그래도 여자랑 한 번 쯤은 키스를 해주어야 ............ 이성애자인 나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

 

영화도 끝까지 나의 이런 심리를 '안돼'라고 못 한다.

마지막에, 오다기리 죠(저 잘생긴 남자)와 여주인공이 지금껏 관계를 청산하며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장면.

남자는 여자가 회사 사장이랑 잤다는 얘기를 회사 사장한테 들었다고 여자한테 말한다.

(배경설명 좀더 하자면, 그 회사 사장이랑 오다기리 죠가 사업건으로 만날 예정이었는데, 그때 한 번 잘 수 있을까,하고 오다기리 죠가 기대했던 적이 있었음)

그러면서 하는 말, "좀 부러웠어."

"네가 부러웠다는 게 아니고, 너의 회사 사장이..."

 

흠... 그러니까 나도 이성애자가 되어 너랑 자고 싶다는 말씀?

(둘은 살짝 눈이 맞아 시도를 했다가 오다기리 죠가 할 수 없다고 멈춰버린 적이 있었음)

 

생각해보니, 나도 레즈비언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 생각이 드니, 오다기리 죠의 저 대사는 굳이 쌍심지에 불을 켜며 듣지 않아도 될 말인듯..

그냥 부럽다는 거지, 뭐. 너랑 섹스를 한 남자가. 나도 너랑 자고 싶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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