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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2
    혼자 놀기의 진수
    나르맹
  2. 2009/02/19
    런던 생활 후반전을 맞이하며
    나르맹
  3. 2009/02/09
    박물관 투어
    나르맹
  4. 2009/02/08
    National Portrait Gallery
    나르맹
  5. 2009/02/03
    런던에 눈 내린 날
    나르맹
  6. 2009/02/02
    200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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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2/01
    critical mass
    나르맹
  8. 2009/02/01
    Postmans Park
    나르맹
  9. 2009/01/29
    Campaign Against Arms Trade(2)
    나르맹
  10. 2009/01/28
    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나르맹

혼자 놀기의 진수

금요일 저녁, 서울에선 친구들이 생일 잔치 한다고 모여서 논다는 얘기에 새삼스레 부러운 마음과 묘한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선택해서 비행기를 탔고 여기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으면서 막상 또 사람들 소식을 듣고 그 곳에 같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으니 이건 앉아서 두 가지 욕구를 다 충족시키려는 거 아닌가. 아무튼 안드레아스 쥴리안 모두 각자의 집으로 퇴근을 하고 혼자 금요일 저녁의 사무실에 앉아있으려니 집중도 안 되고 나도 바로 집으로 향했다. 혼자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하나 보고, 거나해진 술기운에 일찍 잠을 청했다.

토요일 아침, 바깥 날씨가 너무 좋아 보인다. 봄이 벌써 다 온 것처럼만 느껴졌다. 여기에도 꽃샘추위 이런게 있는진 모르겠다. 이리저리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다가 카메라와 장바구니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테이트 브리튼을 향해. 템스강변을 따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걷는 것도 좋았고, 테이트 브리튼의 작품들도 기억에 남는다. 저녁에 돌아와선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김치전을 혼자 붙여먹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붙여본 지짐이 중에 가장 맛있게 붙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이런 기분에 와인이 아쉬워 또 홀짝홀짝. 저녁을 만들기 전에 혼자 거울을 보고 머리를 잘랐는데 썩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므흣하다. 시작부터 무대뽀로 막 자르긴 했지만  자르다 보니 좌우 균형 맞추느라 계속 조금씩 짧아지는 악순환이.. 다 맘에 드는데 다만 뒷머리는 마땅한 거울이 없어서 보지 못하고 그냥 감으로만 뚝딱뚝딱 잘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느낌에 윗머리 옆머리에 비해 뒷 기장이 기이하게 긴 것 같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 또 한번 도전해 보지 뭐... 암튼 오늘 하루를 정리하자면..혼자 자기 만족 하며 잘 논 하루인 것 같다.





집에서 걸어나가면 있는 버스 정류장. 2번은 빅토리아 역 방향으로 88번은 테이트 브리튼을 거쳐 웨스트민스터 방향으로..





런던 버스정류장의 표식. 이 정도면 무지 잘 갖추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를 알면 어떻게든 직접 찾아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어 있다.





테이트 브리튼 뒷 길 정류장에서 내렸다. 바로 앞에 있는 가든의 모습. 이름을 까먹었네.. 날도 따땃하니..한가한 정원의 분위기. 너무 좋았다. 책이라도 있었음 나도 벤치에 앉아 책이나 좀 읽는건데..





테이트 브리튼 바로 앞에 있는 템스강의 모습.. 날씨가 좋으니 모든게 다 이뻐보인다..





기분이 마냥 좋아져서 테이트 브리튼 바로 안 들어가고 강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웨스트 민스터도 바로 보이고..런던 아이도 보이고..햇살이 너무 하얘서 런던아이는 심지어 사진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앞 다리쪽으론 멀리서 봐도 관광객들이 한움큼씩 보였다





다리를 건너 강 맞은편으로.. 이 길 따라 쭈욱 걸으면 런던 아이도 나오고 사우스 뱅크가 펼쳐진다. 늘 뭔가가 있는 곳. 쭈욱 걸으면 워털루 역 더 가면 런던 브리지 더 가면 타워브리지까지. 자전거가 있었으면 한번 타고 쭈욱 따라가도 좋았겠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한두시간 정도 보고 나와 집 방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한 컷.. 여행객 신분으로 뮤지엄들을 돌다가 이제는 동네 주민처럼 슬슬 나와서 대애충 한번 보고 돌아갈 수 있어서 기분이 므흣하다. 세미나 2시간 넘어가면 힘들어듯 뮤지엄도 2시간 넘어가면 힘들어지는 기분이다.





정처없이 발가는 대로 돌아보다가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림. 이 그림이 전시된 곳 컨셉이 그런 거였다. 예전의 그림들에서 수줍은 듯 묘사되던 여성들이 어느 시점 부터 좀 더 자신감있게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런 그림들을 모아놓은 방이었다. 이 그림 설명이 흥미로웠다. 울타리는 다름 아닌 인간 문명의 경계를 상징하는데 여성이 서있는 자리가 바로 문명의 경계인 울타리라고..

Augustus John OM , Dorelia Standing before a Fence, 1903-4





오늘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작가 세실 콜린스의 그림 중 하나. 상상력이나 표현들이 4차원틱하면서도 은근히 이해가 되는 그림들이었는데..샵에서 엽서를 사려고 봤더니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었다..흑
이 작가의 문제의식이, 우리 인간은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순례자들인데 예술은 그 여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다른 때 이런 멘트를 들었다면 종교 냄새가 난다며 거부감부터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 그림들을 먼저 보고 설명을 읽고 나니 이상하게 공감이 되었다. 나무가 소재로 그려진 그림이 많아서 ㅁㅅ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더 엽서를 찾고 싶었는데..

Cecil Collins,
The Sleeping Fool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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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생활 후반전을 맞이하며

한 일주일 정도 블로그에 글 올리는 걸 쉰 것 같다.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공간의 괴리가 불러올 고립감을 좀 벗어나고자 함이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이 곳에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를 마치 일기처럼 기록으로 남겼던 건데,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최근 일주일은 무지 바빴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일단 지난 주 수요일? 응 수요일엔 지난 번 critical mass 에서 만났던 칠레 친구 집에 찾아가서 자전거를 받아왔다. 이 친구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버린 자전거들에서 뜯어 모은 것들을 다시 재조립해서 새로운 자전거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걸 나에게 빌려 주었다. 덕분에 프레임부터 브레이크 기어 핸들바 등등 기본적인 것들부터 다 다시 맞추는 작업을 했다. 빨간색 프레임에 싸이클 핸들바, 얍실한 바퀴. 생긴 것에 비해 그렇게 속도는 안 나지만(내 엔진이 부실해서 속도가 안 나는 것일지도ㅎ) 나름 페니어를 메달수 있는 짐받이까지 있어서 이것 저것 갖출 건 다 갖췄다.

막상 자전거가 하나 생겼지만 사무실까지 왔다갔다 한건 일주일 중에 한 이틀밖에 안 된 것 같다. 지난 주말에 공교롭게도 이런 저런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반년 넘게 스케줄 없이 혼자 띵가띵가 하던 주말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달에 한 번 있는 퀘이커 비폭력 트레이닝 워크샵부터 wri 비폭력 핸드북 출판기념파티, 그리고 정현이가 마침 같은 주말에 런던에 놀러오게 되어서 이리 저리 내가 가진 에너지를 잘 분배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치 예전 서울 생활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루에도 스케줄이 여러 개씩 있는 생활 패턴 말이다.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저녁엔 헤이스팅스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어서 월요일엔 정말 하루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막상 추근하고 나니 어느 새 또 몸이 적응을 한다. 살짝 놀랍기도 하다.  지난 주엔 1년에 세번 있다는 wri 운영위원들 미팅이 있어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런던으로 왔다. 주요 의제들 얘기에 별 관심이 없어도 사무실 분위기 상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직접 듣거나 건너건너 듣거나 하게 되는데 알면 알수록 피곤한 주제들도 많아서 결국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 갈등 양상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마틴 아저씨가 3월 초에 자기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초대를 했다. 4월 초에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했더니 나 가기 전에 한번 자기 집에 놀러오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 것도 아니고 이런 분위기라면 나 혼자 놀러가게 될 것만 같지만, 전철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새삼 마틴 아저씨의 호의가 고맙기만 했다. 사실 아빠보다 더 많은 니이를 가진 분인데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다니, 난 그렇게 나이 먹으면 나보다 새까맣게 어린 20대 친구들과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틴 아저씨나 하워드 얘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20대였던 70년대의 운동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고, 그러고 보면 한국 평화 운동이 여기보다 적어도 30년은 늦나보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이 사실은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도 했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적어도 여기에는 문서로 남겨둔 역사들과는 별개로 직접 과거의 경험, 고민,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 살아있는 창구들이 있으니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스러운 사실은 여기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죄다 남자라는 거다. 연령대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남성의 비율은 거의 절대적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질문이 제기된다.

2월은 늘 그렇듯 너무나 짧아서 어느 새 또 2월 말이다. 서울에 돌아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슬슬 이런 생각들도 들고.. 여기서 남은 하루하루가 점점 더 아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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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투어

이번 일요일은 다시 마틴 아저씨와 함께 런던 투어를 했다. 이번에 둘러본 곳은 사우스 켄싱턴에 모여 있는 박물관들이었다. 이 동네가 부촌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부동산에 뜬 광고들을 직접 보니 얼핏 봐선 쉽사리 한번에 계산이 안 되는 액수들이었다. 6백만 파운드면 한국돈 120억 정도? 집값이 무슨 장난감 이름도 아니고 원 참..
오늘 돌아본 national history museum, victoria & albert museum, science museum 셋 모두 다 하루에 하나만 둘러보기에도 벅찬 규모의 박물관들이었다.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또다시 '평생교육'에 대한 화두가 떠올랐다. 이러한 문화적 인프라를 어려서부터 즐기는 사람들은 같은 자본주의를 살아도 왠지 덜 천박할 것 같은 환상이랄까.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역사가 150년이 됐다는데 안에 전시된 내용들을 보니 온갖 전문분야 박사들이 오더라도 뭔가 배워 돌아갈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마틴 아저씨만 해도 잊을만 할 때마다 여기 박물관들 와서 조금씩 둘러보고 하다보면 온갖 잡지식들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런던에서 지루함을 느끼면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거라는 어느 멘트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사 박물관 안 건물. 건축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감흥을 불러일으킨 내부의 모습





자연사 박물관 전시 중에 공룡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럴 듯 하게 전시된 것들이 꽤나 흥미로웠다. 공룡을 재현해 놓은 곳 앞에서 웃고 있는 마틴 아저씨^^





자연사 박물관을 나오니 어느새 어둠이..다시, 뭔가 그럴 듯 해보이는 외부 벽면의 모습. 이게 무슨 양식이라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싸이언스 뮤지엄엔 어린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전시들이 많았다. 난 여기서 왠지 모르게 눈이 침침해져서 힘들었다.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이라는 컨셉으로 전시된 공간의 입구에 있는 모습을 한 컷.





세 박물관 중에 첫 방문지이기도 했고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이야말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아다 놓은, 하루 이틀로는 다 둘러보기 힘들 것 같은 규모의 박물관이었다. 여기 저기 보수 작업 등으로 문이 닫힌 관들도 많았는데 작업하는 모습을 이렇게 개방해놓은 곳도 있었다. 직접 봤을 땐 다비드 상이 무지 높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마치 보통 사람 크기처럼 보인다.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선 마지막 코스로 맥주 한잔을 하러 런던브리지로 이동을.. borough market 이란 곳 뒷편에 오롯히 자리잡은 펍이었는데 적당히 조용하니 괜찮았다. 이제 다시 일터의 공간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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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ortrait Gallery



*Hendrik Kerstens BAG, November 2007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 산책 삼아 다녀왔다.

머리에 씌워진 저 하얀 것이 다름 아닌 비닐봉지라는 것을 사진 설명을 보고 알았다.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라던데..

구글에서 이 작가 이름을 쳐서 다음의 싸이트를 찾았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다.
http://www.witzenhausengallery.nl/artwork.php?idxArtist=12&idxWork=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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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눈 내린 날

어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밤새 내려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눈이 제대로 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뉴스에선 어제 오늘 눈이 1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폭설이었다고 한다. 눈이 와서 지하철이 많이 붐비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다시, 뉴스에선 오늘 눈으로 600만명이 일을 못(안) 나갔다고 한다. 이 600만명이란 숫자가 런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숫자라는데, 버스 서비스는 아예 중단됐고 런던에 있는 공항들도 비행기가 못 떴다고 하네. 나에게 한국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대중교통이 막히든 심지어 세상이 무너져도 아침에 출근을 해서 상사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하는 곳인데, 이 동네는 눈 한번 왔다고 맘 편히 쉬는구나 싶었다. 학교도 다 쉬고 가게들도 문 닫고 그랬단다. 심지어 오늘 예정됐었던 bbc 반대 집회도 취소됐다고.. 오늘 학교 안 가고 아침에 밖에 나와 눈싸움을 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나 학교 다닐 땐 폭설이 와도 휴교되는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참, 이 폭설에 대한 뉴스 중에 병원 수술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내가 들은 게 맞다면 병원에 출근해서 수술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제 시간에 오지 못해서 수술이 다 취소되고 덕분에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정확히 분석은 안 되지만 이런 보도내용을 보면 이 동네가 확실히 한국보다는 일하는 노동자들의 관점이 많이 녹아 있다는 막연한 감이 든다. 
비비씨 뉴스 왈 이 눈 덕분에 노동자들이 주말에 이어 월요일 하루를 잘 쉬었다는,, 학생들도 폭설 덕분에 'permitted truancy'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멘트가 왠지 모르게 재밌게 들렸다. 이 멘트에 이어서는 이 눈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적 손실은 얼마였다는 말도 들린다.





저기 보이는 네 개의 창문 중에 하나는 내 방의 창문..어떤 창문일까..ㅎㅎ





집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길..





반대 방향의 길. Sainsbury에서 장보고 돌아올 때 이용하는 길..





모든 버스가 멈춰버렸다. 순식간에 눈을 녹여버리는 서울의 제설기술을 떠올려보면 런던에서 눈 때문에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건 얼핏 잘 이해가 안 되기도...한국 제설차들이 독한 유해물질들을 써서 제설작업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버스가 멈추니 버스 운전기사들도 하루 쉴 수 있었겠다. 버스 차고 앞에서 기사들이 눈싸움을 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어느 뉴스에서 서울 버스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연봉을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듣고 나면 실제론 그렇게 큰 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단지 워낙 비정규직이 많은 사회이기에 그런 보도가 나오는 것도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여기는 특히나 버스노동자 중에는 백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 유색인종들이다. 버스들마다  '주 500파운드+@'라는 문구와 함께 운전기사를 모집하는 광고들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킹스크로스역에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 참 한적했다.





사무실 건물 1층에 있는 하우스만 북숍..이 책방도 오늘은 문을 안 열었다..





2층 사무실 바깥엔 밤새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게 하비엘이 혼자 쓰는 조그만 가건물이다. 가건물이라고 하기엔 참 잘 만들어진..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난 오늘 하루 종일 부르르 떨었는데..;;ㅎ  주말에 라디에이터를 꺼놓기에 월요일은 다시 실내 공기가 달궈지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사무실에서 킹스크로스쪽으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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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2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려는 마음을 다 잡고 hamstead heath 공원으로 향했다. 대책없이 전철역에 내려 공원쪽이겠다 싶은 곳을 찾아 걸었는데 막상 가니 생각보다 훨씬 넓어서 그냥 길따라 쭈욱 걷다 돌아왔다. 날 따뜻할 때 다시 오면 참 좋을 것 같은 공원이다. 혼자라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다음 주말엔 자전거가 생길테니 그 자전거로 돌아다닐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 주말에 잘 놀았으니 다시 또 열심히 일을 시작해야지..





공원에서 바라본, 멀리 보이는 런던 시내의 모습.. 날이 무쟈게 추웠다. 내복 입고 가길 참 잘했다 싶은..





어쩐지 날이 춥다 싶더니 결국 저녁엔 제대로 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2월이 되어서야 이런 눈이 처음 내린 것 같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일 아침에 지난 주에 만난 칠레 친구네 집에 가서 자전거 받아오려고 했는데 눈길에 자전거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내 방 창문을 통해 찍은 플랏 앞 거리. 마틴 아저씨가 빌려준 <메리크리스마스> dvd를 보며 혼자 또 맥주를 홀짝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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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al mass

매월 마지막 금요일은 'criticalmass'가 있는 날이라고 한다. 하비엘이 자기 집주인 자전거를 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보고 그거라도 타고 같이 가보겠냐고 해서 옳다구나 하고 쫓아나섰다. 금요일 저녁 7시에 워털루에서 출발하여 두시간 혹은 세시간 삘받는 대로 시내 곳곳을 휘저으며 다니는, 그래서 정해진 코스도 없고 언제 어디서 끝날지도 모르는 그런 행사였다. 이게 시작된지는 10년 정도 되었다는데 초창기에는 경찰차가 같이 호위를 해주곤 했단다. 그러다가 경찰차가 빠지면서  경찰쪽에선 이 행진이 있을 때마다 코스를 미리 신고해달라고 요구했다는데, 사실 주최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맘 가는 대로 페달을 밟는 거라 경찰도 어쩌지 못했다고..

정말 다양한 자전거들을 봤다. 이번에는 사람 많을 때는 얼추 300대는 될 듯한 자전거들이 모였는데 이 동네는 역시나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대세다. 페니어는 다들 하나씩 달고 있고. 심지어 골격은 완전 싸이클인데 거기에 바퀴 펜더(물받이?)와 페니어를 단 자전거들도 많다. 앞으로 자전거 사게 되면 그런 걸로 사야지 싶게 만드는 자전거였다.ㅎ  엠티비는 거의 보기 힘들고 프레임이 엠티비 처럼 굵더라도 타이어는 다 보통 주행용 바퀴들이었다. 미니 벨로도 은근히 많지만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고..

몇몇 라이더들은 전쟁반대나 티벳 해방 등등과 같은 슬로건을 붙이고 다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정말 평범한 복장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처럼 무슨 동호회 이래서 다들 달라붙는 옷 맞춰입고 그런 모습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짐받이에 웬만한 작은 집회는 충분히 커버할 만한 빠방한 엠프를 메달고 음악을 틀고 가는 라이더를 봤다.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도 들썩들썩,,

또 느낀 건... 난 이 동네 운전하는 사람들은 한국보단 더 젠틀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자전거를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다-, 이번에 떼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마다 차량의 통행을 막거나 방해하거나 하니까 온갖 욕과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도 꽤나 많았다. 재밌는건 라이더들 중에는 그런 무례한 운전자들을 향해 똑같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많았다는 거다.  일부러 시비걸고 싸우려고 자전거를 타고 나온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하는.. 요즘에 매일 비폭력 핸드북을 붙잡고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문득 저렇게 욕을 하는게 자전거 타는 행위가 표방하는 평화로운 삶과 모순되는 건 아닌가 혼자 또 잠시 고민을 했었다..-_-

트라팔가 광장에서 다들 자연스레 해산한 후에는 하비엘이 예전 행진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칠레 친구까지 해서 셋이 같이 펍으로 향했다. 하비엘은 싸이클, 그 친구는 아예 브레이크도 없는 경륜 싸이클이어서 동네 자전거로 걔네 둘 자전거 쫓아간다고 피똥을 쌌다.,;; 암튼 칠레 그 친구가 자기 남는 자전거 하나 있다고 나보고 쓰고 싶으면 쓰라길래 담 주에 자전거를 받으러 갈 예정이다. 만나서 대화를 나눈지 5분도 채 안되어서 서로 이름도 아직 모르는데 대뜸 자전거를 빌려준다니,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더 같이 놀다보니 허풍이 좀 심한 사람처럼도 보이긴 하지만..




사진을 좀 남기고 싶었는데, 제대로 나온게 하나도 없다...흑
그나마 우리가 뭘하고 있는지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사진. 가장 붐볐던 피카딜리 서커스 앞에서.

critical mass를 구글에서 쳐보니 아래와 같은 사이트가 있었다.
http://www.criticalmasslondon.org.uk/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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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mans Park

지난 주말에 마틴 아저씨와 함께 시내 투어를 하면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타워브리지 앞에 있는 펍에서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한게 기억에 많이 남았던.. 근데 아쉽게도 지난 주엔 카메라를 챙긴다고 챙겼는데 메모리카드는 노트북에 달랑 남겨두고 와서 사진을 한장도 못 찍었다.

마틴 아저씨가 데려가준 곳 중 한 곳이 포스트만 공원이었는데 왠지 익숙하다 싶어서 기억을 떠올리다가 불현듯 영화 <클로저>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자신의 이름(앨리스)을 빌려온 바로 그 공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찌나 반가웠던지..ㅎ 오늘 그래서 다시 이 공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온 김에 근처에 있는 Museum of London도 구경을..





이참에 <클로저>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땐 음악과 나탈리 포트만의 외모에 빠져들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주드로와 다른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찌질한 막장 남자들의 심리를 지켜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앨리스가 떠나고 주드로가 이 공원에 다시 찾아와 앨리스의 이름이 거짓이었다는 걸 깨달았을때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사무실들과 높은 빌딩이 즐비한 곳 사이에 자리잡은 공원..참 아담하고 적막하다.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앨리스.. 여기에는 남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예컨대 탬스강에서 자기보다 두살 어린 동생을 구하려다 물에 빠져 죽은 10살 소년(소녀였나?)의 경우처럼..





Museum of London 방향으로 나가는 문쪽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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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aign Against Arms Trade

마틴 아저씨가 오늘 또 새로운 자극거리를 던져주었다. 여기 런던에 사무실이 있는 '무기거래반대운동'(CAAT, http://www.caat.org.uk/)의  최근 소식지에서 한국 무기거래 관련 소식을 찾아서 주신 거다. 이 단체 홈페이지에는 아직 그 기사가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어서(마치 전쟁없는세상 소식지가 홈페이지에 늦게 업데이트 되는 것처럼^^;;;;;) 그 기사에 적힌 인용 신문 싸이트(Defense News, http://www.defensenews.com/story.php?i=3884643)를 쫓아가서 한국 검색을 했더니 꽤나 많은 뉴스가 나온다. 시간이 날진 모르겠지만 담에 한번 쭈욱 뒤져봐야겠다. 마틴 아저씨가 보여준 기사는 한국의 작년 무기 수출액이 10달러를 돌파하며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터키와의 계약이 큰 몫을 했다는 기사였다. 한동안 무기거래 이런 문제의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가 본 기사여서 그런지 솔깃했다.

CAAT 소식지에도 흥미로운 제목들이 많아서 거기 나온 인용 소스들만 찾아가도 '착한무기' 팀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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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Published in Gandhi Marg, volume 30, number 2, July-September 2008, pp. 235-257

브라이언 마틴

 

피터 겔덜루는 그의 '비폭력이 국가를 보호하는 방식'에서 비폭력이 무력하고, 인종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방법론면으로 뒤쳐지며 제도적 측면에만 의존하는 하나의 망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비폭력에 대한 이와 같은 그의 공격은 매우 강렬하며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겔덜루의 관점을 평가하기 위하여, 먼저 나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사례들을 조망하고 이를 겔덜루의 주장을 분석하는 토대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폭력이 언제나 비폭력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그의 논쟁적인 주장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판단으론 겔덜루의 주장들이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있는 비폭력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어떤 수준의 그리고 어떤 종류의 폭력까지 받아들일 있는 지에 대한 그의 기준을 말하고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나키즘과 폭력/비폭력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

나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오랫동안 옹호해온 사람이기에 내가 겔덜루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것이다. 나는 비판적인 분석과 접근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비폭력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에서 실험을 해보는 과정에서 더욱 강해질 있을 것이다.

비폭력 행동의 사례들


많은 사람들은 역사 수업이나 헐리우드 영화 그리고 뉴스 등을 통해서 폭력에 대한 가지 믿음을 갖게 된다. 하나는 군대와 무기, 군수산업과 같은 잔혹한 폭력의 상징물들을 많이 가진 집단이 대부분의 경우 들보다 폭력적인 집단을 압도할 있다는 믿음이다. 이와 같은 전제는 비폭력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제기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드러난다. “당신은 나치를 끝장내기 위해서 무엇을 것인가?” 번째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폭력에 대한 생각 하나는, 폭력은 단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자체로는 선악을 평가할 없다는 것이다. , 폭력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혹은 적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악이 되지만, 폭력이우리 의해 사용이 된다면 선이라는 것이다. 유혈혁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전제를 받아들인다. 그들이 믿기에 혁명은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고 따라서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무장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폭력 행동은 위의 가지 주장 모두에 도전한다. 비폭력 행동의 성공적인 사례들은 우월한 폭력이 언제나 승리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한편, 비폭력 행동이 가지는 속성은 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간디가 주창했던 비폭력 행동들은 사회 변혁에 있어 비폭력 행동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1906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하여 1940년대까지 인도에서 펼쳐진 비폭력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비폭력 행동은 간디 이전에도 수세기동안 존재해온 것이다. 예컨대, 헝가리에서는 1850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의 통치에 반대하며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비협조 운동을 벌어졌었다. 간디의 업적 중의 하나는 사회 변혁의 전략에 있어 비폭력 행동을 하나의 접근법으로 여겨지게끔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간디의 운동들은 비폭력 운동의 원리와 방법론들이 세계 전역으로 퍼지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회 운동들에서 이제 비폭력 행동은 하나의 중요한 접근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비폭력 행동은 정치적인 의사소통과 갈등해결의 주요한 도구 중의 하나로서 기존의 진부한 행동들이나 폭력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행위는 투표나 로비 그리고 기존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운동을 의미한다. 한편 전통적인 경제활동은 노동과 재화 용역의 판매와 소비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 활동은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 이웃을 만나는 , 자선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폭력 행동은 앞서 기술한 일상적인 상식과 행동체계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심지어 비폭력 행동은 기존의 가치체계들을 전복하기도 한다. 광대 복장을 하고서 정부 회의를 방해하는 시위, 국가 시스템과는 별개로 지역공동체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 전쟁에 반대하여 전쟁세 납부를 거부하는 , 소액 계좌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함으로써 은행 업무를 마비시키는 소비자 운동, 버스 노동자가 승차요금 받는 것을 거부하는 , 사무실 노동자가 용량의 파일을 전송함으로써 이메일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 지역화폐를 쓰는 ,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비폭력 행동의 사례에 해당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행동들과 비폭력 행동을 구분하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의 탄압이 심한 상황의 경우에는 리플렛 장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비폭력 행동의 범주에 수가 있겠지만, 파업이 일상적인 곳에서는 파업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은 단지 기존의 운동의 하나에 불과하다.

  1. 폭력은 보통 잠재적인 지지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맞서 싸우는 상대편들은 완강하게 버티며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이유는 '반응 추론 이론'(correspondent inference theory)이라고 불리우는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할 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행동의 결과를 근거로 행동의 동기를 추론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행동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있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결국 죽게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는 죽음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존하는 것이 행동의 동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론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들의 동기를 오인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작동한다.


폭력은 개인에 대한 상해를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특정한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바꿔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 한명을 죽이더라고 자리에는 재수없는 정치인이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정치인은 한편으론 누군가의 부모이며 친구이고 음악가였을 수도 있는데, 폭력은 그런 다양성을 간과함으로써 시스템의 전반적인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고한 개인의 죽음만을 불러오게 된다.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로 하여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하게 되며, 심지어 국가가 시위대들의 폭력보다 심한 폭력을 쓴다 할지라도 앞서 급한 '정치적인 유술' 효과는 반감하게 된다.

  1. 폭력은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단다. 젊고 건장한 남성들만이 공권력 그리고 시위대 양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무력을 동반한 비밀시위 역시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한다.

폭력은 폭력을 사용하는 당사자들은 고무시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제한된 참여는 결국 폭력의 사용하는 당사자들의 능력도 저하시킨다.

4. 방법론으로서의 폭력이 내포하는 속성들은 운동의 목표인 비폭력적인 사회의 모습과 충돌한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다만 폭력의 연습과 경험 그리고 정당성을 부여할 따름이다. 폭력은 즉각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참여자들이 원래 목표했던 길에서 벗어나 지배권력과 닮아가는 결과가 발생하기 쉽다.

비폭력의 관점에서 봤을 위에서 지적한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지적들은 폭력의 사용을 반박하는 핵심적인 논리들이다.

물론 여기서 지적한 비폭력의 논리와 폭력에 대한 반박 논리들은 다만 경향적으로 타당할 , 언제 어디서나 진실인 보편타당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비폭력 행동이 폭력적 행동보다 많은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비폭력 행동의 방식에서는 사람들의 참여가 제한적일 있으며 반대로 폭력을 수반한 운동들에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수단적 비폭력의 관점을 취할 때에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비폭력 운동들은 사람들의 자발성에 기대고 있으며, 특별한 준비과정이나 계획 혹은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폭력을 수반한 운동들은 무기와 훈련 그리고 많은 계획을 필요로 하며 이것들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적일 없을 것이다. 군사적 훈련과 작전에 투여되는 엄청난 재원과 노력들을 생각해본다면, 비폭력 행동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할 있는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동인 셈이다.

삶의 원리로써 비폭력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앞서 언급된 원리적 비폭력주의자를 의미함, 옮긴이 )에게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명의 독재자를 암살하는 것이 수백만의 고통을 경감시킬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암살과 같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비폭력 행동이 보통의 경우에 나은 선택이라고 한다면, 원리적 차원에서의 비폭력을 수행하는 것이 (실용적 관점에서도) 현명하다고 있는데, 이는 참여자들이 비폭력에 대한 오해할 가능성을 줄일 있고, 상대편으로부터 부당하게 폭력의 딱지를 받는 것도 피할 있으며, 행동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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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마틴 글의 사분의 일정도 번역을 같다. 용어를 선택하는 것도 어렵고, 맥락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고 생각보다 밑천을 많이 요구하는 작업인 같다. Principled nonviolence pragmatic nonviolence 구분을 처음 접했고, 어떤 단어로 번역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물어봐얄 같다. 지금 올리는 부분은 주석 처리도 하고 편집도 안했지만(ㅜㅜ), 번역 잡업에 나름의 성취감을 맛보고자 이렇게 거칠게나마 포스팅을.. 전체 원문의 주소는

http://www.uow.edu.au/arts/sts/bmartin/pubs/08gm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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