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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산책

가끔 길가다가 문득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너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거다. 그늘진 한적한 길모퉁이에 앉아있으면 마치 마법에 걸린 양 정신없이 무엇을 향해 걷는 사람들뿐이다. 가끔 지나는 어린아이들이나 주변을 둘러보고 제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
뒷산에 산책을 나가도 마찬가지다. 그 조용하고 좋은 길을 고즈넉히 걷는 사람들은 거의없고 다들 운동한답시고 바삐 걷는 사람들 뿐이다.

오로지 목적이 있어야 길을 걷고, 뭔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 일상에 바쁜 사람들을 지나치며 거리산책에 나섰다. 다들 걷는건 덥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바쁜 걸음이 아니라 느릿느릿 걸으면 바람도 조금씩 불고 그다지 덥다는 생각도 안든다.
한적히 산책을 하다보면 전에는 내 필요에 의해 보았던 것들 외에 많은 것들이 보인다.
‘아, 여기에 악기사가 있었구나...’
‘여긴 바이올린도 파네?’
길 건너편엔 서점도 보인다. 간판도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중고책방. 안에 들어서니 쾌쾌한 책 냄새도 나고... 참고서 중심으로 파는 책방과 달리 여러 장르의 온갖가지 책들이 빼곡이 꽃혀 있다. 헌책방이라 맘대로 책을 볼 수도 있고, 읽다가 맘에 드는 책은 살 수도 있다. 작은 구립도서관만한 중고서점... 빼곡한 책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책을 몇 권 골라본다.
 

다시 거리로 나와 행궁방향으로 올라가니 공방들이 보인다. 요 몇 달새 이곳에 공방이 많이 늘었다. 장신구와 집을 꾸미는 소품들을 구경하고, 차를 한잔 마신다. ‘햐~ 좋다...’
단골 술집에 들러 쥔장과 바둑한판을 둘까, 아니면 지난번 옥수수를 쪄서 마실나갔던 갤러리에 들릴까 생각하다가 좀 더 걷기로 했다.
큰길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드니 쓰러져가는 집이 보인다. 저 집엔 누가살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삐까번쩍 화려하진 않지만 마당에 이것저것 채소들을 심어놓고 화단을 가꾼 집들을 보니, 내 집도 아니건만 맘이 뿌듯하고 괜스레 기분까지 좋아진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장을 보러 갈 때도 자동차를 이용해 마트를 가고 왠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자동차를 끌고 다니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내가 살아가면서 마주쳐야할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나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런 주변의 것들에 소홀해질 때 삶이 단조로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상의 삶에서 여유로운 산책은 내 삶에 숨통을 트여준다. 산책을 통해 사람이 원래의 제 속도를 찾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구나 싶다. 속도를 미덕으로 아는 사회에서 내가 감당하지 못할 속도감으로 살다보니, 다들 인간성을 잃고 주변과 함께 하지 못하는구나하는 생각마져 든다.

 

우리가 삶에서 되찾아야 할 것 들을 나열한다면, 그중 나를 여유롭게 하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로운 산책’을 되찾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부는 지금, 당장 아무 생각없이 동네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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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권연대에 지난달에 기고한 글이다.

정말 가을인갑다,.

아랫골목길에 있는 대추나무에 대추가 벌겋게 익어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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