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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아버지의 별세로 서울에 올라간지 일주일만에 수원에 내려왔는데, 처음 들어선 수원이 왜이리 낯설던지...

마치 두어달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온듯한 느낌이었다.

 

당뇨가 심하시던 아버지는 여름부터 잠을 못 주무실 정도로 배가 아프셨단다.

엄마 말로는 하도아파서 엄마를 붙잡고 울기도 많이 우셨다고...

췌장암 말기 판정을받은건 작년 12월이다.

가족들과 아버지는 식구들끼리 남은 시간을 보내길 원했지만, 병원의 장사속으로 항암치료에 들어갔고...

결국 한달 반가량 힘들게 항암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그 남은 한달반 남짓한 시간을 좀 편하게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엄마가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나면 읽을수있게, 그간 아버지가 쓰시던 일기장을 집에 가져와서 정리를 했다. 이전것은 못찾았고 2003년에 잠시 썼던 일기와 2009년에 이어서 쓰셨던 일기가 있었다.

일기를 정리하면서 짝꿍과 몇가지 알아낸 것은 참 힘들게 그렇지만 노력하면서 일평생을 사셨구나 하는 것과 막내아들인 나를 정말정말 사랑했구나 하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몇몇가지...

 

어릴때부터 어렵게 살아온 아버지는 '성공'과 '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들보다 훨씬 강했고, 70-80년대 시대의 흐름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다. 누가 들어도 소설같은 삶들...

그리고 그 어려운 삶, 굴곡이 심한 삶의과정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실낱같은 희망을 바라보면서 항상 긍정적이었던 아버지...

 

항암치료로 몸이 꽤나 힘드셨을텐데, 이번 항암치료가 끝나면 함께 술한잔 하자고 집에 가면 말씀하시곤 했다.

그 한마디가 왜이리 가슴에 남는지...

난 고인이된 아버지를 굳이 붙잡아둘 생각은 없다. 다만 편하게 술한잔 나누면서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 못해서 아쉬울뿐이다.

친척들이나 형제들에게도 항상 멋있게 산다면서 막내자랑을 하시던 아버지...

평소에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그 사랑을 알기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그분의 손을 아무말없이 꼭 잡아드렸다.

 

죽음에 대한 아쉬움은  삶의 기간에 있는것이 아니라 삶의 내용에 있다.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삶,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늘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사셨기에 돌아가신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으련다.

그래도 가끔 너무나 화창하게 맑은 날이나, 짙은 안개 낀듯이 흐린날에는 아버지와 기울일 한잔술이 그리워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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