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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파티 후기

12월 6일은 비정규 권리선언에서부터 수원집회까지 여기저기 집회가 많은탓에 저녁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와인도 들고오고, 귤도 한박스, 꽃다발도...

다들 뭐 하나씩 들고서 모이기 시작했다.

시와음악이 있는 파티라고 했더니만 음악과 시도 준비해 왔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분위기를 잡기위해 와인을 한모급씩 돌렸다.

 

촛불도 켜놓고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조용한 음악에 '결혼'에 대한 시도 낭송했다.

 

술은 분위기를 맞춰서 와인에 이어 정종을 뎁혀서 한잔씩 돌리고...

그 다음은 역시 맥주와 소주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술'에 관련된 이백의 시가나오고,

낮에 집회에서 낭송했다는 인권관련된 시도...

그리고, 기타와 어우러진 노래까지...

 

술과 노래와 수다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들 얼마나 배를잡고 웃었던지,

나중에서 안면 근육이 떨릴 지경이었다. ^^*

한 몇년은 웃을 웃음을 다웃었다고...

 

순식간에 모인사람들이

아버님부터 고모, 언니동생까지 가족으로 둔갑되면서 즐거움은 더해갔고...

 

역시 사람은 여럿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한다.

사람이 모이다보면

남을 웃기는 사람이 있고, 또 그에 웃어주는 사람이 있고.

외로운 사람이 있고, 또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이 있고.

기쁜사람이 있고, 기쁨을 나눌수 있는 사람이 있고...

 

간만에 파티를 준비하며 준비에 들어간 돈도 많았지만

돈으로 찾을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얻었다.

정말, 그날저녁처럼 그렇게 웃고만 살았으면...

^^*

 

 

 



어리버리의 일상 다반사
 
가족의 탄생
어리버리(lightstart@jinbo.net)
 
 
지금 우리집에는 4명이 살고 있다. 32평 아파트에 우리부부와 친구들 2명. 친구들 2명이 함께 살게 된데는 뭐 별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집이 둘이 살기엔 너무 넓고, 그 친구들은 살 집이 필요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였다.
함께 생활공간을 공유한다는건 즐겁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지금의 가족들은 아직까지 그렇게 불편함은 느껴보지 않았다. 가끔은 늦게까지 화투판과 술자리가 이어져, 일찍 잠을 자야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지장을 주긴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서로의 생활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해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가족이니깐.
하긴 전에는 15평 남짓한 공간에 7명이서 함께 살았었다. 여름에는 옹기종기 붙어 자는게 너무 더워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했었다. 그 작은 집에 일곱명이서 그것도 고양이와 함께 근 2년을 살았다니...
참, 그러고보면 처음 집에서 독립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게된 가족의 탄생은 우여곡절이 많다.
처음 독립을 할때는 이런저런 구상도 많고 꿈도 많았었다. 친한 친구들과 모여 공동체 비슷한 삶을 살려고 친한 대학 동기와 함께 방을 구했다. 이사를 얼마 앞둔 시기에 나랑은 얼굴정도만 아는 여자후배도 지역에서 활동을 하려고하는데 함께 살수있겠냐고해서 별 고민없이 허락을 했다. 그리고 이사때가 거의 임박했을 때 함께 살기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왔다. “정말 미안한데, 나 결혼하기로했어... 같이 자취하기는 어렵겠다...” 결국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여자후배와의 둘만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그 동거가 시작된지 4년만에 함께 사는 식구들이 7명으로 늘어났다.
여럿이 모여사니 연일 시트콤 ‘세친구’같은 재미난 일도 많이 일어난다. 더구나 좁은 공간에 서로 복작거리며 살아가니 더욱 그렇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가출을 해서 찾아온 친구와 놀아준다고 연일 회사에 결근했던 일도 있고...
결혼을 하고 처음 32평 아파트를 얻어 병점으로 이사왔을때는 또 다른 후배2명이랑 살았는데, 항상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집은 ‘유토피아’란 이름을 붙이고 쉬고싶은 사람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수원에 오면 누구나 어려움 없이 묵어갈수 있는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으니깐. 한번은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등기를 전달해 주면서 마루에 자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당시 함께 사는 친구와 내가 노조에서 활동하던터라 경찰서에서 등기가 많이 날라올때였다. 연일 경찰서와 법원에서 등기가 날라오고, 집에는 항상 4-5명 이상의 건장한 남성들이 대낮에도 마루에 자고있고... 얼마나 궁금했었는지 그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법원에서 온 등기하나를 몰래 뜯어본듯하다. 그 등기가 하필 건설노조 공안탄압때 법원에서 날라온 ‘공갈협박, 금품갈취’의 죄목인 재판안내장이었으니... 그날 등기를 받는 나에게 아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기 혹시 기숙사 같은 곳이냐고... 아저씨는 우리집을 조폭 기숙사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 불편함도 많고, 오해나 스트레스도 받는다. 처음엔 라이프 스타일이 맞을거 같은 이들을 고르기도 했는데, 사람은 살아봐야 안다고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생활방식이 많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이런것들을 어떻게 조율할까 하는 고민에서 매주 가족회의를 하기도하고, 생활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함께 사는 것에 어느정도 노하우가 생겨, 나의 불편함을 서로 감정상하지 않게 이야기하는것에 어려움이 없으니 스트레스 쌓일 것 없이 그때그때 문제를 풀어간다.
이렇게 여럿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삶에 있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상적인 불편함에 대해서 감정 상하기 전에 서로 공감하는 방법이나, 서로 갈등이 생길 때 내 삶을 얼마나 양보해야하는지, 하다못해 공동의 생활비를 어디에 먼저 지출을 할지 또는, 생활비가 모자랄 때 어느곳에서 씀씀이를 먼저 줄여야하는지 등등 생활에서 부닥치는 일들을 함께 처리하면서 삶의 원칙(?)을 배운다. 뿐만 아니라 거주 형태에서도 보다 많은 것을 함께 만들어 갈수 있는 마당있는 집을 고민하게 되고, 핏줄로 연결된 지금의 사회에서 서로를 옭아 맬 수밖에 없는 가족보다 각자의 지향점과 가치를 찾아갈수 있는 가족을 고민하게 된다.
한이불을 덮고 사는 친구도 안정된 가정보다 꿈을 쫒아가는 많은 경험을 원하니 천생연분이다.
 
나는 아직도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한집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이웃에서 서로 많은 것들을 나눠가며 살아가는 꿈을 꾼다. 그러다 보면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좋은 이웃들도 많이 만나겠지...
요즘 고민하는 활동도 이런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을 이웃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동네를 이야기하고, 함께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가고... 현 정치권에 대해, 사회에 대해 비판을 하고 또 다시 그들에게 해결책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부터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내 삶부터 그렇게 바꾸어 가는 것이다.
행복한 운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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