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끼치는 요조

from 2007/02/16 17:00

나는 언제나 들킬까봐 겁이 났다.

 

요조정도면, 성공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잘생겼고, 좋은 대학에 갔기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는다.

덕분에 완벽하게(?), 모든 잘못을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타인들의 탓으로 돌리는 쾌거를 거두었다.

 

나는 요조가, 일본 순정만화 주인공의 대부격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지장같은 영혼에 똥, 오줌, 오물들을 발라보려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와 경멸.

 

요조같은 인간에 열광하는 인간들.

 

 

 

 

우습게도, 나는 인간들이 요조를 좋아해서, 인간들이 싫다.

 

 

 

 

 

 

 

하지만, 누구나 사랑받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진다.

요조조차도. 혹은 요조야말로.

 

 

 

나는 늘 폐가 될까봐 염려하며 살아왔다.

엄마 뱃속에 들어있을 때부터,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폐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견딜 수가 없다.

폐가 되는 녀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아주 작게 태어났고, 가능하면 죽어보려고도 애썼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죽어보려는 노력때문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기저귀에 오줌을 싸도 울지 않았다.

오줌싼 것 정도로 어머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축축하기는 했지만 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견딜만 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주변 인간들에게 푸념하곤 하셨다.

'우리 요조는 대체 울지를 않아요. 집에 아이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라니까요.

기저귀를 갈아주면, 엄마 정말 죄송해요, 라는 표정을 짓는다구요.'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인간들을 거북스럽게 하고 폐를 끼치고 있다는 느낌.

'저 녀석때문에 뭔가 기분이 나빠지고 있어'라고 사람들이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본능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폐가 되는 존재를 알아본다.

나는 들킬까봐 너무 겁이 나서, 이불속에 머리를 묻고 죽음이 나를 데려가주는

달콤한 상상을 했다.

더이상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은 부드러운 연민과

없는 자에 대한 무관심, 관대함으로 편안하게 나에 대해 담소를 나눌 것이다.

죽은 자는 폐가 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에게 조금은 얼굴이 붉어지는 은밀한 즐거움을 제공할 뿐이다.

 

하지만,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날 속일 순 없어, 너는 폐가 되는 조그만 생물이지. 그렇지 않은 척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에 너는 더욱 나빠. 폐가 되는 쬐그만 사기꾼 녀석. 너만 보면 나는 칼을 들고 싶어지지. 너는 내 안에 기분나쁜 감정을 일으켜. '

나는 아버지의 눈 속에서 언제나 그런 말들을 읽을 수 있었다.

 

더더욱 좋지 않았던 것은, 내가 아주 병약했다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그런척 할 수가 없었다.

아니다, 사실은 나는 번번히 내가 폐끼치는 존재라는 것을 숨기는데 실패했다.

 

폐끼치는 존재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나와 함께 있으면 처음에는 조금 우쭐해지고

그다음에는 기분이 나빠져서 공격적이 되고  

그 다음부터는 삶에 대해 지겨워하거나 무기력해지게 된다.

 

어머니는 내가 5살이 된 해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나는 매번 실패했다.

학기초에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별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조금 지나면, 모두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선생님들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뭐든지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공부를 잘했고, 그림이나 글짓기, 각종 경시대회, 경필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다른 방법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나를 예뻐해주지 않았다.

도리어, 조금 재수없는 아이라는 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상을 건네주었다.

나는 번번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들에게서 뭔가를 읽어보려 애썼지만,

답은 명백했다.

그들은 내가 폐끼치는 존재임을 알게 된 것 뿐이었다.

 

한번은, 방과후에 집에 가지 않고 아이들 세명과 교실에 남아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먹과 한지를 가지고 들어와 탁자에서 사군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근처로 다가가 구경을 하면서

자기들을 위해서 그려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나는, 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아이까지 모두다 네장씩의 그림이 그려진 한지를 들고 좋아하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미묘한 승리의 쾌감을 가지고 나를 돌아보았고,

선생님은 못마땅한 듯이 대나무를 하나 그려 내게 건넸다.

"자, 이제 선생님은 바쁘니 다들 집에 가거라."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성적이나 상장으로는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는 아이가 되어보려 애썼다.

사람들 앞에서 바보같이 굴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실수를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나는 조금은 능숙해진 것같은 기분을 가끔 느꼈다.

일단 우쭐해지게 한 다음, 기분나쁘게 되는 단계에 들어서기 전에

사람들을 웃기면 성공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는 실제로 너무 능숙해져서,

혹시 내가 더이상 폐끼치는 존재가 아닌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얼빠진 믿음을 가져보기조차 했다.

 

선생들보다는 또래 아이들이 훨씬 더 쉬웠다.

선생들은, 아버지와 같은 눈으로 의심스럽게 나를 바라보곤 했고,

나는 그들을 속이는 것이 너무 벅차서

그들을 역이용해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쪽을 택했다.

 

사람들은, 모든 지나친 것들에 대해, 자신에게 폐가 된다고 느낀다.

너무 예쁘게 꾸미거나 너무 공부를 잘해서는 안되었다.

너무 못생기거나 너무 공부를 못해도 안되었다.

너무 웃겨도 안되고 너무 진지해도 안되었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하면 안되었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말해도 안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명백하게 있어도 안되었다. 명백하다니.

 

그것들은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알고보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꽤 잘해내고 있었다.

 

중학교에서 익숙해진 친구들을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고,

대학에서는 의외의 행운이 내게 깃들어 있었는데,

내가 선택과 과에 여학생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적 욕망으로 뱃속이 들끓는 남자들은

내가 폐를 끼치는 존재이건 아니건 그닥 상관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번 하는 것, 그것이 그들 삶의 목표였으니까.

 

술자리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조금 어리숙하게 보이면

모두들 만족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가져왔던 의심을 소리내어 말하는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야. 그들이야말로 정말 끔찍하게 폐가 된다고.'

 

그것은 좋지 않았다. 정말로 좋지 않았다.

 

그는, 내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내면에 있는 진실을 보게 하는 거라고.

그 말들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담배같기도 했다.

그들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결국 그들은 떠날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더이상은, 나도 못견디겠어. 포기하고 말겠다구. 너같은 건 너무 끔찍해.'

 

 

그 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끄적거리곤 했는데,

분노에 차서, 혹은 혐오감, 혹은 두려움, 인간들에게 숨겨온 모든 감정들을

제멋대로 끄적대었고, 그런 뒤에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색을 덧입히고, 대충 잘 치장해서 남들에게 보여

사람들을 속여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것은 해묵은 습관이었다.

 

거기에는 내가 근본적으로 폐가 되는 존재라는 것이 너무 잘 드러나있어서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은 잘 속지 않았다.

 

 

너무 오래 모든 것이 문제 없다고 느껴서, 내가 너무 오만해진 것이 문제였다.

 

한번 하고난 남자들은 다시 나를 찾지 않았다.

욕망의 불구덩이에서 벗어나고 나면, 그들은 내게서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게 지나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지나친 점이 있다고.

 

 

술과 담배는 순간적으로 내 긴장을 마비시켜 사람들을 지나치게 웃게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지나치게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기조차 했다.

 

나는 심하게 폐를 끼치는 존재로, 아주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 폐끼치는 영혼을 뽑아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먼 곳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는데, 어딘가의 벽에 부딪혀 돌아와버린 것이다.

 

 

졸업한 뒤부터는 뒤에서부터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가속도가 붙어서,

나는 순식간에 결론에 도달했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을 하면서부터

나는 아버지와 선생들을 속이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가를 깨달았다.

그들은 매일같이 지겨움과 무기력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이라면, 간단하고도 초라한 것 뿐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더이상은 지쳐서, 못하겠노라고.

나는 폐를 끼치는 존재다.

내가 당신에게 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은 내가 폐를 끼치는 존재라고 말해서, 내 곁에 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나는 정말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16 17:00 2007/02/16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