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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수요일 스터디

스터디가 스터디 다워야 할터인데.....걱정이 크다.....맨날 딴 이바구만하다가.....술먹으러 가는 모임이 되고 있군하.....

본말전도.....뷁......

 

 

욕구, 생산과 분업

 

 

맑스는 사회주의에서의 욕구와 국민경제학 아래서 만들어지는 욕구가 다르다고 본다.

각각의 사람은 타인에게서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는데 이는 타인에게 새로운 희생을 강제하기 위해서이고...

-생산관계가 착취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나의 욕구 충족은 즉 타자의 희생이 전제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서의 욕망은 정말 맑스가 예상한대로 자아실현의 욕구, 창조의 욕구, 그야말로 생산적인 욕구일 것인가......

 

라캉은 생존에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욕구need와 욕망desire을 구분한다.

그가 보기에 욕망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언어체계인 상징계에 진입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타자의 욕망으로 전이된다.

여기서 굳이 논거를 제시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모델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라캉의 사유에 대한 동의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trend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라캉의 논의에서 드는 의문점은 타자의 욕망이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전이되는 순간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 욕망을 실현한다는 것의 정체도 사실 명석판명하지 않고 애매하고 혼잡스러운 개념이다.

하지만 여기서 욕망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해답을 내리는 것은 사양......사실 잘 모르겠으니깐......패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맑스의 논의대로 사회주의체제라는 목가적 상태에서 욕망이 과연 타인의 희생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가에 대한

타당성의 확보가 아니라,  맑스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라는 이윤이 지배하는 시스템에서는 나의 욕망의 실현은 타인의 희생을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그 자체의 확인이다.

 

모든 것을 하나의 사유체계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조급함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욕망을 올바르게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단계의 실현을 가능케 하기 위한 충분조건으로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1단계일지도......

 

사유재산은 조야한 욕구를 인간적 욕구로 만들줄 모른다.

-왜겠니?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화폐의 지배를 벗어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가? 사람들의 생활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삶으로 바뀐지 오래가 아닌가......

 

국민경제학은 금욕적이지만 폭리를 취하는 구두쇠이자 동시에 금욕적인 그러나 생산하는 노예이다.....

 

국민경제학은 도덕적인 학문이다. 자기체념, 생활의 체념, 모든 인간적 욕구의 체념이 국민경제학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대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화폐는 할 수 있다. 화폐는 먹고 마실수 있으며 극장에 갈수 있고, 화폐는 예술, 학식, 역사적 진품, 정치권력을 알고 있으며, 화폐는 여행할 수 있으며 화폐는 그대가 모든 것을 갖게 할 수 있다.

화폐는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다. 화폐는 진정한 능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인 화폐는 자기 자신 이외의 어느것도 창조하고 싶어하지 않고,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떤 것도 구매하고 싶어하지 않거니와, 다른 모든 것은 결국 화폐의 종이기 때문이며 내가 주인을 갖고 있다면 나는 종을 가지게 되고 그의 종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모든 열정과 모든 활동이 탐욕 속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멜더스는 사치를 장려하고 절약을 저주한다. 결국 절약하기 위해서

리카아도는 절약을 장려하고 사치를 저주한다. 결국 사치하기 위해서

 

 

 

 

쉽하.....알바갈 시간이군하.....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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