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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2

 

칸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

①합리론의 한계: 독단론에 빠짐

②경험론의 한계: 회의론에 빠짐

③제 3의길에 대한 모색⇉ 비판철학

 

 

서양근대 철학의 과제는 어떻게 인식이 가능한가이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자연에는 객관적 법칙성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객관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연법칙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객관적 자연에 대한 실험과 관찰 등의 경험이 필수적이지만, 그러한 인식의 가능 근거 및 필연관계와 보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찰과 같은 경험만으로는 불충분함을 알게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철학적 물음이 인식주관이 객관세계에 대한 보편타당한 필연적 인식을 갖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인식의 연결고리는 초월자로서의 신이다.신은 주관체인 인간과 객관체인 자연을 창조한 공통 근거이고, 여기에 기반해 인간의 영혼은 신의 창조이념을 신에 의해 획득하게 됨으로써 세계의 원리를 알게 된다. 신은 인간이 파악하는 진리의 확실성을 담보해주는 확실한 근거로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 데카르트의 회의를 통해 그 확고한 기반은 흔들리게 되고 다시금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물음과 그의 근거 확보에 대한 것이 근대철학의 1화두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자신의 회의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데 있어 스콜라 철학에서 해왔던 방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성이 가지고 있는 본유관념의 근거는 신의 창조이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신이 부여한 본유관념을 통해 파악되는 이성적 진리는 세계 자체에 필연적인 신적 진리이며, 따라서 그 인식은 선천적으로 보편타당성을 지닌다.

 

하지만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은 신의 피조물인 인간들사이에서도 논의가 엇갈리는 지점이다. 설사 신의 존재가 판명된다고 하더라도 신이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본유관념을 부여했는지는 어떻게 확인되는가? 수많은 피조물들 중 왜 하필 인간에게만 본유관념이 주어지는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경험론자들의 비판은 시작된다. 이러한 합리론의 독단은 경험론자들이 볼때 중세신학의 답습에 불과한 것이다. 경험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본유관념이 없는 백지상태에 불과하며, 인간의 인식은 감각적 경험과 그로부터의 귀납적 추론에 의해 얻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에 의하면 필연적으로 회의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귀납추론은 예외적 사실이 발견되는 순간 그 논거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아직 예외가 발견되지 않은 지식이라 하더라도 언제 예외가 발견될지 모르는 상황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견되기 전에 뉴턴역학은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결국 경험과 귀납논리의 한계에 의해 인간의 이성은 필연성이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게 된다. 경험적 인식은 우연적이고 개연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경험론에 의하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연과학적 명제는 개연성만 있을 뿐 필연성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확실성을 가진 수학적 명제 또한 세계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지 않는 분석명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등에서 가지고 있는 근본명제들은 각 분야에 있어 철학적 정당화없이도 이미 세계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그런 인식의 가능근거를 설명하지 못하는 경험론의 회의론은 개별과학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철학자체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수학적 진리가 세계의 존재질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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